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96화 (196/285)

제196화. 세이프 지역의 불법도박장(1)

세이프 경계지역.

인적 하나 없는 거리, 낡은 건물들이 늘어선 이곳은 늘 황량했고 또 고요했다.

일요일 오전, 천마는 이 잔잔하고 쓸쓸한 거리의 공기를 벗 삼아 해가 뜰 때까지 운공을 하고 있었다.

불상이 된 것처럼 새벽부터 아침까지 평상에 앉아 있는 천마의 얼굴은 흔들림 없이 잔잔했다.

시끌벅적한 소음이 들려올 때까지.

-부르릉. 끼익. 웅성웅성.

차량의 배기음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어디선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으음.”

귓가로 몰려드는 소음을 견디다 못한 천마는 결국 운공을 중단했다.

“뭐냐.”

벌떡 일어선 천마가 주위를 둘러볼 무렵,

[아, 일어나셨습니까, 천마 님.]

“어디서 들려오는 소음이냐.”

평상에 앉아 있던 무명은 천마의 말에 옥탑 난간에 선 채 멀리 세워진 건물을 가리켰다.

[상점이 오픈했습니다.]

“상점?”

[네. 각성자 상점입니다. 상당한 할인행사 중이군요. 심지어 유물도 즉시 고가로 매입해 준다고 합니다.]

탑 난간으로 걸어간 천마는 눈을 가늘게 떴다.

경계지역 초입으로 들어가는 길목, 비어 있던 낡은 상가 중 하나가 어느새 새 건물로 바뀐 채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주차장엔 자동차들이 꽉 차 있었고, 건물 부근엔 광고문구가 적힌 간판과 팻말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언제 저 건물을 수리했나. 아무런 조짐도 없었는데.”

[천마 님이 운공에 집중하실 무렵, 건축업체가 3D 프린트 기계를 사용해 상가의 겉면을 보수하였습니다.]

“새벽녘에 건물 보수를 끝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건물을 짓거나, 보수하는 건 건설용 3D 프린터 하나면 뚝딱 끝나니까요.]

천마는 침음을 내었다.

“저런 기계가 있는데, 어째서 내부 시공 같은 건 아직도 사람을 시키는지 모르겠군.”

[내부 인테리어 시공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니까요. 인간의 움직임과 미적 감각을 완벽히 재현해 낼 수 있는 안드로이드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인테리어 시공일은 인간들이 직접 해야 할 겁니다.]

-웅성웅성.

무명의 설명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상점 내부론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오전부터 연신 북적이는 걸 보니, 하루 종일 사람들이 몰려들 기세다.

거리로 따지면 수백 미터 정도 되는 거리지만, 귀가 예민한 천마에겐 집 앞에서 떠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저대로 놔둘 순 없다.”

[네?]

멀리 보이는 각성자 상점을 내려다보던 천마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저대로 놔두면 평온했던 본좌의 거처가 깨질 것이 아니냐.”

주먹에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를 만들어낸 천마가 송곳니를 드러내었다.

상점을 무력으로 박살 내겠다는 뜻 같았다.

[절대로 안 됩니다.]

천마의 속내를 짐작한 무명이 양손을 내저었다.

[그런 짓을 했다간 저희도 이 건물에서 쫓겨날 겁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놔두란 말이냐?”

[어차피 실드경계지역 외곽에 지어진 상점일 뿐입니다. 지금이야 오픈 행사 때문에 몰려든 것뿐, 시간이 지나면 손님이 없어 금세 망할 겁니다.]

“흠.”

짜증스런 침음을 낸 천마는 몸을 홱 돌려 옥탑방으로 들어갔다.

무명이 말없이 난간에 쪼그리고 있을 무렵, 건물 아래에서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한호조였다.

“무명아! 뭐 해?”

그동안 여러 일을 겪었던 무명과 한호조는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다.

특히 천마가 운공을 할 동안, 무명은 따로 한호조와 이야기를 종종 나누기도 했다.

