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1화. 재각성 전문학원 (2)
아침일찍 출근한 김도윤은 어색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의 몸에는 어제 이수재에게 받은 악세서리가 몸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목걸이와 팔찌는 옷으로 가릴 수 있었지만, 까만 구슬이 박혀있는 반지는 어디에도 숨길 수가 없었다.
‘아, 이거 민원인들이 보면 시비나 안 걸지 몰라.’
주위를 눈치를 살피던 김도윤이 끙끙거릴 무렵,
“어마.”
지나가던 동료, 최지수가 그의 손에 낀 반지를 보며 물었다.
“도윤 씨. 그 반지는 뭐예요?”
“네? 아, 이거요?”
식은땀을 닦은 김도윤이 그녀의 시선을 피한 채 대답했다.
“건, 건강 반지예요. 손에 끼고 있으면 좋다고 해서요.”
“그래요?”
최지수는 신기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지나갔다.
그녀의 미소를 보자 김도윤은 전에 없던 용기가 생겼다.
‘그래. 난 빨리 재각성을 해야 해.’
7급 각성자가 되면 괜찮은 팀에 들어가야지. 그리고 나노슈트를 맞춰 입고 지수씨에게도 고백을 하는 거야!
주먹을 꽉 쥔 김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 후, 어느 주택가의 놀이터.
그곳에는 트레이닝복을 입은 이수재와 김도윤이 얼굴을 마주보고 서 있었다.
“오늘부터 훈련을 시작하겠다.”
진지한 이수재의 표정에 비해 김도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여기서 훈련을 하는 겁니까?”
“왜?”
“아뇨. 저번에 광고를 보니까 다른 각성자 학원에는 따로 훈련장이 있는 것 같던데…….”
“그건 다른 각성자 학원이지. 그리고 훈련장 있어봤자 아무 의미도 없어.”
이수재는 뻔뻔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바깥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하는게 더 좋은 거야.”
“…알겠습니다.”
김도윤은 슬그머니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냥 돈을 들여서 유명 학원으로 갈 껄 그랬나.’
그때 이수재가 몸을 꼿꼿히 세우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훈련은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완수하도록.”
진지한 표정을 짓자 그의 얼굴은 제법 노련한 각성자처럼 보였다.
‘그래. 지금은 훈련에 집중하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고민을 털어버린 김도윤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몸은 충분히 풀었겠지?”
“안 그래도 여기까지 뛰어왔습니다.”
“자, 그럼 먼저 팔굽혀 펴기 100회!”
“네?”
김도윤은 잠시 얼어붙었다.
엄청난 훈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팔굽혀 펴기를 하라니?
불현듯 불길한 기운이 뒷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시작!”
이수재의 외침에 김도윤은 어쩔 수 없이 팔굽혀 펴기를 하기 시작했다.
“훅. 훅.”
아무리 육체각성도가 낮아도 각성자는 각성자다.
김도윤이 빠르게 팔굽혀 펴기를 하자 이수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팔굽혀 펴기는 그렇게 하는 게 아냐. 잘 봐.”
엎드린 그는 매우 천천히, 그리고 정확한 동작으로 팔굽혀 펴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나무늘보가 팔굽혀 펴기를 하는 것처럼 느릿했다.
“이게 하나야. 알겠지?”
“알겠습니다.”
김도윤은 이수재가 하는 것처럼 느릿하게 팔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그러자 평범하게 하는 것보다 수배는 힘들었다. 마치 등 뒤에 쇳덩이를 얹어놓고 하는 것만 같았다.
‘오, 정말 힘드네.’
빠르게 하는 것과 달리 천천히 하는 것이 훨씬 힘들고 난이도가 있었다.
하지만 몸을 맴돌던 불길한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구십구, 백!”
마침내 백번을 마친 김도윤이 벌떡 일어났다.
“다 했습니다.”
“좋아, 그럼 윗몸일으키기 100회.”
“네?”
“동작은 아까와 같이 느릿하게.”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훈련순서다. 또다시 불길한 예감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뭐해? 빨리 해.”
“네? 네.”
바닥에 드러누운 김도윤은 다시 팔굽혀 펴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리를 잡아주는 사람없이 느릿하게 해야 하는 동작이라 꽤나 힘들었다.
“팔십팔, 팔십구…….”
이를 악물고 100회를 마친 김도윤이 몸을 일으켰다.
“다했습니다.”
“좋아.”
고개를 끄덕인 이수재가 다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제자리 스쿼트 100회.”
“스쿼트요?”
