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8화. 황장훈의 대모험 (3)
“어?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그때 천마를 발견한 황장훈이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저 할머니가 저를 잡아먹으려 해요.”
천마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자 무명이 다급히 말했다.
[천마 님. 저 소년은 일전에 천마 님이 구해주신 한호조 군의 동급생입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번개처럼 움직인 천마가 노파 앞에 우뚝 섰다.
물론 얼굴도 잘 모르는 소년을 구해줄 생각보다는, 이 정체 모를 시건방진 노파의 콧대를 꺾어 줄 생각이었지만.
“방해하지 마라!”
천마가 가로막자 노파는 누런 눈을 번뜩이며 손을 휘저었다.
지이이잉.
순간 별빛과도 같은 광점이 땅에서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천마의 몸을 휘감았다.
“흥.”
코웃음을 친 천마는 힘을 써 몸을 감싼 빛덩어리를 부수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전혀 꿈적도 하지 않았다.
“흐흐흐. 네놈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이 던전 안에선 힘을 쓰지 못할 게다.”
노파는 당황한 천마의 얼굴을 보자 기분이 좋은 듯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파앙!
마침내 천마대능력을 발휘한 천마가 두 팔을 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파의 말대로 전혀 기운을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고작 빛무리 따위를… 천마대능력으로도 끊지 못한다고.”
크게 놀란 천마가 중얼거릴 무렵, 노파는 다 무너진 오두막에 있는 황장훈에게 걸어갔다.
“네 이놈…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살, 살려주세요.”
초콜릿 기둥을 먹고 있던 황장훈이 뒷걸음질 치자,
쿠우우웅. 와르르르르.
마지막 남아 있던 초콜릿 기둥이 무너지더니 형체만 남아 있던 오두막이 폭삭 주저앉았다.
“끄아아아아!”
그 순간 노파가 머리를 감싸 쥐더니 비명을 질렀다.
형체가 또렷해지다 흐릿해지길 반복하는 노파의 모습을 보며, 무명이 소리쳤다.
[황장훈 군. 어서 빨리 쓰러진 초콜릿 기둥을 모두 먹어 치우세요!]
“네? 어? 나노봇?”
황장훈이 눈을 껌뻑이자 무명이 심각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 마녀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어서요!]
“아, 으응.”
‘마녀’란 말을 듣자 황장훈은 정신을 차리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초콜릿 기둥을 으적으적 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커다란 초콜릿 기둥을 모두 배 속에 집어넣자, 오두막에서 반짝이는 빛과 함께 파란색 지팡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게… 뭐지?”
파란색으로 물든 지팡이엔 다양한 색깔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황장훈의 눈에는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든 사탕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마도 저 노파가 훔쳐 간 던전 코어 조각일 겁니다. 황장훈 군! 어서 먹으세요!]
“그건 안 돼----!”
고통에 몸부림치던 노파가 손을 벌리며 덤벼드는 순간,
“허웁!”
황장훈은 지팡이를 통째로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씹지도 않은 채 그대로 삼켜버린 것이다.
샤아아아아아.
신비로운 빛이 사방으로 쏟아지더니, 흐릿했던 노파의 형체가 점차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천마의 몸을 휘감고 있던 빛줄기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잘했군.”
몸이 거뜬해진 천마는 순식간에 신법을 펼쳐 노파의 앞에 섰다.
“이것도 피해봐라. 승풍항룡!”
몸을 한껏 웅크린 천마는 힘껏 도약하며 오른손으로 노파의 턱을 후려쳤다.
-차라라라라랑.
맹렬히 회전하는 천마의 주먹이 닿자 청량한 금속성과 함께, 노파의 몸뚱이는 수백 개의 보석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스르르르르.
땅으로 흩어진 보석 조각들은 물처럼 녹아버리듯 땅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대체 저 노파의 정체가 뭐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노파를 바라보던 천마의 물음에 무명이 답했다.
[아마도 이 별빛 던전의 던전 코어를 훔쳐,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 살아가는 마녀였던 것 같습니다.]
“던전 코어?”
