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27화 (227/285)

제227화. 황장훈의 대모험 (2)

“어, 어떻게 된 거야?”

어느새 허공을 수놓던 불꽃들도 사라져 버렸고, 내부에는 음침한 어둠만이 가득했다.

울먹울먹.

어두운 던전에 홀로 남겨지자 황장훈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순간, 푸드로봇에서 나왔던 성찬의 모습. 그리고 과수원의 지하 던전에서 침착하게 자신을 인도했던 한호조의 모습이 연달아 떠올랐다.

“울면 안 돼.”

맺힌 눈물을 쓱 닦은 황장훈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던전은 원래 위험한 곳이잖아. 나도 앞으로 각성자로 살려면… 주인공이 돼야 해.”

위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냉철한 판단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주인공. 이제부터 황장훈 역시 주인공이 되려는 것이다.

“다른 길은 없나.”

캄캄한 어둠 속을 더듬더듬 헤매던 황장훈은 코끝으로 또다시 달콤한 냄새를 맡았다.

아까 빛무리들이 천장에 퍼질 때 맡았던 것과 똑같은 냄새다.

“막혔잖아.”

눈을 감은 채 달콤한 냄새를 따라가 보니 어느새 커다란 벽이 보였다.

별빛 던전 내부의 미로 중 어느 막힌 부분 같았다. 그런데 벽 아래로 작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어라?”

구멍은 황장훈의 머리와 어깨가 간신히 통과할 정도였다. 성인이라면 머리 하나도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좁았다.

“들어가 볼까.”

구멍 속에 머리를 살짝 집어넣자, 맛있고 달콤한 향기가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잠시 고민하던 황장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볼 수밖에 없어.”

그리고 좁은 구멍으로 머리를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황장훈은 통통한데다 또래에 비해 덩치가 큰 편이었다. 하지만 몸이 부드럽고 유연한 탓에 작은 구멍을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다.

“와아.”

밖으로 나온 황장훈은 탄성을 터뜨렸다.

눈앞에는 아름다운 숲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앞에 커다란 오두막이 지어져 있었다.

문제는 그 오두막이 모두 케이크와 비스킷, 사탕, 빵 같은 간식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과자로 만들어진 집이라니!”

눈을 껌뻑이던 황장훈은 오두막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먹음직한 케이크와 비스킷으로 뒤덮여 있는 오두막은 바라보기만 해도 침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꿀꺽.

향긋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자 황장훈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맹렬한 허기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한, 한입은 괜찮겠지.”

투명한 사탕으로 되어 있는 창문 옆에 붙여진 케이크에 다가가 입을 크게 벌리려는 순간,

타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뒤통수를 세차게 얻어맞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다시 눈을 뜬 황장훈은 신음을 내며 욱신거리는 뒤통수를 매만졌다.

“으으.”

손바닥엔 달걀만 한 둥그런 혹이 튀어나와 있었다.

뻐근한 뒤통수를 매만지던 황장훈은 어느새 빵가루 같은 게 손바닥에 달라붙어 있음을 느꼈다.

“이게 뭐야.”

빵가루를 입에 갖다 대보던 황장훈은 묘한 시선을 느끼고 옆을 바라보았다.

“으아!”

펄쩍 뛴 황장훈은 다시 엉덩방아를 찧었다.

정면에는 높이는 3미터, 너비는 2미터 정도의 철문이 있었고 그 앞에는 흉악스런 눈빛을 번뜩이는 노파가 우뚝 서 있었다.

“누구세요?”

노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인정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시선으로 겁에 질려 떨고 있는 황장훈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손.”

삭아버린 돌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런 음성이 나올 것이다.

모골이 송연해질 만큼 살벌한 노파의 목소리에 황장훈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이런!”

한의사처럼 황장훈의 손목을 진맥하던 노파는 버럭 소리쳤다.

“대체 뭘 처먹고 다니는 게야?”

“네?”

“몸이 완전 지방덩어리잖아?”

오만상을 찌푸린 노파는 갑자기 황장훈의 옷을 마구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손을 꺼낼 때마다 사탕과 캐러멜이 쏟아져 나왔다.

“이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이를 갈던 노파가 쓰러진 황장훈의 귀를 잡아당겼다.

“따라와!”

노파가 황장훈을 데리고 간 곳은 황토벽에 촘촘한 창살이 쳐 있는 지하 감옥과 같은 곳이었다.

“어서 들어가!”

황장훈의 엉덩이를 발로 찬 노파는 창살 차이로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이제부터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살려주세요!”

황장훈이 바들바들 떨며 울먹였지만, 노파는 싯누런 눈빛을 번뜩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웅얼웅얼.

고목나무 껍질 같은 노파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땅이 뒤흔들렸다. 동시에 황장훈이 서 있는 곳 뒤로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으어어.”

바닥은 구덩이 뒤로 빨려들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노파가 벼락같은 호통을 쳤다.

“멍청아! 가만있지 말고 뛰어!”

“네. 네!”

황장훈은 엉겁결에 벌떡 일어나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으아아.”

바닥은 마치 러닝머신처럼 계속 움직였고 황장훈은 구덩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뜀박질을 했다.

