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98화 (198/285)

제198화. 제비의 요계 나들이 (1)

-뀨우(아하암!)

따스한 아랫목에 누워 있던 제비가 목을 빼고 하품을 했다.

장채원은 외출했는지 기척조차 없다. 희미하게 뜬 눈으로 주변을 살폈지만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

적막한 집 안을 둘러보던 제비는 따스한 햇살이 스며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떠오른 태양의 높이를 보니 정오 무렵쯤 된 것 같았다.

-꾸웅(아무도 없냥!)

쓸쓸함을 느낀 제비는 낮은 울음을 내었다.

하지만 반응해 주는 소리는 없다. 최근 우리 주인은 너무 일에만 치여 사는 것 같다.

물론 저녁에 퇴근해서 놀아주긴 하지만, 요새는 맥주 한잔에 영화를 보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천마 녀석에게 가볼까냥.

예전에는 공구통에 숨어 들어가 일을 방해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다시 또 그런 짓을 했다간 대번에 간식을 끊을 테지.

-그러고 보니 요새 회식은 왜 안 하냥.

가끔 술 마시는 게 너무 좋았는데. 최근에는 도통 불러주지 않아서 아쉽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제비는 어슬렁어슬렁 밖으로 나왔다.

기분 좋은 따스한 햇살이 정원을 내리쬐고 있었다.

-좋다냥.

정원 한켠에 만들어진 만마소궁을 바라보던 제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간식통엔 질 좋은 쇠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하루 내내 먹을 만큼 풍족히 쌓아둔 걸 보아하니 주인은 늦게 돌아오려는 것 같다.

입맛을 다시던 제비는 지붕에 풀쩍 올라 바람을 쐬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서서히 정신도 맑아지고 잠도 깬다.

모처럼 좋은 날씨에 집에만 있으려니 좀이 쑤신다.

-그래, 모처럼 외출이나 해보자냥!

짧게 외친 제비가 담장으로 지붕 위에서 풀쩍 뛰어올랐다.

빵빵. 빠아앙.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던 제비는 어느새 번잡한 도심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거리마다 사람들은 분비고,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늘어서 있다.

-먹음직스러운 풍경이다냥.

시내를 내려다보던 제비는 군침을 삼켰다.

제비에게 도심의 풍경은 마치 과자로 지어진 놀이동산과 같았다.

달리는 자동차도, 곳곳에 있는 가로등이나 구조물도 모두 질 좋은 쇠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주인이 먹으라고 준 쇠가 제일 좋다냥.

장채원은 제비가 항상 아쉽지 않도록 좋은 쇠를 많이 간식통에 쌓아놓는 편이었다.

그건 제비를 위해서기도 했지만, 마을과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질 좋은 쇳덩이만 보면 환장하는 제비가 아무거나 집어 먹었다간, 도시에 큰 재해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래서 주인이 TV를 보는 걸 좋아하는구냥.

고즈넉한 도시 풍경을 구경하던 제비는 아예 몸을 깔고 느긋하게 앉았다.

그러다 문득 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의 표정에 눈길이 갔다.

양손으로 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의 표정은 수면에 비친 햇살처럼 반짝이고 아름다웠다.

제비는 그 미소가 반짝이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바로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았기 때문이다.

-부럽지 않다냥. 이제 나도 가족이 있다냥.

과거, 이곳저곳을 떠돌며 홀로 지낼 때완 다르다.

늘 다정하게 대하지만 때때로 엄한 주인, 장채원이 있다.

그녀는 언제나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여주고, 또 쓰다듬어 주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또 주변에 재밌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격머리가 좀 나쁘지만 술을 잘 먹는 천마, 유일하게 말이 잘 통하는 무명, 가끔 보는 김찬원 할배, 무뚝뚝한 고은진, 그 모두가 가족이라 할 수 있었다.

킁킁.

그런데 어디선가 묘한 냄새가 콧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사막에 내리는 비의 냄새처럼 건조하면서도 눅눅한 향기다. 제비는 이 냄새를 어디에선가 맡아본 적이 있다.

-어디서 맡아본 냄새다냥.

눈을 껌벅이던 제비는 결국 냄새를 따라 천천히 몸을 이동했다.

휘익. 타악.

건물 사이로 움직이는 제비의 그림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쾌속했다.

누군가 멀리서 제비의 모습을 봤다면 하얀 번개가 건물 사이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타악.

냄새를 따라 달려온 제비가 도착한 곳은 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한 한적한 공원이었다.

-이상하다냥?

겉으로 보기에는 시내에 있는 여느 공원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하지만 코끝으로 느껴지는 기묘한 향기는 더욱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때 제비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입구 쪽에 우뚝 서 있는 경비원이었다. 시내 공원에 경비원이 있는 것도 이상하다. 왜 저곳을 지키고 있는 걸까?

-뀨웅?

제비의 동그란 눈이 번뜩였다.