[호조 군.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한호조를 내려다보던 무명이 팔다리를 뽑고는 난간에서 손을 흔들었다.

* * *

그 시각, 특수대응팀 빌라 4층 회의실 내부.

커다란 스크린엔 얼마 전에 생긴 각성자 상점의 건물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좀 이상해.”

초홍이 가느다란 눈썹을 찌푸리자, 유은호가 물었다.

“대체 뭐가요.”

“각성자들조차 살지 않은 경계지역에 각성자 상점이 생긴 것도 이상한데, 사람들이 이상하리만큼 붐비잖아. 던전 입구 근처나 번화가만 나가도 각성자 상점은 많은데.”

“안 가보셨어요? 오픈 세일 중이잖아요. 유물을 엄청 고가로 매입해 주기도 하고요.”

“오픈 세일을 한 달 동안 해? 그리고 유물은 막상 팔려는 각성자들은 안 보인다며.”

초홍이 입술을 깨물며 깊은 생각에 빠지자 한만재가 말했다.

“설마, 그때 그 일 때문에 그런 겁니까?”

“아무래도요.”

“그 일이라뇨?”

가만히 듣고 있던 유은호가 묻자 한만재가 신채영을 가리켰다.

“기억 안 나냐? 저번에 채영이, 스타디움 던전에서 암거래 시장에서 물건 산 뜨내기들 때문에 죽을 뻔했잖아.”

“아.”

그제야 유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 의료팀 호출 신호를 받고 달려간 신채영은 진짜 각성자들이 아닌, 암거래 시장에서 산 신분증과 무기로 무장한 가짜 각성자들과 마주쳤다.

그 때문에 히든몬스터, 랜드샤크가 던전에 나타나 목숨을 잃을 뻔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저 상점 말야. 각성자 상점이 아니라, 아무거나 다 몰래 판다는 ‘블랙 마켓’이 아닌가 의심돼.”

블랙 마켓.

던전에서 나오는 유물을 몰래 파는 암거래 시장과 달리, 블랙 마켓은 각성자 신분증뿐만 아니라, 히든몬스터 출현 조건, 불법 개조 무기와 나노봇까지 팔고 있다.

“근데 이상하지 않아요?”

가만히 있던 신채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블랙 마켓이 갈수록 커져가는데, 협회에선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는 거요.”

“무슨 말이야.”

유은호가 묻자 신채영이 차갑게 말했다.

“히든몬스터가 쏟아지는 것엔 그토록 신경 쓰면서, 어째서 블랙 마켓에 대해선 조사하지 않는 거냐고.”

“뭐, 짜증 나기는 한데, 협회가 뒷거래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겠냐.”

그러자 듣고 있던 초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채영이 말이 맞아. 블랙 마켓은 총기류 같은 불법 무기도 팔잖아. 그런 게 던전에 반입되었다간 저번처럼 히든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엔 던전이 불안정화될 수도 있는 사안이야.”

“협회에선 반응이 없다기 보담, 김수웅 실장이 조사를 하지 않는 거겠죠.”

한만재의 한숨 섞인 말에 회의실이 잠시 고요해졌다.

전략기획실장인 김수웅은 사실상 모든 부서를 손아귀에 주무르고 있는 협회의 2인자였다.

거기다 명목상 급격히 증가하는 히든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 잘나가던 특수대응팀을 단번에 이런 외곽으로 몰아넣고 건물까지 멋대로 지어주었다.

그런데 정작 던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블랙 마켓에 대해선 손을 놓고 있다니?

“그냥 우리가 하자.”

고심 끝에 초홍이 말했다.

“우리가 조사해 보자고. 저 녀석들, 블랙 마켓의 끄나풀인지 아닌지.”

“어떻게요?”

“그냥 단골이 되어서 동향을 살피는 거지. 거기 막상 유물을 파는 사람은 별로 없다면서?”

