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화. 제비의 요계 나들이 (2)
-거기 서!
“쫓아가면 안 돼!”
그때 엎드려 있던 아이가 달려 나가려는 제비에게 소리쳤다.
“저 사람들… 사람이 아냐.”
아이는 두려운 표정으로 제비에게 말했다.
“겉모습만 사람이지, 괴물이야. 쫓아가면 안 돼.”
겁에 질린 아이를 보자 제비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질적인 느낌. 이 삭막한 요괴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냄새와 눈빛이다. 고개를 갸웃거린 제비는 아이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사람이었다냥??
놀랍게도 이 아이는 진짜 사람이었던 것이다.
-대체 요계에 어떻게 들어왔냥? 인간은 초대가 없음 요계에 들어올 수 없을 텐데?
제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아이는 웃으며 제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착하다, 착해. 잘했어.”
-왜 여기에 있는 거냥? 어서 빨리 이곳을 나가야 한다냥.
제비가 열심히 말을 했지만 아이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아, 너도 배고 고픈가 보구나.”
비틀비틀 일어난 아이는 창고 한편을 뒤적거렸다.
그러자 그곳엔 말라비틀어진 떡 하나가 나왔다.
“이거 먹을래?”
아이는 작은 떡 하나를 조금 떼어 제비에게 내밀었다.
“맛있어. 먹어봐.”
-…….
제비는 더없는 슬픔과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 망할 요괴 자식들이, 인간 아이를 납치해 이렇게 학대를 하다니.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배가 안 고픈가 보구나.”
머쓱하게 웃은 아이는 제 손에 있던 떡 조각을 입에 넣었다.
“콜록콜록.”
마른 떡을 삼킬 수 없던 아이는 연신 기침을 했다.
밖으로 나가 싱크대의 수돗물을 받아마신 아이는 자신을 쫄래쫄래 따라오는 제비에게 말했다.
“어서 도망가도록 해. 저 괴물 아저씨, 아줌마가 곧 돌아올 거야.”
-무슨 소리다냥.
“이 마을은 모두 괴물들이 사는 곳이야. 계속 여기에 있으면…….”
-그런 말 할 때가 아니다. 나가자냥.
답답함을 느낀 제비는 아이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현관문을 향했다.
“왜, 왜 그래?”
-됐고 빨리 나가자냥.
신수인 제비의 힘은 어지간한 요괴들보다도 더 세다.
힘으로 바지를 끌자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오듯 현관문 밖으로 나왔다.
“안 돼. 여긴 못 벗어나.”
-걱정 마랑. 내가 길을 알고 있다냥.
연신 제비가 바짓가랑이를 끌었지만, 아이는 두려운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안 돼. 어서 도망가. 어차피 소용없다고.”
대체 왜 이리 아이가 겁에 질린 걸까.
제비가 눈을 깜빡일 무렵,
“글쎄, 신수가 하나 들어왔다니까?”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골목 끝자락에 도망갔던 중년 부부가 무리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저기! 저기 있네!”
중년남성은 아이와 함께 서 있는 제비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서 잡자고!”
중년남성의 뒤로 이삼십 명의 무리들이 걸어 나왔다.
겉은 인간의 형상이나 눈빛은 야수처럼 사납고 포악스러워 보였다.
“어서 도망가.”
아이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제비에게 손짓했다.
자신에게 닥친 위험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직 남을 걱정하는 아이를 보자, 제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라냥.
눈을 번뜩인 제비의 송곳니가 길어지더니, 점차 몸을 크게 늘리기 시작했다.
지지지직.
하얀 번개가 몸에서 발생되더니 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제비의 몸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지지직. 빠지지지직.
하얀 불꽃이 강렬해짐과 함께 어느새 제비는 한 마리 백사자처럼 늠름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최강의 신수, 불가사리. 그 진정한 형태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저거… 불가사리 아녀?”
변신한 불가사리를 알아본 몇몇 요괴가 탄성을 질렀다.
“불가사리?”
“신들이나 기른다는 저 신수잖여!”
“신수? 그 영물 중에서도 신력을 품고 있다는 그 신수?”
요괴들의 눈빛은 당혹감에서 놀라움으로, 그 놀라움은 이내 탐욕으로 변했다.
신수의 피와 살은 말 그대로 신력을 농축한 것과 다름없다. 최강의 신수라는 불가사리의 살점이면 그들은 한 단계 더 강력한 요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타라냥.
그들이 다가오자 제비는 입을 내밀어 아이를 등에 태웠다.
그리고 번개처럼 하늘로 튀어 올라갔다.
“흐흐흐.”
사라지는 제비를 바라보는 요괴들은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도망갈 순 없지.”
“차라리 잘 됐어. 슬슬 구석으로 몰아서 힘을 빼자고.”
“인간 아이가 있으니 더 잘됐어. 아이를 보호하려고 제대로 싸울 수도 없을 테니까.”
낮게 웃음을 터뜨리는 요괴 무리들의 목소리는 악마의 숨결처럼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대체.”
