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30화 (230/285)

제230화. 재각성 전문학원 (1)

순응인.

각성이 일어난 각성자임에도 그 능력을 숨긴 채 사용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순응인의 삶을 선택하는 각성자는 두 부류가 있다.

첫 번째, 몬스터를 잡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혹은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

각성자들은 매일같이 던전을 드나들며 몬스터를 잡아 유물을 채취한다.

아무리 뛰어난 스킬과 육체각성도를 지녔다고 해도 매일매일 수많은 몬스터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 고통이라면?

순응인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스킬도 없고, 육체각성도마저 어설픈 9급 각성자들.

9급 각성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짐꾼뿐.

물론 대기업 사원 못지않게 돈을 벌 순 있다곤 하지만, 일 자체가 고달프고 이미지도 썩 좋지 않다.

어차피 각성자로서의 화려한 삶을 살지 못할 바엔, 순응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김도윤.

그는 각성자라는 것을 숨긴 채 살아가는 공무원이었다.

첫 번째 이유처럼 각성자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순응인의 삶을 선택했을까?

천만의 말씀이었다.

육체각성도 11퍼센트. 스킬 전무.

이 정도 스펙은 9급 각성자 중에서도 밑바닥에 해당한다. 팀에 들어가긴커녕, 짐꾼 일도 용역 같은 곳에서 일당으로 해야 할 수준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김도윤은 밑바닥 각성자의 삶을 선택하는 대신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해 순응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XX지구, 주민자치센터.

“아니 말야. 내가 말야. 그래서 말야.”

주민자치센터의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인 김도윤은 악성 민원인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처음 공무원에 합격했을 땐 지루할 만큼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삶이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이어지는 매일매일 찾아오는 악성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는 것의 반복이었다.

“오늘도 말야. 그리고 말야. 내일도 말야…….”

김도윤은 초점 없는 눈빛으로 민원인을 바라보았다.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은 기초생활 보장이나 긴급복지 지원, 기초 노령 연금, 장애인 연금, 한부모 가족 지원 등의 업무를 주로 한다.

한마디로 사회복지를 필요로 하는 대상자에게 복지에 필요한 지원을 하고, 상담 업무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하는 일이란 10분에 한 통꼴로 악성 민원 전화를 받거나, 화가 난 민원인들을 진정시켜서 돌려보내는 것뿐.

‘그나마 오늘은 나은 편이네.’

가끔은 혜택이 끊긴 주민이 찾아와 흉기를 들이대거나 멱살을 쥐는 일도 있다.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민원인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질 정도다.

‘근, 근데 기네…….’

어느덧 10분째다.

수다스럽게 떠들어 대는 민원인의 입술을 보자 어지러움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저 주둥이를 틀어막고 싶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뉴스에 날 일이다. 심지어 각성자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큰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각성자는 각성자 특별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되니까.

‘그냥, 짐꾼이라도 할까?’

갑자기 불쑥 던전에라도 가서 몬스터라도 때려잡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저 멀리 앉아 있는 동료, 최지수에게 시선이 옮겨지자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 안 돼. 그래봤자 짐꾼밖에 못 할 텐데.’

머지않아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고백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사회적인 시선으로 보더라도 9급 짐꾼보다는 공무원이 훨씬 낫다.

게다가 그녀는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적 이 있었다.

-짐꾼들은 너무 불쌍해요. 똑같은 각성자인데 맨날 짐만 옮기다가 저렇게 다치기나 하고.

TV에선 짐꾼들이 짐을 옮기다가 히든몬스터에 의해 큰 부상을 입은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당시 뉴스 화면을 바라보던 최지수의 동정 어린 눈빛.

김도윤은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짐꾼 따윈 할 생각이 없었다.

“이봐!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앞에 있던 민원인이 버럭 소리쳤다.

“지금 어딜 보고 있는 거야!”

“아, 죄송합니다. ”

“아니 말야.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데 말야. 시선을 마주쳐야지…….”

또다시 끊임없이 말이 이어졌다.

김도윤은 고개를 든 채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무음으로 켜져 있는 인포메이션 스크린에서 이런 광고 문구가 나왔다.

-나, 이번에 각성했잖아!

-야, 너두?

화면에는 활짝 웃는 모델의 미소와 함께 ‘재각성, 극한각성 맡겨주세요!’라는 글자가 또다시 흘러나왔다.

바로 각성자 재각성 학원의 광고였다.

‘저게 정말 되나?’

김도윤은 눈을 껌뻑였다.

각성자들 중에선 재각성이나 극한각성을 통해 등급이나 스킬을 얻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갑자기, 돌발적으로, 우연히 생겨나는 것이었으니까.

