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10화 (210/285)

제210화. 천마, 의문의 적과 싸우다 (1)

“…….”

[…….]

천마와 무명이 초점 없는 시선으로 가루가 된 몬스터들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맑은 안내원의 음성과 함께 깜빡이던 신보가 빛을 잃더니,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 경기장 중심에서 또다시 빛과 함께 반쪽의 풀잎피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냐.

-손망치에서 들려온 여성은 누구냐?

-신계 서비스란 무엇이냐?

평소의 천마라면 이런 질문을 한 번쯤은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고, 오히려 덤덤했다.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한계치를 넘어서자, 아예 뇌를 비우고 이 상황을 그냥 받아들인 것이다.

“전화기였군.”

[그렇군요.]

무명도 눈 센서를 흐릿하게 번쩍이더니 멋쩍은 웃음을 터뜨렸다.

[모양 때문에 헷갈렸습니다. 하하.]

“한번 써봐라.”

[네.]

무명은 강추를 건네받고는 귀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아아’ 소리를 내고는 다시 천마에게 내밀었다.

[문제없이 잘 작동되는 것 같습니다.]

천마와 무명의 대화는 한 편의 우스꽝스러운 콩트 같았다.

하지만 둘 모두 뇌를 깨끗이 비운 상태였기 때문에 그 점을 자각하지 못했다.

[흠흠.]

정신을 차린 무명은 경기장 가운데 피어 있는 풀잎피리에 시선이 이르렀다.

[이제 신보가 완성되었군요.]

무명은 경기장 한가운데 놓여진 풀잎피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마가 들고 있는 손망치의 손잡이 부근에 살짝 갖다 대었다.

차앙.

맑은 음색과 함께 손잡이에 부착되었던 신보에서 신비한 빛이 솟구치더니,

사아아아아.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신보가 손잡이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떻습니까?]

“뭐가 말이냐.”

[아직도 손망치가 천마 님의 힘을 갉아먹고 있습니까?]

무명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 이상 내공을 빨아들이지 않는군.”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원정진기도 돌아왔다. 그리고… 강추가 본좌의 심령과도 감응하는군.”

강추를 내려다보던 천마가 살짝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떨림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매우 익숙하고도 그리운 감응이다.

“극천. 오직 그 천고의 마병만이 본좌의 심령과 합일되었거늘…….”

그런데 감탄하고 있던 천마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그동안 귀면탈의 힘을 빌어 억지로 내공을 사용해 왔었다.

비록 본원진기는 돌려받았지만, 육체를 혹사시키고 내공을 한계치까지 사용했기에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잠깐.”

진기를 움직여 들끓던 기혈을 안정시키던 천마의 안색이 변했다.

[왜 그러십니까?]

“내공이… 일부 소실되었다.”

진기를 한 바퀴 더 돌린 천마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본좌의 10년 수위의 공력이 사라졌단 말이다.”

순간 무명은 손망치에서 들렸던 안내원의 음성을 동시에 떠올렸다.

-…신력이 10포인트 차감되었습니다.

[포인트라는 게 …천마 님의 내공이었던 것 같군요.]

“뭐라!”

천마가 벼락같은 호통을 치자 무명이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위기를 잘 넘기지 않았습니까.]

“위기는 무슨! 이 정도는 본좌에겐 준비운동…….”

호통을 이어가던 천마의 다리가 살짝 휘청거렸다.

내공이 없는 상태로 무리를 한 탓에 근육과 혈맥이 미세하게 손상된 것이다.

[…….]

무명이 벙찐 시선으로 바라보자 천마가 헛기침을 했다.

“…수준의 몸풀기였으나, 어쩔 수 없지. 이미 그리되었으니.”

[하지만 신기하군요.]

무명이 앙상한 손을 둥그런 턱 부근에 받치고 말했다.

[신력이 어떻게 천마 님의 내공으로 대체가 되었을까요? 설마 천마 님께서도 대지유신이 되신 걸까요?]

그동안 천마 역시 ‘신뢰에서 얻은 신력이 어째서 내공으로 대체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봤었다.

그리고 무학의 이치에 정통한 천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반극심법 상의 반극진기는 음양이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천고의 내공심법이지.”

