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21화 (221/285)

제221화. 천마, 지란수를 잡다 (1)

어느 단독주택 인테리어 시공 현장.

그곳엔 경광등을 번쩍이는 구급차 여러 대가 입구 앞에 서 있었다.

멀리서 웅성이는 인근 주민들 사이로, 주황색 옷을 입은 구급대원들이 연신 들 것을 이용해 환자들을 나르고 있었다.

“끄어.”

“아이고오.”

이동용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입에선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환자들은 한결같이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페인트나 실리콘 등이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인테리어 현장에서 일하던 페인트 시공자들 같았다.

차량 안에서 환자들을 실어나르는 것을 바라보던 구급대원, 김철민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또 보이잖아.’

그는 어릴 적부터 남들이 볼 수 없었던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유리창 너머 알 수 없는 형체들이 허공을 떠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보지 못한 듯한 모습이다.

‘애써 무시하고 살아왔는데…….’

남들이 볼 수 없는 걸 보는 것.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이었다.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김철민의 몸은 어린 시절부터 병약했고 몸도 깡마른 편이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그때 유리창 너머 보이는 동료가 다가와 김철민을 향해 말했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공사를 하길래 하루가 멀다 하고 부상자들이 쏟아져 나오냐고.”

“그, 그러게.”

김철민은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벌써 네 번째 출동이었다.

잊을 만하면 이 주소로 긴급출동 요청이 들어왔다. 그리고 현장에 가보면 언제나 인테리어 기술자들이 크게 다친 채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도저히 크게 다칠 만한 상황이 아닌데.”

동료는 툴툴거리면서 다시 구급차로 향했다.

‘이제 간 건가.’

김철민은 다시 내부를 살펴보았다.

현장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가장 위험한 물건이래 봤자 사다리 하나뿐이다.

하지만 부상자들은 레슬링을 하다가 다친 것처럼 언제나 전신 타박상을 입거나, 2층 높이에서 떨어진 것처럼 골절상을 입었다.

그리고 다친 이유를 물으면 약속이나 한 듯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그냥 일을 하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까 이렇게 되어 있었어요.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신음하는 환자들을 떠올린 김철민이 한숨을 쉬었다.

그때 모여 있는 주민들의 웅성이는 목소리가 그의 귓가로 들려왔다.

“아니, 여긴 무슨 공사만 시켰다 하면 허구한 날 환자들이 생기나 그래.”

“그러게 말야. 벌써 몇 번째야?”

“무슨 귀신이 씌웠나.”

김철민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지금까지 줄곧 외면했던 단어였으나, 지금 현상은 그 말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가 없었다.

“쯧쯧쯧.”

그때 김철민 옆에 붙어 환자들을 나르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던 한 노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저런 곳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데 일반 인부를 쓰니 계속 다치지. 쯧쯧.”

옆에 우뚝 서 있는 노인을 바라보던 김철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반 인부라니? 그럼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데 무슨 특수요원이라도 투입시켜야 하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궁금함을 참지 못한 김철민이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께서는 자꾸 사람들이 다치는 이유를 아시는 건가요?”

“흘흘흘.”

노인은 묘한 미소를 띠었다.

고목나무 껍질 같은 피부는 나이가 백 살은 넘어 보였지만, 두 눈은 맑고 또렷했다.

결코 정신이 이상하거나 헛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유가 뭐가 중요하겄어.”

“네?”

“저짝, 사거리에 있는 복복 인테리어에서 일을 맡기면 돼. 그라믄 해결될 꺼여.”

“복복… 인테리어요?”

“험, 상황이 이러니 이 몸이 좀 도와줘야 쓰겄구먼.”

김철민이 눈을 깜빡이자 노인이 웃으며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단축 버튼을 꾹 누르자 화면엔 ‘세계 부동산’이라는 글자가 떴다.

“아, 김 사장. 난데, 여기 노을마을 주택에 공사 현장 말이여. 그려. 여기 집주인한테 복복 인테리어로 공사를… 아, 벌써 전화했어? 하게 되면 모레쯤? 그려. 알았어.”

전화를 끊은 노인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이미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구먼. 자네도 이젠 신경 쓸 필요 없어.”

“네? 그게 무슨…….”

김철민이 뭐라 말하기 전에, 노인은 굽은 몸을 이끌고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느릿느릿한 동작인데 전력 질주를 하는 것마냥 등이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복복 인테리어?”

흐릿해지는 노인의 뒷 등을 바라보던 김철민이 두 눈을 비볐다.

왠지 모르게 노인의 뒤통수에 푸른 눈을 가진 할머니의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진짜 있는 매장인 건가.”

홀린 듯 노인을 바라보던 김철민은 아까 들었던 통화내용을 되뇌었다.

“모레… 공사를 한다고.”

해 질 무렵, 복복 인테리어 내부.

응접 테이블에는 우리옷을 입은 천마와 본드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작업복을 입은 김찬원이 마주 앉아 있었다.

“혈삼(血蔘)을 달여놓은 물이라.”

팔짱을 끼고 있는 천마가 붉은 눈을 번뜩였다.

