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14화 (214/285)

제214화. 천마와 인어아가씨 (3)

“왔군. 이곳에 앉아라.”

천마는 꾸질꾸질한 노숙자에서 아름다운 미녀로 탈바꿈한 인어를 마치 동네 꼬맹이 대하듯 손짓했다.

“안녕하세요?”

인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꿈결처럼 젖어 있던 장채원의 눈망울이 현실로 돌아왔다.

하프처럼 투명하고 맑은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았건만.

밤새 폭음과 줄담배를 즐기다 일어난 마귀할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네, 네에.”

장채원이 엉겁결에 고개를 숙이자 천마가 인어에게 말했다.

“그걸 가져왔나?”

“아, 네.”

인어는 핸드백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목함을 열자 붉은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보석 같은 것이 소중하게 담겨져 있었다.

“이게 뭐야?”

장채원의 질문에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이번 일의 보수다. 본좌가 미리 가져오라고 시켰지.”

“아까 내가 말했잖아. 안 된다고.”

천마를 찌릿 노려본 장채원이 인어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저희 직원이 착각을 한 것 같아요.”

“네?”

“인테리어 자재 중에서는… 불꽃을 견딜 만한 것들이 없거든요. 그렇다고 딱히 대체할 만한 것들도 없고요.”

“그런가요.”

인어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자 천마가 불쑥 나서서 말했다.

“점주. 신뢰로 처리하면 되잖나.”

“장난해? 신뢰는 어디까지나 신님들이 주시는 의뢰라고.”

“만약 의뢰자가 대금을 돈이 아닌, 은총에 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걸 대가로 준다면?”

묘한 미소를 머금은 천마가 말했다.

“그렇다면 점주는 그 의뢰를 일반 의뢰로 받아들이나? 아님 신뢰로 받아들이나?”

알쏭달쏭한 천마의 말을 들은 장채원은 문득 인어가 가져온 목함의 보석을 바라보았다.

“미안하지만 저 보석이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해도…….”

“저건 보석이 아니다, 점주.”

“뭐?”

천마는 목함 속에 놓여 있는 붉은 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주안석(朱顔石)이다.”

“주안석?”

“그렇다. 주안과(朱顔果)와 마찬가지의 효능을 갖고 있지.”

주안과. 한 알만 먹어도 영원히 늙지 않는 외모를 유지시켜 준다는 전설의 영과다.

하지만 장채원은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천마. 너는 내가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내 나이가 몇인 줄 알아?”

“물론 점주는 젊은 용모를 유지하지. 하지만 이 주안석은 다르다.”

천마는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목함을 조심스럽게 들어 장채원의 눈앞에 갖다 대었다.

“이걸 먹으면 갓 태어난 아이처럼 부드럽고 뽀송뽀송한 피부로 바뀌지. 아, 눈꽃보다도 더 피부가 하얗게 바뀌는 효능도 있다.”

“아이처럼 부드럽고 뽀송뽀송한 피부?”

“그렇다. 젊은 용모를 유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십 대의 홍안(紅顔:젊은 얼굴)으로 돌아간다는 거지.”

목함에서는 오묘하고도 상큼한 향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 향기를 맡은 장채원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장채원이 이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천마는 인어에게 심해 속에서 인어들만 얻을 수 있는 주안석을 대금으로 가져오라고 했다.

주안석. 여성들이라면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엄청난 미끼를 말이다.

“천마, 네가… 이런 보석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아는 거야?”

정신을 차린 장채원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천마가 피식 웃었다.

“아까 말하지 않았나. 본좌는 환마영결진에 갇혀 있는 사흘 동안 인어에 대한 정보를 모두 취득했다.”

“좋아. 이 주안석이 의뢰비라고 치면 너는? 날 위해서 이 의뢰를 맡겠다고 우기는 건 아닐 거 아냐?”

그녀는 천마가 자신을 위해 의뢰를 빠득빠득 맡을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후후후. 당연히 본좌가 받을 대금은 따로 있다.”

천마가 눈짓을 하자 인어가 다시 핸드백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그곳엔 오묘한 파란빛으로 물들어 있는 비늘조각 2개가 들어 있었다.

“비늘?”

“그렇다. 백 년에 하나씩 떨어지는 비늘이지. 이 비늘 한 조각에 5년 정도 수위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럼 그렇지.”

그제서야 장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한 신뢰를 완수해 얻을 수 있는 은총은 동색으로 5개 정도.

이 인어의 비늘이 자그마치 10개의 동은총과 맞먹으니, 천마가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어떤가, 점주. 이만하면 결코 나쁜 조건이 아니다.”

“하지만…….”

“점주가 젊어진다면 매장 운용에 도움이 되겠지.”

“뭐?”

주안석을 가리킨 천마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상계신 양반도 점주가 매장을 잘 운영하라고 줬다고 하지 않았나. 점주가 젊어진다면 매장 운영에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이다.”

