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86화 (186/285)

제186화. 천마, 게임을 하다 (1)

실드경계지역 초입의 어느 편의점.

위이잉.

트럭 한편에 설치된 커다란 기계 팔이 짐칸에 있는 네모난 상자를 편의점 앞에 내리고 있었다.

철컥.

짐꾼들이 상자를 열자, 겉면이 알록달록한 스크린과 조종간이 합쳐진 게임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지막으로 게임기 앞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는 의자를 설치하자, 짐꾼들은 다시 트럭을 타고 사라졌다.

김혜원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편의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입구 끝자락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앞에는 조작 버튼 스크린이 합쳐진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아빠, 저거 웬 게임기야?

문을 빼꼼 열어 아버지, 김창웅에게 외친 그녀는 다시 게임기가 설치된 곳으로 걸어갔다.

“와, 이거 배틀 체인저잖아?”

반짝이는 화면을 망연히 바라보던 김혜원이 입을 벌렸다.

배틀 체인저.

쏟아지는 빔과 미사일 공격을 피하고, 타이밍에 맞춰 적의 우주 함선을 격파하는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방어를 맡은 ‘디펜더’는 쏟아지는 적의 미사일을 파괴해야 하고, 공격을 담당하는 ‘어태커’는 는 흔들리는 조준선에 정확히 물체가 들어올 타이밍에 미사일을 발사한다.

꽤 오래전에 발매되었지만 단순하면서도 매우 박진감 넘치는 연출로 인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아직도 인기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이기도 했다.

“응, 맞아.”

김창웅이 문을 열고 나오자 김혜원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게임장도 아닌데 웬 게임기를 들여놓은 거야?”

“아, 게임장을 운영하다 폐업한 친구가 싸게 준 거야. 우리 매장 앞에 들여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

“뭐야. 누가 편의점 앞에서 게임을 해.”

김혜원의 핀잔에 김창웅이 웃으며 말했다.

“아빠 세대에는 문방구나 슈퍼에 작은 게임기를 들여놓는 게 유행이었어. 학교 끝나면 달려가서 게임도 하고, 과자도 사 먹었지.”

그리고 매장 주위의 황량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외지긴 해도 이 동네, 의외로 아이들도 많이 살잖아. 게임장 가려면 번화가로 나가야 하니까. 한번 놔둬봤어.”

“인기 없을걸?”

김혜원은 픽 웃었다.

시내에 있는 게임장엔 다양한 게임기들이 많다. 심지어 집에 있는 컴퓨터만으로도 할 수 있는 재밌는 게임이 많다.

굳이 편의점에 설치된 옛날 게임기를 하러 오진 않을 것이다.

…라는 그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하교 시간이 되자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게임기 앞에는 모여든 초등학생들로 북적북적거렸다.

아이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자 어느 순간부터, 게임기 옆에는 동전이 일렬로 쌓여 있었다.

돈을 올려놓은 순서대로 게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며칠 후.

“바보야! 디펜스 좀 잘 해봐!”

“시끄러! 조준이나 잘하시지!”

“야, 이 바보야! 어딜 쏘는 거야! 적을 처리 못 하니까 미사일이 쏟아지잖아!”

‘으. 시끄러.’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고성에 김혜원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황량했던 편의점 주변이 북적이는 건 좋으나, 말다툼을 넘어서 때때로 싸움이 나기도 했다.

“죽을래?”

“너 지금 내 머리 친 거야?”

탁.

게임기를 손으로 내리친 두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혜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쯤 되면 지켜볼 수만은 없다.

“얘들아. 게임을 하는 건 좋은데, 싸우면 안 되지.”

밖으로 나간 김혜원이 다정한 말투로, 조심스럽게 주의를 줬다.

요새 애들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부모들에게 항의가 들어오니까. 하지만 돌아오는 건 짜증스런 말대꾸였다.

“편의점 알바 주제에. 자기 할 일이나 하지.”

“뭐어?”

예의범절은 집에 두고 온 초등학생을 보자, 김혜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그런 나쁜 말을 하니?”

“편의점 알바 보고 편의점 알바라는 게 왜 나쁜 말이에요?”

“그럼 내가 게임을 꺼도 나쁜 행동이 아니겠네?”

“미쳤어요?”

“싸우면 안 돼. 다신 게임 못 하게 할 거야.”

