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88화 (188/285)

제188화. 편의점 소녀, 진로를 고민하다 (1)

김혜원은 고민이 많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완전한 각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육체각성은 전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 체내에서 생성되는 전기를 조절할 수 없던 것이다.

결국 다시 쓰러진 그녀는 병원에 입원을 했었고,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절망적인 진단을 받았다.

-완벽히 치료되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스킬과 육체각성이 이루어졌다.

약했던 심장도 튼튼해졌고, 육체각성도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의사의 추천으로 각성자 등록을 한 그녀의 등급은 무려, 5급 각성자.

육체각성도는 다소 낮은 편이었으나, ‘전기 염동력’이라는 희귀한 스킬을 얻은 탓에 단숨에 5급 각성자 판정을 받은 것이다.

“어떻게 할까.”

각성자 판정을 받게 되어 강제로 각성자 학교로 전학 간 김혜원.

그녀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째는 각성자의 삶이다.

졸업 후 바로 뛰어난 팀이나 길드, 혹은 협회 취직을 목표로 스킬을 갈고 닦는다.

지금은 스킬 발현이 어설프지만, 1년간 열심히 노력한다면 어지간한 명문 길드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김혜원은 고개를 저었다.

홀아버지를 남겨두고 각성자의 삶을 사는 건 마음이 편치 않다.

각성자들이 세이프던전이라는 이름 하에 직장인처럼 던전에 들어가곤 하지만, 역시나 던전은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곳이다.

“순응인이 될까.”

두 번째 선택지는 각성자를 숨긴 채 평범한 순응인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남은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 수능 준비를 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 졸업 후 취직을 한다.

그리고 평생 각성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래도 모처럼 각성자가 되었는데. 힘을 쓰지도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건 지루하지 않을까.”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으니 혼란스럽다.

평범한 사람들은 하고 싶어도 각성자의 삶을 살 수가 없다. 그녀 역시 각성자의 삶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아니면 대학에서 던전 공학을 전공할까?”

던전 관련학과로 들어가면, 던전을 연구하는 협회나 연구소에 취직할 수 있다.

물론 때때로 몬스터와 싸워야 하지만, 일반 전투직보다는 훨씬 안전한 편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아냐. 요새는 연구원들이 더 많이 죽잖아.”

최근 히든몬스터 발생 비율이 급격히 올라가고 있다.

특히 연구 장비가 설치된 던전에서 히든몬스터가 자주 등장하는 탓에, 평범한 각성자들보다 연구원들의 사망률이 더 높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었다.

띵똥.

그때 벨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깡마른 중년인이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김창웅이다.

“우리 딸, 고생 많았어.”

“으응.”

“이제 알바는 그만해도 괜찮은데.”

김혜원의 몸이 좋아진 탓일까?

근심 걱정이 없어진 김창웅의 일은 순조롭게 풀렸고, 이제는 편의점에 직원을 둘 만큼 벌이가 여유로워졌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김혜원은 알바를 고집하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혹시 그 아저씨 때문이니?”

“그 아저씨?”

김혜원이 눈을 깜빡이자 김창웅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아, 기억 안 난다고 했지.”

몇 개월 전부터 김창웅은 딸에게 편의점에 자주 오는 단골손님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이름이 천마라고 했던가.

엄청난 거구에 험악한 인상을 가진 남성이라고 한다.

인테리어 일을 한다는 그 남성은 언제나 이 편의점에 들렀고, 그때마다 알바를 하는 딸과 친해졌다고 한다.

“네가 병원 들어가는 날, 선물을 할 정도로 친했는데 말야.”

“그래?”

“으응.”

김창웅은 묘한 표정으로 뺨을 긁었다.

딸의 몸이 완치되자마자, 그 천마라는 남성은 기다렸다는 듯 발길을 뚝 끊었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보이지 않을까.”

“뭐, 어디 이사라도 갔나 보지.”

김혜원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아무것도 잃어버린 기억이 없는데, 유독 아버지가 말한 아저씨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래, 갑자기 우리 딸 엄청난 각성자가 되었잖아. 무려 5급이라는데.”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어린아이에, 그것도 단번에 5급 각성자. 만약 운이 좋아 재각성이나 극한 각성이 일어난다면, 30대 전후로 3급 이상의 상급 각성자가 될 수도 있다.

“슬슬 진로를 결정해야 하지 않아? 학교에선 뭐라고 그래?”

“그냥 원하는 대로 하래. 이런 건 누가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라면서.”

“으음.”

김창웅은 침음을 했다.

