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3화. 재각성 전문학원 (4)
[천마 님!]
빙글빙글 몸이 꼬여가는 김도윤의 모습을 보자 무명이 다급한 외침을 내었다.
“나서지 마라. 죽이진 않을 터이니.”
천마가 코웃음을 치며 손을 내밀었다.
그의 시선에선 김도윤은 손을 쓸 가치도 없는 평범한 피라미였다.
다만 분근착골형의 맛을 보여주어 다시는 끈덕지게 찾아오지 못하도록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 어라?”
김도윤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눈을 껌뻑였다.
놀랍게도 그의 근육과 뼈는 고무줄처럼 유연하여 분근착골형을 당했음에도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우드드득.
기묘한 소리와 함께 김도윤의 몸은 아예 회오리 모양으로 꼬여져 있지만, 그는 눈을 껌뻑껌뻑 뜨며 서 있을 뿐이다.
“호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가 탄성을 터뜨렸다.
“이곳에도 능교지체(能膠之體)를 가진 자가 있었나.”
능교지체.
태생적으로 뼈와 근육이 고무처럼 탄력을 갖고 있는 신체를 뜻한다.
이 능교지체를 가지고 태어나면 몸이 극히 유연할 뿐 아니라 뼈가 잘 부서지지 않는다.
김도윤은 정말로 전신이 고무가 된 것처럼 한없이 쭉쭉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와, 마치 고무고무 열매를 먹은 것 같군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무명도 입을 벌리며 탄성을 질렀다.
[이런 건 신체변환 B급 스킬 ‘플라스틱맨’ 정도나 가능한 일인데.]
“으어어. 제 몸이 왜 이런 거죠?”
하지만 정말 놀란 건 김도윤 자신이었다.
분명 스킬 따윈 하나도 없는 평범한 9급 각성자였는데…….
팔과 다리가 늘어난다는 건 뼈와 피부뿐만 아니라 근육과 혈관 등이 모두 함께 늘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은 무명의 말대로 B급 신체변환스킬 ‘플라스틱맨’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보니 상급 각성자였군요.]
무명의 말에 김도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난 스킬 따윈 펼치고 있지 않다고!”
이상함을 느낀 무명은 철커덕 하는 소리와 함께 생체스캐너를 꺼내 김도윤의 몸을 샅샅이 훑었다.
[어라? 정말 아닌가 본데요?]
각성자들이 스킬을 사용하면 동공이 확장되고 체온이 급격히 올라가는 등, 두드러진 신체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김도윤의 몸은 평범한 그 자체였다.
“…….”
말없이 바라보던 천마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파팍. 휘리리릭.
지풍이 혈도에 연달아 파고들자 회오리처럼 꼬여 있던 김도윤이 몸이 빙그르르 회전하더니 원래의 몸을 되찾았다.
“허억. 허억.”
“그렇군.”
쓰러진 채 신음을 하고 있는 김도윤을 바라보던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가비잔(可非潺)과 같은 신체를 가진 거였어.”
[그게 누굽니까?]
“신독국(身毒國:인도)의 승려다. 그는 능교지체의 극품(極品)이라 할 수 있는 신기일편(神奇一片)의 능력을 타고났지.”
천마가 번뜩이는 눈으로 김도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능교지체를 타고나지 않아도 제자들이 자신과 같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비학을 창안했다. 그것이 바로 천축유가공이지.”
그 유명한 천축유가공의 탄생에 그런 비사가 있었던가!
하지만 무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무명과 김도윤은 말없이 천마를 바라볼 뿐이었다.
“본좌와 손을 부딪치고 싶다고 했나.”
천마의 물음에 김도윤이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주실 건가요?”
“그 정도의 육체를 가졌다면 자격은 있는 셈이지.”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 대신…….”
천마는 깡마른 김도윤의 몸을 위아래로 훑더니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본좌와 일 하나 같이 하지.”
혈무.
군집형 몬스터. 위험도는 500. 개체는 파악 불가.
스펙상으로 봤을 때는 지금껏 나타난 처리했던 히든몬스터들 중에선 그리 대단치 않은 수준이었다.
다만 진공 분쇄기라는 대형무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걸리는 편이었다.
16미터 길이에 지름이 2미터나 되는 진공 분쇄기는 바퀴가 12개가 달린 특수차량으로 싣고 와야 한다.
던전 지역까지는 30분, 실드경계지역까지 오려면 아무리 빨라도 4~50분 정도 소요될 것이다.
“이번엔 천마 씨가 안 나서려나? 소식이 없네?”
스윽스윽.
빌라 옥상에 설치되어 있는 각종 장비들을 살피던 한만재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잉. 쿠웅.
혈무가 실드를 뚫고 들어오려는지, 하늘에 펼쳐진 실드가 연신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었다.
“현명한 판단이죠.”
한만재의 뒤에서 연신 장비를 살피고 닦던 유은호가 고개를 저었다.
“혈무 같은 놈은 스킬이나 힘으로 처리할 수가 없잖아요. 괴상한 안개 형태로 돌아다니는데.”
“앞뒤 안 재고 무조건 뛰쳐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봐.”
“당연하죠. 천마 님은 의외로 지능캐라고요. 지능캐. 저번에 저희 구해줬을 때 못 봤어요?”