팔짱을 낀 천마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즉, 천지간에 존재하는 이원이기(二元二氣)를 모두 내포하고 있지. 이는 대자연의 힘과 유사한 것이니, 신력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천마 님이 갖고 계신 내공이라는 힘이, 신력과 비슷하단 말이군요.]

무명은 무림의 내공심법이나 무학 따윈 전혀 알지 못했지만, 용케 천마의 말을 이해했다.

그러자 천마가 자부심 가득한 미소를 머금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오직 반극진기를 소유한 본좌만이 가능한 일이지.”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무명이 약간은 허탈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전화 통화 하나로 신계 서비스를 받다니… 정말 편리한 세상이 왔네요. 나중에 장채원 님도 굳이 신계로 가실 필요 없이 이걸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냐.”

[장채원 님께서 은총을 모으시는 것도… 아, 아닙니다.]

주절주절 이야기하던 무명이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저었다.

[방금 한 이야기는 잊어주십시오.]

무명의 말을 곱씹던 천마는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점주가 신뢰를 맡아서 하는 이유도, 뭔가를 하길 위해서였나.”

[아니, 그건…….]

“됐다. 세상만사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

손을 휘휘 저은 천마는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나저나 앞으론 정말 신뢰를 열심히 해야겠군.”

10년 치의 내공이면, 신뢰를 두 번 정도 해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최근 신뢰가 거의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천마는 약간의 조바심을 느꼈다.

위잉.

그때 경기장 전체를 둘러싼 에너지 결계가 깨끗이 사라졌다.

이 경기장에서 천 마리의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이 풀잎피리를 얻고,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이제 돌아가도록 하지.”

[네. 그럼,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무명이 유도선을 앞으로 쏘아낼 찰나,

-윙잉.

어디선가 미세한 파공음이 무명의 센서에 감지되었다.

인간의 청력으론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였으나 천마는 대번에 감지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소리냐.”

[나노드론입니다!]

그 사이, 통로에서 아주 작은 비행물체 무리가 경기장을 향해 날아 들어왔다.

네 개의 프로펠러가 달려 있는 몸체에 온갖 장치들이 부착되어 있다.

크기는 날파리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안력이 뛰어난 천마와 미래기술에 가까운 초정밀 광학센서가 부착되어 있는 무명은 나노드론의 형태를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지잉. 띠리리릭.

기계음과 함께 무명이 나노드론을 모조리 해킹해 작동을 정지시켰다.

투툭.

날아오던 나노드론 4기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자 무명은 재빨리 그것들을 살펴보았다.

[이런.]

유심히 나노드론을 조사한 무명이 낭패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실시간으로 영상을 전송하고 있었군요. 제 잘못입니다. 빨리 발견했어야 하는데…….]

“무슨 말이냐.”

[방금까지 천마 님의 모습이 나노드론을 조종하는 자들에게 전송이 되었을 겁니다. 그나마 천마 님께서 가면을 쓰고 있어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보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천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코웃음을 쳤으나, 무명은 매우 찜찜한 듯 보였다.

[이 초소형 나노드론은 협회나 군에서 쓰는 최신형 모델입니다. 아무래도…….]

쿵. 쿵.

그때 입구 쪽에서 무거운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번 내딛을 때마다 땅이 울리는 것으로 보아 엄청나게 큰 몬스터가 분명했다.

[천마 님.]

무명의 목소리에 담긴 뜻을 짐작한 천마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지금 몸으로는 몬스터를 상대할 수 없다.

사방이 뻥 뚫린 경기장엔 숨을 곳이 없기에 사황은형잠행을 펼쳐 조용히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스윽. 스스스스.

혼신의 힘을 다해 억지로 내공을 끌어올리자 천마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크윽.”

천마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황은형잠행술은 떨어지는 한줄기 나뭇잎에도 몸을 감출 수 있는 무림 최고의 은신잠형술이다.

다만 그 탁월한 공능 만큼이나 내공을 급격히 소모시키는 비술이다.

만약 지금까지 귀면탈의 도움이 없었다면 천마는 이미 허탈경에 빠져 쓰러졌을 것이다.

쿠웅. 쿠웅.

그때 커다란 발자국 소리와 함께 입구에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간신히 몸을 숨긴 천마가 눈을 부릅떴다.

