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20화 (220/285)

제220화. 천마에게 도전한 공도 레이서

화창한 햇살이 비추는 아침.

키리리릭.

“골치 아프군.”

천마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 라마스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주차장에 세워진 라마스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지만, 여러 번 시도해도 걸리지 않았다.

“흠…….”

천마의 과격한 주행 때문인지, 아직 교체하지 못한 부품 때문인지, 라마스는 트러블이 잦았다.

그때 조수석에 올라타 있던 무명이 말했다.

[시동 모터가 돌지 않는 걸 봐선, 배터리 문제 같습니다.]

물론 무명은 차량 정비에 관한 지식은 없었다.

하지만 천마가 원한다면 차량의 고장을 진단하거나, 정비 지식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제가 한번 진단해 봐도 될까요?]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명은 핸들 아래쪽에 있는, 차량 상태를 전달해 주는 OBD 커넥터에 팔을 뻗었다.

[알터네이터 고장이라고 뜨는군요.]

고장 코드를 빠르게 진단한 무명의 말에 천마가 물었다.

“그게 뭐냐.”

[쉽게 말해 차량에 장착되어 있는 소형 발전기입니다. 엔진이 구동되는 순간, 차량에 전기를 공급하는 장치입니다.]

무명의 대답에 천마는 입맛을 다셨다.

결국 또다시 폐차장 근처에 있는 정비소 박 씨에게 다녀올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온라인으로 정비 기록을 살펴보니, 어쩌면 부품 고장이 아니라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간단한 문제?”

[그렇습니다.]

무명은 계기판 옆에 설치된 시계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천마 님께서 찾아가시는 폐차장 정비소는 여기서 거리가 너무 멉니다. 차라리 이 근방의 정비소를 방문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천마의 마음을 헤아린 무명이 허공에 지도를 띄웠다.

[근방 4킬로 지점에 차량을 정비할 수 있는 정비소가 검색됩니다. 최근에 오픈한 신규 정비소군요.]

“알겠다. 경로를 안내하라.”

입맛을 다신 천마가 한 팔로 라마스의 하부에 손을 집어넣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시동이 안 걸리니 어쩔 수 있나. 본좌가 직접 가져갈 수밖에.”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 배터리로 일시적으로 전력을 공급해, 차량의 시동을 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라마스 앞에 쭈그렸던 천마가 다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점주에게도 상황을 이야기를 해놔라. 출근이 늦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 * *

실드경계지역 근처, 차량 정비소.

보닛을 열고 라마스의 엔진룸을 바라보던 정비사가 탄성을 질렀다.

“와우.”

요즘 흔히 타고 다니는 전기차나 수소차와는 완전 다르다.

지저분한 기름때가 확 풍기는 내연기관, 그리고 안에 들어가 있는 엔진과 부품도 전부 고성능 제품들이다.

“일반 차량이 아니네요? 이 승합차.”

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젊은 정비사가 입을 벌리자 천마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알아보는군.”

라마스는 단종된 지 수십 년이 지난 데다,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휘발유 차량이다.

때문에 현재 라마스에 장착된 부품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정비사들은 60대가 넘는 노인 정비사들뿐이었던 것이다.

“하하하. 저도 올드카 매니아라서요.”

차량 구석구석을 살피던 정비사는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눈이 반짝였다.

“오오오, 배달용 승합차에 이 정도까지 튜닝을 올리다니.”

천마의 라마스는 오직 최고속을 목표로 개조되어 있었다.

엔진뿐만 아니라 하체, 섀시… 외관을 제외한 모든 부품들이 말 그대로 극한의 하드코어 튜닝이 되어 있었다.

“정말 끝내주네요. 지금은 돈 주고도 이렇게 못 만들 텐데.”

“본좌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지.”

“각성자신가요? 정말 돈 많이 버시나 봐요.”

홀린 듯 차량을 바라보는 젊은 정비사가 문득 천마를 또렷이 응시했다.

‘호오.’

