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세이프 지역의 불법도박장 (2)
“응? 천마 님?”
천마의 막강한 위용을 떠올린 유은호는 잠시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이내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천마 님이라고 해도 무슨 수로? 이건 몬스터 때려잡는 게 아니잖아.”
“아니에요. 천마 아저씨는 절대 지지 않을 거예요.”
팀원들은 잠시 고민했다.
한호조의 말대로 지금까지 천마는 거의 무적에 구가하는 승률을 갖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박 따위에 질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무슨 수로? 저 양반… 도박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데.”
“걱정 마세요.”
초홍의 말에 한호조가 무명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씩 웃었다.
“얼마 전에 무명이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거든요.”
일요일 오전.
옥탑방 평상 위에서 한창 운공 중이던 천마의 앞으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바로 유은호였다.
“안녕하세요, 천마 님.”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유은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서 죄송해요.”
“뭐냐.”
눈을 뜬 천마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유은호가 두 손을 모으며 활짝 미소 지었다.
“저어, 합법적으로 저 건물을 철거할 수 방법이 있는데요.”
“건물?”
“네에.”
유은호는 차들이 빽빽하게 세워진 각성자 상점을 가리키며 빙그레 웃었다.
* * *
각성자 상점의 지하 입구.
불법도박장의 입구를 지키던 가드가 금색 카드를 내민 유은호에게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증받으신 VIP 본인이 아니시면 못 들어옵니다.”
“그, 그래요?”
예상치 못한 난관이다.
천마를 슬쩍 바라보던 유은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 물주신데. 어케 안 될까요?”
“안 됩니다.”
“좀 부탁드려요. 저 아시잖아요?”
“그래도 안 됩니다.”
“아니, 그러지 말고…….”
그때, 지하의 입구가 열리며 질 좋은 양복을 입은 지배인이 걸어 나왔다.
입구가 소란스러워지자 내용을 전달받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유은호 님.”
“아, 그게 오늘은 돈이 떨어져서 물주를 좀 데리고 왔는데…….”
유은호는 또다시 굽신거리며 사정을 설명했다.
지배인은 말없이 유은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넘치도록 잘생겼지만 어딘가 눈빛은 불안하고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짙게 그려져 있다.
전형적인 도박중독자의 모습이다.
‘흐음.’
실제로 유은호는 도박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것을 파악한 지배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주시라잖냐. 손목에 띠 채우고 열어드려라.”
천마의 게임이 시작되었다.
도박자금은 5천만 원. 유은호가 아끼던 오토바이를 팔아서 마련한 돈이다.
보다 못한 팀원들이 돈을 마련해 준다고 했지만, 유은호의 결심은 확고했다.
-제가 싼 똥은 제가 치웁니다.
…조금 더 고급스럽게 표현했으면 팀원들은 감동을 먹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도박에 중독된 탓에 유은호의 어휘마저도 싼마이로 변해 버린 상태였다.
“천마 님. 뭐부터 하실 건가요?”
유은호의 말에 도박장을 둘러보던 천마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주사위.”
주사위 게임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천마가 선택한 것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돈을 딸 확률이 높은 주사위 홀짝게임이었다.
“돈은 얼마나 걸까요?”
유은호의 물음에 천마는 짧게 대답했다.
“전부.”
게임은 시작되었고 천마는 연거푸 승리했다.
어느새 5천만 원이었던 보유금이 3억이 되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모두 천마를 따라 돈을 걸기 시작하자, 주사위를 던지는 딜러가 난색을 표했다.
“저, 천마 님. 다른 게임을 하는 건 어떨까요?”
왠지 주변 CCTV가 천마를 주시하는 것 같다.
딜러 눈치를 보던 유은호의 제안에 천마가 고른 게임은 주사위 족보게임이었다.
3개의 주사위를 던져 족보가 높은 사람이 이기는 단순한 게임이었다.
달칵달칵달칵.
딜러가 열심히 주사위를 굴렸지만 천마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심지어 은밀한 장치를 통해 주사위를 조작했는데도, 통하지 않았다.
“재밌는 짓을 하는군.”
딜러가 주사위를 조작할 때마다 천마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게다가 천마가 주사위를 돌리면 언제나 1이 세 개. 연달아 승리한 탓에 어느새 판돈은 6억이 넘었다.
“저, 저 자식…….”
CCTV로 지금까지 모든 걸 지켜보던 지배인의 안색이 허옇게 변했다.
“물주를 데려온 것이 아니라 타짜를 데려왔잖아?”
타짜. 전문도박꾼을 뜻하는 말로 엄청난 기술과 재간을 자랑한다.
화면에 비친 천마의 얼굴을 보니, 세상 단맛, 쓴맛, 똥맛까지 다 먹어본 타짜가 분명했다.