“그래. 아까처럼 느리게…….”
“잠, 잠깐만요.”
그제서야 아까부터 느꼈던 불길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매우 익숙한 듯한 훈련순서였다.
“원장님.”
터져 나오는 황당함을 꾹 누른 김도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훈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팔굽혀펴기 100회 윗몸일으키기 100회 스쿼트 100회. 그리고 런닝 10킬로.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 먹으며 아침에는 바나나라도 상관없다. 정신을 단련하기 위해 여름엔 에어컨을 쓰지 않는다.”
이수재의 뻔뻔한 말에 김도윤의 얼굴이 해골처럼 변했다.
“이거 만화, 원펀 훈련법이잖아요?”
“어라? 알고 있었네.”
“뭐라고요?”
김도윤은 황당함을 넘어서 분노가 치솟았다.
천만 원이라는 학원비를 받아놓고 하는 훈련이 만화 속에 나오는 엉터리 훈련법이라니.
“지금 저랑 장난하시는 거죠?”
“장난이라니. 재각성 훈련이 장난처럼 보이나.”
“이게 재각성 훈련이라뇨!”
모든 것이 속았다는 걸 깨달은 김도윤이 버럭 소리쳤다.
“이건 그냥 만화 속에서 나오는 엉터리 훈련이잖아요!”
터져 나오는 분노를 참지 못한 김도윤이 이수재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한테 사기를 친 거예요?”
“사기?”
가까이 다가온 김도윤을 바라보던 이수재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하나만 묻지.”
몸을 돌려 놀이터를 한 바퀴 쓰윽 바라보던 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던전이 나타나고 몬스터가 나타나는 거. 이런 건 어디서 나온 설정이지?”
“네?”
“인간이 갑자기 각성하고, 마법과 같은 스킬을 쓰는 거. 이런 건? 어디서 나오는 설정이냐고.”
“그야…….”
순간 김도윤은 말문이 막혔다.
이수재는 작은 눈매를 더욱 가늘게 만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화나 게임에서 나온 것들이지.”
“그렇다면…….”
“솔직히 말해주지. 난 이 방법으로 여러 수강생들을 재각성 시켰다.”
“●펀맨 훈련법 하나로요?”
“물론 다른 프로그램도 있지. 하지만 이 훈련법은 너에게 유용할 거야. 매일 느리게, 꾸준히 하면 어지간한 트레이닝보다 더 힘드니까.”
이수재는 자신감 있는 미소를 머금었다.
“의심하지 말고 따라와. 반드시 7급으로 재각성하게 해줄 테니까.”
믿을 수 없다.
이런 훈련으로 재각성이 된다면 우리나라 각성자들은 모두 수월히 재각성을 했을 것이다.
망설이는 김도윤을 보자 이수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런 훈련으로 재각성이 되겠냐고 생각하는 거지?”
이수재는 김도윤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했다.
“온갖 각성자 학원에서 학원생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데, 왜 재각성률이 그렇게 떨어질까?”
“그거야…….”
“혹독한 훈련이 아니라, 마치 히든몬스터를 불러내는 것처럼 어떠한 행위를 ‘클리어’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 안 해 봤냐?”
이수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학원생들을 각성시켰다. 확률은 높지 않지만, 이 방법으로 각성을 시켰다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김도윤이 물었다.
“그럼 원장님께 방법을 배우면 다른 곳에서도 학원을 차릴 수가 있지 않나요?”
“후후. 그게 쉬울 거 같냐?”
이수재는 씩 웃으며 말했다
“나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 너는 지금 아무 스킬도 없는 9급 각성자인데, 폭발 스킬을 익히길 원하지. 또한 라르바 액세서리를 끼고 있고 말야.”
“그렇다면…….”
“그래. 나는 사람마다 특징을 잡아 나만의 조합법을 만들어놓은 거다. 결코 아무나 따라 할 수 없지.”
이수재의 깡마른 눈에선 뜨거운 빛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은… 왠지 병●같지만 멋있어 보였다.
믿어도 될까?
김도윤은 이수재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퀭하고 힘없는 눈이지만 왠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래, 믿어보자.’
어차피 선택의 여지는 없다.
심호흡을 한 김도윤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 달 후.
주민센터에서 퇴근한 김도윤이 도착한 곳은 시내 중심가 한복판이었다.
오늘은 놀랍게도 놀이터 훈련이 아닌, 시내에서 훈련을 한다고 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지금까지 훈련과 조금 다른 훈련을 할 거니까.”