그의 앞에는 ‘홍삼진액’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는 진공포장 용기가 올려져 있었다.

같이 일을 끝마치고 돌아온 김찬원이 주머니에서 자신이 즐겨 마시는 건강기능식품을 천마에게 준 것이다.

“혈삼이 아니라 홍삼이라고. 홍삼이여, 홍삼.”

“같은 말이다.”

“응? 그런 거여?”

무림엔 단숨에 내공력을 높여줄 수 있는 만년삼왕이니, 인형설삼이니 하는 영약들이 더러 나온다.

천고의 내공심법인 반극신공을 익힌 천마는 영약 따위를 먹어본 적이 없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7년근 혈삼에서 추출한 진액이라. 숙성도가 조금 아쉽군.”

포장 용기를 들어 올린 천마는 금빛으로 적혀 있는 글자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공력에 보탬이 되겠지.”

“그, 그런 게 아녀. 어디까지나 그냥 보약의 개념으로다가…….”

“걱정 마라. 본좌는 무림에 산재한 모든 기화요초와 영단묘약에 정통하니까.”

김찬원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이 세계에 꽤나 잘 적응한 천마였으나, 안타깝게도 건강기능식품이라던가 약품에 대해서는 아직 깜깜이었다.

꿀꺽꿀꺽.

정성스럽게 포장을 뜯은 천마는 홍삼진액을 단숨에 들이켰다.

“김 씨. 호법을 부탁한다.”

“그게 뭔디?”“음, 쉽게 말해 본좌가 운공하는 동안 외부의 적이 나타나면 막으란 뜻이다.”

“어? 그려어.”

김찬원이 모를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천마는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혈삼의 영기를 흡수하기 위해 반극심공을 끌어올렸다.

딸랑.

그때 풍경 소리와 함께 수첩을 든 장채원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어? 김 기사님도 계셨네요?”

“아,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났구먼. 이후로 다른 시공이 없어서 천 씨랑 노닥거리고 있었지.”

“네에.”

방긋 웃은 그녀는 응접 테이블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있는 천마를 바라보았다.

“천마, 넌 뭐 해?”

천마는 대답할 수 없었다.

영약의 기운을 흡수하기 위해 무아지경으로 반극신공을 운공하는 중이었으니까.

“자는 거야?”

“그게 아니라… 그 머시기냐.”

운공의 개념을 모르는 김찬원이 아는 바를 대충 설명했다.

“여튼, 천 씨는 홍삼진액을 매우 진지하게 소화시키고 있나 봐아.”

“그래요?”

장채원은 시계를 슬쩍 바라보았다.

아직 오후 4시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는 쩝 소리를 내더니 천마의 어깨를 흔들었다.

“천마야. 아직 업무 시간이야.”

“…….”

“자고 싶으면 창고 방 가서 자던가.”

장채원이 연신 어깨를 흔들자 천마는 무아지경에서 깨어났다.

연신 그녀가 어깨를 흔들자 천마는 분통이 터졌다.

‘중간에 운공을 멈추면 모든 게 허사가 된다.’

혈삼 같은 영약은 그 영기가 금세 사라진다.

때문에 섭취한 즉시 운공을 하여 영기를 흡수, 단전에 저장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안 들려? 창고 방 가서 자라고.”

장채원은 쉴 새 없이 천마의 어깨를 흔들었다.

천마는 끝까지 정신을 집중하려 했지만 운공은 실패하고 말았다.

“설마 어디 아픈 거야? 왜 말을 안 해?”

“실패하지 않았나!”

“아이, 깜짝이야?”

번쩍 눈을 뜬 천마가 장채원을 바라보며 버럭 소리쳤다.

“왜 운공을 하고 있는 사람을 자꾸 흔드는 건가!”

“뭐? 운공?”

“그렇다. 혈삼을 달인 추출물을 방금 마셨단 말이다.”

천마는 김찬원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김 씨. 본좌가 호법을 부탁하지 않았나. 어째서 점주를 말리지 않는 거냐.”

“그… 외부의 적을 막으라면서?”

김찬원은 억울한 표정으로 장채원을 가리켰다.

“아무리 그래도 장 사장이 적은 아니잖여?”

“그러니까 외부의 적이라는 건 본좌의 운공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을 배제하라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을 하던 천마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운공을 중단했다지만, 기혈에 전혀 영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진기를 여러 번 돌려보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혈삼의 영기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점주 때문에 영기를 하나도 흡수하지 못하지 않았나!”

“영기라니, 무슨 헛소리야.”

“이 혈삼 말이다.”

장채원은 천마가 가리킨 진공 포장액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홍삼진액’라는 글자가 금박으로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홍삼진액에서 영기를 흡수한다고?”

“그렇다.”

장채원의 황당한 시선을 느낀 김찬원이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건강식품이라고 잘 설명했는디… 자꾸 딴소리를 한당께.”

“대체 이 일을 어찌할 건가, 점주.”

장채원은 초점 없는 눈빛으로 천마를 응시했다.

“그러니까 네가 마신 건 그냥 음료수야.”