천마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 세계에 온 뒤로 자신의 눈동자를 이처럼 빤히, 또렷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작은 정비소의 정비공이 자신을 빤히 응시할 줄이야.

“어디가 문제인가.”

“아, 네.”

그제서야 천마에게서 시선을 뗀 정비사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알터네이터 문제네요. 전기를 공급해 주는 장치에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젊은 정비사의 진단은 무명의 진단과 동일했다.

“비용은?”

“음, 이걸 수리하려면…….”

잠시 고민하던 정비사는 갑자기 라마스의 아래쪽을 보더니 눈을 번쩍였다.

몸을 웅크려 라마스의 타이어를 바라보던 정비사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정확한 금액은 사장님께서 말씀해 주실 테지만… 아마 10만 원 정도일 거예요.”

“10만 원?”

“네.”

다시 엔진룸과 하체를 살피던 젊은 정비사가 씩 웃으며 말했다.

“단순한 알터네이터 단선이니까요.”

줄곧 살짝 찌푸려져 있던 천마의 미간이 순식간에 활짝 펴졌다.

지금까지 라마스의 정비비는 눈이 크게 떠질 만큼 많이 들었다. 아무리 단순한 수리도 30만 원 이하로 내본 적이 없었다.

“상당히 저렴하군.”

“아, 부품을 교체하는 게 아니라 끊어진 선만 연결하면 되거든요.”

정비사는 천마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아마 다른 곳에선 부품을 통째로 교체하라고 바가지를 씌웠을 테지만요. 사실 어지간해선 알터네이터는 고장이 나지 않죠.”

“그런가.”

“금방 고쳐드리겠습니다. 사무실 안쪽에서 기다려 주세요.”

수리는 20분 남짓 걸렸다.

비용을 지불한 천마가 라마스에 올라타자, 젊은 정비사가 다가왔다.

“저, 평소에 어디서 주로 달리세요?”

“무슨 말이냐.”

“꽤나 스피드를 즐기시는 것 같아서요.”

정비사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직이 속삭였다.

“오늘 시간 되시면 저녁 9시쯤에 돌개산 정상에 한번 놀러 오세요.”

“돌개산?”

“네, 오늘 저희 동호회 사람들이 모이거든요. 시간 되면 같이 경주해요.”

“경주?”

젊은 정비사가 라마스의 엔진룸을 쓱 보며 나직이 속삭였다.

“네에, 아저씨처럼 저도 스피드에 진심이거든요.”

동호회라.

어감을 보니, 마도의 흑검방(黑劍幇)이나 정파의 정검회(正劍會)처럼, 비슷한 병기를 쓰는 고수들이 만든 친목 모임을 뜻하는 말 같았다.

“흠.”

천마가 눈을 껌뻑거리자 정비사는 씩 웃었다.

“오실 거죠? 아님 피하실 건가요?”

순간 천마의 눈빛이 달라졌다.

도발.

청년이 머금은 그 미소는 도발이었다. 무림에선 수십 년간 느껴보지 못했던 이 이질적이면서도 독특한 감각.

그 도발을 다른 세계에서 만난 정비공이 자신에게 보낼 줄이야.

-크하하하하!

천마는 광소를 터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행여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천마굉천소가 터져 나와 이 정비사가 겁을 먹을까 봐 간신히 웃음을 삼켰다.

“그때 보지.”

천마가 붉은 눈을 번뜩이자 정비사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그때 뵙죠.”

* * *

땅거미가 질 무렵, 복복 인테리어 주차장.

모든 일과를 마친 천마는 다시 라마스의 키박스에 열쇠를 넣었다.

철컥. 부르르릉.

열쇠를 돌리자 시원한 배기음과 함께 시동이 한 번에 걸렸다.

“잘 수리되었군.”

노란 머리 정비사를 떠올리자, 문득 그 도발적인 눈매가 떠올랐다.

-아저씨처럼 저도 스피드에 진심이거든요.

“흐흐흐.”