사실 딸아이가 전투병과를 은근히 원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겁이 없는 데다, 왈가닥이었으니.

하지만 그는 딸아이가 평범한 삶을 살아가길 원했다.

TV에서 나오는 각성자의 삶은 화려하지만 너무나 위험해 보였다. 만약 딸아이가 잘못된다면 김창웅은 남은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내 생각을 강요할 수만은 없겠지.’

속내를 삼킨 김창웅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혜원이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아빠는 어떤 걸 선택해도 응원할 테니까.”

“정말?”

“그러엄.”

김혜원이 활짝 웃었다.

각성자로선 너무나 훌륭한 스타트를 끊었기 때문에 내심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나, 테오브로마에 가입했어. 영상에 댓글도 달았더니, 어떤 팀에서 스카웃 제의가 오더라.”

테오브로마.

각성자 전용 동영상 플랫폼으로, 일반인도 영상을 감상할 수 있지만 댓글은 각성자로 등록된 사람들만 달 수 있다.

김혜원은 우연히 ‘S클래스’라는 팀이 팀원을 구한다는 동영상을 보고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바로 댓글이 달렸던 것이다.

“S클래스라고 아직 정식 팀은 아니고, 동아리 형식으로 활동하는 곳이래. 내 프로필 말해주니까 팀원으로 초청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김혜원이 신이 나서 말을 했지만 김창웅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곳에 막 댓글 달면 안 되지 않아? 거기 이상한 사람들도 많다고 하던데.”

“아냐. 이상할 게 뭐 있어. 다 같은 각성자인데.”

“그래도.”

“괜찮아. 바로 가입할 것도 아닌데.”

김혜원이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수고해, 아빠. 들어갈게.”

“으응.”

‘괜찮을까.’

떠나가는 딸의 뒷모습이 왠지 불안하게 느껴진다.

‘괜찮겠지.’

유리창 너머 김혜원을 바라보던 김창웅이 억지로 미소를 머금었다.

부르르르릉.

그때 하얀색 소형 승합차가 편의점을 빠르게 지나갔다.

천마가 운전하고 있는 라마스였다.

“흠.”

찰나의 순간, 천마는 스쳐 지나가듯 거리를 걷고 있는 김혜원의 얼굴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이젠 굳이 편의점을 가지 않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무명 역시 김혜원을 바라봤는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조 군과 배틀 체인저 게임을 하는 걸 뻔히 봤는데도 아예 모르는 눈빛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배틀 체인저 게임에 빠진 천마는 줄곧 가지 않았던 편의점에서 열심히 게임을 했다.

우연히 천마와 얼굴이 마주쳤음에도 김혜원은 경계 가득한 눈빛을 보낸 것이다.

[혜원 양이 그런 눈빛을 하니 조금 서운하던데요. 안 그렇습니까?]

천마와 무명을 바라보던 김혜원의 표정은 연기가 아니었다.

만약 그것이 연기였다면, 김혜원은 편의점 알 바가 아니라 영화계로 진출해야 할 것이다.

“잘 됐잖나.”

안 그래도 가까운 편의점에 자주 가지 못해 불편하던 찰나였다.

기억이 아예 사라졌다면 천마로서는 편리한 입장이 된 것이다.

다음 날.

끼익.

하얀색 라마스가 실드경계지역 초입에 위치한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

퇴근을 하던 천마가 편의점에 들르기 위해 차를 세운 것이다.

띵똥.

문을 열자 벨소리와 함께 익숙한 카운터가 보인다.

“어서 오세요.”

천마가 들어오자, 카운터에 서 있던 김혜원이 가볍게 인사를 한다.

호기심과 경계의 감정이 뒤섞인 것으로 보아 역시나 완전히 기억이 사라진 것 같았다.

“흠.”

오랜만에 온 천마는 과자가 진열된 매대에 선 채 턱을 쓰다듬었다.

그동안 불티나게 팔렸던 구봉산 맛과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엔 새로운 과자들이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구봉산 맛과가 없군.”

“구봉산 맛과요?”

천마의 중얼거림에 카운터에 서 있던 김혜원이 눈을 깜박였다.

“그게 인기가 없어서… 대형 마트에 가셔야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런가.”

천마는 아쉽다는 듯 다시 매대를 바라보았다.

[그럼 모처럼 제가 추천을 해드릴까요?]

그때, 천마의 품속에 있던 무명이 쑥 빠져나와 어깨에 올라타며 말했다.

[최근 인기가 좋은 과자는…….]

무명이 신이 나 설명을 주절주절하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말을 귓등으로 흘린 천마는 매대에 있는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브라카다브라 칩, 이집트 맛.