출근 준비를 마친 장채원이 눈썹을 찌푸렸다.
방 안에 웅크리고 있어야 할 제비가 어젯밤부터 보이지 않는다. 만마소궁 앞에 둔 간식이 그대로 있는 걸 보니, 낮부터 나가 돌아오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이상하네.”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도, 지금까지 하루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은 적은 없다.
걱정스런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 있던 장채원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구두를 신었다.
어느덧 이틀째였다.
제비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장채원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천마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정말 이상하군.”
대걸레질을 하며 장채원의 말을 듣던 천마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먹성 좋은 족제비 녀석이 제 발로 좋은 보금자리를 떠나다니.”
“떠났다고? 정말 떠난 걸까?”
“돌아오려면 어떻게든 돌아올 수 있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이틀이나 돌아오지 않았다면, 제 발로 나갔다고 봐야겠지.”
“대체 왜 그런 거지? 내가 뭐 서운하게 한 게 있나?”
제비의 걱정을 쏟아내는 장채원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천마가 눈을 번뜩였다.
“혹시 집에 없어진 건 없나? 값어치가 나가는 물품 같은 것 말이다.”
“왜?”
“남의 집에 얹혀사는 식객들이 늘 하는 짓이 있지. 주인의 눈칫밥을 먹다 결국 집안의 보물을 훔치는 일 말이다.”“무슨 헛소리야.”
“헛소리가 아니다. 과거 남궁세가에서 식객으로 머무르던 조양검 금적비가 대범천왕불을 훔쳐 달아난 적이 있다. 남궁세가에선 꽤나 극진한 대접을 해줬는데 말이지.”
장채원은 황당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제비가 무슨 사람이냐? 그냥 신수라고, 신수.”
“동물이나 사람이나 매한가지다.”
“뭐가?”
“욕심에는 끝이 없다는 것.”
천마는 진지한 얼굴로 장채원을 내려다보았다.
“좋은 대접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바라는 게 많아지니까.”
“그건 니 얘기냐?”
두 사람이 한참 투닥거릴 무렵, 응접 테이블에서 뜨거운 커피를 훌훌 마시던 김찬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납치 같은 거 당한 건 아니겄쟤?”
“납치요? 에이, 설마요.”
장채원이 피식 웃자 이번엔 김찬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수의 피와 살은 엄청난 보약이잖여. 은근히 노리는 요괴들이 많지.”
“보약? 그 작은 족제비를 어따 쓴단 말인가.”
천마의 물음에 김찬원이 눈을 껌벅였다.
“신수는 원래 몸을 자유자재로 늘이고 줄인다고. 제비의 원래 모습은 다 큰 사자보다도 더 클걸?”
“그래봤자 족제비다.”
“무슨 소리여. 제비는 불가사리여, 불가사리. 피와 살에 신력이 가득 들어찬 신수란 말여.”
“신력?”
그 말에 줄곧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천마가 눈을 번뜩였다.
“그런 말을 왜 이제 하는 거냐.”
장채원은 입맛을 다시는 천마를 보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정말 천마 같은 녀석에게 잡힌 거 아냐?”
“걱정 마라. 본좌의 주먹을 피할 수 있는 녀석이다. 요괴든 뭐든 쉽게 잡을 수 없을 테지.”
“그렇겠지?”
천마가 위로의 말도 건넬 줄 아는 인물이었던가!
예상외의 말에 장채원이 안심한 미소를 머금을 찰나, 천마가 또다시 뒤통수를 쳤다.
“하지만 무리 지어 사냥당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응?”
“영물들은 본래 무리 지어 사냥하잖나. 무림맹의 장로들만 해도, 그저 영물만 나타나면 장로전을 뛰쳐나와 특별 전단(戰團)을 꾸리니 말이다.”
천마는 혀를 할짝거리며 말했다.
“그 정도로 몸에 좋다는 녀석이라면 말이다.”
장채원의 불안감은 더욱 깊어졌다.
그 말대로 세상엔 몸에 좋다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요괴들이 넘쳐난다.
거기다 신력을 몸에 지닌 제비의 피와 살… 그것은 ‘몸에 좋다’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하급요괴가 상급요괴로 변할 수 있고, 상급요괴의 힘을 한 단계 높여주기도 하니까.
“으음. 허긴 제비가 많이 어린 상태라… 걱정이긴 하네.”
김찬원이 혀를 찼다.
아무리 최강의 신수라고 해도 제비는 아직 몸이 다 자라지 않은 아이다.
성체가 될 때까진 신력을 제대로 쓸 수 없기에, 상급요괴들이 작정하고 덤빈다면 당할 수도 있다.
게다가 요괴들이 모두 김찬원처럼 선한 성품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안 되겠어.”
장채원은 핸드백을 집어 들었다.
“오늘 업무는 종료. 모두 퇴근하세요.”
“무슨 소리냐.”
“제비 찾아야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장채원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그래도 데려온 뒤로 잘 놀아주지도 못했는데.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아이가 나 때문에 집에만 처박혀 있었어. 그래서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한 거고.”