“스킬을 쓰는 것 같진 않고… 좋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이를 꽉 지배인이 음흉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곳은 불법도박장이다. 즉, 손님의 돈을 언제든 빨아 먹을 수 있는 타짜는 항시 대기 중이었다.
“고객님.”
어느새 도박을 하는 천마의 곁으로 지배인이 웃으며 다가왔다.
“판돈도 두둑이 챙기셨는데, 이제 VVIP룸에서 크게 즐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크게?”
“그렇습니다.”
음흉한 미소를 삼킨 지배인의 눈동자가 반달처럼 접혔다.
“판돈도 커졌는데 룸에서 섯다 한판 하시죠.”
섯다. 화투패 두 장으로 받아 족보로 이기는 게임.
단순하지만 배팅에 따라 막대한 돈이 오갈 수 있는 게임이다.
“섯다요?”
유은호가 되묻자 지배인이 씩 웃었다.
“네, 빠른 시간에 큰돈을 벌 수 있고, 스릴도 있죠.”
사실 섯다는 첨부터 정해놓아야 하는 것이 많은 게임이다.
광땡 인정 여부, 멍구사 인정 여부, 암행어사 인정 여부, 땡잡이 vs 장땡 등 족보에 대한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섯다가 뭐냐.”
천마의 물음에 유은호가 입을 벌렸다.
“아, 섯다 모르세요?”
“모른다.”
“잠시만요.”
걸음을 멈춘 유은호는 휴대폰을 켠 채 열심히 게임 방법과 족보를 알려주었다.
그 모습을 보던 지배인이 속으로 비웃음을 머금었다.
‘지랄. 초짜처럼 보이려고 별짓을 한다 이거지?’
하지만 저런 유치한 짓에 속을 타짜들이 아니다.
지배인은 복도에 우두커니 선 채 두 사람이 하는 짓을 잠자코 보고 있었다.
“쉽군.”
천마의 기억력은 가히 천재적이다. 단숨에 모든 족보를 외운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보지.”
도박장 가장 안쪽에 설치된 룸은 고급스러웠지만, 은밀했고 어두웠다.
둥그런 테이블에는 붉은 화투장이 세워져 있었고, 세 명의 도박꾼들이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남성, 뻐드렁니가 튀어나온 남성. 그리고 매혹적인 용모를 가진 여성이 앉아 있었다.
유은호는 참가하지 않기 때문에 테이블과 멀리 떨어진 소파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깨끗이 칩시다.”
선글라스를 낀 남성이 나직이 말했다.
“괜히 구라치다 뽀록 나면 손모가지 날아가붕께.”
아래 보이는 뺨엔 칼자국이 있고, 목소리는 살기가 번들거린다.
하지만 천마는 오히려 피식 웃었다.
“마음에 드는 규칙이군.”
“그 짝 손목… 조심해야 할 껀디.”
“본좌의 손목을 걱정하기 전에, 혀를 조심하라. 잘못 놀리면 뽑힐 수 있으니.”
두 사람의 살벌한 대화가 이어지자 뻐드렁니 남성이 탄성을 내며 말했다.
“계속 주둥이 털 겁니까? 빨리빨리 게임이나 합시다.”
“주둥이?”
천마가 눈을 번뜩이자 뻐드렁니 남성이 시선을 피했다.
“하긴, 노름도 목숨 걸고 해야지. 옳은 말씀입니다.”
패가 돌려졌다.
천마는 패를 보더니 6억에 달하는 칩을 모두 밀었다.
“전부 걸지.”
도박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 심리, 운, 말빨.
그리고 천마는 이 모든 세 가지를 다 갖고 있었다.
“거, 첫판부터 장난질이오.”
선글라스를 쓴 도박꾼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천마가 비웃음을 머금었다.
“쫄리면 뒈져라.”
“흐흐흐흐.”
선글라스는 낄낄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놔, 이 양반 맘에 드네. 그려, 첫판은 죽어주지.”
“저, 저도 죽었습니다.”
“나도요.”
마지막으로 여성이 맑은 목소리를 내자 삭막했던 공기가 조금은 완화된 것만 같다.
“재밌군.”
모처럼 천마의 입가에는 미소가 흘렀다.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는 대마인으로 알려졌으나, 사실 그는 수많은 인간들의 군상을 관찰하는 것에 무한한 즐거움을 느끼는 독특한 인물이었다.
“본좌는 3억을 걸지.”
게임이 재개되자 천마가 먼저 배팅을 시작했다.
3억. 천마가 가지고 있는 돈의 절반이다.
좋은 패를 잡고서 입질을 하려는 걸까? 아니면 또 허세를 부리는 걸까?
천마의 알 수 없는 배팅에 세 명의 도박꾼들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긴장했군.’
