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29화 (229/285)

제229화. 다시 찾은 테이머 마스터

던전 관리팀의 의뢰는 다양하다.

대부분은 던전에 있는 재료를 채취하는 것이지만, 때때론 던전과 관련된 여러 가지 상황에 관한 조사나 개선을 의뢰하기도 한다.

바로 지금처럼.

“으음, 곤란하네.”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던전 관리팀에서 보낸 의뢰서를 읽고 있던 장채원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천마가 테이밍에 소질이 있는 걸로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창고 안에서 무명과 함께 벽지 재고를 파악하고 있던 천마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아아.”

한숨을 내쉰 장채원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비밀의 숲 던전 기억나?”

“기억난다.”

비밀의 숲 던전.

자연적으로 발생한 신비한 결계가 처진 지하 던전이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천혜의 숲으로 이루어진 탓에 점차 영물들이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

온갖 영물들이 모여 사는 비밀의 숲은 어느새 대지유신들도 가끔 방문해 힐링을 만끽하는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천마, 네가 예전에 뿔각고양이 머리에 있는 황금풀을 채취했잖아.”

예전 천마는 던전 관리팀의 의뢰로 비밀의 숲에 있는 황금풀을 채취한 적이 있었다.

문제는 뿔각고양이의 머리에 자라나는 황금풀은 강제로 뽑을 수 없고, 오직 뿔각고양이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천마와 무명은 뿔각고양이의 마음을 뺏기 위해 간식과 장난감 등을 가져가, 흥미와 관심을 얻는 작전을 실행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다행히 그때 김우진이라는 각성자가 나타나, 그의 도움으로 황금풀을 채취하여 무사히 의뢰를 끝낼 수 있었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냐.”

“그 비밀의 숲에 악(惡)에 물든 영물들도 그곳으로 많이 옮겨갔나 봐.”

“악에 물들었다니?”

“악에 물든 영물들은 그 악기를 다른 영물들에게도 옮기거든. 쉽게 말해 흑화를 시킨다고 해야 하나?”

장채원은 들고 있던 펜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여하튼 아름다웠던 힐링 공간이 사바나 같은 야생의 초원이 됐나 봐.”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뭐?”

천마는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었다.

“짐승이라면 응당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지배하고 뜯어먹는 거다. 그건 자연의 법칙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영물들은 그렇게 놔두면 안 돼.”

“어째서냐.”

“평범한 짐승들이 아니니까.”

장채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물들이 악에 사로잡히면 던전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보다 더 위험하고 골치 아픈 존재가 되니까.”

“몬스터보다 위험하다니.”

“영물들이 오래 묵으면 악귀가 되기도 하거든.”

무언가를 떠올린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아이를 유괴하던 맥 요괴인지 뭔지처럼 말인가.”

“응, 맞아.”

턱을 괸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악에 사로잡힌 영물들을 정화시켜 달라는 의뢰가 왔어.”

“그게 어쨌다는 건가.”

“우리 매장이 흥신소냐? 인테리어 매장에다 무슨 정화 같은 걸 맡겨.”

들고 있던 서류를 가리킨 장채원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본좌 때문이라고?”

“그래. 매장이라고 하지만, 사실 네 앞으로 온 의뢰나 마찬가지야.”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지 모르겠군.”

“황금풀 채취에 성공했으니까.”

장채원은 뒤따라 나온 무명의 둥그런 눈 센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억나? 뿔각고양이? 걔가 비밀의 숲에 서식하는 영물들의 우두머리래. 그리고 지금까지 신선한 황금풀을 채취한 사람은 천마, 너 밖에 없었다고 하더라.”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무명이 앞으로 나섰다.

[천마 님께서 뿔각고양이의 머리에 자라난 황금풀을 손쉽게 채취하니까, 던전 관리팀에선 천마 님이 영물들도 길들일 수 있는 테이밍 마스터쯤 되는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군요.]

“정확해.”

장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우두머리인 뿔각고양이를 길들일 수 있으면, 악으로 물든 영물들을 정화하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한 거겠지.”

“흠.”

천마는 턱을 쓰다듬었다.

귀문의 대법에 정통한 그는 마귀에 사로잡힌 인간이나 동물들을 정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악에 물든 영물들을 정화한다는 방법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거절하라. 아무래도 본좌가 할 일이 아닌 것 같군.”

“당연하지.”

