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12화 (212/285)

제212화. 천마와 인어아가씨 (1)

“무슨 헛소리냐.”

손가락으로 무명의 머리통을 가볍게 툭 친 천마가 말했다.

“넌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어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노숙자를 바라보던 천마는 붕어빵을 다시 구매했다.

그리고 담벼락에 쓰러져 있는 노숙자에게 다가가 붕어빵이 가득 든 봉지를 내밀었다.

“먹어라.”

하지만 노숙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럼 놔두고 가겠다. 출출하면 먹어라.”

천마는 노숙자 발아래 붕어빵을 내려놓았다.

[천마 님 목소리에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복지 시설 쪽으로 연락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 마라.”

[네?]

무명의 말에 천마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으니까.”

묘한 말을 남긴 천마는 몸을 돌려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이대로 그냥 가는 겁니까?]

무명이 황당한 목소리를 내었다.

말은 엄청 도와줄 것 같더니, 고작 붕어빵 한 봉지만 두고 간단 말인가?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지금은…요?]

“그렇다. 다른 행동은 오히려 저자에게 방해만 될 거다.”

천마의 어깨에 올라탄 무명이 고개를 돌렸다. 담벼락에 앉아 있는 노숙자는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무명은 어쩔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 * *

며칠 후.

퇴근 후 옥탑방으로 돌아가던 천마는 주말에 가보았던 골목길로 들어가 보았다.

붕어빵 장수는 주말에만 장사하는지 보이지 않지만, 골목길에는 여전히 노숙자가 그 장소 그대로 앉아 있었다.

“저런.”

차량을 골목 한켠에 세운 천마는 쉬어버린 붕어빵 봉지를 집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괜한 짓을 한 것 같군.”

노숙자는 천마가 다가와도 여전히 반응이 없다. 마치 영혼이 빠져 나가버린 강시처럼 보였다.

석상처럼 앉아 있는 노숙자를 내려다보던 천마가 말했다.

“도(道)를 쌓으려고 곡기마저도 끊는 건가.”

[도라뇨?]

“넌 알 거 없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무명의 눈 센서에서 희미한 광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철커덕.

스캔을 해도 별다른 게 없자, 무명은 다시 여러 가지 센서를 꺼내 노숙자의 몸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위이잉. 지이이잉.

[어, 어라?]

한동안 노숙자를 샅샅이 분석하던 무명의 눈 센서가 확장되었다.

노숙자의 몸에선 아주 생소하고도 강력한 고에너지가 감지된 것이다.

[이건 그러니까… 신력과 비슷한…….]

헤파이토스가 창조해낸 이 놀라운 기계생명체는 몬스터의 움직임이나 약점을 분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력까지 감지할 수 있던 것이다.

[아니, 뭔가가 조금 다릅니다. 설마 이분이 대지유신일 리는 없을 텐데.]

“당연히 아니다.”

눈 센서를 깜빡이는 무명을 보며 천마가 고개를 저었다.

“설녀와 비슷한 설화 속 존재 정도쯤 되겠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명이 손발을 들자 천마가 피식 웃었다.

“고행을 통해 도를 이룩하려는 자란 말이다.”

[도력이요?]

무명의 눈 센서에선 물음표가 번뜩였다.

도(道)… 라는 건 사이비 종교에서나 자주 사용하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마가 있는 무림에서의 ‘도’는 신비하고 현묘한 경지를 뜻하는 말이자, 천지만물과 우주를 구성하는 궁극적인 진리 등을 뜻했다.

“모르면 됐다.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말이니.”

손을 내저은 천마가 노숙자를 바라보며 덤덤히 말했다.

“보아하니 한창 중이군. 뭐, 열심히 해봐라.”

돌아선 천마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찌 되었건 본좌는 음식을 제공하는 호의를 베풀었다. 나중에 좋은 결과가 생기면 본좌에게도 한두 점 덜어줬음 좋겠군.”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천마가 골목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잠깐.”

그런데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음성은 너무나 음산하고 건조해, 마치 말라버린 우물 속을 연상케 하였다.

“어떻게 알았죠.”

“뭘 말인가.”

“이 몸은 생명의 경계에 도달한 중간적인 존재입니다. 어찌 인간이 나의 본질을…….”

노숙자의 눈매는 상당히 젊어 보였는데, 목소리는 목을 다친 까마귀처럼 찢어졌다.

마치 고약한 마귀할멈과 같은 목소리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는 기품이 담겨 있었다.

“허풍이 심하군.”

“네?”

“천년도 아니고 기껏해야 이삼백 년쯤 묵은 것 같은데, 어찌 생명의 경계에 도달했다고 자부할 수 있나.”

순간 노숙자의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눈에서 오묘한 빛이 번뜩였다.

