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화. 왕따와 플랜테리어 (2)
띠리리리.
알람 소리가 울리자 침대에 누워 있던 소유안이 눈을 번쩍 떴다.
후다닥.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있네?”
말리셔스는 여전히 화분 속에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꽃 주변으로 거미줄 같은 털이 뽀송뽀송 나 있었다.
<내 말, 안 믿었던 거야?>
“앗.”
말리셔스가 입술을 움직이며 대답하자 소유안은 엉덩방아를 쿵 찍었다.
“정말… 꿈이 아니었어?”
<꿈인 줄 알았어?>
“으응.”
소유안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니. 나 꽃에게 왕따 당한 거 고백한 거야? 지금까지 있었던 부끄러운 일을 모두?
“유안아, 일어나.”
그때 주방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나갈게요.”
다시 창문을 닫은 소유안은 심호흡을 했다.
모처럼 만에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학교에 도착한 소유안은 다시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어서일까?
학교에 도착하니 기분이 또 나빠졌다. 상쾌했던 공기는 다시 무거워지고 주변에 퍼져 있는 수많은 눈동자들은 모두 나에게 고정된 것만 같다.
‘상관없어. 오늘은 무언가 달라질 테니까!’
…는 개뿔. 오늘도 어김없이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등교 시간부터,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괴롭힘을 당했다.
반에는 괴롭히는 다섯 명의 일진을 제외하고도 열다섯 쌍의 눈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아무도 소유안을 향해 있지 않았다.
더러 마주친다 해도 돌아오는 건 비웃음과 경멸뿐이다. 저 많은 시선 중에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화장실.’
기나긴 점심시간에 괴롭힘을 덜 당하는 방법은 학교 화장실 구석에 박혀 있는 방법이다.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걸어가는 소유안을 향해 누군가 뛰어왔다.
“돈 좀 주라.”
뒤를 돌아보니 일진 중 한 명인 김우주가 배시시 웃고 있었다.
“매점 갈 돈이 없네.”
부잣집 자제로 소문난 김우주가 돈이 없을 리 없다.
소유안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가슴이 따끔거리더니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닥쳐.”
“뭐?”
“닥치라고.”
눈이 길게 찢어진 김우주가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소유안은 맹세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분명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어떻게 된 거지?’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 무렵, 김우주가 소유안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너, 미쳤어?”
갑자기 기분이 이상하다. 머릿속이 뜨거워진다.
김우주의 손끝이 어깨에 닿는 순간, 이상한 장면이 머릿속으로 꾸역꾸역 들어왔다.
‘이게 뭐지?’
잔뜩 술에 취한 아버지는 새벽녘에 들어와 김우주를 깨웠다.
잠시 후, 고성이 오가고 아버지는 김우주를 때리기 시작했다. 집 안이 부서진다.
김우주는 도망치다 창고 방에서 문을 걸어 잠궜다. 그리고 눈과 귀를 막았다.
‘아아, 그랬구나.’
순간 소유안은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김우주는 술에 취한 아버지로부터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그 분노와 절망을, 남을 괴롭히면서 풀고 있었다.
“어제도 아버지가 술 먹고 때렸어?”
“뭐?”
뜨거워진 한쪽 머리를 짚고 있던 소유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잠도 못 자고, 또 그렇게 밤새 창고에 있다가 학교에 온 거야?”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주변을 둘러보던 김우주가 소유안의 몸을 복도에 밀치며 말했다.
“너, 그런 거 어디서 들었어?”
“그게 중요해?”
소유안의 얼굴 근육이 멋대로 웃음을 만들어냈다.
“아버지가 알콜 중독이라는 거 애들에게 말해줄까? 아니면 그때마다 창고에 들어가 귀를 막고 있다는 거?”
“너, 조용히 안 해?”
짝.
김우주의 손이 허공을 가르자 소유안의 뺨이 크게 젖혀졌다.
“한 번만 더 아가리 놀려봐.”
“더 때려.”
“뭐?”
“네가 얼마나 초라한 사람인지 다 까발려 줄 테니까.”
“너…….”
한쪽 머리를 감싸 쥔 소유안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남을 괴롭히지 않고서는 그 울분이 없어지지 않아? 괴롭히면 막 희열을 느끼고 그래? 그럼 아버지에게 탈출하는 느낌이야?”
“이, 이…….”
어떻게 저 녀석이 우리 집안 사정을 알게 된 거지? 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지?
얼굴이 시체처럼 창백해진 김우주는 부들부들 떨었다.
-뭐야?
-김우주잖아? 쟤가 왜 떨고 있지?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위에 시선이 느껴진다.