희로애락을 표현하지 않는 그였으나, 이번만큼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시체 놈이로군.’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건 대형종 몬스터가 아니라, 까만 코트를 입고 있는 거구의 사내였다.

바로 가변던전 경계지역에서 천마와 전투를 벌였던 대머리 남성이었다.

쿵. 쿵.

그때 또다시 입구에서 걸음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코트를 입은 또 다른 대머리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닌 둘이었던 것이다.

‘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는 속으로 탄성을 내었다.

뒤이어 등장한 대머리 남성은 키가 5척(120센티)도 채 되지 않는 데다 몸이 깡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뚱뚱이와 홀쭉이로군.’

두 대머리 남성에게 적절한 별명을 지을 무렵, 무명이 속삭였다.

[천마 님. 아무래도 저들은 협회 혹은 정부 소속이 분명합니다.]

저 대머리 남성은 매번 위험천만한 가변던전 지역에 있을 뿐만 아니라, 군사용 나노드론이 항상 주위를 맴돌고 있다.

무명의 말에 천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람? 사람이 어찌 생기가 끊어진 상태로 움직일 수 있단 말이냐.”

천마의 시선에서 보자면, 대머리 사내들은 사람이 아니라 시강술로 죽은 자를 조종하는 강시(殭屍)에 불과했다.

[어쨌든 오늘은 상황이 좋지 않으니 부딪치지 말고 그냥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무명의 간곡한 목소리에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특히 저 거구의 대머리의 실력은 만만찮다.

일전, 천마의 권법을 수월히 피했을 뿐 아니라, 신비한 폭발 스킬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천마가 펼친 무공초수를 금세 따라 하지 않았던가?

기혈이 꼬여 있고 내공이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에서 억지로 전투를 벌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지.”

천마가 나직이 대답하자 무명이 다시 속삭였다.

[이 콜로세움 던전은 따로 출구가 없는 것 같습니다.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천마는 매우 은밀한 동작으로 두 대머리 사내 앞으로 걸어갔다.

“…….”

하지만 천마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그들은 하얗게 물들어 있는 눈동자로 경기장 주변을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스스윽.

유령 같은 동작으로 그들을 지나친 천마는 천천히 입구가 있는 통로로 걸어갔다. 그런데,

-후으?

괴음과 함께 홀쭉한 사내가 몸을 돌려 천마가 움직이는 방향을 가리켰다.

하지만 시선은 텅 비어 있다.

아마도 눈이 아닌 공기의 파동으로 적을 감지할 수 있는 스킬이 있는 것 같다.

쿵! 쿵!

그러자 거구의 사내가 미친 듯이 천마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천마 님. 발각되었습니다!]

무명의 외침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천마가 빠르게 신법을 전개했다.

“이대로 간다.”

휘익.

하지만 천마의 동작은 민첩하지 못했다.

내력이 달린 탓에 신법이 이어지지 않았고, 다리 힘으로만 땅을 박찼기 때문이다.

-후흐!

그 사이 번개처럼 달려온 거구의 사내가 천마의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천둥과도 같은 일갈과 함께 천마는 수백 개의 권영을 쏟아냈다. 권마칠식의 절초, 권마무도였다.

퍼퍼퍼펑!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천마의 주먹에 얻어맞은 거구의 사내가 몸을 웅크린 채 수십 미터 밖으로 밀려났다.

-후흐.

하지만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듯 낮은 괴음을 쏟아냈다.

휘이잉!

거대한 터빈 엔진이 작동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거구의 사내의 오른팔에서 강렬한 빛이 흘러나왔다.

콰앙!

거구의 사내가 손을 뻗자 폭발음과 함께 시뻘건 불꽃이 천마의 몸을 휘감았다.

화르르륵.

불꽃이 지나갔음에도 천마는 그 자리에서 우뚝 서 있었다.

웅웅웅.

낮은 진동과 함께 몸 주위로 둥그런 빛이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옷에서 흘러나온 호신강기가 폭발을 막아준 것이다.

-그웅.

그런데 힘 빠지는 소리와 함께 우리옷에서 흘러나오던 빛도 사라지고, 호신강기도 점자 엷어졌다.

천마에게 진기를 주입받지 않은 상태에서 폭발을 막아내자, 우리옷의 기능이 서서히 정지되는 것 같았다.