[던전을 구성하고 던전 내에 동식물을 만들어 내는 신비한 힘입니다. 던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으며, 그 형체를 아직까지 본 사람은 없기 때문에 ‘코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쿠르르르르릉. 카아아아아!
그때 낮은 진동과 함께 어디선가 괴음이 울려 퍼졌다.
이상함을 느낀 천마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무명이 말했다.
[던전 코어가 모두 회복된 탓에, 다시 이 던전에 몬스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카아아아아! 크르르르!
사방에서 들려오는 몬스터 소리가 더욱 강해지자 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이 별빛 던전은 상당한 상위 몬스터의 서식지였나 봅니다.]
“으으으.”
그때 오두막에 쭈그리고 있던 황장훈이 신음을 내며 배를 움켜쥐기 시작했다.
[황장훈 군?]
“갑자기 배가 아파요.”
배를 움켜쥔 채 몸을 떨자 무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마 님. 아무래도 던전 코어 재질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먹은 부작용인 것 같습니다.]
“흠.”
천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쓰러진 황장훈에게 다가갔다.
성장 중인 아이들의 기혈은 매우 연약하고 뼈조차 부드럽다. 함부로 지풍을 사용해 혈을 뚫다간 오히려 부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군. 기혈도 안정적이고 부상당한 흔적도 없다.”
“으으으.”
하지만 황장훈은 여전히 아픈지 괴로운 표정으로 연신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라.”
어쩔 수 없다는 듯 황장훈의 상의를 올린 천마는 청진기를 대듯 배에 귀를 가까이 대었다.
무림에 산재한 모든 의서를 독파한 그는 소리만으로도 혈관과 내장질환을 모조리 파악할 수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황장훈의 질환을 파악하려는 순간,
-뿌우우웅.
둔턱한 살가죽이 흔들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 썩은 음식물 냄새가 천마의 콧속을 파고들었다.
“이, 이제 안 아파요!”
시원하게 방귀를 발사한 황장훈이 벌떡 일어나 활짝 웃었다.
* * *
아름답기로 유명했던 별빛 던전은 폐쇄되었다.
몬스터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던 던전에서 돌연 위험도가 높은 대량의 몬스터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일전에 과수원 던전의 일을 겪은 협회는 던전 내에 철저한 안전지대와 탈출 경로를 만들어 두었다.
때문에 위험천만한 돌발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사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키리릭. 부우웅.
차량에 시동을 건 황거한은 침착한 얼굴로 세이프던전 입구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낮게 중얼거린 황거한은 룸미러를 조절해 뒷좌석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곳엔 아내의 옆에서 곤히 잠근 황장훈의 얼굴이 보였다.
이틀 동안 사라졌음에도 혈색은 더욱 좋아졌고 어딘가 모르게 늠름한 얼굴로 변해 있는 것만 같았다.
“던전 미로 속에 갇혀 있었다잖아요. 다행히 폭식 스킬 때문에 뭐든지 먹을 수 있었고…….”
“여보. 아닌 거 잘 알잖아.”
운전대를 잡은 황거한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말하는 내내 장훈이가 입을 살짝 내밀면서 말하더군.”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하면 입이 살짝 튀어나오는 황장훈.
그 귀엽고도 앙증맞은 버릇을 두 부부는 그저 가만히 지켜보며 흐뭇해했을 뿐이다.
지금까지 황장훈이 한 거짓말은 모두 선의의 거짓말이었으니까.
“예전 같으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을 거예요. 설령 던전이 아니라 휴양지에 갇혀 있었다고 해도 말이에요.”
심은미는 곤히 잠들어 있는 황장훈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장훈이는 처음으로 늠름하게 웃으며 말했어요.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안 무서웠다고.”
“그렇긴… 하지.”
입술을 깨물던 황거한이 울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이번 일로… 내가 각성자가 되지 말라고 강요할까 봐, 그래서 거짓말을 한 걸까?
“그건 아닐 거예요.”
심은미는 황장훈의 통통한 볼을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번에 던전에 갇히는 동안, 장훈이는 성장한 거예요. 더 용감하고, 더 강한 사람으로.”