천마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도전인가? 얼마 만에 느껴보는 애송이의 도발이던가!

“하하하하하!”

이 간지럽고도 가소로운 감각을 느끼자 천마는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정말 가실 생각이십니까?]

차 안에서 광소를 터뜨리는 천마를 보며 무명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굳이 가실 필요가 있으실까 싶습니다.]

“무슨 말이냐.”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한번 신원을 확인해 봤습니다만 그 정비사, 평범한 정비사가 아니더군요.]

무명은 자동차 스크린에 홀로그램 화면을 띄웠다.

그곳엔 아침에 보았던 노란 머리 정비사의 얼굴이 띄워져 있었다.

[이름 신채일. 나이는 26세. 스킬을 이용한 범죄 전력으로 인해 현재는 등록이 취소된 각성자입니다.]

“범죄 전력?”

화면에 떠 있던 각성자 카드를 가리키던 무명이 다시 화면을 전환시켰다.

[그렇습니다. 이 신채일이라는 청년은 스트레스 레이싱, 즉 공도에서 자신의 스킬을 이용해 무모한 경주를 즐겼습니다.]

화면에는 CCTV 화면에 불꽃을 터뜨리며 공도로 달리는 차량의 모습이 띄워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절도, 사기, 방화 등등 차량으로 할 수 있는 범죄를 모두 저질렀습니다. 1년 전 출소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아직도 공도에서 레이싱을 즐기나 보군요.]

이어지는 무명의 설명에도 천마의 표정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그리운 듯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그냥 흔하디 흔한 마도의 망나니로군.”

마도의 고수 중에는 약탈, 방화 등은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대도(大盜)들이 수두룩하다.

천마의 시선에선 신채일이 저지른 범죄는 그저 잡범 수준에 불과했다.

[천마 님을 돌개산으로 불러낸 걸 보니, 그곳에서도 질 나쁜 모임이 열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분명 폭주족처럼 산속의 고갯길을 돌며 내기 경주를 하겠죠.]

“폭주족?”

순간 천마의 눈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하지만 미처 그걸 감지하지 못한 무명이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어떻게 하면 더 공도를 빠르게 달릴까? 라는 것만 연구하는 정신 나간 인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건전하군.”

[건전하다고요?]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구한 날 머리를 맞대고 살초를 연구하는 흑검방이나, 어떻게 하면 적을 죽이지 않고 반신불수로 만들 수 있는지 연구하는 정검회보담 건전하지 않나.”

[그런 모임도 있단 말입니까?]

“눈만 뜨면 주먹과 칼부림 하는 것이 무림인의 일상이다.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할 연구일 테고.”

무명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천마가 살고 있는 세계가 그런 아비규환의 형태일 줄이야?

목이 메인 무명은 천마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천마 님…. 그래서 늘 삭막한 소리만 해대셨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마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흑검방은 단초에 승패를 좌우하는 일섬형(一閃形)의 기법을, 정검회는 불살(不殺)의 초식을 연구하는 곳이었을 뿐.

실제로 삭막한 것은 하루하루가 투쟁이며 모든 것을 죽고 사는 문제로 생각하는, 천마의 머리통이었다.

[천마 님. 일전에 김찬원 님과 함께 산길을 달리다가 경찰에 잡혀갈 뻔한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그제서야 천마의 눈동자에 떠오른 호기심과 투쟁심을 발견한 무명이 다급하게 말했다.

[만약 이런 모임에 갔다간 또다시 경찰들에게 잡힐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간 장채원 님께…….]

“그런 이야기는 나중이다.”

천마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무명의 말을 잘랐다.

“우선 가보도록 하지.”

돌개산 정상.

그곳은 수십 대의 차량들이 어지럽게 세워져 있었다.

각양각색으로 물들어 있는 차들을 자세히 보면, 최근에 생산되는 차량들이 아닌, 대부분 올드카였다.

대시보드에 매달려 창밖을 바라보던 무명이 눈 센서를 크게 확장시켰다.