입맛을 쩝 다신 장채원이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아쉽긴 하다. 모처럼의 신뢰인데.”

“신뢰?”

“재료 채취가 아니라 영물 관리잖아. 이건 신뢰로 들어가거든.”

“잠깐.”

전화기를 드는 장채원을 바라보던 천마가 손을 뻗었다.

“의뢰를 받아들여라.”

“뭐?”

“영물들을 정화하면 되는 거 아니냐.”

“무슨 수로? 이건 몬스터 사냥이 아니야. 영물을 길들여야 한다고.”

“걱정 마라. 해결 방법이 있으니.”

천마는 무명을 가리켰다.

“무명이 그자의 연락처를 알고 있다.”

“뭐?”

순간, 장채원의 눈동자가 더 없이 커져갔다.

며칠 후.

매장의 문이 열리자 약간 긴 듯한 반곱슬머리를 한 청년이 걸어왔다.

그 순간 천장에 매달린 조명마저 빛을 잃었고, 내부는 섬광탄을 터뜨린 듯 하얗게 물들어갔다.

“안녕하세요. 김우진이라고 합니다.”

9급 각성자이자 배달꾼, 김우진이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군.”

천마가 앞으로 나설 무렵,

“말씀 많이 들었어요!”

장채원이 펄쩍 뛰어와 김우진의 두 손을 맞잡았다.

“복복 인테리어를 운영하고 있는 장채원이라고 해요.”

“네, 네에.”

“참고로 독신이에요. 매장 뒤 건물에서 혼자 살아요. 호호.”

발동했다. 장채원의 고질병인 금사빠와 얼빠가.

‘아아, 쓰러질 것 같애.’

김우진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이마를 짚었다.

눈동자는 태양처럼 밝게 빛났고 검은 머리칼은 흑단처럼 흩날린다.

투명한 피부는 먼지 터럭 하나 달라붙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아폴로.

저 남성은 분명 상계신 아폴로가 땅으로 현신한 모습이 분명했다.

“저어… 비밀의 숲 던전에 관한 의뢰라고 들었는데요.”

김우진이 표정은 긴장으로 가득했다.

“혹시 사람들에게 이젠 알려진 건가요?”

비밀의 숲은 그가 우연히 발견한 곳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던전이었다.

아끼는 영물들이 모여 있는 비밀의 숲 던전에 의뢰가 있다고 하자, 걱정부터 앞선 것이다.

“걱정 마세요.”

장채원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일반 각성자들은 위치조차 모르는 곳이니까요.”

“그런가요?”

“네. 저희가 의뢰를 하는 것도 그곳에 있는 영물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요.”

“그렇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제야 김우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 자세한 의뢰 내용을 들을 수 있을까요?”

“간단하다. 본좌와 함께…….”

천마가 입을 열려는 순간, 장채원이 앞으로 나섰다.

“우선 앉으세요. 제가 설명드릴게요. 호호.”

“네. 네에.”

응접 테이블에 앉아 장채원의 설명을 들은 김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저 비밀의 숲 던전에 맨 끝까지 들어가면 된다니? 그건 의뢰라고 할 수도 없는 내용이 아닌가?

김우진의 속마음을 짐작한 듯 장채원이 다시 말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맨 안쪽에 서식하는 검은 영물을 마주하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비밀의 숲 던전 끝까지 들어가, 까맣게 물든 동물을 보면 된다고요?”

“네. 맞아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데요.”

김우진이 석연찮은 표정을 짓자 장채원이 빙긋 웃었다.

“이상한 의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나름대로 고심 끝에 김우진 님을 부른 거예요.”

“죄송하지만, 저에겐 테이머 스킬 따윈 정말 없어요.”

“걱정 마세요. 스킬이 필요한 부분은 아니니까요.”

장채원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김우진 씨가 할 일은 늘 그랬듯이, 영물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주면 돼요.”

“손길이요?”

“네. 뿔각고양이를 대했듯이 말이에요.”

그녀는 장담할 수 있었다.

김우진은 테이머 마스터보다도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것을. 이 눈부신 용모라면 어떤 영물이라도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천마가 무명을 어깨에 올리자 장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진 씨. 비밀의 숲 던전 입구에서 두 시간 있다가 만나요.”

“만나다니. 점주도 갈 건가?”

“아니, 나만 갈 건데?”