천마의 혼이 담긴 궤변에 장채원의 눈동자가 또다시 흐려졌다.

“그, 그래. 내가 건강해지면 매장에 도움이 되긴 하겠지.”

‘흐흐.’

그 모습을 바라보는 천마는 음흉한 미소를 삼켰다.

주안석. 이 보물은 장채원, 아니, 여성이라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의 팻감이었다.

“아냐. 그래도 이건 신뢰가 아니잖아.”

정신을 차리고 도리질하던 장채원은 또다시 목함에 있는 주안석에 시선이 이르렀다.

붉게 물든 색이 요사스러울 만큼 아름답게 반짝인다. 저 붉은 돌을 입 안에 넣는다면 단숨에 미의 여신이 될 것만 같다.

“그 의뢰는…….”

천마의 뜨거운 시선을 피한 장채원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우리가 맡아서 하는 걸로 해.”

* * *

무명이 천마를 이끈 곳은 세이프던전 동쪽 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D급 던전, 공동묘지였다.

이름 그대로 겉모습이 커다란 무덤을 연상케 하는 이 던전에선 다 말라버린 언데드만 출몰한다고 한다.

유물은 나오지도 않는 데다 언데드로만 채워진 탓에 각성자들에게 한결같이 외면받는 던전 중에 하나였다.

“여기서 바닥재를 구할 수 있는 건가.”

던전 입구를 올려다보던 천마가 묻자 무명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꿈결조각을 만들기 위해선 이 던전에서 히든몬스터를 불러내야 합니다.]

“꿈결조각? 그게 뭐냐.”

[꿈결조각. 샌드 라이온의 유물인 금모래로 틀을 만들고, 스타 엘리먼트에서 나오는 별가루를 뿌리면 생성되는 물질입니다.]

헤파이토스가 남긴 지식을 이용한 무명은, 인어의 저주를 훌륭히 막아줄 물질을 이미 검색해 둔 것 같았다.

[꿈결조각은 타일처럼 반듯하고 네모나게 만들 수 있는 데다, 촉감이 꽤나 부드럽습니다. 자체적으로 따스한 기운까지 머금고 있기 때문에 보행감이 매우 훌륭한 바닥재가 될 겁니다.]

“불에 얼마나 견딜 수 있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보행감이나 무늬가 아닌 불에 견딜 수 있는 내열성이었다.

천마의 물음에 무명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꿈결조각은 불속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물질입니다. 내열 온도를 측정하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불을 완전히 배제한다…라. 정말 대단하군.”

무명의 설명에 천마는 놀라움을 감술 수 없었다.

헤파이토스가 집어넣었다는 지식은, 말그대로 상상으로나 가능한 물질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상계신의 지식이라.”

문득 천마는 던전에 오기 전 장채원의 모습을 떠올렸다.

“감사합니다!”

계약서를 작성한 인어는 기분 좋은 얼굴로 돌아갔다.

계약 내용은 간단하다. 인어의 집에, 발바닥에서 쏟아지는 불꽃을 막아낼 수 있는 바닥재를 시공해 주는 조건이었다.

계약금은 인어의 비늘 2점, 잔금은 주안석.

장채원은 본래 계약금으로 주안석을 받으려 했지만, 천마가 ‘본격적인 대금은 공사가 끝난 다음에 받아라’라고 했다.

“그럼 다녀오지.”

천마는 가변던전 경계지역의 폐건물에 바로 도착할 수 있는 비밀통로 앞에 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채원은 다짐을 받듯 재차 말했다.

“신뢰도 아닌 일에 이 지식을 쓰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음은 절대 이런 거 없어.”

“알겠다.”

“좋아.”

한숨을 쉰 그녀는 무명을 두 손으로 안아 들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심호흡을 한 후 눈을 크게 떴다.

번쩍.

그 순간 그녀의 발아래에서 수백만 개의 푸른 광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지진에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파란빛에 둘러싸인 장채원의 용모가 어느새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성숙한 미녀로 바뀌어 있었다.

“…….”

장채원이 무언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자, 무명의 눈 센서에서도 파란빛이 넘실거렸다.

후욱.

장채원이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자, 위잉,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무명이 다시 말했다.

[장채원 님도 같이 던전으로 가시는 겁니까?]

“미쳤어? 둘이 알아서 해. 내가 해줄 건 다 해줬으니까.”

홱 고개를 돌린 장채원이 손을 휘휘 저으며 천마에게 말했다.

“어서 가.”

회상을 마친 천마는 천천히 던전의 입구 안으로 들어왔다.

음침한 공기가 흐르는 던전 내부는 황량한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다만 천장은 뻥 뚫려 있는 탓에 구름 한 점 없는 가을날의 햇살이 내부를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이 던전에서 불러야 할 히든몬스터는 샌드 라이온, 그리고 스타 엘리먼트입니다.]

“알겠다.”

[이 두 개의 히든몬스터는 출현 조건 또한 매우 까다롭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재밌겠군.”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명이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요.]