[올드카 동호회인가 보군요. 주차된 차량들이 모두 단종된 희귀 올드카입니다.]

정상에 세워진 차량들은 전기나 수소차가 아닌 내연기관을 갖고 있는 올드카였다.

“상당한 안목을 지닌 자들이군.”

[네?]

“본좌와 마찬가지로 수십 년간 무인의 손에 길들여진 상고병기를 선택한 자들이 아니냐.”

흡족한 미소를 지은 천마는 주차된 차량들 한가운데로 라마스를 세웠다.

“배기음을 보니 속도를 즐기나 보군. 분명 상당한 실력과 안목을 지닌 자들이겠지”

철컥.

문을 열고 나서자 차량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천마에게 쏠렸다.

-저거 봐. 각성자인가 봐?

-라마스? 저런 배달용 차도 올드카에 들어가는 거야?

-그냥 돈은 없고 관심을 받고 싶었나 보네. 저런 차량도 올드카라고 끌고 다니는 걸 보니.

주변에서 쑥덕이는 이야기를 모조리 들은 천마가 경멸스런 눈빛을 지었다.

‘그런 거였나.’

이들이 올드카를 끌고 다니는 건 그저 과시욕이었다.

흔히 보이는 차량들이 아니기 때문에. 비싼 비용과 돈을 들여야만 탈 수 있는 차량이기 때문에.

결국 천마처럼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손에 길들여진, 예리하게 갈고 닦인 걸 찾으려는 인물은 하나도 없던 것이다.

-야, 안쪽에 공구 같은 것도 실려 있는 거 같은데?

선팅을 안 해 놓은 탓에 라마스 안쪽에 실려 있는 공구를 발견한 사람들이 또다시 쑥덕였다.

-크크크. 각성자가 아니라 정말 배달 차량을 모는 거야?

-혹시 알아? 돈 많은 각성자가 시선 끌려고 일부러 공구를 넣은 건지도…….

허영, 또 허영. 이곳에 모든 이들은 허영에 찌든 채 모든 걸 돈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흥.”

천마는 실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속도에 미친 마종(魔種)들이 드글거릴 줄 알았건만, 벼락부자가 된 졸부들이 모여 있는 꼴이라니.

“시간 낭비했군.”

코웃음을 친 천마가 다시 라마스로 돌아갈 무렵,

카라라라랑!

요란한 배기음이 들려오더니 산 정상으로 둥그런 차량 한 대가 천천히 정상으로 올라왔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의 입에선 와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흠.”

천마가 고개를 돌려보니 요란한 배기음과 함께 둥그런 우주선 같은 소형차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80년 전에 단종되었던 경차 ‘팡팡’이었다.

카랑!

둥그런 소형차에서 나올 수 없는 강렬한 배기음을 낸 팡팡은 천마의 라마스 곁에 멈춰 섰다.

철컥.

운전석 문이 열리고 노란 머리를 한 남성이 천마의 곁으로 다가왔다.

“먼저 오셨군요.”

팡팡에서 내린 남성은 다름 아닌 아침에 보았던 젊은 정비사, 신채일이었다.

“반드시 오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정비복이 아닌 편한 옷을 입은 신채일의 모습은 정비소에서와 달리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노란 머리를 바짝 세운 채 다가오는 모습은 마치 한 마리 고독한 늑대 같았다.

“이것들은 다 뭐냐.”

주위를 둘러본 천마의 경멸스런 표정을 보자 신채일은 오히려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그렇죠?”

엉뚱한 말을 내뱉는 신채일을 빤히 바라보는 천마.

그의 눈동자에 담겨 있는 눈빛 역시 자신과 같은 색채라는 걸 발견했다.

순간, 천마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였나.”

“그렇습니다.”

주위를 둘러본 신채일은 구역질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본래 저희 노스텔지어 동호회는 내연기관 자동차 모임이었습니다.”

“내연기관?”

