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11화 (211/285)

제211화. 천마, 의문의 적과 싸우다 (2)

언제나 천마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있는 무명.

여유롭게 웃고 있지만 실제로는 몸 상태가 크게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무명이 다시 간곡히 말했다.

[지호 님의 말에 의하면 강추에는 숨겨진 힘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화기가 아니었더냐.”

무명이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헤파이토스 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 고작 신계 서비스 직통 전화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망치를 내려다보던 천마가 천천히 허리춤에 손을 뻗었다.

전처럼 내공을 빨아들이지 않는 강추를 손에 쥐자 묘한 힘이 솟구치는 듯했다.

“병기라.”

사실 천마는 오랫동안 병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만 뻗어도 태산을 무너뜨릴 수 있는 무공을 지닌 그가 무슨 병기가 필요하겠는가?

그의 애검이었던 극천 역시 절대검학을 익히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을 뿐, 위력을 높이기 위한 병기는 아니었다.

-후흐후흐.

다가오던 대머리 사내들은 갑자기 긴장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그저 작은 손망치 하나만 쥐었을 뿐인데, 천마의 몸에서 막강한 위압감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것도 재밌겠군. 덤벼라.”

강추를 쥔 천마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이 망치라면 내공 없이도 저 질기고 단단한 몸을 부수할 것 같다.

-크후!

짧은 괴성과 함께 대머리 사내는 빠른 속도로 덤벼들었고, 홀쭉한 사내는 또다시 풍절 스킬을 쏟아냈다.

그와 동시에 천마의 손이 살짝 움직였다.

그것은 아주 단순한 동작이었으나 상승무학의 오묘한 이치가 담겨 있는 초수였다.

쾅!

합선된 전기처럼 번쩍하는 빛과 함께 폭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공격하던 두 대머리 사내가 수십 미터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후흐후흐.

강추의 공격을 막은 대머리 사내는 두 팔이 부러져 있었고, 미처 공격을 피하지 못한 홀쭉한 사내는 머리가 반쯤 부서진 채 쓰러져 있었다.

“흐으.”

동시에 천마의 입에서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저 손망치로 일 초식을 펼쳤을 뿐인데, 천마의 체력은 물론 귀면탈에 스며져 있던 묘한 힘까지 모조리 빨아들여 버린 것이다.

“정말이지… 까탈스런 놈이로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본좌를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건가.”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요?]

“일 초식을 펼쳤다는 이유로 본좌의 체력과 귀면탈의 힘을 가져갔다. 아직은… 동업자 정도 관계라는 것이지.”

주고받기, 거래, 기브앤테이크(give&take)…….

천마와 손망치는 주종관계라기보다 아직까진 사업 파트너 계약을 체결한 수준인 것 같았다.

-크후!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쩌억.

대머리 사내가 괴음을 지르더니 자신의 턱뼈를 크게 늘렸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홀쭉한 사내의 몸을 구겨버리더니 머리를 자신의 입 안으로 넣기 시작했다.

콰욱! 콰욱! 꾸르륵.

마치 뱀이 먹이를 삼키듯, 거구의 대머리 사내는 홀쭉한 사내를 통째로 삼켜 버렸다.

[대체 저게…….]

홀쭉한 사내를 삼킨 대머리 사내의 몸이 울룩불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꾸욱꾸욱. 쩌저저저적.

코트가 갈가리 찢어지며 더욱 우람해진 근육이 드러났다.

전신엔 검은 핏물이 흐르는 굵은 핏줄이 튀어나왔고, 피부는 더욱 짙은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크후후후.

홀쭉한 사내를 집어삼키자, 육체뿐만 아니라 지능도 진화하는 것일까?

점차 변신하는 대머리 사내는 천마를 보며 자신감 있는 웃음을 터뜨렸다.

“흥.”

하지만 천마는 바보가 아니었다.

휘익.

한 줄기 바람이 스쳐가는가 싶더니, 천마의 몸은 변신하고 있는 대머리 사내의 몸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멍청한 놈. 적 앞에서 느긋하게 변신이나 하고 있다니.”

-쿠후?

크게 놀란 듯, 대머리 사내는 경악성과 함께 양손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진화하는 육체 때문에 근육이 울룩불룩 움직이기만 할 뿐, 동작은 상당히 느렸다.

“하압!”

허공을 가른 강추가 변신하고 있는 대머리 사내의 턱뼈를 가격했다.

펑!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검은 피와 부산물이 흩어져 내렸다.

슈우우우!

머리가 사라진 대머리 사내의 육체는 피분수를 내뿜으며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었다.

