제239화. 특수대응팀, 습격당하다 (1)
야심한 밤, 실드경계지역.
새벽공기가 내려앉은 도시는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휘익휘익.
그때, 밤하늘을 가르는 까만 그림자가 실드경계지역의 건물 위로 속속들이 착지하기 시작했다.
지잉.
AC 슈트의 위장기능을 활성화시킨 그림자들은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꺼냈다.
찰칵. 철컥.
여러 가지 소형 장비들을 옥상 난간 위에 올려놓자 작은 돌멩이 형태로 변했다.
그리고 이어폰을 귀에 꽂자 건물 내부의 소리가 또렷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은호야! 과자 먹으면 바로 치우라 그랬지?
이 작은 돌멩이처럼 생긴 기계는 바로 최신형 감청장비였다.
그림자는 한참 동안 몸을 웅크린 채 장비가 잘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몸을 날려 밤하늘 위로 사라졌다.
* * *
어느 밀실.
천장엔 어둠을 간신히 밀어내는 낮은 조도의 조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허공에 띄워진 수십 개의 스크린에는 특수대응팀과 한호조의 프로필, 그리고 상황실이 지어진 빌라가 다양한 각도로 비치고 있었다.
띠릭.
그때 스크린 옆에 서 있던 정장 차림의 남성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스크린에 특수대응팀의 시간대별 이동 경로가 띄워졌다.
-팀장 초홍은 오전 9시 협회로 출발, 돌아오는 시각은 20시.
-탱커인 한만재는 9시부터 19시까지 상황실 근무를. 이후 20시부터 21시까지 던전 순찰.
-비번인 유은호는 오후 5시에 외출해 23시 귀가 예정.
-힐러인 신채영은 교관으로 파견된 상태였고, 한호조는 7시 귀가.
남성의 맞은편.
나노슈트를 입은 채 묵묵히 스크린을 바라보던 근육질의 남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작 자료를 빼내는 임무에 사우(死雨)팀을 움직인단 말입니까.”
사우. 죽음의 비.
악명높은 테러리스트, 혹은 국가의 중대한 위협이 되는 각성자들을 조사, 취조, 제거의 권한까지 갖고 있는 암살조직이다.
이 근육질의 남성은 염동력 스킬을 갖고 있는 사우팀의 팀장, 곽철우였다.
낮고 냉소적인 목소리. 잘 벼려진 근육.
어둠 속에서 번들거리는 눈빛을 하고 있는 그는 전형적인 암살자의 용모를 하고 있었다.
“프로필상으론 특별한 경력도 이력도 없군요. 운 좋게 얻은 스킬빨로 승승장구한 협회 요원들처럼 말입니다.”
각성자들의 실력 평가는 스킬 종류와 육체각성도에 좌지우지된다.
한마디로 얻어걸린 능력으로 최고 요원이 될 수 있다는 뜻.
때문에 경력을 쌓은 정보국의 베테랑 요원들은 각성자들을 조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럴 리가 있나.”
정장 차림 남성이 고개를 흔들었다.
“과거 박정민 실장이 조직한 팀 중, 유일하게 김수웅 실장이 쥐고 있는 팀이다. 상당한 실력자들이겠지.”
“그래봤자 몬스터나 사냥하는 협회 각성자가 아닙니까.”
“착각하지 마라. 이건 암살 임무가 아니니까.”
정장 남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일이 잘못되면, 내 목이 날아갈 수도 있어. 절대로 발각되거나 비밀이 새어 나가선 안 돼. 무슨 말인지 알겠어?”
“글쎄요.”
자신이 알 바 아니라는 곽철우의 말에 정장 남성이 낮게 말했다.
“어르신.”
깊은숨을 들이마신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분과 관련된 일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순간 곽철우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어르신. 그 단어가, 누구를 지칭한다는 걸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곽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왜 암살조직인 사우의 팀원 모두가 전원 소집되었는지.
사람이 살지 않은 실드경계지역에서 작전을 실행하라는 임무를 받았는지를.
잠시 침묵하던 곽철우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땐 어떻게 하는 겁니까.”
“만약의 사태라니.”
“신분이 노출될 경우, 저희 식대로 처리해도 되냐는 겁니다.”
사후의 처리방식. 그것은 적의 영원한 침묵을 뜻한다.
‘이 미친놈…….’
정장 남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늘 피를 보는 암살조직 요원들은 평범하지 않다.
은퇴 후 평범한 노후를 보낼 생각조차 없다. 그저 살아 있는 동안 기계적으로 임무를 처리할 뿐이다.
특히 곽철우는 각성자들을 도륙하는 데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 변태로 소문난 터였다.
“절대로 안 돼.”
짜증스럽게 외친 그가 다시 말했다.
“그랬다간 협회와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어.”
“이미 전면전을 하고 있는 상태가 아닙니까.”
“뭐라고?”
“아무리 은밀히 가져온다고 해도 결국 협회에선 알아낼 텐데요.”
사실이다.