“죽기 싫으면 열심히 뛰어야 할 게다.”

황장훈이 뛰는 모습을 바라보던 노파는 코웃음을 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마나 뛰었을까?

숨 가쁘게 뛰던 황장훈은 시야가 점차 흐려지더니 혀가 턱 밑까지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 나 더 이상 못 뛰어.”

철컥.

그때 문이 열리더니 사라졌던 노파가 다시 나타났다.

“흥.”

노파가 코웃음을 치자 황장훈의 뒤에 있던 구덩이가 사라지더니, 움직이던 바닥도 천천히 멈추었다.

“허억. 허억.”

바닥에 쓰러진 황장훈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족히 한 시간은 넘게 뛴 것 같다. 만약 황장훈이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실신했을지도 모른다.

“물, 무울… 주세요.”

황장훈의 입술은 가뭄에 말라버린 땅처럼 갈라져 있었다.

그 모습을 빤히 내려다보던 노파가 들고 있던 상자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밥이다.”

“밥이요?”

다시 번쩍 눈을 뜬 황장훈이 노파가 내려놓은 상자를 허겁지겁 열어보았다.

그곳엔 맑은 물과 함께 잡곡밥, 나물무침, 두부 등 저칼로리 음식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꿀꺽꿀꺽.

주전자에 담긴 시원한 물을 절반쯤 들이켠 황장훈이 식판을 바라보며 울상을 지었다.

“고기랑 햄이 없잖아요.”

“굶고 싶다면 더 이야기해 봐라.”

노파의 싸늘한 말에 황장훈이 두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리고 숟가락을 들고 열심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거들떠보지 않을 두부와 나물이었으나, 배가 고픈 탓인지 술술 넘어갔다.

“후아.”

식판의 밥을 깨끗이 비운 황장훈이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땀도 흘리고 밥을 먹자 몸이 노곤해진다. 점차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려 하자, 다시 철컥 소리와 함께 노파가 나타났다.

“졸지 마!”

노파는 황장훈을 보며 소리쳤다.

“밥 먹고 바로 자면 소화가 되어도 또 지방으로 축적된다 말이다! 역류성 식도염에 걸릴 수도 있다고!”

“네?”

설마 내 건강을 염려해 운동을 시키고 밥을 먹인 걸까?

황장훈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노파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식도염에 걸리면 그 달콤한 내장을 먹을 수 없게 되니 말이다.”

소름 돋는 말에 황장훈은 입을 뻐끔거리더니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다음 날 오후.

“허억. 허억.”

미끄러지는 바닥이 멈추자 달리기를 멈춘 황장훈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철컥.

그러자 시간을 맞추기라도 한 듯 노파가 들어와 식판과 물이 든 상자를 내밀었다.

눈만 뜨면 운동을 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먹는다. 해가 지면 일찍 잠들었다.

고작 하루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황장훈의 안색은 몰라보게 좋아졌고 살도 제법 많이 빠졌다.

그날 밤.

감옥 한켠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는 황장훈을 보며 노파가 나직이 속삭였다.

“흐흐흐. 이제 곧 먹을 수 있겠군.”

노파의 말에 아직 잠들어 있지 않았던 황장훈은 식은땀을 흘렸다.

‘내가 살을 모두 빼면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야.’

철컥.

노파가 다시 사라지자 황장훈은 벌떡 일어났다.

“다시 살을 찌워야 해.”

하지만 주머니에 갖고 있던 캐러멜과 사탕은 모두 빼앗기 상태였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보이는 것은 황토벽밖에 없다.

“그래. 나 폭식 스킬 있잖아!”

입 안에 들어간 것은 무엇이든 소화시킬 수 있는 폭식 스킬.

그렇다면 아무거나 많이 먹어도 살을 찌울 수 있지 않을까?

황장훈은 식판이 담긴 상자에서 숟가락을 꺼내 황토벽을 퍼먹기 시작했다.

와구와구.

가루가 된 흙을 욱여넣자 입에 쓴맛이 맴돌았다.

하지만 목숨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니 모래가 아니라 돌이라고 해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 어라?”

정신없이 황토벽을 긁어먹고 있는데, 점차 입 안에 부드러운 무언가가 같이 씹히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구멍이 뚫린 황토 안은 달콤한 빵으로 된 벽이 있었다.

“이곳도 오두막 안이었구나!”

환호성을 지른 황장훈은 빵으로 된 부분을 뜯어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빵으로 된 벽마저 뚫리자 이번엔 과일이 박혀 있는 초콜릿으로 된 방 안이 보인다.

“맛, 맛있어.”

오두막에 붙어 있는 빵과 초콜릿 등은 지금까지 먹어본 간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너무 맛있어!”

폭식 스킬로 인해 음식을 뭐든지 쉽게 소화시킬 수 있는 황장훈은 정신없이 오두막을 뜯어먹었다.

“어차피 살도 쪄야 하니까.”

온몸이 녹아버릴 듯한 달콤한 맛에 취한 황장훈은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오두막을 우걱우걱 먹어 치우고 있었다.