던전에 가기는커녕 던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장채원이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가변던전과 맞닿은 황량한 던전에 간다니.

천마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장채원이 손을 휘휘 저었다.

“이번 의뢰는 나랑 우진 씨가 갈 테니 신경 쓰지 마. 매장이나 지키고 있으라고.”

“사장님과 둘이요?”

김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장채원이 활짝 웃었다.

“네에. 금방 끝나는 일이잖아요.”

“…죄송합니다.”

“네?”

“저는 단둘이서 던전에 가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는지라.”

김우진은 고개를 숙였다.

사실 그러한 원칙은 지금 바로 만들어졌다. 시종일관 숯불처럼 붉게 타오르는 장채원의 눈빛이 몹시 두려웠던 것이다.

‘얼굴은 귀여우신데… 왜 이리 시선을 마주칠 때마다 으슬으슬거리지?’

김우진은 영물들과도 교감할 수 있는 민감하고 섬세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장채원의 아름다운 얼굴 뒤에 감추어진, 무시무시한 진면목…….

그러니까 얼빠에 금사빠, 그리고 천마를 압도하는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원칙은 언제든 바뀔 수 있잖아요.”

집요하게 따라붙는 장채원의 시선을 피한 김우진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죄송합니다. 제 인생의 철칙이라.”

“각성자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죠. 던전에서 우연히 다른 사람과 합류할 수도 있는데 그런 철칙이 있다는 건…….”

“저희 어머니가 정해주신 말씀인지라.”

속칭 ‘탈룰라’ 전법까지 써먹자 장채원이 언제 그랬냐는 듯 두 손을 모았다.

“어머나, 어머님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시네요! 던전이라는 곳은 단둘이 다닐 만큼 안전한 곳이 아니죠!”

두 손을 모은 장채원은 고개를 돌려, 사나운 표정으로 말했다.

“천마, 무명. 너희들도 따라와.”

김우진을 보낸 장채원은 내당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다시 매장으로 돌아온 그녀는 화려한 원피스에 피크닉이라도 가는 듯 모자까지 썼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무명의 눈 센서가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런 복장으로 가신단 말씀입니까?]

“왜? 별로야? 조금 더 과감한 옷을 입을 걸 그랬나?”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이지 않습니까. 영물이라고 하지만 악으로 물든 개체도 있고요.]

그러자 장채원은 손을 휘휘 저었다.

“던전이 위험하다는 고정관념을 버려. 어차피 내 입장에선 나들이 가는 수준이고 말야.”

언제는 험악한 몬스터들이 득실댄다고 질색을 하더니…….

지금은 놀이동산에 설치된 귀신의 집을 가는 것처럼 밝게 웃고 있다.

“어머, 우진 씨도 슬슬 도착할 때가 되었네?”

손목시계를 바라보던 장채원이 신나는 표정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자, 그럼 출발하자.”

비밀의 숲 던전.

가변던전 지역 경계 부근 북동쪽 삼백 미터 부근에 위치한 지하 던전이다.

이곳에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결계가 만들어져 있어, 아무리 눈썰미가 좋은 각성자라고 해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김우진은 우연히 던전 결계를 통과했기에, 이후로도 결계의 틈새를 수월히 찾을 수 있었다.

“오셨군요.”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은은한 빛에 반사된 김우진의 얼굴은 혀끝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아아.’

양 볼을 잡은 장채원은 녹아내릴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당장이라도 저 잘생긴 남정네의 품에 안겨 사랑을 속삭이고 싶다.

‘신혼여행은 어디가 좋을까? 역시 한적한 섬이 좋겠지?’

김우진을 바라보며 한창 망상에 젖어 있을 무렵,

“그럼 가볼까요?”

김우진의 말에 장채원은 어깨에 바싹 붙은 채 다정하게 말했다.

“네에.”

“…….”

천마와 무명은 썩어가는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쁑!

-꾸르르? 뽀오오옹!

던전 내부를 걸어가는 동안, 김우진을 발견한 영물들은 저마다 애교를 피거나 귀여움을 부렸다.

“오랜만이야.”

“응, 잘 지냈니?”

걸어가는 와중에도 김우진은 쉼 없이 가방에서 간식을 꺼내거나, 혹은 달려온 영물들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

가자미눈을 뜬 김우진은 길게 늘어진 영물들의 줄 뒤에 서 있는 장채원에게 말했다.