“알았다, 알았어. 여하튼 넌, 천마 그 양반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혀를 차던 한만재는 흔들리는 실드를 바라보더니 불현듯 묘한 생각이 들었다.
“근데 어쩌면 그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네.”
“무슨 소문요?”
“왜 있잖아. 스카우터 놈들이 실드경계지역으로 들어가 일부러 히든몬스터를 불러낸다는 소문 말야.”
반각성 단체인 스카우터는 집요하게 각성자들의 영리 활동을 반대하며, 오직 공익 목적으로만 힘을 사용하길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온갖 테러를 저지르는데, 그중 하나가 히든몬스터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에이, 그게 말이 돼요? 저희가 이렇게 눈을 시뻘겋게 뜨고 지키고 있는데.”
유은호가 입을 내밀자 한만재가 피식 웃었다.
“스카우터에 설마 정식 각성자가 하나도 없겠냐? 멀쩡하게 던전에 들어가서 몰래 히든몬스터 소환하고 도망가면 어떻게 알아?”
“그럴까요?”
쿠웅.
또다시 흔들리는 실드를 바라보며 유은호가 쩝 소리를 내었다.
“던전 방위팀에서 협조 요청은 안 들어오나 봐요? 팀장님 호출이 없네.”
“혈무잖아. 어차피 분쇄기 없이 가봤자 소용이 없으니 그냥 있는 거겠지.”
“으음.”
머리에 깍지를 낀 유은호가 눈을 껌뻑이다 말했다.
“어? 저기 천마 님 가는데요?”
실드가 펼쳐진 하늘 위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솟구쳤다. 천마였다.
“어라? 저 옆엔 뭐야?”
한만재는 눈을 비볐다.
풀쩍 날아오른 천마의 팔에는 깡마른 남자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지 않은가?
“동료인가? 그럴 리가?”
“어라? 저 사람.”
멀어져 가는 실루엣을 바라보던 유은호가 눈을 껌벅였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난다.
“형님, 저 잠깐만 구경 좀 다녀올게요.”
“유은호!”
한만재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이미 유은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김도윤은 얼어붙었다.
지금까지 순응인으로 살았던 그는 지금까지 딱 한 번, 호기심에 세이프던전 지역을 들어가 봤을 뿐이다.
그나마도 아무런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던전에 들어가지 않고 외부에서 구경만 했을 뿐이다.
-카아아아앗!
다 무너져 가는 폐허 속에서 기분 나쁜 포효 소리가 들었다.
순간 김도윤은 전신의 솜털이 모두 솟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이파이브 한번 하는 대가로…….’
저 멀리 폐건물 위에 우뚝 서 있는 천마를 올려다보던 김도윤의 안색이 허옇게 변했다.
‘히든몬스터 앞에 9급 각성자를 던져놓다니!’
-본좌와 일 하나 같이 하지.
이 한마디를 내뱉자마자, 김도윤은 천마의 손에 이끌려 실드를 넘어 던전 지역으로 넘어왔다.
슈우우욱.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가르자 김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눈앞에 시뻘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형태의 몬스터가 서 있었다.
아까 재난 문자에 안내받았던 히든몬스터, 혈무였다.
-신기일편능교지체의 공능을 아낌없이 보여주도록.
그 말을 끝으로 천마는 폐건물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김도윤은 마네킹처럼 굳은 채 혈무와 대치 중이었던 것이다.
‘어쩌라는 거야, 대체!’
그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뚝뚝 흘렀다.
냅다 소리를 지르고 도망치고 싶지만, 그랬다간 저 시뻘건 안개가 순식간에 몸을 집어삼킬 것 같다.
‘흐으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나, 여기서 죽는 거야?’
죽을 거라는 예감이 들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
특히 쫄쫄이를 입고 훌라후프를 돌렸을 때, 자신을 바라보던 최지수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고백은 하지 않아도 최소한 오해는 풀고 싶었다.
나는 변태가 아니다! 그냥 학원장이 시킨 거다! 라고 말이라고 하고 싶었다.
-카아아아아!
하지만 그 기회는 없을 것 같다.
화아아아악!
눈앞에 떠 있던 붉은 안개가 갑자기 김도윤의 몸을 둥글게 감쌌다.
“으, 으악!”
결국 두려움에 떨던 김도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는 순간,
어느새 붉은 안개가 몸을 움켜쥐더니, 벌린 입 안으로 꾸역꾸역 들어왔다.
“우, 우읍!”
분명히 형태는 안개였는데, 입 안으로 들어오자 젤리 같은 촉감이다.
“우우우우!”
아무리 입을 다물고 싶어도 한번 들어온 붉은 안개는 끊임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혈무가 사람을 이렇게 죽이는 거구나!’
몬스터 도감의 내용을 떠올린 김도윤이 눈을 번뜩였다.
혈무는 안개 형태로 몸을 파고들어 폭사시킨다고 한다. 그 방법이 바로 이렇게 목 안으로 꾸역꾸역 들어오는 것이었다.
“끄으으으.”
입 안으로 들어온 안개는 마치 사람만 한 젤리 수십 개를 삼킨 것 같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김도윤은 죽지 않았다. 거대한 오뚝이처럼 몸이 빵빵하게 변했을 뿐이다.
“끄으으. 끄으으으.”
몸이 수배로 불어난 김도윤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차라리 죽으면 편할 텐데, 꾸역꾸역 안개를 삼킬 때마다 몸만 점차 불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