-허어어어.

그때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붕대를 칭칭 감은 언데드들이 괴음을 내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찢어진 붕대 사이로 심한 악취가 풍겨 나왔고, 곳곳에 드러난 살점은 썩어 있었다.

가느다란 팔로 둥그런 머리를 매만지던 무명이 말했다.

[몬스터를 감지하였습니다. 위험도 100의 하급 몬스터, 붕대시체입니다.]

“직관적인 이름이군.”

붕대를 감은 채 비틀비틀 걸어오는 시체들을 바라보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천마의 어깨 위에 올라 있던 무명이 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리며 말했다.

[이제 샌드 라이온의 출현 조건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저 밀려오는 붕대시체의 뺨에 뽀뽀를 빠짐없이 해주면 됩니다.]

순간, 천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했나.”

[저 언데드의 뺨에 뽀뽀를 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천마의 붉은 눈동자는 풍랑을 만난 바다처럼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저 썩어빠진 시체의 뺨에 입맞춤을 하라니. 그런 해괴망측한 소환법이 어디 있단 말이냐?

“본좌더러 저 마물에게 입맞춤을 하라고?”

[그렇습니다. 수백 년간 던전 속에서 잠들어 있던 붕대시체들이 원하는 건 관심과 사랑. 살아있는 인간의 숨결이라고 합니다.]

다시 한번 내부의 지식을 확인한 무명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 있는 인간의 숨결이 뺨에 닿으면 붕대시체들은 만족하고, 다시 무덤가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무덤가를 지키고 있던 샌드 라이온이 바로 등장을…….]

콰직.

천마는 근처에 놓여진 바위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시선을 회피한 무명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것이 지금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샌드 라이온의 출현 조건입니다.]

우르르릉.

무너지는 바위에서 주먹을 뽑아낸 천마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째서 샌드 라이온이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히든몬스터인가?

아무리 정신 나간 사람이라도 저 수백 년 묵은 시체에 뽀뽀를 해대진 않을 테니 나타나지 않은 것뿐이었다.

[포기하시겠습니까.]

순간 천마의 눈에선 혈염광휘가 치솟았다.

그따위 경멸스런 단어는 천마의 사전에 채택된 적이 없다.

“속행한다. 본좌를 따라와라.”

콰우우우우!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린 천마가 광풍을 일으키며, 신법을 전개하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 야월극속을 펼친 천마는 번갯불처럼 움직이며 밀려오는 몬스터, 붕대시체의 뺨에 일일이 입맞춤을 했다.

-어헝.

입맞춤을 할 때마다, 소가 우는 듯 낮고 거북한 앙탈 소리가 시체들의 입에서 울려 퍼졌다.

-콰우우우우우! 어허헝!

세찬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붕대시체들의 입에선 낮은 괴음이 울려 퍼졌다.

마침내 쏟아진 모든 붕대시체의 뺨에 뽀뽀를 한 천마가 커다란 바위에 기댄 채 몸을 웅크렸다.

“우욱.”

터져 나오는 구역질을 억누른 천마는 바위에 손을 뻗은 채 소리 없이 구토를 하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뒤따라 굴러온 무명이 묻자 천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몸을 벌떡 일으켰다.

“무슨 말이냐. 본좌는 이곳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천마 님의 생체 반응이…….]

-크르렁.

그때 어디선가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낮은 울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반짝이는 금빛 털을 가진 거대한 짐승 마리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싯누런 눈을 번들거리는 짐승의 발톱과 치아는 모두 시꺼멓게 물들어 있다.

히든몬스터 샌드 라이온이었다.

[히든몬스터, 샌드 라이온이 등장하였습니다. 위험도는 3만으로 추정되며…….]

“저 짐승이 본좌에게 이런 짓을 강요하도록 만든 미물이라는 거지.”

주절주절 설명하는 무명의 말을 자른 천마의 눈에서 혈염광휘가 치솟았다.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던 샌드 라이온은 활활 타오르는 듯한 천마의 눈동자를 보자 몸을 움찔했다.

-크르렁?

“보여주지…….”

뚜벅뚜벅.

샌드 라이온을 향해 똑바로 걸어가는 천마의 몸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지옥이 어떻게 생긴 곳인지!”

후두두둑.

털이 모조리 뽑힌 샌드 라이온의 몸은 금빛 모래가 되어 바닥에 흘러내렸다.

등에 메고 있던 포대에 금모래를 가득 담은 천마가 덤덤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 한 마리만 더 잡으면 되겠군.”

다시 포대 가방을 어깨에 멘 천마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머지 한 마리는 어디서 잡나.”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

잠시 뻥 뚫린 천장을 올려다본 무명이 말했다.

[스타 엘리먼트는 해가 진 밤이 아니면, 출현 조건을 완수한다고 해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흠.”

[어차피 스타 엘리먼트를 잡기 위해선 몇 가지 도구가 필요합니다. 잠깐 휴식도 취할 겸 휴게소로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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