“사람은 안 쓰다듬습니다.”

이후에도 달려드는 영물들 사이로 끼어든다던가, 갑자기 튀어나온 영물에 놀란 척 안기려 한다던가 등등등… 온갖 은밀하면서도 집요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장채원이 움직이면 몸에 소름이 미리 돋는 탓에, 어찌어찌 잘 막아내고 있었다.

[이제 곧 악으로 물든 영물들이 모여 있는 영토에 진입합니다.]

그때, 천마의 어깨에 있던 무명이 말했다.

햇살이 밝게 비추는 숲이건만, 저 앞으론 왠지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다.

“이제 본좌가 앞장서지.”

천마가 앞으로 나서려는데, 김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자신 있나 보군.”

“그게 아니라…….”

김우진은 행여 달려드는 영물이 있을 경우, 천마가 벼락같이 손을 쓸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 마음을 헤아린 듯 장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그래. 우리가 앞장설 테니까 너희들은 후미를 지키도록 해.”

잘생긴 사람을 보면 왜 빛이 난다고 표현하는 걸까?

그건 단순한 표현이 아니었다. 용모가 아름다우면 몸에서 빛을 뿜는다.

태양과도 같은 빛을 머금은 김우진이 앞으로 나서자 어둠에 가득한 숲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크르르르… 뀡?

그리고 그 빛에 닿은 영물들도 순식간에 온순해졌다.

적의 가득한 눈빛으로 으르렁거리던 영물도, 언제든 튀어 나갈 듯 몸을 웅크리고 있던 영물들도.

김우진의 얼굴을 보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얼굴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와아.”

장채원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김우진이 테이머 스킬에 버금가는 능력을 발휘하는 이유가 잘생긴 용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김우진에게는 테이머 스킬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완전한 따스함과 순수함.

인간이라면 갖고 있어야 할 경계심이나 적의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완전한 따스함을 영물들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그런 순수한 마음은 악에 물든 영물들의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이렇게 가면 순조롭게 끝날 것 같군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무명 역시 감탄성을 터뜨렸다.

그저 바라보고 웃어주는 것만으로 영물들은 악에서 벗어나 정화되고 있었다.

“정말 멋져.”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장채원의 마음도 정화되고 있었다.

쿠릉.

그때 엄청난 굉음과 함께 저 멀리서 험악한 영물 하나가 보였다.

생긴 건 마치 두꺼비와 거북이를 합쳐놓은 듯한 모습이다.

오만상을 찌푸린 채 사람처럼 우뚝 서 있는 영물은 몸 전체가 까만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눈동자는 누런 살기로 번들거렸다.

바로 이곳의 영물들을 악으로 물들인 영물들의 두령, 흑두꺼북이었다.

“괜찮을까요.”

장채원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흑두꺼북은 지금까지 마주쳤던 영물들과 달리 김우진을 보고도 포악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흑두꺼북은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걸 베어버려요. 독을 녹일 수 있는 독을 뿜을 수도 있고요,”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금세라도 입을 쩍 벌려 독을 뿜거나 칼날 같은 손톱을 휘두를 것만 같다.

하지만 김우진은 오히려 흑두꺼북 앞으로 다가갔다.

“저런, 다쳤구나.”

자세히 보니 흑두꺼북 등 뒤에 있는 껍질이 갈라졌고, 그곳에서 진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계속 인상을 썼던 건 부서진 껍질 때문에 고통스러워했기 때문이었다.

“뽑아줄게.”

김우진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갈라진 껍질엔 예리한 단분자 커터 조각들이 파편처럼 박혀 있었다.

아마도 처음 흑두꺼북을 발견한 인간들은 이 신기한 영물을 사로잡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의치 않자 무기과 스킬을 사용해 죽이려 했을 것이다.

“그랬구나.”

멀리서 바라보던 장채원도 흑두꺼북의 사정을 파악했다.

평온하게 지내고 있던 자신을 사로잡아 돈을 벌려고 했던 수많은 인간들. 그 사악한 욕망에 의해 쫓기고 또 쫓기다 마침내 이렇게 악에 물든 것이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

김우진은 등껍질에 박힌 파편을 빼내기 위해 천천히 흑두꺼북 앞으로 다가갔다.

“모든 인간들이 악한 건 아냐.”

그리고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갈라진 파편을 빼내려는 순간,

사악.