“유물을 팔아요? 우리가 특수대응팀이라는 건 몰라도, 협회 소속이라는 건 알 수도 있을 텐데요?”

“상관없어. 협회 소속 각성자 중엔 유물을 빼돌리는 비리 각성자들도 더러 있으니까. 의심받진 않을 거야.”

초홍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저 유물을 몰래 빼돌리는 양(아치)스러운 각성자인 척하는 거지. 그러면 입질이 오지 않겠어?”

“그렇긴 한데. 그걸 누가 해요?”

유은호의 물음에 초홍이 말했다.

“유물을 몰래 빼돌리는 양스러운 각성자인 척하는 거지.”

“그러니까 그걸 누가…….”

초홍의 시선은 유은호의 파란 눈동자에 빤히 고정되어 있었다.

* * *

이주 후.

“통장에 꽂힌 돈이 벌써 2억이 넘었네.”

각성자 상점 내부.

또다시 고가의 유물을 감정실로 넘긴 유은호가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초홍의 계획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은호는 열심히 유물을 팔았고, 새로 생긴 각성자 상점의 단골 고객이 되었다.

“확실히 팀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초홍이 모아둔 것부터 시작해 하나둘씩, 특수대응팀이 갖고 있는 유물은 다 팔았다.

특히 한만재가 아내와 함께 수집해 두었던 유물이 꽤나 고가로 매입되었고, 어느덧 유은호의 통장엔 2억 이상이 꽂혀 있었다.

“내가 양아치 취급을 받을 거라는 걸 예상하다니.”

그리고 매장에선 유은호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초홍의 말대로, 이 양스러운 미남은 그저 돈에 눈이 멀어 유물이나 몰래 빼돌리는 각성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끼익.

그때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동그란 금테안경에 콧수염을 기른 중년남성이 미소를 띠며 들어왔다. 이 상점의 지배인이었다.

열심히 유물을 팔다 보니, 어느새 직접 지배인과 거래를 하는 큰 손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유은호 님. 감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아, 네에.”

“늘 하던 대로, 등록한 계좌로 입금해 드릴까요?”

“그렇게 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반달처럼 눈을 접은 지배인이 두 손을 모았다.

“언제나 저희 상점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럼.”

유은호가 미련 없이 몸을 돌리자, 지배인이 나직이 말했다.

“유은호 님?”

“네?”

“지금까지 저희 매장에 상당한 유물을 팔아주셨더군요. 그 액수도 상당하고요.”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지배인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감사의 의미로 이걸 드릴까 하는데…….”

지배인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것은 반짝이는 미니 카드였다.

실제로 사용하는 카드는 아니었고, 금으로 코팅되어 반짝반짝 빛이 나는 모형 카드였다.

“이게 뭔가요?”

“저희 지하매장, VIP실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입니다. 그곳에 가면… 꽤 좋은 것들이 많거든요.”

‘미끼를 물었구나!’

내심 쾌재를 부른 유은호가 덤덤하게 물었다.

“좋은 것들이요?”

“한번 방문해 보시겠습니까?”

최대한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은 유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커다란 각성자 매장 안쪽에는 작은 통로가 있었다.

그 끝에는 아래층으로 가는 아주 좁은 계단이 설치되어 었었다.

달칵.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열자 묘하고 음습한 공기가 흘렀다.

낮은 조명과 어두운 재질로 되어 있는 바닥과 벽.

역시 이곳은 평범한 각성자 매장이 아니었다. 어쩌면 초홍의 말대로 블랙 마켓을 운영하는 자들일 수도 있었다.

“자, 이쪽입니다.”

다시 문을 열자 넓은 공간이 보인다.

그곳에는 크고 작은 테이블이 있었고, 곳곳에는 카드나 주사위, 혹은 화투 등을 펼쳐놓았다. 아예 작은 카지노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한켠에는 파친코 기계도 있었다.

‘응?’

기세등등하게 지하로 내려가던 유은호가 입을 벌렸다.