“컥.”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는 비틀거리며 입에서 선혈을 내뿜었다.

강추는 바닥까지 내려간 내공과 체력, 그리고 귀면탈의 힘까지 모두 빨아들였다.

더 이상 빨아들일 것이 없자, 그 강력한 흡입력이 천마의 내장과 기혈을 크게 진탕시킨 것이다.

[천마 님!]

비틀거리는 천마를 보자 무명이 놀라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신경 쓸 필요 없다.”

일격으로 승리를 거머쥐었건만, 천마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쉽군. 본래는 더 즐길 수 있었는데…….”

만약 평소의 천마였다면 대머리가 끝까지 변신하도록 놔뒀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강력해진 적을 기꺼이 맞이하며 전투를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여유를 부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본능적으로 허점을 노려 머리를 부순 것이다.

“흐흐흐.”

입가에 피를 닦은 천마가 송곳니를 드러낸 채 웃었다.

더 이상 적수는 없다고 생각했건만, 이 세계에서도 강한 적이 있었다.

끊겨진 기혈, 내공 부족, 천마대능력의 부재…….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천마는 즐겁게 싸우지 않았던가.

“하하하하… 으하하하하!”

앙천대소를 터뜨리자 천마의 입에선 또다시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더욱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곳도 아주 재밌지 않느냐! 하하하하!”

[천, 천마 님…….]

위험천만한 승부에서 승리했건만, 무명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천마의 광기. 그리고 전투에 대한 집착.

그것은 굳이 따지자면, 선보다 악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확실히 아니군. 대체 이건 무엇이냐?”

천마는 머리가 사라진 채 아직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몸통을 가리켰다.

그것은 고통스러워한다기보다,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어딘가 신경이 끊어져 버린 듯한 모습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모르겠습니다.]

고개를 젓던 무명은 천마의 위엄이 담긴 눈을 바라보자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단서가 있는지 한번 조사해 보겠습니다.]

쿠웅.

결국 사시나무처럼 떨던 대머리 사내의 육체는 바닥에 쓰러졌다.

무명은 조심스레 다가가 그 괴물 같은 사내의 육체를 바라보았다.

검은 혈관이 곳곳에 튀어나온 근육과 피부는 마치 금속처럼 딱딱하게 경화가 되어 있었고, 머리 뒤편은 독특한 모양의 금속이 부착되어 있었다.

[…….]

무명은 다시 한번 사내의 몸을 상세히 스캔했다.

외과적 수술이 여러 번 시행된 듯, 척추 부근에는 묘한 상처들이 있었고 경추 부근의 신경이 일부 제거되어 있었다.

잠깐의 시간이 더 흐르자 피부는 점차 흐물해졌고, 갑자기 부패가 시작되었다.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실험체라는 것 외에는…….]

무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한 것은 협회와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협회의 승인 없이는 이런 실험체가 활보할 순 없을 테니까요.]

“그런 말은 본좌도 할 수 있겠다.”

민망함을 느낀 무명은 떨어진 나노드론을 조사했다.

녹화된 영상들은 암호화되어 이미 전송되었고, 내부기기는 파괴되었다. 보안을 위해 제대로 된 장치를 해놓은 셈이다.

쩌쩌쩍.

그때 사내의 피부가 갈라지고 뼈가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파악!

갑자기 폭발하듯 검은 액체가 되어 터져 버렸다.

거구의 육체가 순식간에 검은 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치이이이.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검은 물을 바라보자 천마가 눈썹을 찌푸렸다.

“이 세계에도 독인(毒人)이 있었던가.”

[독인이요?]

“독물이나 독초를 이용해 육체를 개조하고 무공을 증진시키는 인간이다. 무림에도 이와 같은 존재들이 많지.”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겁니까.]

천마는 불에 사그라드는 종이처럼 사라져 가는 사내의 육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해져야 하니까.”

무명은 도저히 그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천마가 갖고 있는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걸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천마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돌아가도록 하지.”

몸을 돌린 천마는 무명에게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오늘 일은 절대로 점주에게 보고하지 말도록.”

그는 앞으로도 이런 괴물들이 더 많이 등장하길 바랐다.

하지만 무명이 떠벌떠벌 이야기를 풀어 신계 등에 알려진다면, 왠지 이러한 존재들이 없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무명의 대답을 들은 천마는 문득 땅에 흐르고 있는 까만 액체를 바라보았다.

죽음은 엄숙하고 고요한 것.

피에 절어 사는 무림인인 그 역시, 죽음을 이고 산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 한들, 모든 걸 태운 생명의 죽음 앞엔 그 역시 엄숙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 천마 님의 힘을 빨아들이는 강추의 문제는 해결한 셈이로군요.]