천마는 눈빛뿐만 아니라, 손가락의 움직임만 보고도 심리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세 사람은 모두 잔뼈 굵은 도박꾼이었으나, 천마의 묘한 기세에 본능적으로 모두 위축된 상태였다.
“……!”
그때 여성은 천마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윙크하며 매혹적인 미소를 보냈다.
‘지금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뻐드렁니가 패에 수작질을 부렸다.
“좋습니다. 3억 받고, 3억 더.”
패를 좋은 것으로 바꾼 뻐드렁니가 자신 있게 외치자, 선글라스와 여성은 모두 죽었다.
천마는 덤덤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받지. 본좌는 삼 땡이다.”
“자, 팔 땡입니다.”
뻐드렁니가 패를 보이더니 씩 웃으며 칩을 가져가려 했다.
턱.
그런데 갑자기 천마가 뻐드렁니의 팔을 잡았다.
“걸렸군.”
“뭐, 뭐요?”
“네 손바닥 아래 화투패 한 장이 더 있다는 거에 본좌의 손목을 걸지. 넌 뭘 걸 거냐.”
이 새끼, 어떻게 알았지? 완전 타짜 아냐?
“무슨 헛소리…….”
우두둑.
비명과 함께 천마가 손목을 강제로 돌리자 뻐드렁니가 숨겨둔 화투패가 드러났다.
“이게 뭐냐.”
“죄송합니… 아아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처절한 비명 소리가 룸에 울려 퍼졌다.
천마가 손목을 쥔 채 그대로 부숴버린 것이다.
“사기를 치다 걸렸으니, 이 돈은 본좌의 것이군.”
칩을 모두 챙긴 천마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자, 계속하지.”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천마의 판돈은 50억이 넘었다.
질 때는 작게 지고, 이길 때는 크게 이긴다. 그제서야 타짜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심리전? 말빨? 운?
그 모든 건 이 괴물딱지 같은 자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기세. 오직 기세.
하늘을 찢어뜨리고 땅을 부수는 듯한 무시무시한 기세 때문에, 그들은 실력을 전혀 발휘할 수 없었다.
“계속 죽을 거면 오늘은 이만하지.”
천마는 지루하다는 듯 칩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타짜들의 눈빛이 변했다.
-이대로 놔두면 우리는 파산이다.
“좋소. 이제 진짜로 시작해 보지.”
선글라스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패를 돌렸다.
‘싸늘하다. 어제 먹은 떡국이 배 속에 올라와 목구멍에 막힌다.’
패를 돌리는 선글라스가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걱정 마라. 어차피 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선글라스는 음흉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그가 끼고 있는 손목띠는 가짜였다. 그리고 선글라스에는 특수 코팅이 되어 있어 스킬을 발휘해도 빛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다.
‘김 마담에게 한 장, 다시 나 한 장. 다시 저 시뻘건 눈동자를 가진 떡대 새끼에게 한 장…….’
“흐흐흐흐.”
그런데 마지막 패를 받자 천마가 씨익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살벌하여 선글라스는 순간 멈칫했다.
‘이 새끼. 모두 다 알고 있잖아?’
저 시뻘건 새끼는 타짜가 아니다.
저놈은 도박의 신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정밀한 기계로도 감지할 수 없는 밑장빼기 스킬을 감지할 수는 없다.
“수작은 다 펼쳤나.”
패를 내려다보던 천마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본좌는 판돈을 전부 걸지. 네놈, 패를 까라.”
번들거리는 천마의 미소를 마주한 선글라스는 이를 깨물었다.
구라를 친 걸 걸렸음에도 패를 까라니? 분명 필승의 패를 가지고 있음에 분명했다.
‘여기서 지면 타짜 인생은 끝이다.’
결국 방법이 없던 선글라스는 천장에 설치된 CCTV를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 신호를 보낸 것이다.
“좋아, 패를 까지. 잘 보시오.”
선글라스가 화투패를 들어 올리는 순간,
철커덕.
갑자기 천마와 유은호가 앉아 있는 곳에 뾰족한 침들이 튀어나왔다.
“으윽.”
스킬과 육체각성이 모두 봉인된 유은호는 비명도 지를 새 없이 뾰족한 침이 피부에 달라붙었다.
“후우.”
제압된 천마와 유은호의 모습을 바라보던 선글라스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아오, 이 새끼. 게임 엿같이 하네.”
“어디서 굴러온 타자야, 정말.”
그러자 마주 앉아 있던 여성도 안심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찔린 침은 바늘 수갑보다 열 배는 강력한 신경차단 물질이 들어 있다.
설령 1급 각성자라고 해도 오 분 동안은 힘을 쓰지 못한다.
“너, 이 새끼. 패가 뭐길래 까라는 거야.”
궁금함을 참지 못한 선글라스는 가만히 앉아 있는 천마의 화투패를 열어보았다. 2끗이었다.