-지금까지 저희 너두나두 학원에선 수백 명의 재각성자와 극한각성자를 배출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샌가 도심 곳곳에 각성자 학원이라는 곳이 생겨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훈련을 마치면 재각성이나 극한각성을 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반드시 된다.’라는 보장 따윈 하지 않는다.

때문에 각성자들은 각성자 학원을 그리 고운 시선으론 보지 않지만, 더러 재각성을 성공한 학원생들의 후기에 홀려 학원등록을 하기도 했다.

‘한번 해봐?’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김도윤은 침을 튀겨가며 떠드는 아줌마의 목구멍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도 해보는 거야!’

“알아들었어?”

민원인이 버럭 소리치자 김도윤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번 해보겠습니다!”

“뭘 해봐?”

“아, 아닙니다.”

민원인의 시선을 피한 김도윤이 또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끝장 각성자 학원’.

시내를 벗어난 어느 상가 꼭대기에 있는 각성자 학원이다.

광고에 나오는 너두나두 각성자 학원은 금액이 너무 비쌌기에 찾은, 각성자 학원이었다.

학원 안으로 들어서자 낡은 데스크에 피곤에 쩔어 있는 듯한 남성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학원에 등록하러 오셨수?”

“네? 네.”

“아아, 그럼 이쪽으로 앉으셔.”

김도윤은 남성의 안내로 복도 안쪽에 있는 작은 상담실로 들어갔다.

남성은 반대편에 앉더니 말없이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원장, 7급 각성자 이수재’라고 적혀 있었다.

“아, 원장님이셨군요.”

김도윤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

마흔 중반 정도 되었을까? 삐죽 튀어나온 수염에 깡마른 몸을 가진 이수재는 딱히 대단한 능력자로 보이진 않았다.

“9급?”

“네? 네.”

“나도 9급 각성자였어. 하지만 재각성을 통해 7급 각성자가 되었지.”

“그러셨군요.”

김도윤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학원장이라지만 대뜸 성인에게 반말을 내뱉다니.

“아아, 아무래도 공부를 가르치는 학원이 아니다 보니… 반말을 쓰는 게 버릇이 되어서 말이지.”

속마음을 들여다본 듯한 이수재의 말에 김도윤이 두 손을 내저었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 원하는 등급은 있나.”

“원하는 등급이요? 그런 것도 가능한가요?”

“물론. 단 7급까지지만.”

“7, 7급도 좋죠.”

7급 각성자만 되어도 배달꾼 노릇도 할 수 있고, 스킬이 좋으면 작은 팀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럼, 원하는 스킬은 있나?”

이수재의 말에 김도윤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원하는 스킬 같은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민될 땐 이걸 보면 되지.”

이수재는 커다란 책자를 내밀었다.

그곳엔 여러 가지 스킬과 함께 비용이 적혀져 있었다.

“비, 비싸네요.”

가격을 본 김도윤이 더듬거리자 이수재가 씩 웃었다.

“비싸다곤 할 수 없지. 한번 발휘되면 평생 써먹는 거니까.”

“혹, 혹시 그럼 치료 스킬은 없나요?”

이수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길 봐.”

책자 밑엔 작은 글씨로 ‘저희 학원에선 치료 스킬과 고속 이동 스킬은 취급하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하긴.’

그 문구를 보자 김도윤은 오히려 납득이 갔다.

치료 스킬은 꽤나 희귀한 데다 C급 수준만 되어도 잘나가는 의사보다 훨씬 더 돈을 잘 번다.

고속 이동 스킬은 각성자 전투의 백미이니 말할 것도 없다.

“그럼, 폭발 스킬도 괜찮을까요?”

김도윤은 책자에 있는 폭발 스킬을 가리켰다.

딱히 그걸 얻고 싶은 건 아니었고, 그저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물어본 것이다.

“뭐, 그것도 괜찮지. 폭발 스킬만 갖고 있어도 팀에서 후방지원을 해줄 수 있으니까.”

이수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폭발 스킬 발현 과정으로 등록을 해 드릴까?”

“근데 정말 가능할까요?”

“해봐야 아는 거지.”

이수재는 신중한 얼굴로 말했다.

“장담은 할 수 없지만 훈련 프로그램을 잘 따라오면 꽤 괜찮은 확률로 스킬이 발현될 거야.”

“만약 안 되면요?”

“그런 부정적인 마음부터 버려야 해.”

이수재는 눈을 번뜩였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 재각성이나 극한각성 같은 건 안 일어나.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고 하는 거야, 이런 건.”

“그런 건가요?”

억지 같지만 왠지 그럴듯한 대답이다.

잠시 고민하던 김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더 이상 주민센터에서 민원인들을 상대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럼 폭발 스킬로 할게요.”