“혈삼 추출액이라고 적혀 있잖나.”

“그러니까 그건 맞는데, 병아리 눈물만큼 들어있는 거야. 아니, 개미 앞다리만큼이라고 해야 하나.”

“흥, 핑계 대지 마라.”

장채원은 지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현장 견적만 수십 군데를 다녀온 그녀였다. 홍삼진액과 무림에서 나오는 영약과의 차이점을 설명할 기운조차 없었다.

“그냥 넘어가 줄래? 나 지금 피곤해서.”

그리고 수첩을 바라보더니 이마를 매만졌다.

“골치 아픈 일도 들어왔거든.”

“그런가.”

고개를 끄덕이던 천마가 다시 고개를 휙휙 내저었다.

“하지만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으음.”

장채원은 침음을 냈다.

이걸 똑바로 설명하지 않으면 천마에게 일주일 내내 시달릴 것이 뻔했다.

“자, 봐.”

포장지를 집어 든 장채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포장지에 뒷면에 농축액 10퍼센트 구성분을 봐. 고형분 3.5퍼센트와 사포닌 3.5밀리그램이라고 적혀 있잖아. 그 말은 결국 홍삼 농축액 0.2퍼센트가 들은 거라고.”

“혈삼이 이 할밖에 들어 있지 않다고?”

“그래.”

“이 정도 양에 이 할이라면…그냥 혈삼을 조금 담갔다 뺀 수준이 아닌가.”

“맞아. 그래서 애시당초 소용없는 수준이라고.”

실망을 금치 못한 천마는 김찬원을 향해 도끼눈을 떴다.

“이런 걸 본좌더러 먹으라고 줬단 말이냐.”

“아, 아까부터 내가 계속 말했잖여. 이건 어디까지나 건강기능식품이라고.”

“건강? 이 정도라면 수백 포를 마셔도 건강에 눈곱만치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 거다.”

“맞아. 그래서 이거 오래오래 장복하는 거여. 원래 건강기능식품이라는 것이 장복을…….”

김찬원은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 동안 홍삼진액에 대해 설명을 했다.

책상에 앉아 있던 장채원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저래도 자신을 제외하면, 아직 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천마를 다룰 수 있는 건 김찬원뿐이다.

‘저 두 사람이라면 해도 괜찮을라나?’

다시 수첩을 바라보던 그녀가 턱을 괴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인족과 상급요괴. 저 두 사람이라면 이쪽의 일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한숨을 쉰 장채원은 다시 이마를 긁적거렸다.

“장 사장.”

그때, 깊은 생각에 빠진 그녀를 발견한 김찬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겨?”

“네? 아, 네에…….”

수첩을 바라보던 그녀가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었다.

“좀 애매한 의뢰가 들어와서요.”

“애매한 의뢰?”

“신뢰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족의 의뢰라고 하기도 좀 그래서요. 하게 되면 이틀 뒤에 한다고는 했는데, 아직 확답은 안 줬어요.”

그러자 김찬원이 묘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설마 요계(妖界)의 일인 거여?”

“네에.”

묵묵히 듣고 있던 천마가 불쑥 나섰다.

“요계라면, 요괴들이 사는 그 이상한 공간을 이야기하는 거냐.”

“으응.”

순간 천마는 인상을 썼다.

플리마켓과 다양한 요괴들이 축제를 벌이는 곳에 갔었던 천마는 요계가 모두 신비하고 아름다운 공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얼마 전 결계의 균열을 이용해 아이들을 납치했던 요괴들을 본 후, 천마는 요계에 대한 생각이 아예 달라졌다.

“의뢰가 들어온 걸 보면 좋은 일은 아니겠군.”

천마의 말에 장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을 내밀었다.

그곳엔 ‘지란수(地亂獸) 퇴치 의뢰와 벽 복구’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지란수? 그게 뭐냐.”

“일전에 봤던 맥 요괴와 같은 거야. 요괴들의 사념(邪念)과 요력이 결합한 짐승이라고나 할까.”

“퇴치 의뢰라…….”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김찬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매장에서 할 일은 아닌 것 같은디. 복복 인테리어가 무슨 청부업체도 아니고 말여.”

“맞아요. 저도 동감해요.”

턱을 괴고 있던 장채원이 입맛을 다셨다.

“근데 또 우리 일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해요.”

“응? 왜애?”

“인테리어 현장에만 나타나니까요. 무명!”

장채원이 소리치자 창고 방에 있던 무명이 굴러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장채원 님.]

“아까 내 휴대폰으로 들어온 자료를 홀로그램으로 띄워줄래?”

[알겠습니다.]

위잉 소리와 함께 무명은 허공에 입체화면을 만들어냈다.

그곳에는 단독주택 공사 현장에서 철거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들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었다.

웨에에에엥! 지이이이잉!

초음파 절단기(ultrasonic cutter)를 사용해 벽 일부를 잘라내거나, 가벽을 철거하던 인부들은 일을 끝마치고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잘라낸 벽 사이로 투명한 빛과 함께 알 수 없는 공간이 슬쩍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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