-흐흐.

그때 천마의 등 뒤에 서 있던 홀쭉이가 손을 뻗었다.

촤아아악!

응축된 공기 속에서 희미한 칼날 같은 바람이 쏟아지자 천마는 재빨리 몸을 틀었다.

콰직.

천마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 칼바람은 통로에 기다란 자국을 만들어냈다.

풍절(風絶) 스킬에 가까운 예리한 바람이었다.

“좋다.”

앞뒤로 포위한 두 대머리 사내를 바라보던 천마는 몸을 돌려 홀쭉한 사내에게 달려갔다.

거구의 사내보다 홀쭉한 사내 쪽이 힘과 민첩성이 확연히 떨어져 있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권마칠식.”

번개처럼 달려간 천마는 홀쭉한 사내보다도 더 낮게 몸을 웅크렸다.

“승풍항룡!”

강력한 회전력을 이용해 몸을 드릴처럼 회전시킨 천마가 오른팔로 홀쭉한 사내의 턱을 후려쳤다.

까앙!

하지만 쇳덩어리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오히려 천마의 주먹이 얼얼해졌다.

“외공을 익혔군.”

홀쭉한 사내의 몸은 쇳덩이보다 더 단단했다.

-후!

그때 거구의 사내가 어느새 천마의 뒤로 다가와 양손을 치켜들고 있었다.

가히 번개와 같은 공격이었다.

“흥.”

피할 여유가 없자 천마는 복운번신(覆雲飜身)의 신법을 펼쳐 몸을 횡으로 회전시켰다.

콰앙!

폭음 소리와 함께 경기장 바닥이 깨진 유리처럼 박살이 나 버렸다.

재빨리 물러난 천마가 다시 공격을 하려 하자, 또다시 홀쭉한 사내가 풍절 스킬을 사용했다.

치익. 치익.

맹렬한 칼바람이 사방으로 쏟아지자 천마는 또다시 수세에 몰렸다.

비록 내공의 태반을 잃었다고 하나, 이처럼 궁지에 빠진 경우는 없었다.

물론 저 대머리들의 실력이 퍽 뛰어난 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천마의 공력이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부아가 치미는군.”

절묘한 초식으로 방어와 공격을 한꺼번에 쏟아내던 천마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인간의 껍데기만 썼을 뿐, 마물들처럼 힘으로 부숴야 한다는 건가.”

이 두 사내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당연히 있어야 할 급소나 혈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던전에 서식하는 몬스터처럼 오직 강력한 파괴력으로 몸을 부숴야 했다.

“…하지만 재밌어.”

입가가 찢어지도록 웃던 천마가 남아 있는 공력을 모두 쏟아내 쌍장을 뻗어냈다.

“다시 덤벼봐라!”

펑펑!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두 사내는 일직선으로 날아가 경기장 벽 끝자락에 처박혔다.

후두두둑.

돌벽이 와르르 무너지며 먼지가 피어오를 무렵,

-후흐.

두 사내는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얼굴로 덤덤히 몸을 일으켰다.

[마치… 몬스터와 인간의 장점만을 합쳐놓은 듯한 존재 같군요.]

천마의 어깨에 매달린 채, 줄곧 대머리 사내의 전술과 힘을 분석하던 무명이 말했다.

[천마 님. 주먹과 발보다 날카로운 병기로 공격하는 것이 유효할 것 같습니다. 마화열극지를 사용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필요 없다.”

가쁜 숨을 몰아쉰 천마가 소름 끼치도록 살기 어린 미소를 머금었다.

“주먹으로도 충분히 부술 수 있으니까.”

사실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현재 그의 내공은 모두 소진된 상태였으며, 여전히 등 뒤의 경맥은 잘 돌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차분히 운공하여 들끓은 기혈을 진정시키고 경맥을 복원시켰을 터. 하지만 신보를 얻자마자, 이 두 대머리가 나타나 버렸다.

결국 천마는 몸을 회복시키기는커녕, 더욱 악화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최악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피 튀기는 싸움이 그의 심장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었다.

[천마 님.]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입이 찢어져라 웃는 천마를 보며 무명이 조심스레 말했다.

[주먹으로 싸우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강추를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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