“그렇습니다. 요즘 차량에선 느낄 수 없는 강렬한 엔진의 진동. 편의장치와 안전장치가 빈약한 탓에 거칠고 터프한 주행이 가능한 차니까요.”

그는 경멸 섞인 눈으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돈지랄을 하는 인간들의 모임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도 거친 주행 따윈 하지 않죠.”

“그래서 본좌를 부른 건가.”

천마의 말에 줄곧 인상을 일그러뜨렸던 신채일이 활짝 미소 지었다.

“그렇습니다.”

“엔진 때문이겠군.”

무시무시한 고출력을 뿜어내고, 고회전 영역을 가능케 하는 라마스의 엔진.

정비사인 신채일은 그것을 보고 천마가 엄청난 스피드광이라는 걸 발견한 듯 보였다.

“물론 엔진도 엔진이지만, 제가 놀란 건 타이어였습니다.”

“타이어?”

고개를 끄덕인 신채일은 놀랍다는 듯 라마스의 타이어를 가리켰다.

“타이어를 보니 가장자리 끝까지 사용하더군요. 일류 드라이버들의 차량에서나 볼 수 있는 흔적이 말입니다.”

일류 레이서는 일반이 사용할 수 없는 부분까지 타이어를 모두 사용한다.

신채일은 라마스의 타이어를 보고 천마의 운전실력이 초일류라는 걸 간파한 것이다.

“분명 운전 실력은 저와 버금갈 테죠.”

“건방지군.”

팔짱을 낀 천마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좌를 능가할 자는 없다.”

“뭐, 좋습니다. 그럼 한번 시작해 볼까요?”

눈을 번뜩인 신채일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저들에게 보여주죠. 진정한 공도 레이싱이 무엇인지.”

“거절한다.”

“뭐, 뭐라고요?”

천마는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네놈 같은 애송이가 본좌와 경주를 하겠다고? 백 년은 이르다.”

“그럼 굳이 여길 왜 온 겁니까?”

신채일이 짜증스럽게 외치자 천마가 미소를 머금었다.

“궁금해서 와본 것뿐이다. 네놈이 뭐라 지껄이는지.”

‘아아. 천마 님.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셨군요.’

차 안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무명이 감동적인 표정을 지었다.

천마는 자신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경주를 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망가는 겁니까?”

신채일의 도발 섞인 발언에 천마가 피식 웃었다.

“공도 레이싱이니 올드카니 하는 것 따윈 모른다. 본좌가 아는 건 승부엔 내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지.”

“내기?”

“승부에 뭘 걸겠나.”

천마를 노려보던 신채일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든 걸죠.”

“무엇이든?”

“네, 원한다면 제 차라도.”

그의 팡팡은 튜닝비만 억대가 들어갔다.

국내에 한 대밖에 없는 희귀차량이라 매물로 내놓는다면 부자들이 군침을 삼키고 덤벼든다.

하지만 천마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그럼 본좌에게 지면 다신 공도에서 경주 따윈 하지 마라.”

“네?”

“시답잖은 꼴로 오만을 떠는 걸 다신 보고 싶지 않단 말이다.”

천마의 도발에 넘어간 신채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쪽은?

“본좌는 거기에 판돈을 더 얹어주지. 본좌가 지면 평생 운전을 하지 않겠다. 그리고 이 라마스도 가져가라.”

올인. 천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밀어 넣은 셈이다.

“좋습니다.”

신채일이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노스텔지어 동호회에서 모처럼 내기 공도 레이싱이 열렸다.

올드카 레이싱답게 승부는 다운 힐. 즉, 내리막 코스 승부.

동시에 출발한 차가 산 아랫길의 결승점에 먼저 통과하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승부다

부르르르릉.

카라라라랑.

나란히 차를 세운 라마스와 팡팡의 배기음이 돌개산의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라마스와 팡팡의 앞에는 한 여성이 양손을 들고 있었다.

돌연 창문을 내린 천마가 씩 웃으며 말했다.