무명은 천마의 품속으로 들어간 강추를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중얼거림은 너무 낮아 천마는 들을 수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명은 깨닫고 있었다. 앞으로 천마는 저 강추를 거의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이 매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일요일, 정오 무렵.

끼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옥탑방의 현관문이 열리며 거구의 사내, 천마가 밖으로 나왔다.

무명을 어깨에 태운 그는 건물 밖으로 나와 특수대응팀의 빌라를 지나쳐 편의점에 이르렀다.

[혜원 양이 있는 편의점으로 가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천마는 편의점 안쪽의 골목으로 걸어갔다.

전봇대가 설치된 골목 모퉁이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작은 매대가 보였다. 매대 위에는 만들어놓은 붕어빵과 오뎅이 가득 담긴 통이 보였다.

[어라? 여기에 노점이 있었나요?]

무명이 놀란 목소리를 내자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제 연공 중에 발견했지.”

최근 천마는 내공을 양생하는 운공뿐만 아니라, 이제 무공도 연마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천마는 부족한 내공을 보완하고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육체 내에 잠재된 힘을 폭발시키는 천마대능력에만 의지했다.

그 때문에 몸에는 상당한 무리가 갔고, 무학 역시 단발성으로 펼칠 수 없었다.

하지만 일 갑자의 내공을 채우자 조금씩 순수한 내공을 사용하는 무학을 몸에 적응시키려는 것이다.

우물우물.

오뎅과 붕어빵을 양손에 든 천마는 먼저 따끈한 붕어빵을 베어 물었다.

사실 오뎅과 붕어빵은 장채원과 함께 먹어본 적이 있었다. 새롭게 시도하는 먹거리는 아니었지만 출출한 오후의 허전함을 달래주기엔 더없이 훌륭한 간식이었다.

[뭘 보고 계십니까, 천마 님.]

붕어빵을 우물우물 먹는 천마의 시선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쓰레기통에 고정되어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쓰레기통 옆에 기대앉은 노숙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숙자로군요.]

불에 그을린 듯한 솜옷을 입고 있으며, 어깨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머리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더러운 모자를 잔뜩 눌러쓴 채 노숙자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담벼락에 기대 있었다.

그 옆에는 매우 낡은 휠체어가 있었는데, 곳곳이 오염되고 망가져 있었다.

“노숙자라.”

노숙자를 바라보는 천마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어찌 그 세 글자로 저자를 표현할 수 있겠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네 눈엔 저자가 단순한 노숙자로 보인단 말이냐.”

[단순한 노숙자와 특별한 노숙자가 따로 있습니까?]

무명은 손을 뽑아 둥그런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무슨 속사정이 있는진 모르겠습니다만, 저런 옷차림으로 길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을 표현하는 덴 부랑자와 더불어 더없이 적합한 단어입니다.]

“인간의 얼굴엔 살아온 과정이 모두 드러난다. 하지만 저자에겐 전혀 그러한 것이 보이지 않잖나.”

[관상… 같은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관상 같은 경험적 지식과 통계학적 사고가 아니다.”

천마는 턱을 쓰다듬으며 자신감 있게 말했다.

“사물의 내적 본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본좌의 통찰력 덕택이라고 해두지.”

[과연, 천마 님은 노숙자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도 비범한 관찰력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어디까지나 비꼬는 말이었다.

빈정대는 듯한 무명의 목소리에도 천마는 화내지 않고 피식 웃었다. 한 번 더 무명의 자존심을 긁어줄 요량이었으니까.

“물론이다. 옷차림과 생김새로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자는 본좌뿐이지.”

말을 하는 동안, 천마의 시선은 줄곧 노숙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이상함을 느낀 무명이 눈 센서를 크게 키웠다.

[설마, 도와드리고 싶은 겁니까?]

“돕는다…라. 뭐,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군.”

무명의 눈 센서는 최대치로 확장되었다. 타인에게 무심하다 못해 냉혹한 천마가 거리의 부랑자에게 신경을 써주다니?

[정말이십니까?]

역시 지금까지 저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군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무명이 두 팔을 벌리는 찰나, 천마의 입에 흘러나온 말에 가슴이 차게 식었다.

“뽑아 먹을 게 상당히 많은 것 같으니 말이다.”

순간 무명의 머릿속엔 아주 흉물스런 속담 하나가 떠올랐다.

-거지 똥구멍에서 콩나물을 뽑아 먹는다!

[정말로 콩나물을 뽑아 먹겠단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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