아무리 은밀히 정보를 빼냈다고 해도 결국에는 꼬리가 밟힌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놈들은 분명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의 목은 분명 날아갈 것이다.
‘어차피 호랑이 등에 탄 셈인가.’
두 눈을 가늘게 뜬, 정장 남성 자신을 깔아보며 미소 짓는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벌써부터 제 말에 토를 다시는 건가요?
‘그 자식…….’
지금까지 엘리트의 삶을 살아왔던 자신에게 처음으로 모멸감을 느끼게 해준 인물.
그 얼굴을 떠올리자 가슴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활활 타올랐다.
‘어차피 뒤집어쓸 거라면.’
심호흡을 한 그가 다시 말했다.
“자신 있나? 상대는 고위 각성자야.”
“늘 하던 일이 아닙니까.”
“좋아. 삶든 굽든 알아서 하도록. 단…….”
곽철우를 빤히 바라보던 정장 남성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처리해야 할 거야.”
* * *
황량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무렵.
모습을 완벽히 감출 수 있는 위장슈트를 입은 채,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던 그림자들이 있었다.
스으. 스으.
땅을 박차거나 착지할 때마다 특수 제작된 신발이 이동하는 소음을 흡수한다.
바로 사우팀의 팀원들이었다.
순식간에 실드경계지역 부근에 도착한 그림자들은 이내, 특수대응팀 상황실이 있는 빌라 앞에 도착했다.
“…….”
낡은 폐건물에서 무심히 빌라를 내려보고 있던 사우의 팀장 곽철우가 부팀장, 이준성을 보며 말했다.
“B팀은 이곳에서 대기하고 외부 상황을 보고해.”
“알겠습니다.”
이준성이 대답하자, 곽철우가 다시 AC 슈트의 전원을 넣으며 말했다.
“나머지는 날 따라와.”
특수대응팀의 빌라는 여느 주거단지에 있을 법한 스타일로, 꽤나 고급스럽게 지어져 있었다.
하지만 창문은 특수 제작된 금속으로 되어 있었고, 외벽은 모두 강화 콘크리트 재질로 지어져 있었다.
“완전 요새를 지어놨네요. 벽 두께가 일반 건물보다 다섯 배 이상 두껍게 지어졌습니다.”
곽철우 등 뒤에 서 있던 해킹 담당 요원, 김철영이 빌라를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저었다.
“그나마 출입문 보안장치 수준은 그리 높지 않네요.”
김철영의 옆모습을 내려다보던 곽철우가 물었다.
“시간은.”
“3분이면 됩니다.”
팔에 부착한 소형 컴퓨터를 연 김철영이 연신 손가락을 움직였다.
철컥.
보안장치를 해제하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부하가 말했다.
“내부엔 별도의 보안장치는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김철영이 앞장서서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곽철우와 나머지 팀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깔끔하게 꾸며진 빌라 내부가 보였다.
일반 가정집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고, 각 층이 내부 계단으로 이어진 구조였다.
“상황실은 4층입니다.”
계단을 올려다본 김철영의 말에 곽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료란 자료는 모두 빼오도록”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나와 함께 이곳에 대기한다.”
김철영이 계단으로 향할 무렵, 곽철우의 귓가에 무전이 들려왔다.
-팀장님. 택시 한 대가 그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택시?’
이상함을 느낀 곽철우과 팀원들은 다시 능동위장슈트의 전원을 켰다.
여덟 명의 팀원들이 모습이 모두 투명하게 변할 무렵, 다시 무전이 들려왔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혼자 타고 있습니다.
“한호조라는 아이다. F급 탐지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
곽철우는 어깨에 착용하고 있는 무전기 리시버에 대고 말했다.
“F급 탐지로는 우리가 있는지조차 모를 거다. 그냥 지켜보도록.”
* * *
택시 뒷좌석이 타고 있던 한호조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이게 얼마만의 감기지?’
각성자라고 해서 감기에 안 걸리는 건 아니다.
다만 한호조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잔병치레를 해본 적이 없었다.
아프면 안 되니까. 힘들고 지친 아버지가 더 아파하실 테니 말이다.
“으음.”
눈을 뜨기도 힘들고 머리도 어지럽다.
숨을 헐떡인 채 머리를 기대앉아 있는데, 운전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생, 다 왔어.”
“아, 네에.”
계산을 하고 택시에서 내린 한호조는,
“끄응.”
비틀거리며 정문에 장착되어 있는 지문 센서에 손을 갖다 대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리가 뜨거워지며 집안 내부가 샅샅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능시야가 발휘된 것이다.
‘뭐야. 저 사람들…….’
능동위장슈트를 착용한 채 1층에서 대기하고 있는 인원이 일곱 명.
그리고 한 명은 4층의 상황실 앞에 선 채 소형 컴퓨터로 보안 해제를 하고 있다.
‘위에도 있잖아.’
50미터에 있는 폐건물 옥상에도 은신하며 이쪽을 내려다보는 요원이 있다.
전능시야를 발휘해 보았지만, 전혀 알지도 못하는 얼굴에 신분을 증명할 만한 도구도 없다.