칼날 같은 손톱이 허공을 갈랐다.

주르륵.

뺨에서 붉은 피가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화가 난 흑두꺼북이 김우진의 뺨을 긁어버린 것이다.

[김우진 님!]

당황한 무명이 외치자,

“괜찮아. 걱정할 필요 없어”

김우진이 손을 내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겁을 내는 것뿐이니…….”

손을 흔들던 김우진은 말을 멈추었다.

어느새 등 뒤에 눈이 하얗게 뒤집힌 채 달려온 장채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시꺼먼 흑화 거북이가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서…….”

어느새 그녀의 눈동자에선 푸른 광채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쿠쿠쿠쿵.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흔들린다.

장채원이 분노에 휩싸이자 거대한 지하 던전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감히 우진 씨의 뺨을 때려!”

번쩍!

빛이 되어 사라진 장채원은 어느새 거대한 흑화 거북이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저분 뺨에 흉이라도 지면 네가 책임질 거야?”

눈동자에서 푸른빛을 꾸역꾸역 흘려보내는 그녀가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름다운 용모에 흠이라도 지면 네놈 따위가 책임질 수 있냐고?”

쿵!

커다란 흑두꺼북을 바닥에 팽개친 그녀가 등껍질을 발로 차며 외쳤다.

“반성해! 반성! 죽기 직전까지 반성하라고!”

-꾸 꾸우?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던 흑두꺼북의 눈동자엔 공포가 떠올랐다.

툭툭 차고 있지만, 그때마다 몸이 계란처럼 부서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꾸우!(살려주십쇼!)

바닥에 엎드린 흑두꺼북이 바들바들 떨며 울음을 내고 있었다.

-꾸우우우!(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 일행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응?”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장채원은 얼음처럼 굳어있는 김우진을 발견하였다.

“꺄아!”

갑자기 비명을 지른 그녀는 김우진의 등 뒤에 바짝 붙인 채 몸을 떨었다.

“무, 무서워요.”

“…….”

그 모습을 지켜보는 천마와 무명의 눈빛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차아아앙!

비밀의 숲 던전에는 연달아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악에 물든 나머지 영물들이, 알아서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소리였다.

정화하지 않으면 죽는다!

흑두꺼북이 장채원에게 지근지근 밟히는 걸 목격한 영물들.

만약 악을 털어버리지 않는다면, 그녀에게 처참하게 밟혀 죽을 거라는 걸 직감한 것이다.

“아아, 다행이다.”

사방에서 빛을 내며 정화하는 영물들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진 씨 덕분에 모든 영물들이 정화되었어요!”

며칠 후.

“이상하다.”

책상에 앉아 연신 휴대폰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명!”

[네, 장채원 님.]

창고에서 떼굴떼굴 굴러나온 무명이 팔다리를 뽑으며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장채원은 무명의 얼굴에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갖다 대었다.

“정말 이 번호 맞아?”

[번호라뇨.]

“우진 씨 전화번호 말야. 며칠째 문자를 전혀 안 보고 있는데?”

무명은 눈 센서를 키워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장채원이 김우진에게 보낸 문자가 빽빽이 띄워져 있었다. 얼핏 봐도 집요하리만큼 집착하는 흔적이 보이는 내용들이다.

무명은 길게 늘어진 글자들이 마치 기다란 손톱처럼 느껴졌다.

[그렇군요.]

“뭐가?”

[혹시 모르니… 제가 잠시만 확인해 보겠습니다.]

무명은 전화 모듈을 사용해 김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무명이 내뱉은 소리를 들은 장채원이 어? 하는 소리를 내었다.

“뭐야. 없는 번호라니.”

장채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우진 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 아냐?”

무명은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에는 냉철할 만큼 차가운 장채원이 잘생긴 사람만 보면 어째서 정신줄을 놓아버리는지.

[단순히 전화번호를 바꾼 것이 아닐까요?]

“갑자기? 왜?”

‘장채원 님의 문자폭탄을 받으면, 누구라도 견디지 못하고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삼킨 무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장채원이 상처받지 않을 대답을 고르고 있던 찰나,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살길을 찾아 떠났나 보군.”

“뭐?”

“그 방법뿐이 없겠지.”

“무슨 말이야, 그게.”

“아무것도 아니다.”

천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올려둔 책에 시선을 고정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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