약속한 커피숍 앞으로 도착하자 이수재가 불쑥 가방을 내밀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이거 입고와.”
“이게 뭡니까?”
“오늘 훈련복.”
김도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상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1분도 채 되지 않아 황당한 표정으로 다시 나왔다.
“이걸 입으라고요?”
김도윤의 손에 들려 있는 건 다름 아닌 전신 타이즈였다.
얼굴을 제외하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곡선을 모두 드러내는, 속칭 쫄쫄이라 불리는 옷이었다.
“그래. 훈련에 필요한 거니까 얼른 입고 와.”
“꼭 이걸 입어야 하나요?”
이수재는 말없이 자신의 겉옷을 제쳤다.
그러자 깡마르고 볼품없는 곡선이 드러난 쫄쫄이 옷이 보였다.
“나도 입었잖아. 어서 입고 와.”
이렇게까지 나오니 할 말이 없다.
김도윤은 삐죽삐죽 화장실로 걸어가 타이즈로 갈아입었다.
그 사이 이수재는 메고 있던 가방을 꺼내어 무언가를 조립하고 있었다. 바로 둥글둥글한 돌기가 달려 있는 커다란 훌라후프였다.
“원장님. 지금 뭘 하시는 거예요?”
“자, 받아.”
훌라후프를 내민 이수재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겉옷 벗고, 여기서 훌라후프를 하면 돼. 그게 오늘의 훈련이야.”
“미쳤어요?”
“재각성을 위해선 부끄러움 따윈 버려야 해. 조금 더 자유롭고 강인한 마음이 필요하지.”
이수재는 더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특히 넌 너무 경직되어 있고 남의 눈치를 많이 봐. 이래 가지곤 백 년이 지나도 각성을 못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 쫄쫄이 입고 훌라후프를 돌리라고요?”
“안 돌릴 거냐?”
“절대로요.”
김도윤이 단호하게 고래를 가로저었다.
“저 이래 봬도 공무원이라고요. 여기서 미친 짓을 했다가 뉴스에서라도 나오면… 짤릴 수도 있다고요.”
이수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걱정 마라. 아무도 미친 짓이라고 생각 안 할 테니까.”
갑자기 가방에서 커다란 확성기를 꺼낸 이수재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갑자기 죄송합니다!”
확성기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이수재를 바라보았다.
“저는 부끄러움도 많이 타고, 매일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사람들 앞에서 우스꽝스런 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한번 성격을 바꿔보려고요!”
스윽.
겉옷을 벗어 던진 이수재는 훌라후프를 집어 들었다.
“부디 미친놈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용기를 주세요!”
-와아!
몇몇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자 이수재는 신들린 허리 놀림으로 훌라후프를 놀리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깡마른 몸의 이수재가 쫄쫄이를 입고 심각하게 훌라후프를 돌리는 모습은 너무도 우스꽝스러웠다.
사방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지만, 이수재의 표정은 시종일관 진지했고 엄숙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어느덧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진짜 용기를 냈나 봐…….
시간이 지나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엄숙하게 훌라후프를 돌리는 모습에 사람들은 점차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묘한 감동으로 바뀌었다.
“감사합니다!”
마침내 이수재가 훌라후프를 멈추자, 여기저기서 짝짝짝 하는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리에서 엉뚱한 행동을 했지만 오히려 박수를 받다니.
이수재의 장담대로 구경하던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비웃지 않았다.
“자, 이제 네 차례야.”
이수재는 더없이 비장한 표정으로 확성기와 훌라후프를 내밀었다.
잠시 고민하던 김도윤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저도 시작하겠습니다!”
크게 소리친 그는 확성기를 내려놓고 훌라후프를 돌리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하지만 훌라후프를 돌려본 적이 없는 김도윤은 이수재 보다도 더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였다.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시선이 바뀔 거야!’
이수재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변화를 지켜본 김도윤은 당황하지 않고 열심히 훌라후프를 돌렸다.
그런데 그때,
“…….”
갑자기 김도윤은 동태처럼 얼어붙은 채 훌라후프를 떨어뜨렸다.
“도윤 씨?”
정면에는 그가 불철주야 짝사랑하는 여성, 최지수. 그리고 그녀의 친구로 보이는 여성이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지, 지수 씨.”
“여기서… 대체 뭘 하는 거예요?”
최지수는 쫄쫄이를 입은 김도윤을 차마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보다못해 그녀의 팔을 이끌었다.
“뭐야. 변태인가 봐.”
최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도윤의 눈은 점차 하얗게 뒤집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