그녀의 애타는 표정을 바라보던 고은진이 서류를 덮으며 말했다.
“저와 같이 가지 말입니다.”
“아, 아냐. 내 일인걸요. 은진 씨도 퇴근해요.”
“걱정 마십쇼. 제가 사실 영물 추적은 좀 잘하지 말입니다.”
“네?”
장채원이 눈을 깜빡이자 고은진이 씩 웃었다.
“용병 의뢰 중엔 야생으로 튀어 나간 몬스터 추적도 있었지 말입니다.”
“그래요?”
“그렇슴다. 밀림에 숨은 히든몬스터, 마스크 악어를 잡은 적도 있지 말입니다.”
고은진이 어깨를 으쓱하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가 코웃음을 쳤다.
“밀림에서 악어 따윌 잡는 수준으로 나서지 마라.”
“무슨 헛소립니까?”
“사실 영물 추적의 전문가는 본좌라고 할 수 있지.”
팔짱을 낀 천마는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본좌는 부하의 몸을 치료하기 위해 십만대산에 숨어 있는 설린금와를 잡은 적도 있다. 수백 리에 달하는 산맥을 전부 뒤져서 말이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장채원의 어깨에 손을 올린 천마가 말했다.
“저런 허접때기 회색 눈깔은 퇴근시키고, 본좌와 함께 가도록 하지.”
경쟁심에 불타오르는 천마의 눈동자를 보자 장채원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쓸데없는 승부욕 좀 부리지 마. 이게 무슨 시합인 줄 알아?”
“어쨌든 본좌를 믿어라.”
“사장님. 저 근육몬을 믿으면 헛고생할 게 분명하지 말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고은진마저 발끈하자 장채원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말은 고마운데… 도움은 됐어.”
“신수를 안 찾으실 겁니까?”
“찾을 거야. 문명의 힘으로.”
고은진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응접 테이블에 앉아 있던 김찬원이 창고를 가리켰다.
“무명이 있잖여.”
“아.”
고은진이 탄성을 질렀다.
어떤 전산망이든 단숨에 해킹해 버리는 무명이라면 도심의 CCTV를 모두 뒤져 제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천마가 불쑥 나섰다.
“무명 녀석도 쉽게 못 찾는다.”
“뭐?”
“제비 녀석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분명 본좌처럼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며 이동했겠지.”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창고 방 안에 있던 무명이 떼굴떼굴 굴러나오며 말했다.
[하지만 제비 씨가 계속 건물 위에만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호.”
천마는 무명을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본좌보다 빨리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그렇습니다.]
“재미있군.”
송곳니를 드러낸 천마가 씩 웃었다.
“그럼 누가 빨리 찾나 내기를 해보도록 하지.”
[좋습니다.]
“후후,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참가하지.”
이젠 고은진마저 양손을 주물럭거렸다.
“이 전직 용병 고은진 님께서 다 발라드리지 말입니다.”
천마와 무명, 고은진이 눈을 번뜩이는 모습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낮게 중얼거렸다.
“이런 걸로 승부욕 태우지 말라고…….”
* * *
어느덧 사흘째였다.
제비는 아이를 태운 채, 회색빛 하늘이 펼쳐져 있는 요계도시를 빙글빙글 돌았다.
이 도시에 있는 요괴들은 상급요괴는 아니었지만, 제법 포악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골치가 아픈 점은 인해전술이다. 처음 수십 명으로 시작된 추적은 어느새 수백, 수천이 되었다.
도시 전체가 제비의 사냥에 참가하자, 어디를 돌아다녀도 숨을 곳이 없었다.
-출구가 없다냥.
심지어 이 도시로 들어왔던 출입구, 즉 공간의 균열이 사라져 있었다.
아마도 이곳의 요괴들은 공간의 균열을 문처럼 여닫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후우. 후우.
쫓아오는 요괴들을 피해 도시 곳곳을 헤매던 제비는, 어느새 물샐틈없이 겹겹이 쌓인 포위망에 갇혔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태우고 미친 듯이 돌아다니던 제비는 결국 그들에게 몰려 사방이 탁 트이고, 건설자재가 가득 쌓여 있는 야적장까지 이르렀다.
“괜찮아.”
아이는 자신을 태우고 있는 제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날 두고 도망가. 나는 괜찮으니까.”
-시끄럽다냥. 그럴 일은 없다냥.
“나도 예전에 몇 번이고 도망쳐 봤어. 마을 곳곳에 숨어 있으면서 어떻게든 나가는 길을 찾아봤거든.”
아이의 눈동자에는 절망이 가득 담아져 있었다.
“하지만 없어.”
그 당시를 떠올리는 듯 아이의 눈에선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딜 가도 이곳을 빠져나가는 길은 없었어.”
-걱정 마라. 꼭 찾을 꺼다냥.
울먹이는 아이를 보며 제비는 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때, 아이는 의외의 말을 했다.
“나만 도망친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무슨 말이냥.
아이는 제비의 말을 알아듣는 듯 서글픈 표정으로 말했다.
“이곳엔 나만 있는 게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