저 경비원은 인간이 아니다. 평범해 보이지만 정지된 눈동자에선 요력이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기운이 예사롭지 않은 걸 보니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요괴 같았다.

어째서 평범한 공원 앞을 지키고 있는 걸까? 왜 저토록 엄중한 자세를 유지하는 걸까?

지지지직.

그때 공원 입구 부근에서 미세한 불꽃이 튀었다.

그것은 평범한 인간들은 볼 수 없는, 강력한 요력이 공기 중에 방출될 때 나오는 불꽃이었다.

-뀨우.(요계의 입구였구나.)

요계.

이 세계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그 모습과 꼭 닮아 있는 요괴와 대지유신이 살고 있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 살고 있기도 했지만, 아예 다른 차원에서 사는 존재들도 있었다.

특히 상급요괴들은 씨족처럼 한 종족이 모여 사는 경우가 많다. 대신에 종족이라는 말 대신 일족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뀨우.(저기는 어떤 곳일까냥.)

균열이 생긴 틈을 바라보던 제비는 호기심이 돋았다.

한 종족이 무리 지어 사는 일족들의 마을일까? 아니면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족들이 섞여 살아가는 요계도시일까?

-뀨!(심심한데 한번 가보자냥!)

결심을 한 제비는 주위를 둘러보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작은 쓰레기 봉지 하나를 몸에 둘렀다.

그리고 경비원의 눈을 피해 조심조심 앞으로 이동했다.

“…….”

경비원은 상급요괴였으나, 몸을 자유자재로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데다 동작이 빠른 제비를 알아채진 못했다.

쓰레기를 몸에 뒤집어쓴 채 이리저리 움직이던 제비는 경비원의 눈을 피해 균열의 틈으로 쏘옥 이동했다.

슈우.

균열의 틈을 지나자 안개로 뒤덮인 길이 나왔다.

빠르게 달려 안개의 길을 지나치자, 아름답게 반짝이는 마을의 풍경이 보였다.

마을 건물은 철과 콘크리트는 전혀 쓰지 않고, 오직 오래 묵은 나무로만 지어져 있다.

건물 사이사이엔 호박색 등이 매달려 있었고,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되어 있는 마을 거리엔 다양하게 생긴 요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뀨우(와아.)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어 있는 마을을 내려다보던 제비가 탄성을 내었다.

도심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고즈넉하고 푸근한 풍경이다.

요괴들이 인간의 모습이 아닌 자연스러운 본 모습을 드러낸 채 돌아다니고 있었고, 상점에는 인간계에선 볼 수 없는 신기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꾸우! (구경거리가 많아서 좋다냥!)

제비는 눈을 반짝이며 다채로운 요계의 풍경을 실컷 구경했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인간과는 달리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저 작은 족제비 모양의 작은 요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후우!(실컷 놀았다냥).

실컷 마을을 구경한 제비는 좁은 골목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이렇게 즐거운 곳이 있을 줄 알았다면 집에만 있지 말고 계속 나들이를 할 걸 그랬다.

-?

그런데 골목 끝자락에서 까만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다른 요계로 갈 수 있는 또 다른 균열이 보이는 것 같았다.

-뀨우(으음.)

멀뚱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비는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공간의 균열 속으로 뛰어들었다.

-뀨?

안개 속을 통과한 제비는 까만 눈을 반짝였다.

놀랍게도 이곳은 인간계의 모습과 별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심지어 거리에 돌아다니는 요괴들도 인간의 모습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인간과 완전히 흡사했다.

-꾸우?(뭐야, 여긴. 도로 인간계로 왔나.)

제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인간계라고 하기엔 무언가 이상하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움직이는 마네킹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늘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조금 이상하다냥.

분명 살아 있는 요괴들이 돌아다니는데, 도심의 풍경은 감정 없는 기계들이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저건 뭐다냥?

마을을 살펴보던 제비는 저 멀리 보이는 주택단지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피어오르는 듯한 환상을 보았다.

하지만 제비는 불가사리다. 인간처럼 헛된 환상을 보는 일은 없다.

슈욱.

한걸음에 주택단지 부근으로 달려간 제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어느 건물의 반지하 창가에서 시큼한 냄새와 함께 까만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

천천히 다가간 제비는 굵은 쇠창살 같은 방범창이 설치된 반지하 창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곳에는 지저분한 옷을 입고 있는 어린아이가 보였다.

대략 열 살 정도 되었을까?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얼굴에는 때가 검댕처럼 묻어 있었고 하얀 옷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쓰윽쓰윽.

아이는 걸레를 들고 거실을 구석구석 닦고 있었다.

바닥은 부서진 집기와 유리들이 가득했지만, 청소도구가 없는지 아이는 걸레 하나로 열심히 또 닦았다.

지저분한 거실을 청소한 아이는 화장실 한편에 쌓여 있는 빨래 더미로 다가갔다.