‘도망갈 수 있을까?’
가쁜 숨을 몰아쉰 채 대문을 바라보던 한호조가 입술을 깨물었다.
평소라면 금세 발견했을 테지만, 독감에 걸린 탓에 전능시야가 발휘되는 것이 늦어버렸다.
‘지금 이상한 행동을 하면 들통날 거야.’
한호조는 땅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이 상황을 가장 빠르게 이해할 사람. 그리고 누구보다 빨리 이곳으로 올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렸다.
그리고 지체 없이 단축번호 2번을 누르던 찰나,
“그러면 안 되지.”
갑자기 귓가에 낮은 음성이 들려오더니, 숨이 턱 막히기 시작했다.
‘염동력…….’
의식을 잃기 전, 한호조는 위장슈트를 입은 채 손을 뻗고 있는 근육질의 남성을 볼 수 있었다.
“……?”
한호조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일부러 눈을 감은 채 계속 자는 척을 했다. 주변에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스킬… 발휘가 잘 안 돼.’
독감의 영향 때문인지 전능시야의 범위가 확연히 좁아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은 초홍이 머무는 4층의 소파에 누워 있었고, 그 주위로 나노슈트를 입고 있는 여러 명의 각성자들이 있었다.
모두 능동슈트로 인한 투명화가 되어 있지만, 전능시야 앞에서는 또렷한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협회 사람들이 아냐.’
얼굴은 피곤에 절어 있는 듯하고, 눈빛은 칼날처럼 살벌하다.
도살자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으로 보아 평범한 각성자들은 결코 아닌 듯하다.
“해제가 불가능합니다.”
그때 상황실 앞에서 컴퓨터를 매만지던 김철영이 한숨을 쉬며 곽철우에게 말했다.
“생체인식과 보안코드를 동시에 입력해야 하는 방식입니다.”
“강제로 파괴해.”
“불가능합니다. 바닥과 외벽이 던전 외벽을 구성하는 금속과 맞먹는 수준의 합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곽철우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주요 시설도 아니고 고작 던전에 상주하는 팀을 위해 이 정도 보안 수준의 건물을 지어줬다고?”
협회가 그 정도로 돈이 남아돈단 말인가?
곽철우는 잠시 고민했다.
산업기밀국에서 요구한 임무는, 특수대응팀 상황실의 정보 전부 취득 혹은 완전한 파괴.
둘 중 하나도 실행하지 못하고 돌아온다면 이것만큼 망신스런 일은 없을 것이다.
“똘똘한 녀석이군.”
그때 곽철우가 한호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신을 잃은 척하면서 상황을 살피다니.”
베테랑 요원인 그는 한호조의 반응을 보고 깨어났다는 걸 대번에 파악한 것이다.
“일어나.”
곽철우의 말에 한호조는 천천히 눈을 뜨고 일어났다.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 전능시야 스킬의 발동을 억제했다.
‘안 보이는 척. 안 보이는 척.’
투명화되어 있는 모습을 알아본다는 걸 들키면 즉시 죽임을 당할 거라는 걸 짐작했기 때문이다.
“누, 누구세요?”
한호조가 일부러 어수룩한 표정을 짓자 곽철우가 눈을 번뜩였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죽고 싶지 않으면.”
이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곽철우의 양손엔 지금까지 수많은 각성자들의 피가 묻어 있었다. 국가의 위협이 되는 각성자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처리했다.
“네.”
눈앞의 남성이 감정이 말살된 로봇과도 같은 인물이라는 걸 파악한 한호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실에 네 생체 정보도 등록되어 있나.”
“아뇨.”
“그럼 이곳에 사는 특수대응팀의 생체 정보라면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나.”
상황실은 초홍뿐만 아니라 한만재, 유은호, 신채영, 그 누구도 편히 들락거렸다.
잠시 망설이던 한호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요.”
“잘됐군.”
고개를 끄덕인 곽철우의 손엔 한호조의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은호 삼촌이라고 적힌 통화 기록을 빤히 바라보던 그는 지체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호조네? 여보세요?
유은호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오자 곽철우는 낮은 코웃음 소리를 내었다.
“이 아이를 구하고 싶으면 상황실로 15분 내에 와라.”
-너 누구야.
“네 휴대폰도 이미 해킹했으니 조용히 와야 할 거다. 다른 곳에 연락하는 순간, 이 아인 죽어.”
으적!
말을 마친 곽철우가 그대로 휴대폰을 부숴버렸다.
-소형차 한 대가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옥탑방에 사는 외국인입니다.
그때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일주일 동안 이미 모든 조사를 마쳤던 사우팀.
그들은 맞은편 옥탑방에 인테리어 시공일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곽철우는 협회 전산에 떠 있는 특수대응팀의 프로필조차 믿지 않았다.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조직의 프로필은 모두 가짜니까.
아마도 저 노동자 역시 특수대응팀과 관련된 자가 분명했다.
곽철우는 덤덤히 대답했다.
-처리해. 조용하게.
그 말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라는 걸 깨닫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