* * *

천마는 무림에 출도한 이래 수많은 적들을 상대했고,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 누구도, 어떤 수법을 사용해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적만큼은 상당한 곤란함을 느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

세이프던전, 지하 비밀 통로 내부.

주먹을 비틀어 쥔 천마의 머리 위로 회색빛 머리칼을 산발한 노파가 허공에 떠 있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독사 같은 눈동자를 갖고 있는 노파의 몸에선 기이하면서도 불길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회색 눈깔이 쓰는 물질 통과(페이징) 기술 같은 건가.”

[아닙니다. 페이징 스킬은 이토록 장시간 동안, 연속으로 쓸 수 없는 기술입니다.]

“그런데 왜 본좌가 펼친 모든 공격이 몸을 그대로 통과하는 거냐.”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천마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무명이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확실한 건 지금까지 등장했던 어떤 몬스터와도 궤를 달리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천마와 무명은 토끼굴 던전 근처에서 발견한 지하 통로를 이용해 던전에 들어가 재료를 채취하고 있었다.

거미줄처럼 퍼진 이 지하 통로는 세이프 전 지역에 퍼진 던전에 은밀히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별빛 던전’ 부근의 지하 통로를 지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음침하게 생긴 노파가 대뜸 천마를 공격한 것이다.

-멋대로 던전 아래를 헤집고 다니다니!

본래 천마는 대수롭지 않게 공격을 넘기고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노파가 펼친 한 수는 매우 강력하고 교묘하여, 천마의 금강지체를 뒤흔들어 버린 것이다.

화가 난 천마는 여러 차례 일격을 가했지만, 노파는 실체 없는 유령처럼 모든 공격을 흘려보냈다.

“그런 말은 본좌도 할 수 있겠다.”

코웃음을 친 천마는 노파에게 또다시 벼락같은 일격을 쏟아냈다.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삼십이 초의 공격을 퍼부었지만, 천마의 예리한 권력은 노파를 스쳐 허공으로 지나갈 뿐이었다.

-흐흐흐.

태산이 쏟아지는 듯한 천마의 일격을 흘려보낸 노파가 음침한 미소를 터뜨렸다.

순간 천마의 붉은 눈동자에서 자색의 광채가 퍼져 나왔다.

“실체가 없는 존재라면 딱 하나뿐이지.”

양손으로 수결을 맺자, 시꺼먼 광채와 함께 천마의 양손에서 시꺼먼 검이 뽑혀져 나왔다.

천사교 최고의 장상제령무학, 천사귀문공렬참을 펼치려는 것이다.

-크크크.

하지만 노파는 어림없다는 듯 팔짱을 낀 채 웃음을 터뜨렸다.

[잠깐만요! 천마 님!]

그때 어깨에 매달려 있던 무명이 다급히 소리쳤다.

[저 노파는 몬스터도 언데드도 아닙니다.]

“무슨 소리냐.”

손가락을 뻗은 무명은 노파의 발밑을 가리키며 말을 하려는 순간,

-끄아아아아!

허공에 떠 있던 노파가 갑자기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가슴을 움켜쥔 채 몸을 떠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 크게 상처를 입은 듯했다.

부르르르.

노파가 몸을 떨자 흐릿했던 몸이 또렷해졌다, 흐릿해졌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끄으으.”

허공을 울리던 기이한 음성도 인간의 목소리처럼 평범하게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이 녀석이! 그걸 먹으면!”

피를 토하는 듯한 외침과 함께 노파는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도망갔군요.]

무명의 망연자실한 목소리에 천마가 코웃음을 치며 외쳤다.

“누구도 본좌의 손아귀에서 도망갈 수 없다.”

허공을 쏜살같이 날아간 노파가 도착한 곳은 별빛 던전의 숨겨진 비밀 통로였다.

던전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어지러운 미로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던 노파는 마침내 아주 작은 통로의 구멍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막혔습니다, 천마 님.]

콰우우우우!

무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마의 주먹에서 해일 같은 천수공파의 경력이 구멍 안으로 파고들었다.

쩌쩌저저적. 우르르르.

쇳덩이보다 단단하다는 던전의 벽을 부숴버린 천마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흠.”

통로 안으로 들어간 천마는 묘한 침음을 내었다

이 비밀스런 공간에는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아름답고 신비한 숲이다.

그에 반해 숲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 무너져 가는 오두막 한 채가 세워져 있었다.

“던전에 이러한 공간도 있단 말인가.”

“이놈이?”

그때, 오두막을 바라보던 노파가 큰소리를 치며 달려갔다.

기둥만 남은 오두막 앞에는 피둥피둥 살이 찐 아이가 초콜릿으로 된 기둥을 쩝쩝대며 먹고 있었다. 황장훈이었다.

“이 녀석! 네가 혼자서 이걸 다 먹었다고?”

“살 빠지면 잡아먹을 거잖아요!”

초콜릿을 먹던 황장훈이 소리치자 노파가 날카로운 치아를 드러냈다.

“이, 이 뚱돼지 같은 놈이… 수백 년간 모아둔 던전 코어의 힘을.”

독사처럼 세로로 찢어진 노파의 눈동자에선 무시무시한 살기가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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