알고 보니, 이 각성자 상점 아래에 작은 도박장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어떻습니까? 한번 게임을 즐겨보시는 것이.”

유은호의 옆에서 미소 짓던 지배인이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즐기시다 보면 지금까지 유물로 버시는 돈보다도 훨씬 큰돈을 따실 수 있으실 겁니다.”

‘하아. 그런 거였나.’

유은호는 김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자들이 유물을 비싸게 매입하는 것은, 그 돈을 가지고 각성자들이 불법 도박을 즐기게끔 유도하는 미끼였던 것이다.

‘이거, 우리 소관이 아닌데.’

불법도박장의 처벌은 경찰이 하지, 협회가 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괜히 얼쩡거렸다간 같이 엮일 판이다.

“저는…….”

유은호가 곤란한 표정으로 손을 저으려 하는 찰나, 지배인이 뭔가를 내밀었다.

“이거 받으시죠.”

“이게 뭔가요?”“처음 오셨으니, 제가 개인적으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지배인이 내민 건 다섯 개의 동그란 칩이었다.

칩에는 100만 원이라는 단위가 적혀져 있었다. 인심 좋게 오백만 원의 칩을 공짜로 준 것이다.

“아니, 그러니까…….”

“그냥 한번 가볍게 즐겨보시죠.”

지배인은 빙긋 미소 짓고는 자리를 떠났다.

손에 든 둥그런 칩을 바라보던 유은호는 입맛을 다셨다.

‘뭐, 공짜니까 한번 해볼까.’

* * *

일주일 후, 특수대응팀 빌라 4층 상황실.

초홍과 팀원들은 오후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은호는 어딘가 모르게 집중을 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다.

안색도 왠지 창백해 보이고, 엉덩이엔 가시가 박혔는지 불편한 자세로 의자에 걸터앉아 있다.

“팀장님.”

“응?”

“은호, 또 사고 쳤나 본데요.”

의심을 넘어 확신에 찬 신채영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자 유은호는 고개를 돌렸다.

“뭔 소리야? 또?”

“모를 줄 알아. 그 표정, 또 무슨 사고를 쳐놓고 끙끙거리는 얼굴이잖아.”

말이 없는 대신 신채영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관찰력이 몇 배는 좋다.

그녀는 유은호의 사고 칠 때의 눈빛을 대번에 캐치한 것이다.

“정말이야?”

초홍의 물음에 은호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예요. 사고는요.”

라고 말은 하지만 눈에는 초점이 없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은호 형, 이제 돌려줘요.”

회의실 밖으로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호조의 목소리였다.

‘아차!’

그제서야 유은호는 한 가지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한호조, 저 쬐끄만 녀석이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희귀 스킬, 전능시야를 갖고 있다는 것을.

“호조야, 무슨 일이야?”

초홍이 의아한 표정으로 문을 열자 볼을 잔뜩 부풀린 한호조가 유은호를 가리켰다.

“은호 형이 제 저금통을 숨기고 안 돌려줘요.”

“저금통?”

“네, 며칠 전에 제 방에 들어와서 가져갔는데요. 그냥 장난인 것 같아서 말을 안 하고 기다… 우웁.”

혼신의 힘을 다해 고속 이동 스킬을 사용한 유은호가 번개같이 한호조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핫, 들켰네. 형이 장난친 거야, 장난.”

“그럼 빨리 돌려줘요. 이번 주 용돈 넣어야 한단 말이에요.”

“그, 그래? 형이 곧 돌려줄게.”

“언제요?”

“그… 오토바이가 팔리면.”

유은호의 말에 팀원들이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토바이?”

듣다 못한 한만재가 인상을 찌푸렸다.

“은호야, 그걸 왜 팔아? 네가 아끼는 거잖아.”

“에이, 고속 이동 능력자가 무슨 바이크예요. 그냥 뛰면 되지. 운동도 되고.”

