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26화 (226/285)

제226화. 황장훈의 대모험 (1)

황장훈은 거실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화면 속엔 최근에 가장 인기 좋은 로봇 만화인 ‘안녕! 푸드로봇’이 방영되고 있었다.

겉으로는 음식처럼 생겼지만 위기 땐 로봇으로 변신해, 가변던전을 공략하는 주인공 성찬을 도와준다는 내용이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화면을 바라보던 황장훈이 낮게 중얼거렸다.

주인공 성찬은 황장훈과 나이가 똑같은 초등학생이라는 설정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할 뿐 아니라, 푸드로봇을 조종할 수 있으며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다.

“그러고 보니 성찬이는 호조 닮았네.”

잘생기고 정의로운 성찬의 모습은 단짝인 한호조와 닮아 있었다.

한호조는 우등생이다.

얼굴도 잘생겼고 공부도 잘하고, 등급이 낮긴 하지만 스킬을 두 종류나 가지고 있다.

심지어 부모님은 협회 소속의 고위 각성자라고 한다. 마치 ‘안녕 푸드로봇’의 주인공 같다.

“나도 주인공이 되고 싶다.”

소파에 올려진 작은 거울을 힐끔 바라본 황장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토실토실한 얼굴에 비해 입이 작은 편이라, 한숨을 내쉬자 호빵 같은 볼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공부는 썩 잘하는 편도 아니고, 스킬도 하필 무엇이나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폭식’이다.

“던전… 또 갈 일 없을라나.”

황장훈은 문득 얼마 전 갔었던 과수원 던전을 떠올렸다.

그곳엔 스릴 가득한 모험이 있었고, 신비한 몬스터와 독특한 재료(먹거리)가 있었다.

던전. 던전이라면 평범하고 통통한 자신도 TV에 나오는 주인공이 될 것만 같다.

“아무리 졸라도… 못 가겠지.”

던전 체험 투어 비용은 투어 일정에 따라 다르지만 해외 여행을 가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황장훈의 아버지는 대기업 회계팀의 팀장,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 부족함 없이 살지만 던전 투어를 쉽게 갈 만큼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에휴우.”

한숨을 푹 쉰 황장훈은 다시 과자봉지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늘 맛있게 먹었던 딸기맛 파이가 그리 달게 느껴지지 않았다.

띠리링. 철컥.

그때 현관이 열리며 풍채 좋은 중년 신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황장훈의 아빠 황거한이었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장훈아.”

황거한은 후다닥 달려온 아들을 두 팔로 안고 볼에 쪽 뽀뽀를 했다.

“TV 보고 있었어? 엄마는?”

“주방에 있어요.”

“근데 우리 장훈이 표정이 왜 그래?”

늘 탱글탱글하게 올라간 황장훈의 양 볼이 추욱 늘어져 있었다.

아주 미묘한 변화였으나 자상한 아버지였던 황거한은 대번에 아들의 마음을 알아챈 것이다.

“아니에요.”

“뭐야. 아빠한테 말해봐. 무슨 고민 있어?”

“사실은… 던전이 가고 싶어서요.”

“던전?”

“그때, 저는 제대로 구경도 못 했거든요.”

눈을 껌뻑이던 황거한이 엄한 얼굴로 말했다.

“넌 그런 일을 겪고도 또 던전이 가고 싶니?”

“별일 아니었던걸요. 그냥 던전 지하에 있다가 다시 나온 것뿐인데.”

“너어.”

엄한 아버지의 표정에 황장훈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학교에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이랑 던전에 잘 놀러 다니는데.”

“어쨌든 안 돼.”

“아빠, 어차피 저는 각성자잖아요. 나중에 어차피 들어갈 텐데.”

“장훈아.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니.”

각성이 일어나 어쩔 수 없이 각성자 학교에 다니지만, 황장훈의 스킬은 F급 ‘폭식.’