“먼저 가라. 본좌가 선행하면 뒤꽁무니도 보지 못할 테니까.”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 천마의 말에 신채일이 피식 웃었다.

“스타트가 느리신가 봐요? 제가 맞춰드리죠.”

승부가 시작되자 신채일도 냉정을 찾은 듯했다. 그 순간,

팟.

여성의 양팔이 땅을 향했다.

끼이이이이익!

타이어가 도로에 마찰되며, 요란한 휠스핀과 함께 두 차량이 쏘아지듯 앞으로 나갔다.

카라라라랑!

놀랍게도 신채일은 천마보다 한 뼘 정도 앞서 출발했다.

실력은 호각이었으나, 문제는 차량.

팡팡은 천마의 라마스보다 훨씬 더 마력이 높고 경량화가 되어 잘 되어 있었다.

끼이이익.

마치 빙판길에 미끄러지는 얼음처럼, 팡팡은 자유자재로 고갯길을 틀고 있었다.

[큰소리칠 만한 실력이군요.]

천마의 유리창에 상대방의 차량 정보와 거리 등의 정보를 띄워준 무명이 나직이 말했다.

[차량 성능은 상대방이 윗길에 있으니, 코너 공략에서 승부를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한 말은 하지 마라.”

기어를 능숙하게 바꾼 천마는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았다.

끼이이이익.

알피엠이 고정된 상태로 차량이 미끄러지며 라마스는 완벽한 드리프트로 코너를 빠져나왔다.

투웅.

뒤쪽에 따라붙은 라마스가 뒷범퍼를 밀어대자 신채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칫.”

그리고 다시 기어와 액셀, 사이드 브레이크를 능숙하게 조작해 능숙하게 코너를 빠져나갔다.

끼이이익.

하지만 천마는 유령처럼 바짝 따라붙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나보다 실력이 높다고?”

차량 성능이 우위에 있으면서 코너 길에서 따라잡힌다.

그 말은 주행 실력은 천마가 윗길에 있다는 뜻이다.

“언제 저런 괴물 같은 자가 등장한 거야?”

신채일은 공도 레이싱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거의 다 안면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천마와 같은 실력자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만약 천마가 운전을 배운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신출내기라는 걸 알았다면, 그는 놀라서 코너를 들이받았을 것이다.

“나도 열아홉 살 때부터 이 짓을 했다고!”

또다시 날카로운 코너가 나오자 액셀을 밟은 신채일이 드리프트를 시도했다.

끼이이익. 끼이이익.

2연속으로 코너 길이 나오자 차이는 더욱 1센티도 되지 않을 만큼 따라잡혔다.

“웃기지 마!”

카라라랑!

액셀을 밟자 팡팡의 엔진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팡팡에 설치된 엔진 역시 레이싱용이다. 알피엠이 2만대로 치솟자 차량은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여기서 승부를 걸겠어!”

눈앞의 예리한 코너를 빠져나오면, 직선 코스와 함께 결승점이다.

마침내 승부처가 보이자 신태일은 액셀을 밟은 채 차 문을 재빨리 열었다.

[코너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는군요. 저러다간 사고가 날 것 같습니다.]

라마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무명이 눈 센서를 크게 키울 무렵,

콰직.

문을 열고 바닥에 주먹을 박아넣은 신태일이 마치 컴퍼스처럼 코너로 빨려 들어가듯 탈출했다.

“이건 몰랐겠지!”

통쾌한 외침과 함께 룸미러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푸욱.

어느새 천마도 땅에 손을 박은 채 코너를 돌고 있지 않은가?

“뭐야? 각성자 드라이빙 스킬까지 마스터했잖아?”

신태일은 천마의 근육을 보고 각성자라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협회의 엘리트 각성자들이나 배운다는 각성자 운전법까지 응용을 할 줄이야.

“하지만 이걸로 끝이야!”

직선 코스가 나오자 신채일은 팡팡의 기어 옆에 있는 빨간색 부스터 버튼을 올렸다.