그 시선은 말 그대로 두려움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된 김우주는 몸을 홱 돌려 반대편 복도로 뛰어갔다.
“하아.”
아무도 없는 화장실. 정신없이 세수를 한 소유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들자 물에 젖고, 당혹감에 젖어 있는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머릿속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바로 말리셔스. 집에서 가져온 꽃이었다.
<어때?>
말리셔스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바로 들렸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말했잖아. 내가 해결해 주겠다고.>
“아니, 지금 어떻게 내 머릿속에서…….”
<오늘 털이 자라난다고 했잖아.>
그제서야 소유안은 눈을 찌푸렸다.
가슴속에 숨겨진 말리셔스의 몸에서 튀어나온 미세한 털이, 자신의 귀 뒤에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네가 말한 거야?”
소유안은 품속에 있는 말리셔스를 꺼내 들었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아니. 난 너에게 그 일진의 어두운 면만 보여준 건데?>
“무슨 소리야. 난 그런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고!”
소유안의 외침에 말리셔스의 입술이 배시시 미소 지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장난스러운 목소리 때문에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헷갈린다.
아니, 방금 전 했던 그 말들은 정말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일까?
“그럼 내가 한 거란 말이야?”
말리셔스는 후후 웃는 소리를 내었다.
<남을 괴롭히는 인간들은, 오히려 나약하고 겁이 많고, 마음이 무너져 있지.>
“뭐?”
<초라하고 불쌍하고, 절망적이고, 무너져 버린 마음을 채우기 위해 남을 괴롭히는 거지.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순간 소유안의 머릿속엔 파르르 떨고 있던 김우주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렇다. 남을 괴롭힐 수 있는 건, 마음이 무너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알겠어?>
“가정, 가정 탓일 수도 있잖아? 우주는 학대당하고 있었다고.”
<너,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모두 남을 괴롭히고 악당이 된다고 생각해?>
“그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올바르게 자라는 사람들이 더 많아. 환경을 탓하려면 선택권이 아예 없는 상황이어야겠지. 물론 저런 아이들은 있으면서도 없다고 하겠지만.>
말리셔스의 붉은 입술이 미소를 그렸다.
<남을 괴롭히는 것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정신 나간 사이코패스. 그게 그들의 정체야.>
애써 부정하려던 소유안의 입에서 어이없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그런 거였구나.”
남을 괴롭히는 걸 희열로 느끼는 사이코패스. 그뿐이었던 것이다.
“야, 소유안. 너 미쳤다며?”
그때 화장실 뒤로 네 명의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다.
소유안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일진 무리이다.
“아까 우주가 그러던데? 너 완전히 미쳐 버렸다고?”
일진 리더 격인 윤진서가 피식 웃으며 다가왔다.
“방금도 혼자 막 지껄이던데? 정말 미친 거야? 어?”
소유안은 말리셔스를 들고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쟤들 눈엔 말리셔스가 안 보이나?’
<응. 안 보여.>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 말리셔스는 투명한 털을 뿜어댔다.
그리고 그 털은 윤진서와 나머지 무리들의 이마나 귀 뒤에 달라붙었다.
“뭘 쳐 웃고 있어?”
짝.
또다시 소유안의 뺨이 홱 돌아갔다.
그 순간 머릿속이 또다시 뜨거워졌다.
“이유를 이야기해 줬거든.”
“뭐?”
“온갖 잘난 척을 하며 애들 괴롭히는 너희들이, 실제론 입만 뻥긋해도 개망신당하며 산다는 걸.”
소유안은 윤진서를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집안 좋고, 공부 잘하고, 남부러울 게 없다고 알려져 있는 너희들이… 속사정은 모두 딱하다는 걸 말야.”
“너가 완전히 미쳤구나.”
“불장난이 너무 심해도 너무 심했어. 그치?”
주춤.
손을 내뻗으려던 윤진서가 움찔하자, 소유안이 한 발짝 다가왔다.
“좋은 부모덕에 그런 일을 무마시켰으면, 조용히 살아야 하지 않겠어?”
“너, 너어…….”
“학교에 소문나면 퍽이나 지금처럼 고개 들고 다닐 수 있겠다.”
소유안은 윤진서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지금이라도 쥐 죽은 듯이 다녀. 쓸데없이 나대지 말고.”
“…….”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게 있잖아?”
피식 웃은 소유안이 윤진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은 그렇게 철없을 나이도 아니고.”
윤진서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몸을 부르르 떨자, 뒤에 있던 일진 무리 중 최가람이 나섰다.
“야, 윤진서 너 뭐 해?”