“으음.”
아무리 아내의 말이지만 뜬금없는 대답이다.
하지만 어찌 알았을까?
던전 코어의 조각을 먹은 황장훈은 실제로 극한각성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F급 스킬 ‘폭식’이 먹는 대로 육체의 힘을 높이는 S급 스킬, ‘식신’으로 바뀌었으나, 이를 알게 되는 건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다신 장훈이를 던전 투어 같은 것에 데려가지 않을 거야. 절대로.”
황거한의 다짐에 심은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저도 다신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요.”
“근데 저 녀석, 정말 커서 각성자가 될 건가.”
“그게 되고 싶다고 되나요? 지금 장훈이 스킬과 각성도로는 9급 각성자도 간당간당 하다잖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잠시 차 안에서 침묵이 감돌자 심은미가 화제를 돌렸다.
“대신 일 좀 줄이고 장훈이랑 많이 놀아주세요. 이번 일로 꽁돈도 벌었잖아요.”
던전 투어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의무적으로 여행자보험에 가입된다.
황장훈의 실종사건으로 인해 보험에선 엄청난 보상금이, 협회에서도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며 상당한 금액의 위로금이 지급될 예정이었다.
“돈이 다 뭐야. 다시는 이런 일 겪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일 좀 줄이고 장훈이랑 많이 놀아주고 놀러도 가요. 던전 투어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깊은 한숨을 푹 내쉰 황거한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야지.”
그리고 액셀을 슬그머니 밟았다.
빨리 이 지역에서 벗어나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자동차도 더욱 힘을 내어 달리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대체 황장훈은 왜 거짓말을 한 걸까?
던전 투어 중 갑작스럽게 발생된 실종사건. 거기다 실종자는 각성자 학교에 다니는 초등학생.
거기다 과수원 던전 사건이 벌어진 지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았다.
만약 이러한 사건이 언론에 알려진다면?
던전 관리에 대한 허점이 드러났다며, 온갖 매체에서 협회에 대한 비난과 성토가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요원들을 다 동원해! 당장!
협회에선 특급 요원들과 공략팀까지 투입해 별빛 던전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이틀째 되는 날엔 갑자기 몬스터들이 쏟아지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수색을 중단하려는 찰나, 별빛 던전 입구로 황장훈이 멀뚱히 걸어 나온 것이다.
-궁금해서 미로 속을 헤매다 이상한 공간에 갇혔어요. 폭식 스킬로 버티고 있는데 갑자기 던전이 흔들리더니, 입구 쪽으로 가는 길이 보였어요.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무명은 천마가 애용하는 던전의 지하 통로가 발견되는 걸 원치 않았다. 무엇보다 사실대로 말한다 해도 황장훈이 괴로워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겪은 일은 비밀이에요. 사실대로 말한다면 황장훈 군이 온갖 조사를 받게 될 테고, 어쩌면 더욱 힘들어질 테니까요.
설령 황장훈이 ‘던전 코어의 힘을 흡수하는 마녀가 있었는데요, 호조가 아는 아저씨가 때려잡았어요!’라고 말해봤자 믿어주지도 않을 이야기였다.
무명은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황장훈에게 말했다.
-황장훈 군. 비밀, 지켜준다고 약속할 수 있나요?
과수원 던전 사건의 실종자가 또다시 던전 투어 중 원인 모를 사건으로 실종된다면?
어쩌면 협회에선 황장훈에게도 무언가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집요하게 조사할 것이다.
그래서 무명은 황장훈에게 적당한 거짓말을 가르쳐 주고, 다짐을 받아낸 것이다.
-물론이에요!
황장훈은 바람대로 또다시 던전에 들어가 아슬아슬한 모험을 했다.
뿐만 아니라 교과서에는 없는 신비한 던전 코어의 힘과 형태를 봤고, 동화 속에서나 듣던 마녀의 모습도 봤다.
활짝 웃은 황장훈이 신이 나서 대답했다.
-주인공은 항상 비밀을 간직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