김혜원이 전원 버튼을 가리키자, 두 초등학생은 언제 싸웠냐는 듯 냉큼 자리에 앉았다.

“잘해. 이번이 너랑 마지막으로 하는 배틀 모드니까.”

배틀 체인저는 두 가지 모드가 있다.

첫째는 컴퓨터가 보내는 적들과 싸워 최고점수 기록을 겨루는 챌린지 모드.

두 번째는 온라인 대전상대와 싸우는 배틀 모드.

챌린지 모드로 게임을 하다가, 다른 플레이어의 대전 요청이 들어오면 승낙 여부를 묻고 배틀 모드로 전환시킬 수 있다.

-콰앙!

그때 게임기에서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우주선이 격추되었다.

“아, 죽었어! 저 아줌마가 보고 있어서 죽었어!”

GAME OVER! 라는 글자가 반짝이자 게임을 하던, 아까부터 말대꾸를 하던 초등학생이 소리쳤다.

“물어내요! 아줌마 때문에 죽었잖아요.”

“어디서 거짓말을. 나도 이 게임 알거든?”

김혜원이 피식 웃으며 게임 화면을 가리켰다.

“실력으로 진 거잖아. 상대방이랑 스코어 차이 안 보이니?”

초등학생은 할 말이 없는지 친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쳇, 가자.”

홱 돌아가는 초등학생들을 바라보던 김혜원의 이마엔 피곤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아빠는 괜한 걸 설치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억지로 누른 김혜원은 다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아래 숨겨둔 이어폰을 몰래 귀에 꽂았다.

두 시간 후.

편의점 앞에 북적이던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갈 무렵, 덩치가 큰 아이와 평범한 체구의 아이가 나란히 배틀 체인저 게임기 앞에 앉았다.

“내가 방어 맡을게.”

평범한 체구의 아이는 초등학생답지 않은 차분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바로 특수대응팀 한만재의 외아들이자 전능시야 스킬을 갖고 있는 어린 각성자, 한호조였다.

한호조가 유일하게 즐기는 게임이 바로 이 배틀 체인저였다.

그런데 편의점 앞에 배틀 체인저 게임기가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황장훈과 함께 바로 달려온 것이다.

“좋아. 그럼 공격은 나한테 맡기라고.”

그리고 한호조 옆으로 포동포동한 볼을 가진 통통한 아이가 옆에 나란히 앉았다.

단짝, 황장훈이었다.

“그럼 시작한다.”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은 한호조가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파앙. 파앙!

게임이 시작되자 한호조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적들의 미사일의 궤적을 미리 파악해 모조리 격추시켰다.

“으으. 잘 안 되네.”

그에 반해 어태커를 선택한 황장훈이 쏴대는 레이저 빔에선 연신 ‘MISS!’라는 글씨가 떴다.

갈수록 흔들리는 조준경에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쿠르르르릉. 콰앙!

결국 우주선이 파괴되는 장면과 함께 GAME OVER! 라는 글씨가 대문짝만하게 떴다.

황장훈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호조야! 그래도 우리 53등이나 했어! 우리가 전국에서 50등이나 했다고!”

“그러게. 그럼 이니셜 새기자.”

-53th. score 324,457. 호조 & 장훈

사실상 완벽한 디펜스를 해준 한호조 때문에 얻은 기록이다.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던 황장훈은 말없이 웃고 있는 한호조를 보자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해, 호조야. 네가 완벽히 방어해 줬는데.”

“무슨 소리야. 재미로 하는 게임인데.”

한호조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밤하늘엔 별이 보인 상태였다.

“으아, 벌써 일곱 시잖아?”

그제서야 시계를 본 황장훈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일곱 시까지는 오라고 했는데.”

황급히 달려가던 황장훈이 다시 고개를 돌려 손을 흔들었다.

“호조야. 내일 봐!”

“응.”

도심지역에 사는 황장훈은 한호조와 놀기 위해 이 실드경계지역까지 온 것이다.

손을 흔들며 돌아서던 한호조는 문득 게임기 화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쉬운데.”

조용하고 온화한 성격이나, 호승심만큼은 강한 편이었다.

화면에 보이는 등수와 이니셜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호조는 이내 아쉬운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흠.”

한호조가 터덜터덜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천마가 낮은 침음을 했다.