사실상 재각성이나 극한각성이 일어나지 않고선 각성자 생활은 불가능한 상태. 하지만 성인이 되기 전 재각성이나 극한각성이 일어나는 케이스는 매우 희박하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아빠도 내가 성인이 되어도 제대로 된 각성자가 못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게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니.”

“난 꼭 될 거예요!”

몸을 홱 돌린 황장훈은 방 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황거한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

어린 각성자들의 90퍼센트는 부모가 각성자 신분이다.

하지만 황장훈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갑작스런 각성으로 인해 각성자 학교에 들어간 케이스.

대부분 각성자 부모를 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딱히 지원도 조언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늘 밝게 웃으며 학교에 적응해 갔다.

“진심으로 각성자가 되고 싶은 거였니.”

폭식 스킬로 젓가락이나 장난감 등을 먹어대던 황장훈.

부모님 앞에선 스킬로 재롱을 떨었지만, 내심으로는 각성자의 삶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

거실에 우뚝 서 있는 황거한이 침음을 할 무렵,

“여보? 이제 왔어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던 아내, 심은미가 휴대폰을 들고 나왔다.

“미안해요. 친구랑 통화하느라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들었네요.”

“으응.”

“근데 표정이 왜 그래요?”

이번엔 아내가 자신의 기분을 헤아리자 황거한은 쓴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누가 뭐래도 ‘화목함은 우리 집이 최고!’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다

“장훈이가 자꾸 던전에 가고 싶다길래.”

“그래요? 어쩐지 맨날 TV도 ‘푸드로봇’만 보더니.”

고개를 가로젓던 심은미가 흠 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냥 장훈이에게 말하지 그래요?”

“뭐를?”

“저번에 소풍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협회에서 ‘던전 투어 이용권’을 선물로 줬잖아요.”

“쉬잇. 장훈이가 들을라.”

“그냥 한번 가요. 장훈이도 얼마나 가고 싶겠어요. 각성자 부모들은 방학 때마다 보내준다고 하던데.”

아내의 말을 듣던 황거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 * *

세이프던전 남쪽 4킬로 지점, 별빛 던전.

최근 일반인의 출입이 허가된 투어용 던전이다.

던전 내부엔 몬스터가 서식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고성처럼 꾸며진 던전 내부엔 별빛을 연상케 하는 빛무리가 떠돌며 사방을 비춘다.

마치 동화 속 성을 연상케 하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내부 풍경 때문에 최근 던전 투어는 모두 별빛 던전으로 몰리고 있었다.

물론 투어용 던전으로 유명했던 과수원에서 히든몬스터가 나타났다는 소문도 한몫했지만 말이다.

“와아.”

별빛 던전 안으로 들어온 황장훈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내부를 둘러보며 탄성을 질렀다.

“아빠. 정말 멋져요.”

“그래. 특이하게 생긴 던전이구나.”

“아빠, 저것 봐요! 예전 몬스터들이 있던 흔적 같아요!”

엉덩이를 실룩이며 벽을 가리키는 황장훈을 보자 황거한과 심은미가 시선을 교환하며 웃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올 것을…….’

던전에 가고 싶어 식음을 전폐하고 앓다시피 하는 황장훈을 보자, 황거한은 어쩔 수 없이 일전에 받았던 던전 투어 이용권을 사용한 것이다.

“이번 여름엔 바빠서 휴가도 못 갔는데, 이렇게 던전에서 휴가를 보내네요.”

팔짱을 낀 아내의 탄성에 황거한은 미안함을 느꼈다.

회계팀에서 근무하는 황거한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할 뿐더러, 감사 기간엔 집에 못 들어가다시피 한다.

늘 가정에 소홀했음에도 황장훈이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은 사랑스럽고 현명한 아내가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도록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고마워, 여보.”

새삼 아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 황거한이 나직이 속삭였다.