라고 말을 하지만 그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야, 유은호.”

눈앞에서 벌어지는 촌극을 참다못한 신채영이 응징의 얼음칼을 뽑아 들었다.

“그냥 말할래, 아님, 리버스 힐링 팩터(세포 사멸) 맞고 말할래.”

도망가려다 한만재에게 붙잡혀, 신채영의 리버스 힐링 팩터에 고루고루 얻어맞은 유은호.

결국 무릎을 꿇은 채 그동안의 일을 낱낱이 자백했다.

“뭐어? 도박장?”

모든 이야기를 들은 초홍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그놈들이 블랙 마켓을 연 게 아니라, 불법도박장을 열었다고?”

“네에.”

“그런데?”

“아시다시피 도박장 그런 건 경찰의 업무지, 저희 협회 업무도 아니잖아요? 공짜 칩도 받았겠다, 그냥 가볍게 한판만 하고 나가려고 했는데…….”

재미로 시작된 게임 한판.

그것은 패배로 이어졌고, 오기가 발동한 유은호는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계좌를 열어 제대로 된 도박을 시작한 것이다.

“야, 임마. 그렇다고 네가 도박에 빠지냐?”

유은호의 이실직고를 들은 한만재가 엄한 눈초리로 말했다.

“그래서, 얼마 털렸어.”

“네?”

“유물 팔아서 모아둔 계좌 말아. 얼마 털렸냐고.”

“몽, 몽땅요.”

“2억 전부?”

“네.”

순간 한만재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 멍청아! 그러고도 니가 고속 이동 스킬 각성자냐?”

고속 이동 각성자 특성상, 스킬만 발휘해도 시간을 길게 쓸 수 있다. 한마디로 스킬로 사기도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그게요.”

유은호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바늘 수갑과 효과과 비슷한 띠를 가져다가 손목에 착용하고 게임을 시키더라고요. 정직하게 해야 한다면서.”

“뭐?”

“그뿐만 아니라, 진짜 카지노처럼 안구 관찰용 CCTV가 있어요. 억지로 스킬을 사용하려면 걸려서 전액 판돈을 몰수당해요.”

스킬을 사용하면 동공이 확장되고 눈동자에선 기이한 빛이 쏟아진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카지노에선 각성자 출입을 금지하고, 행여 있을 상황에 안구 관찰용 CCTV를 설치해 놓는다.

놀랍게도 이 불법도박장 역시 진짜 카지노와 같은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보야, 특수대응팀의 에이스라는 놈이 도박장에서 돈을 다 털려?”

신채영의 타박에 유은호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떡해? 난 도박 처음 해보는 거라고.”

“만재 오빠 유물은 어떡할 거야? 그게 어떤 건지 알면서 그랬냐고.”

“알아. 내가 찾아올 거야.”

“무슨 수로?”

유은호는 타오르는 눈빛으로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판돈을 크게 만들어서 이번에는 확실히…….”

광기와 집착으로 범벅되어 있는 눈빛을 보자 팀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미 유은호는 전형적인 도박중독자의 행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어쩔 수 없죠.”

생각에 잠기던 초홍이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만재 씨 유물은 반드시 회수해야 하니, 강제로라도 가져올 수밖에.”

“팀장님. 그건 안 됩니다.”

한만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 걸리면 저희가 협회에서 제명입니다.”

“안 걸리게 해야죠. 최대한.”

초홍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일을 시작한 건 저예요. 만재 씨는 저 때문에 사모님의 추억이 담긴 유물을 빌려준 것이고요.”

한만재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바늘 수갑까지 준비한 놈들입니다. 각성자들 상대로 불법도박장을 여는 놈들이 그만한 대비가 없을 리 만무합니다.”

사실 누구보다 유물을 되찾고 싶은 것은 한만재, 그 자신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팀원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방법이 있어요.”

그때 묵묵히 듣고 있던 한호조가 말했다.

“우리에겐 천마 아저씨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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