“내가 누군지… 안단 말인가요.”

“물론이다.”

“내, 내가 누군데요?”

노숙자가 더듬거리자 천마가 피식 웃었다.

“생명력을 나누어줄 수 있는 설화 속 존재. 인어가 아니더냐.”

순간 무명의 눈 센서가 크게 확장되었다.

[인, 인어요?]

무명은 메모리 까마득한 곳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불러들였다.

바닷속 신비한 곳에서 살고 있는 특별한 종족. 요괴도 인간도 신도 아닌, 정령과 같은 중간자 개념의 존재.

뭍으로 나오면 인간의 형태로도 몸을 바꿀 수 있으며, 엄청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기본적으로 수백 년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살점과 피를 마시면 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그 전설의 인어 말입니까?]

“그건 낭설이다.”

천마는 피식 웃었다.

“인어는 비늘로 생명력을 전해줄 수 있지. 그 내용이 잘못 전해진 거다.”

그리고 노숙자, 아니 인어 여성을 가리켰다.

“몇몇 인어들은 긴 수명을 이용해 엄격한 고행을 통해 도력을 쌓지. 그런데, 이 세계에서도 그런 존재가 있을 줄이야.”

담벼락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인어는 고개를 들어 천마를 바라보았다.

말라비틀어진 노숙자의 눈은 생선가게에 진열된 생선이 신선하게 느껴질 만큼 생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역시나 틀린 건가.”

순간 노숙자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붕어빵이나 주고 비늘이나 좀 얻을까 했는데, 안 되겠군.”

인어들은 호의를 받으면 반드시 그것을 갚는 습성이 있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천마는 붕어빵으로 호의를 베풀어 노숙자로 둔갑한 인어의 비늘을 얻으려 한 것이다.

[비늘이요? 그럼 천마 님께선 오래 살고 싶으신 겁니까?]

무명이 은근슬쩍 묻자 천마가 인상을 썼다.

“그건 평범한 인간들에게나 통용되는 말이다.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 인어의 비늘을 섭취하면 오래 묵힌 영물의 내단과 마찬가지의 효능이 있지”

무명은 천마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무명은 조심스럽게, 두려운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안 주시면, 강제로 취할 작정이셨습니까?]

“물론 아니다.”

천마는 쭈그려 앉아 있는 노숙자, 아니, 인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인어의 비늘은 자발적으로 주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 만약 강제로 취할 수 있었다면, 세상에 인어라는 존재는 씨가 말랐을 게다.”

인어를 바라보는 천마의 눈동자에는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저 인어는 틀렸다. 도력을 쌓기는커녕, 시간만 좀 먹고 있군.”

그리고 몸을 돌려 골목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제가 도를 이루지 못한 이유를… 알려주시죠.”

모자를 벗은 인어가 돌아서는 천마를 향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순간 무명의 눈 센서가 크게 확장되었다.

지저분한 모자를 벗고 머리를 쓸어넘기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여성의 용모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저는… 도력을 쌓기 위해 해보지 않은 것이 없어요.”

인어는 앉은 채로 천마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노숙 생활조차 고행의 과정일 뿐이었죠. 하지만 여전히 힘을 얻진 못했어요.”

“본좌가 알 게 뭐냐.”

“부디 알려주세요.”

“귀찮다.”

“대답해 주신다면 비늘을 드리겠어요.”

보상이 명확해지자 천마가 지체 없이 대답했다.

“인어들의 특성 때문이지.”

“인어들의… 특성이라뇨?”

인어가 바다색으로 물든 눈동자를 깜빡이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네 고행법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거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무릇 생물이란 살아온 과정이 전신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유독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며, 긴 수명을 가진 인어들에겐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지.”

“살아온… 과정요?”

“그렇다. 대부분의 생명들은 생로병사를 통해 아프고 괴로워하고 울고 웃지 않나.”

천마는 신비롭게 반짝이는 인어의 눈동자를 빤히 응시하였다.

“하지만 인어들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도 핍박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지. 그렇게 수백 년을 사는 동안 아픔도 괴로움도 없으며, 병도 걸리지 않는 존재가 어찌 도를 이룰 수 있겠나.”

천마의 통렬한 조언에 인어가 눈을 번뜩였다.

“생로병사… 그렇군요.”

큰 깨달음을 얻은 듯 인어가 깊은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죽는 날까지 아프거나 병들지 않고, 통증 같은 것도 느낄 수 없죠. 비늘에 강력한 치유의 힘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인어라는 종족은 너무나 많은 혜택을 갖고 태어났지. 그 때문에 도력을 쌓을 수 없는 것이다.”

한없이 행복하고 아름답기만 한 존재.