“늘 애써줘서.”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내가 바빠서 항상 장훈이 신경도 못 써주잖아.”

심은미가 픽 웃으며 황거한의 듬직한 등을 두들겼다.

“무슨 소리예요. 지금도 바쁜 시즌인데 휴가 내고 힘들게 온 거잖아요.”

사실 황거한은 하루 동안만 던전 투어를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협회에서 제공한 이용권엔 사흘간 투어용 던전 무제한 탐사, 4급 각성자 개인 가이드, 그리고 세이프던전 입구에 지어진 호텔의 무료 숙박권과 식사권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돈으로 따지면 거의 천만 원 이상.

이 이용권을 그대로 날리기 아까웠던 황거한이 큰맘 먹고 휴가를 낸 것이다.

“난 그냥 비싼 이용권이 아까워서 휴가 낸 것뿐인걸.”

“무슨 소리예요. 주말엔 자는 시간까지 쪼개서 장훈이랑 놀아주잖아요. 당신도 좋은 아빠예요.”

아내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진 황거한.

그때 황장훈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을 벗어나 다른 입구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장훈 어린이, 그곳으로 가면 안 돼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협회 소속 4급 각성자이자 황거한 가족의 개인 가이드 겸 경호원, 주연서가 외쳤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네에.”

신난 황장훈이 양팔을 들고 뛰어왔다.

주연서는 살짝 무릎을 굽혀 통통한 황장훈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이 별빛 던전은 투어용 던전 등급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에요. 그러니 아무 곳이나 막 들어가면 안 돼요. 알겠죠?”

“네! 아 근데요.”

통통한 볼을 긁적이던 황장훈이 다시 물었다.

“별빛 던전은 언제부터 생긴 거예요? 학교 교과서엔 이런 던전이 있다는 걸 배우지 못해서요.”

“아, 장훈 어린이는 각성자 학교에 다닌다고 했죠?”

주연서는 황장훈의 손을 잡고 미로 주변을 가리켰다.

“여기 별빛 던전 입구로 들어올 때 어떻게 들어왔죠?”

“땅속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들어왔어요.”

“맞아요. 이 별빛 던전은 원래 지하에 숨겨져 있던 던전이었어요. 세이프던전 지역 내에는 아직도 숨겨진 던전이 있답니다.”

“정말요? 몰랐어요.”

“숨겨진 던전에 관련된 내용은 복잡하고 어려워서 중학교에 올라가야 배울 수 있을 거예요.”

주연서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있던 황거한은 문득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각성자였다면… 더 좋았을라나.’

만약 자신이 고위 각성자였다면. 훨씬 더 좋은 아버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던전에 관한 공부도 가르쳐 주고, 같이 던전에 가고… 혹시나 있을 재각성과 극한각성을 위해 같이 훈련도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장훈이를 좀 더 훌륭한 각성자로 키웠을 텐데.’

대부분의 시간을 위험한 던전에서 생활하는 각성자들 삶 따윈 부러워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자식이 각성자로 태어나 각성자의 삶을 꿈꾸는 걸 보니, 자신이 각성자가 아니라는 것에 아쉬움이 들었다.

“그럼 혹시 던전 내부에도 때때로 비밀스런 공간이 있지 않을까요?”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짓던 황장훈이 묻자 주연서가 놀란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맞아요. 어떻게 알았죠?”

“헤헤. 왠지 그럴 것 같아서요.”

황장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주연서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던전 내부에는 몬스터를 피할 수 있는 안전지대나, 때때론 발견되지 않은 지름길이나 통로가 있어요.”

“그러면 혹시 이곳에도 있나요?”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는 황장훈을 응시하던 주연서가 엷은 미소를 그렸다.

“보고 싶어요?”

“네!”

“음… 사실 아직 일반인에겐 개방되진 않은 곳이긴 한데.”

주연서는 귀여운 황장훈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살짝 윙크했다.