그리고 물을 틀고 쭈그린 채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콜록콜록.”

차가운 물로 빨래를 하던 아이는 힘들었는지 연신 기침을 했다.

제비가 자세히 보니 안색이 창백하고 병색이 완연했다.

“으으.”

비틀거리던 아이는 결국 빨래를 멈추고 구석진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온갖 집기가 쌓여 있는 창고였는데, 한켠에 지저분한 얇은 이불과 베개가 놓여 있었다.

“으으으.”

아이는 열이 나는지 끙끙대며 눕더니 얇은 이불로 몸을 감쌌다.

-괜찮은 거냥?

보다 못한 제비는 울음을 터뜨리며 아이가 누워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어?”

이불 속에 웅크려 있던 아이는 하얀 털을 가진 제비를 보자 신기한 듯 큰 눈을 깜빡였다.

“고, 고양이?”

-고양이가 아니라 난 제비다냥!

제비가 울음을 내었지만 아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듯 빙그레 미소 지었다.

“너도 춥니? 들어올래?”

아이의 앙상한 손을 바라보던 제비는 잠시 고민했다.

-음…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니 특별히 안아주겠다냥.

장채원 외에는 털끝 하나 허락하지 않는 제비였지만, 특별히 아이의 몸에 살그머니 안겼다.

부드럽고 따뜻한 제비의 몸을 꼭 끌어안은 아이는 행복한 듯 미소 지었다.

“따뜻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냥? 부모님은 없는 거냥?

안겨 있는 제비가 물었지만, 아이는 어느새 쌔근쌔근 잠이 들어 있었다.

-곤란하다냥…….

아이의 옷은 지저분했지만 좋은 냄새가 풍겼다. 마치 주인, 장채원처럼 따스하고도 부드러운 품이었다.

한껏 아이의 냄새를 맡던 제비도 어느새 잠이 들었다.

철컥. 띠링.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 녀석, 빨래를 쌓아두고 어디 간 거야?”

“설마 또 자빠져 자는 거 아냐?”

짜증이 뒤섞인 중년 남녀의 목소리다.

그 순간 자고 있던 아이는 번쩍 눈을 떴다.

“어, 어서 가야 해.”

벌떡 일어난 아이는 창문을 열고 잠들어 있는 제비를 황급히 바깥으로 내보냈다.

-응? 뭐다냥?

졸고 있던 제비는 영문도 모르고 바깥으로 떠밀렸다. 그 순간,

“너 이 새끼.”

방문이 벌컥 열리고 험악하게 생긴 중년남성이 아이를 보며 소리쳤다.

“집 좀 청소하라고 했더니, 자빠져 자고 있어?”

“죄, 죄송합니다.”

아이는 마치 어른처럼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때, 화장실을 살펴보던 여성이 짜증스런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이게 뭐야? 수도꼭지가 열려 있잖아?”

아이가 쓰러지듯 나온 터라 수도꼭지를 꽉 잠그지 않은 것 같았다.

“이 게으른 자식! 물세를 네 녀석이 낼 거야?”

중년여성의 말에 남성이 아이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소리와 함께 아이가 쓰러지자 남성은 발로 또다시 아이를 걷어찼다.

“쓸모없는 녀석! 뭐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어! 기껏 죽이지 않고 살려뒀더니!”

아이는 폭력에 익숙한 듯 매서운 발길질에도 비명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꽉 엎드려 있었다.

-이 녀석들…….

바깥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제비는 전에 없던 분노가 솟구쳤다.

가끔 제비는 장채원과 함께 TV에서 어린아이를 학대한다는 뉴스는 본 적이 있다.

그것만으로 분노에 몸을 떨었건만. 실제로 학대 현장을 목격하게 되자 제비는 전에 없던 살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뭐야? 저 고양이는?”

창가에서 낮게 으르렁대는 제비를 발견한 남성이 눈을 부릅뜨자 여성이 코웃음을 쳤다.

“균열의 틈을 타고 왔나 보지. 고양이들은 가끔 그러잖아.”

“죄, 죄송합니다.”

발길질이 멈추자 아이가 몸을 떨며 빌었다.

하지만 중년남성은 그 모습을 보자 또다시 배에 발길질을 했다.

“시끄러! 닥치고 있어!”

-크르르르.

분노에 찬 제비의 눈에선 하얀빛이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네 녀석들은 살아갈 가치도 없다냥.

지지지지직.

분노에 찬 제비의 몸에서 하얀 번개가 흘러나오는 것을 본 중년여성이 소리쳤다.

“저거 고양이가 아니라 신수예욧!”

“신수?”

“우릴 공격할 것 같은데? 우, 우선 도망가요!”

-용서하지 않겠다냥!

제비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자, 두 중년 남녀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현관문까지 닫고는 잽싸게 어디론가 도망갔다.

빠르고 민첩한 동작을 보니, 확실히 인간의 탈을 썼을 뿐 중년 부부는 요괴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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