과자봉지엔 사막을 배경으로 피라미드가 그려져 있었고, ‘동서양이 교차하는 환상적인 맛!’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애급(埃及:이집트) 맛이라.”

피라미드를 빤히 바라보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군.”

[…그렇군요.]

새삼 천마의 취향을 깨달은 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는 괴식이나 벌칙으로나 쓸 법한 맛의 과자를 몹시 좋아하는 것이다.

“계산.”

천마가 과자를 올려놓자 김혜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으아, 이거 진짜 맛없는 과잔데.”

“…….”

“아저씨, 각성자죠?”

“아니다.”

“에이, 나노봇 있잖아요.”

그녀는 픽 웃으며 무명을 가리켰다.

예전 같으면 말조차 건네지 못했을 테지만, 5급 각성자 판정을 받은 이후론 성격이 대담해졌다.

“죄송하지만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물어보지 마라.”

천마가 매몰차게 대답을 거절하자 김혜원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냥 물어보는 것뿐인데…….”

낮게 중얼거리는 김혜원의 모습을 바라보던 무명이 대신 대답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제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와, A.I 시스템 깔려 있나 봐.”

각성자 학교에 들어가 던전과 던전 관련 장비에 대해서 배우게 된 김혜원.

그녀는 이제 나노봇이라고 해서 다 같은 나노봇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뭐가 궁금하신 걸까요?]

무명의 물음에 김혜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데, 각성자 생활이 어떤가 해서. 힘들거나 위험하진 않은지.”

[오, 그러셨나요?]

무명은 눈 센서를 번뜩이며 고민했다.

천마의 일상을 이야기해 줘봤자, 전혀 참고 따윈 되지 않을 것이다.

김혜원이 원하는 건 생생한 각성자의 삶일 테니까.

[아쉽게도 저희 천마 님은 각성자가 아닙니다. 외국인 근로자죠.]

“어? 정말?”

[대신 협회 소속의 각성자들에게 직접 상담을 요청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협회 소속 각성자?”

[그렇습니다.]

김혜원이 눈을 크게 뜨자 무명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 앞집에 협회 각성자 분들이 살고 계십니다.]

일요일 오전, 실드경계지역.

김혜원은 고즈넉하게 지어진 빌라 앞에 서 있었다.

저 멀리 거대한 실드 방출기가 세워져 있으며, 건물 뒤로 둥그런 로봇이 떼굴떼굴 굴러오고 있었다. 바로 무명이었다.

[일찍 도착하셨군요!]

며칠 전 무명은 초홍에게 연락해 김혜원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특수대응팀 전원이 흔쾌히 상담을 해주기로 약속한 것이다.

김혜원은 천마 없이 혼자 덜렁 온 무명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용자 없이 혼자 다녀도 되는 거야?”

[물론입니다. 천마 님께 허락받았거든요.]

허락 이래 봤자 ‘본좌는 귀찮으니 알아서 하라’라는 대답이었지만.

팔다리를 쑥 뽑은 무명이 초인종을 가리켰다.

[어서 들어가 보죠.]

첫 상담자는 한만재였다.

그는 김혜원의 스킬과 육체각성도, 그리고 성향을 몇 가지 물어보더니 턱을 쓰다듬었다.

“전기 염동력이라면, 전기방출 스킬이라면 딜러보다는 탱커 쪽으로 나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네?”

“몬스터 중에서는 전기에 내성을 갖고 있는 것들이 더러 있으니까. 하지만 전기 염동력으로 베리어를 만들어내면 어지간한 공격은 막을 수 있지.”

책상에 앉아 침중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만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탱커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위험한 건 딜러거든. 우리야 죽을 듯이 공격만 막아내면 되니까.”

“아뇨, 저는…….”

“각성자 학교에 있는 교수들이라면 전기 염동력으로 베리어를 만들어내는 법을 알려줄 거야. 우선 베리어를 완성한 다음에…….”

한만재는 김혜원에게 오직 탱커가 되기 위한 방법만을 주구장창 설명하고 있었다.

“저는 각성자 분들의 삶이 일반인들과는 뭔가 다른지가 궁금해서요.”

김혜원의 말에 한만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 다를 바가 없지. 그냥 일터가 던전인 것뿐이니까. 아 참.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이후로도 한만재는 어떻게 해야 유능한 ‘탱커’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으으. 뼛속까지 탱커.’

오직 탱커 외길을 걸어왔던 한만재는 김혜원에게도 탱커의 길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다음의 상담자는 신채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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