“그럼 여기. 수강신청서 작성 좀 하시고. 아 그리고 결재는?”

“카, 카드도 되나요?”

“물론이지.”

김도윤이 카드를 내밀자 이수재가 물었다.

“몇 개월로?”

“삼…….”

“삼 개월?”

“삼…십육 개월이요.”

“으응?”

김도윤이 머리를 긁적였다.

“벌이가 시원찮은 직장이라.”

“그렇군. 하지만 아까워하지 마. 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덤덤히 카드를 끊은 이수재는 영수증을 내밀었다.

“잠깐만 기다려.”

잠시 바깥으로 나갔다 돌아온 그의 양손엔 커다란 봉투가 가득 들려져 있었다.

“등록 선물이야.”

김도윤이 봉투를 열어보자 허브로 만든 향수, 향초, 바디 용품 등이 들어 있었다.

“이것들은 폭발 스킬 발현을 하는데 효과가 좋은 것들이야. 잘 쓰도록 해.”

“네에, 감사합니다.”

“아 참, 그리고 이건 따로 추가 상품인데.”

코를 쓱 훔친 이수재는 다시 작은 책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곳엔 던전에서 나온 유물로 만든 반지, 팔찌, 발찌, 목걸이, 귀걸이 등등… 몸에 걸 수 있는 다양한 액세서리가 나와 있었다.

“이건 뭔가요?

“이건 재각성을 도와주는 유료 상품이야. 웬만하면 이건 하나 사도록 해. 효과 좋으니까.”

이수재가 가리킨 것은,

<라르바의 눈물이 함유된 액세서리 세트–100만원>

이라고 적혀 있는 사진이었다.

“라르바의 눈물요?”

망속성 몬스터의 눈물로 반지를 만들다니.

생각 같아선 음침한 무언가가 박혀 있을 것 같은데, 사진상으론 꽤나 화려하게 세공된 고급스런 반지였다.

“응, 언데드 유물이 의외로 하급 각성자랑 상성이 좋거든.”

“아뇨. 됐습니다.”

“돈 때문에 그래?”

“네. 등록비만 해도 좀 부담이 돼서.”

“흠.”

이수재는 한숨을 쉬며 다시 바깥으로 나갔다.

돌아온 그의 손에는 사진 속에 있던 라르바의 액세서리 세트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우선 써.”

“선물로 주시는 건가요?”

“아니, 나중에 돈 생기면 천천히 갚아.”

“괜찮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제가 착용하기엔 너무 화려한 것 같아서요.”

“무슨 소리야. 재각성 안 할 거야?”

이수재는 오히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심심해서 착용하는 거 아냐. 샤워할 때 외에는 24시간 착용하고 있어야 해.”

“24시간이요?”

“그래. 라르바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많이 받아들여야 재각성도 빨리 일어난다고.”

엄숙한 이수재의 표정에 김도윤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수재는 갑자기 또 다른 책을 하나 더 펼쳤다.

“이건 체험 코스이긴 한데.”

책자에는 기괴한 과정이 있었다.

☆몬스터 해체하기 과정: 죽은 몬스터를 매스로 해체하면서 각성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5백만 원

☆C급 던전 체험: 추후 재각성이 되면 들어갈 던전을 미리 방문, 언젠가 반드시 재각성이 된다는 마음가짐을 얻을 수 있다. -1천만 원.

가격을 살펴보던 김도윤은 황급히 책자를 덮었다.

“아, 아뇨. 체험은 정말 괜찮습니다.”

“그래?”

이수재는 아쉬은 표정으로 책자를 회수했다.

“나중에 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이수재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던 김도윤이 입술을 깨물었다.

‘취소… 할까?’

자꾸 고가의 물건들을 팔려고 하는 데다, 첨부터 반발을 내뱉는 이수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고 있는 찰나,

“그럼 훈련을 시작해 보지.”

“오늘부터요?”

놀란 김도윤이 눈을 껌뻑이자, 이수재가 입맛을 다셨다.

“왜, 오늘은 바빠?”

“바쁜 건 아닌데… 옷도 못 챙겨와서요.”

“걱정 마. 운동복 같은 건 있으니까.”

이수재가 바깥에 있는 낡은 캐비닛을 가리켰다.

반쯤 열려 있는 캐비닛의 문밖으로 초록색 트레이닝복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

눈으로만 봐도 쉰내가 풀풀 풍기는 것만 같다.

“아뇨. 내일부터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아무 때나 시간 될 때 와. 미리 전화만 하고.”

“아무 때나요?”

“그래.”

놀란 김도윤을 바라보던 이수재가 씩 웃었다.

“등록한 수강생이 너 혼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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