그 이유 때문에 수백 년을 살 수 있음에도 인어들은 도를 쌓아 요신이 되거나, 선계로 가지 못했던 것이다.

“정말 놀랍군요.”

인어는 천마를 올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어는 뭍에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상급요괴들도 저희 존재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당신은 저희 인어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거죠?”

평소 같으면 귓등으로 날릴 질문이다.

하지만 비늘을 준다고 한 탓인지 천마는 모든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본좌에겐 몽마(夢魔)라는 수하가 있다.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인간의 꿈을 조종할 수 있는 놈이지.”

“몽마, 인큐버스가 당신의 수하라고요?”

인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전설에서나 등장하는 악마가 인간의 수하가 되었다니?

하지만 황당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번은 몽마 녀석이 홀아비로 사는 본좌가 안타깝다며, 한 여인을 데려온 적이 있었지. 그녀가 바로 인어였다.”

“몽마가… 인어를 소개시켜 줬다고요?”

“소개를 해준 것이 아니라, 속임수를 사용해 신마대제께서 만마집궁에 설치해 놓으신 환마영결진(幻魔永結陣)에 함께 밀어 넣었다.”

그 당시를 떠올리는 듯 천마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신마대제께서 손수 설치한 환마영결진을 차마 부술 수 없는 탓에, 본좌는 어쩔 수 없이 그녀와 사흘 동안 같이 있었다. 그 덕택에 인어에 관한 이런저런 정보를 알게 되었지.”

주먹을 꽉 쥔 천마가 다시 중얼거렸다.

“물론 몽마 녀석에겐 알---맞은 형벌을 내려주었고.”

눈빛을 보건대, 알---맞은 형벌이라는 뜻은 죽음보다 더욱 잔혹하고 고통스런 것이 분명했다.

“그, 그렇군요.”

인어는 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 눈앞에 서 있는 건 한 명의 인간인데, 마치 신화 속의 존재하는 요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당신은 대체 정체가 뭔가요?”

“본좌는 천마다.”

잠시 골목길엔 적막이 맴돌았다.

젊은 인어는 천마의 붉은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강직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달관한 듯한 빛깔이 엿보인다.

“독특한 이름이시군요.”

“이름이 아니다.”

“네?”

“천마란, 본좌의 존재 자체를 뜻하는 말이지.”

인어의 눈빛이 묘해졌다.

눈앞의 인간은 무언가를 초월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천마라는 새로운 존재로 명명하고 있었다.

“역시나 평범한 분은 아니시겠군요.”

입가에 가는 미소를 머금은 인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답 감사해요. 덕택에 많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대가를 받기 위한 것이었으니 감사할 필요는 없다.”

“그렇군요.”

바닥에 앉아 있던 인어는 지저분한 솜옷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지금은 인간의 몸 형태로 있으니, 바로 비늘은 드릴 수 없어요. 연락처를 주시면 준비해서 보내 드리겠어요.”

천마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고행을 한답시고 노숙 생활을 하는 인어의 솜옷에 휴대폰이 들어 있을 줄이야. 저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으니, 도를 얻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명.”

천마의 중얼거림에 무명이 폴짝 뛰어올라 말했다.

[천마 님께선 휴대폰이 없어서… 지금 인어 님의 휴대폰에 저희 매장 명함을 전송해 드렸습니다.]

띠링.

휴대폰의 메시지를 바라보던 인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복 인테리어?”

[네. 천마 님께선 8급 영지 인테리어 매장인, 복복 인테리어의 수석 시공기사님이십니다.]

있지도 않은 직함을 그럴듯하게 붙인 무명이 나직이 속삭였다.

[일반 집수리부터 신뢰까지 안 하는 일이 없으니, 괜찮으시다면 주변 분들에게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영지… 그렇군요. 대지유신님들의 신뢰를 이행한다는 영지에서 일하는 분이셨군요.”

일평생의 절반 이상을 심해에서 살아가는 인어들도, 대지유신들의 의뢰를 처리하는 영지 매장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저, 그럼…….”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인어가 말했다.

“저도 의뢰를 한번 맡길 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너는 신이 아니니 신뢰를 맡길 순 없다.”

“아뇨. 굳이 따지자면 집수리 의뢰 쪽이긴 한데…….”

“집수리?”

천마가 눈썹을 모으자 인어가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 제가 고행을 선택한 것도,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편히 쉬고 싶어서였거든요.”

“무슨 말이냐.”

천마의 시선을 피해 하늘을 올려다본 인어가 낮게 중얼거렸다.

“저희 인어는 본래 땅에선 살아가면 안 되는 존재예요. 하지만 오랫동안 뭍에서만 살아온 탓인지, 저는 큰 저주를 받았어요.”

[저주요?]

저주받은 인어. 어디선가 들어봤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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