“이 미친 새끼. 두 끗으로 30억을 태워?”
“전국구 타짜였어, 이 새끼.”
여성의 말에 선글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계속 도박을 진행했다면? 자신은 기세에 눌려 패를 까지 못고 승부를 포기했을 것이다.
끼익.
그때 문이 열리고 지배인이 들어와 조심스럽게 선글라스 남성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놈들, 어떻게 할까요?”
“두 새끼. 불구로 만들고 버려. 그리고 이 도박장은 폐쇄한다.”
유은호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보니 이 선글라스 도박꾼이 이곳 도박장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무림이나 이곳이나 결말은 같군.”
그때 낮게 중얼거린 천마가 덤덤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기도박이 안 되면 깽판을 치는 건 말야.”
으지지직.
몸에 달라붙어 있던 침을 모조리 부숴버린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어떻게?”
그 모습을 본 지배인이 입을 벌리자, 선글라스가 테이블 아래에 있는 비밀 버튼을 눌렀다.
탁.
버튼을 누르자마자 눈빛이 살벌하고 덩치가 큰 가드들이 룸 안으로 몰려들었다.
퍼억. 쿵. 뚜쉬뚜쉬!
하지만 몰려오는 족족 얻어터지는 건 가드들이었다.
때때로 독특한 스킬들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번갯불처럼 쏟아지는 천마의 주먹 한 방에 모두 피떡이 되어 나가떨어졌다.
“천, 천마 님. 이제 그만하시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은호가 재빨리 일어나 그의 앞을 막았다.
아무리 우스꽝스러워도 그 역시 특수대응팀의 일원. 능력이 모두 봉해진 상태에서도 파고든 침을 모조리 막아낸 것이다.
“본좌의 앞에서 사기도박을 하다니.”
본좌는 엄한 눈빛으로 말했다.
“무림이었다면 손발을 잘랐을 테지만… 운이 좋은 줄 알아라.”
피떡이 된 가드들과 겁에 질려 움직이지도 못하는 타짜와 지배인.
그들을 보며 유은호는 환하게 웃었다.
전리품. 무려 테이블엔 100억에 가까운 돈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부자야, 부자. 예에!’
헤벌쭉 웃은 유은호가 테이블에 있는 돈을 쓸어갈 무렵,
띠리리링.
유은호가 귀에 장착한 골전도 이어폰에서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초홍의 전화였다.
-은호, 거기 있니?
“네, 네에.”
-얼른 유물만 가지고 피해. 불안해서 우리가 불법 하우스로 신고 넣었으니까.
“네에? 신고요?”
-천마 씨가 실패하면 말짱 꽝이잖아? 만재 씨 유물 못 찾으면 어떡해.
“뭐라고요?”
유은호는 울고 싶었다. 다 이겼는데 신고를 왜 해?
-곧 있으면 협회와 경찰들이 들이닥칠 거야. 어서 빠져나와. 유물 꼭 챙기고, CCTV 없애 버리고.
“저흰 이겼는데요. 저희 합법적으로 승부에서 이겼…….
-그래서 뭐. 거기 있는 돈이라도 쓸어가지고 오게? 빨리 안 나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무슨 소리냐.”
천마의 물음에 유은호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경찰이에요. 아무래도 자리를 피하셔야 할 것 같아요.”
“경찰?”
“네. 여길 폐쇄하려고요.”
그러자 천마는 만족스런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군.”
* * *
-미등록 각성자를 조직원으로 둔 도박조직이 검거되었습니다.
일주일 전, 실드경계지역의 어느 낡은 건물을 개조한 일당들은…….
특수대응팀 빌라.
특수대응팀과 한호조는 4층의 거실에 모여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군.”
스크린에 뜬 뉴스를 보던 한만재가 유은호를 무섭게 노려봤다.
“너, 임마. 담부터 또 도박 같은 걸 하면 당장 짤릴 줄 알아!”
유은호는 고개를 숙인 채 입만 내밀 뿐이었다.
“그러길래 내가 안 한다고 했잖아요. 팀장님이 괜히 시켜가지고선.”
“뭐? 그걸 말이라고 해? 조사하라고 보냈지, 도박하라고 보냈냐?”
“됐어요. 은호 아니였음 저놈들은 아마 크게 돈을 털어먹고 유유히 사라졌을 거예요.”
초홍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블랙 마켓은 아니었으나, 각성자를 낀 도박조직을 잡아낸 셈이다. 결과적으로 나쁜 일은 아니었다.
“은호 형. 천마 님은 도박 잘하나요?”
밥을 먹던 한호조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묻자, 죄지은 강아지마냥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유은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아, 물론이지. 처음에는 주사위를 했는데… 그놈들이 수작을 부리는 걸 알고서는…….”
다시 기운을 차린 유은호는 천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