“가람아. 너도 마찬가지야.”
“무슨 헛소리야?”
“부모님 안부 묻는 건 나쁜 말이니까 하지 않을게.”
소유안은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면 네가 동생의 앞길을 막는 거야.”
“무슨 개소리야!
“똑똑하고 참 바른 아이더라. 네 동생.”
퍼억.
분노에 찬 최가람이 소유안의 얼굴을 후려쳤다.
투툭.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소유안은 빙그레 미소 짓고 있었다.
“착한 동생한테 이런 거 보여줄 수 있겠어? 남 때리고 괴롭히는 거?”
“너…….”
“남을 괴롭히면서 감추고 싶은 거, 지키고 싶은 거, 그리고 아끼는 거… 다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
비틀거리며 일어난 소유안이 일진들을 쓰윽 바라보았다.
“남을 괴롭히고 싶어? 인생을 망가뜨리고 싶어? 그럼 너희 인생도 걸어.”
손에 쥐고 있던 말리셔스를 꽉 쥔 소유안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모든 걸 걸고 너희들을 망가뜨릴 거니까.”
지금까지 줄곧 괴롭힘을 당했던 소유안의 목소리는 처절한 한이 맺혀 있었다.
“아니면 그냥 꺼지던가.”
“…….”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비로소 일진들은 깨달았다. 이제부터 소유안을 건드리면 자신들도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걸.
앞으로 소유안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아이라는 걸.
“…가자.”
윤진서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일진 무리들은 조용히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소유안의 말 그대로 꺼져준 것이다.
“하아.”
온몸에 힘이 풀린 소유안은 화장실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나 부모님한테 싫다는 말도 잘 못 하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왔던 소유안.
처음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고, 몸에 갖고 있던 분노를 표출했다.
“그게 정말 사실인가 봐.”
피식 웃은 소유안이 낮게 중얼거렸다.
“잡지에서 읽었는데, 따돌림을 당하는 이유가 ‘만만해 보여서’였대. 너무 웃기지 않아? 만만해 보이지만 않는다면 괴롭힘을 당할 이유가 없다는 게.”
그런데 이상하다. 들려와야 할 말리셔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
양손을 내려다보던 소유안이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의 손에 온전히 놓여 있어야 할 말리셔스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거지?”
황급히 주변을 살폈지만 입술이 달린 꽃 같은 건 없다.
귀 뒤에 붙어 있었던 실도, 아니 애당초 그런 꽃은 없었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냐. 분명히 말리셔스가 이야기해 줬잖아. 우주의 집안 이야기도, 윤진서가 어린 시절 불장난을…….”
머리를 흔들던 소유안은 입을 다물었다.
혹시 무의식중에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거 아닐까? 아니면 그냥 던진 말이 효과가 있었던 것뿐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악에 받쳐 아무 말이나 떠드는 날 보고 당황한 걸까?
“모르겠어.”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손에 있었던 입술 달린 꽃, 말리셔스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 모든 게 환상이었던 거야.”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거던가… 아니면 내 머리가 이상해졌던가.”
소유안은 텅 빈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 * *
“뭐? 뭐라고?”
천마의 설명을 들은 장채원의 눈이 하얗게 뒤집혔다.
“헤파이토스 님이 ‘보는 즉시 폐기할 것’이라고 적힌 히든 아이템을 평범한 학생 집에 두고 왔다고?”
눈이 하얗게 뒤집힌 장채원이 양손을 벌리며 불을 뿜었다.
“천마, 너 미쳤어? 그게 어떤 물건인 줄 알아?”
“형편없는 물건일 뿐이다.”
“뭐?”
“효과도 없고 아무런 힘도 가지지 않은 평범한 돌이었다.”
콧방귀를 뀐 천마가 덤덤하게 말하자, 장채원이 펄쩍 뛰며 잇몸을 드러내었다.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천마 님의 말이 맞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무명이 차분히 설명했다.
[천마 님이 나흘 동안 몸에 계속 지니고 있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그건… 천마니까 그럴 수도 있잖아. 애당초 저 녀석은 감정이 말살된, 터미네이터 같은 놈이라고.”
[그 역시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면밀하게 조사를 하였고요.]
“조사? 무슨 조사?”
장채원이 도끼눈을 뜨자 무명은 머리 부근을 긁적거렸다.
[우선 동 차장님께 연락해, 던전 관리팀에 혹시 히든 아이템 ‘말리셔스’에 대해 자료가 있는지를 여쭈어보았습니다.]
“동원이한테? 그래서?”
무명은 덤덤히 말을 이었다.