콰우우우우웅!

순간 팡팡의 배기구에서 불꽃이 튀어나오더니,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부스터입니다, 천마 님!]

무명 안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부스터 장착을 하지 않은 게 통탄의 실수네요. 이 승부는 진 겁니다.]

“천만에, 부스터는 있다.”

[네?]

무명이 눈 센서를 깜빡였다.

언제 천마 님이 저 몰래 라마스에 부스터를 달아두었나?

그럴 리가 없다. 오늘 아침에도 엔진룸을 확인해 보지 않았는가?

“권마칠식…….”

창문을 연 천마는 후흡 소리와 함께 한 팔을 창밖으로 내밀었다.

“천수공파!”

천마가 차 뒤로 뻗어낸 일장이 시뻘건 광채를 뿜어내었다.

동시에 라마스는 번갯불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화아아아아악!

아예 타이어가 허공에 뜬 채 로켓처럼 쏘아져 나간 라마스는 신태일의 팡팡을 추월하고 먼저 결승점 구간을 빠져나왔다.

쿠르르르르륵.

허공에 뜬 채 날아가는 라마스를 세울 수 없자, 천마는 땅에 손을 박아넣은 채 간신히 차량을 멈춰 세웠다.

끼익.

그 뒤로 노란색으로 물들여진 팡팡이 힘없이 멈춰 섰다.

철컥 소리와 함께 운전석 문이 열리고 신태일이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졌습니다.”

차에서 내린 천마에게 다가온 신채일은 괴로움을 삼킨 채 속 시원히 인정했다.

실력, 배짱, 그리고 비장의 꼼수까지…. 그 무엇 하나도 천마를 따르지 못했다.

“다시는…….”

천마를 바라보던 신채일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경주 따윈 하지 않겠습니다.”

“경주라고 말하지 않았다.”

“네?”

눈을 껌뻑이는 신채일을 뒤로 한 채 천마는 다시 라마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본좌가 말한 건 공도 경주다.”

“공도… 경주요?”

-본좌에게 지면 다신 공도에서 경주 따윈 하지 마라.

천마의 말을 떠올린 신채일이 입을 벌리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주로 먹고사는 직업이 되는 것까진 말리지 않겠다는 거다.”

공도 레이싱은 취미의 영역. 내기가 없다면 돈은 벌지 못한다.

하지만 레이서가 된다면 그것은 직업이며, 합법적인 경주를 할 수도 있다.

“저 보고 레이서가 되라는 말씀이신가요?”

“본좌가 알 게 뭐냐.”

다시 라마스에 시동을 건 천마가 코웃음을 치더니, 부우우웅 떠나갔다.

텅 빈 시선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채일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레이서…가 된다고.”

사실 레이서가 되는 건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꿈이었다.

하지만 레이서가 되는 건 기나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신채일은 당장 공도에서 얻을 수 있는 레이싱의 쾌락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나이는 스물여섯. 이 나이에 레이서가 될 수 있는가? 나는 그만한 재능이 있는 걸까?

신채일은 고개를 저었다.

“한번 해볼까… 죽을힘을 다해서.”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로, F1 레이서가 된 각성자 신채일의 회고였다.

[천마 님. 멋졌습니다. 특히 장풍으로 부스터를 쓰는 건 생각도 못 했습니다.]

돌개산을 벗어나는 라마스의 차 안. 대시보드에 올라온 무명이 신이 나서 말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셨습니까?]

“일전에 김 씨의 가젤도 직선에서 다른 차에게 따라잡히지 않았나. 항상 직선 코스에선 어떻게 빨리 갈 수 있을지 연구해 본 것뿐이다.”

천마는 기술적으론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실력을 가졌음에도, 항상 연구하고 또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력과 집념이 고금제일에 이르는 비결 중 하나였다.

[정말 공도에선… 천마 님을 따라갈 수 있는 자는 없군요.]

무명의 찬탄에 천마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공도가 아니라 어디에서든 고금제일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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