“장훈이가 귀여우니까 누나가 특별히 보여줄게요.”

주연서의 안내에 따라 황거한 가족이 도착한 곳은 어느 미로의 막다른 부분이었다.

어둡고 침침한 통로를 바라보던 황장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나, 이곳엔 아무것도 없는데요.”

“아까 누나가 뭐라고 했죠?”

“아, 그럼 여기가…….”

“맞아요.”

막혀 있는 미로의 벽을 매만지던 주연서가 손가락에 힘을 주자, 그긍 하는 소리와 함께 아주 작은 통로의 문이 열렸다.

“자, 이제부터 별빛 던전의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장소를 보여줄게요.”

문 앞에 선 주연서가 한 팔을 벌리자, 황장훈이 신이 나서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황거한과 심은미도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샤라라라랑.

내부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환한 빛이 쏟아지며 어두웠던 던전 내부가 환하게 비춰졌다.

“별빛 던전의 중심부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불꽃놀이를 감상해 보세요.”

퍼엉.

넓은 고성 같은 던전 내부에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사방에 흩어져 있던 빛무리들이 어지럽게 모이더니 아름다운 성과 마차를 그려냈다.

퍼엉 퍼엉!

다시 반짝이는 불꽃으로 변한 빛무리들이 이번엔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공주님과 왕자님의 모습을 그려냈다.

“와아.”

하늘을 바라보던 황거한과 심은미가 탄성을 질렀다.

이 던전에서 터져 나오는 빛부리들이 만들어낸 불꽃은 놀이동산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빨주노초파남보. 생생한 색감이 살아 있는 불꽃들은 환상과도 같은 빛을 냈으며, 그 아름다운 잔상이 오래도록 남았다.

“대체 저 빛이 뭔가요?”

심은미의 질문에 주연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던전 코어에서 흘러나오는 빛이에요.”

“던전 코어요?”

태어나서 처음 듣는 단어다.

던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심은미와 황거한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가요?”

“음, 던전의 생명력을 유지시켜 주는 일종의 발전기라고 할까요?”

주연서는 허공에 떠다니는 빛 조각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렸다.

그러자 차앙 하는 맑은소리와 손에 닿은 빛 조각이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사실 던전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와 같아요. 던전 내 서식하는 모든 것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죠. 몬스터가 사라지면 던전을 재구축하고 다시 몬스터를 생성하는 것처럼요.”

다시 고개를 돌린 주연서가 황거한과 심은미를 향해 말했다.

“보통 던전 코어는 사람이 찾을 수 없는 은밀한 곳에 보관되어 있지만, 이 별빛 던전은 독특하게도 던전 코어의 힘이 광점의 형태로 보이는 곳이에요.”

그녀는 광점을 바라보는 황장훈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한마디로 이 광점들은 단순한 빛이 아닌 던전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죠.”

“그렇군요.”

황거한이 감동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몬스터가 득실대는 마굴(魔窟) 정도로만 생각했던 던전. 하지만 이곳은 생명체를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생명체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킁킁.

그때 불꽃놀이를 바라보던 황장훈이 코를 벌름거렸다. 그건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과자 냄새였다.

“누나,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나지 않나요?”

황장훈이 주위를 둘러보며 입맛을 다시자, 주연서가 어이가 없다는 듯 미소 지었다.

“벌써 배가 고픈 거니?”

“아뇨. 정말 냄새가 풍기잖아요.”

“그래? 왜 난 그런 냄새를 못 맡을까?”

“어? 정말요? 아빠. 어디서 달콤하고 맛있는 냄새 안 나요?”

머리를 긁적거리던 황장훈이 뒤를 돌아볼 찰나,

“어?”

뒤에 나란히 서 있어야 할 부모님의 모습이 사라져 있었다.

“누나, 엄마 아빠가…….”

다시 고개를 돌리자 옆에 있어야 할 주연서마저 온데간데없이 모습이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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