[그쪽에서도 자료가 없다고 하더군요. 오래전에 듣기론, 입을 험악하게 만드는 아이템이라는 소문만 들었답니다.]
“입을 험악하게 만들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동 차장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헛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리셔스라는 꽃을 곁에 두면 수녀님도 욕쟁이 할머니로 바뀐다고 하더군.’이라고 하였습니다.]
“뭐어?”
장채원의 표정이 황당했다.
“말이 안 되잖아. 고작 그런 걸로 헤파이토스 님이 보는 즉시 파기시키라고 했겠어?”
[물론입니다. 그래서 다시 성분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성분? 뭐였는데?”
[천마 님이 갖고 있던 꽃 모양의 돌은 석류석(石榴石)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식석으로 많이 사용하는 편마암에도 종종 보이기도 하죠.]
“석류석이었다고? 그게?”
[그렇습니다. 그저 우연하게 꽃 모양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장채원은 잠시 고민했다.
그 붉은 꽃 모양의 보석, ‘말리셔스’와 비슷한 형태의 석류석이 자연적으로 나올 확률은?
수학적 계산을 해보지 않아도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무명도 그녀의 생각을 짐작했는지 다시 말했다.
[천마 님의 경우엔 확률로 따지시면 안 되는 것이… 지금까지 몬스터 출현 확률이 제로 퍼센트였던 식물원 던전에서도 히든몬스터를 출현시키는 분이시라.]
장채원이 침음을 내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애당초 천마라는 무림의 인간이 이 세계, 그것도 내당에 심어둔 정령수에 떨어진 것조차 말이 안 되는 확률이었으니.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지.”
“확인?”
천마가 눈썹을 찌푸리자 장채원이 말했다.
“만약 그게 말리셔스가 맞다면, 그 집은 난리가 났을 거 아냐?”
상계신 헤파이토스가 ‘발견 즉시 폐기’라고 말할 정도라면, 분명히 음험한 효과를 지닌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평범한 가정집으로 흘러 들어갔다니?
“얼른 찾아가 봐야겠어.”
딸랑.
그때 매장 문이 열리며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성이 매장을 방문했다.
바로 플랜트 인테리어를 의뢰한, 그리고 천마가 말리셔스를 두고 왔던 고객이었다.
“안녕하세요?”
당황한 장채원이 고개를 숙였다.
설마? 벌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말리셔스로 인해 집이 풍비박산이 나거나 혹은 아이가 다친 걸까?
온갖 엄한 상상을 한 장채원이 긴장하며 고개를 들자, 환하게 웃는 중년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정말 감사해요!”
“네?”
“이곳에서 인테리어를 해주신 이후부터… 저희 아이가 너무 밝아지고, 웃음이 많아졌거든요.”
크게 놀란 장채원의 눈이 짝짝이가 되었다.
“정, 정말요?”
“네에. 늘 집에 있는 걸 답답하다고 했었거든요. 왜 이리 바뀌었냐고 물어봤더니, 글쎄, 인테리어를 해서 그런 것 같다고 칭찬을 하더라고요.”
중년여성은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내밀었다.
“이거. 별거 아니지만, 직원분들하고 나눠 드세요.”
“아, 아니. 뭘 이런 걸…….”
“정말 감사해요.”
중년여성은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하고 떠났다.
상자를 든 채 멍하니 서 있던 장채원은 천마와 무명의 뜨거운 시선을 느꼈다.
“험험.”
헛기침을 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석영석이었구나.”
* * *
일요일 오후.
톡톡. 토토톡.
갑자기 창밖으로 기분 좋은 빗소리가 들려온다.
음악을 들으며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소유안은 빗소리가 들리자 창문을 살짝 열었다.
“어?”
그런데 창문에 매달린 채 촉촉이 젖어가는 화분에서 붉은 꽃잎 하나가 피어올라 있었다.
꽃잎을 바라보던 소유안의 눈동자가 더 없이 커져갔다.
저 붉은빛을 반짝이는 꽃잎.
그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을 걸어주었던 입술 달린 꽃, 말리셔스의 잎이었다.
“그게…….”
심호흡을 한 소유안은 떨리는 손으로 그 이파리를 살짝 매만졌다.
“꿈이 아니었어.”
낮은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꽃잎은 더욱 밝게 빛나는 듯했다.
소유안은 빗물을 맞고 있는 꽃잎을 바라보며 아주 작게 속삭였다.
“언젠간 다시 자라나서… 또 내 이야기를 들어줄 거야?”
그 속삭임에 화답이라도 하듯, 붉은 잎은 춤을 추듯 흔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