엄마손 백반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중, 편의점 앞에서 게임을 하는 한호조를 발견하고 잠시 걸음을 멈춘 상태였다.

“신기한 TV군. 왜 바짝 다가가 막대기를 흔드는 거냐.”

[천마 님. 저건 게임기라는 겁니다.]

“게임기?”

[그렇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라고나 할까요.]

무명의 말을 잠시 곱씹던 천마가 냉소를 머금었다.

“할 일 없는 자들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만든 기계라는 것이군.”

그가 관심 없다는 듯 몸을 돌리자 무명이 말했다.

[그렇진 않습니다. 저 게임기를 통해 타인과 승부를 겨룰 수도 있거든요.]

“승부?”

걸음을 멈춘 천마의 눈동자에서 광채가 번뜩였다.

기대했던 반응이 돌아오자 무명이 천마의 얼굴에 바싹 다가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온라인을 통해 세계에 있는 각국의 랭커들과 진검승부를 펼칠 수 있지요. 전 세계에 있는 실력자들과 승부를 펼칠 수 있습니다.]

“승부라.”

다시 한번 천마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새삼 무심한 성격이지만, 실력자들과의 승부는 언제나 갈구하는 편이었으니.

잠시 주위를 살피던 천마는 맞은편 건물에 이어진 빨랫줄을 유심히 살폈다.

휘익.

팔을 벌려 절정의 허공섭물을 펼치자 빨랫줄에 널려 있던 수건이 천마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혜원 양이 볼까 봐 그러시는 건가요?]

천마의 속을 알아챈 무명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이곳을 지나치면서 수 없이 혜원 양을 보지 않았습니까? 천마 님을 전혀 모르는 눈치인 것 같던데요.]

“만사불여튼튼이다.”

스스슥.

TV에서 종종 나오던 사자성어를 써먹은 천마가 커다란 수건을 얼굴에 두르고 게임기 앞 의자에 쭈그려 앉았다.

“방법을 설명하라.”

[설명을 듣기보단 직접 보시죠. 천마 님이라면 한 번에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게임기에 돈을 넣은 무명은 조종간과 버튼을 짚었다.

[1인용은 공격 전용입니다. 즉, 컴퓨터가 방어를 맡습니다.]

-슈유유유육.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적의 함대에서 미사일이 거미줄처럼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방어를 맡은 컴퓨터가 쏟아지는 미사일을 연달아 요격했으나, 몇몇 개는 포화를 뚫고 날아왔다.

-피융! 피융!

미사일에 맞을 때마다 화면이 흔들리고 무명의 조준경도 흔들렸다.

무명은 흔들림과 관계없이 적을 완벽히 맞출 수 있었지만, 천마에게 게임을 설명하기 위해 일부러 적기를 빗맞췄다.

-GAME OVER!

연달아 적을 처리하지 못하자, 미사일은 끊임없이 쏟아졌다.

점차 컴퓨터가 방어해 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결국 비행기는 폭파되었다.

[이런 식으로 천마 님께선 조준경을 이용해 공격을, 컴퓨터는 방어를 통해 천마 님을 보조해 줍니다.]

“간단하군.”

무명의 게임을 지켜보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라.”

다시 비행기가 출격하자, 적의 함대에서 미사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파앙!

박진감을 위해서인지, 컴퓨터는 서너 기의 미사일을 허용했고 비행기가 흔들렸다.

“흥.”

하지만 상대는 절세무학의 대종사, 천마.

흔들리는 조종간 속에서도 완벽한 타이밍에 맞춰 빔을 발사했다.

-퓨융! 피융! 퍼엉!

갈수록 접전은 치열해져, 천마의 눈 앞에 펼쳐진 조준경은 미친 듯이 흔들렸다.

하지만 천마가 버튼을 누를 때마다 어김없이 ‘PERPECT!’라는 글자와 효과음이 터져 나왔다.

마침내 5단계를 클리어하고 6단계로 넘어가려는 순간.

-GAME OVER!

화면에는 번뜩이는 글씨와 함께 게임이 종료되었다.

“뭐냐? 끝난 거냐?”

조종간을 신나게 움직이던 천마의 말에 무명이 웃음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솔로 플레이어를 위해 컴퓨터가 지원해 주는 디펜더는 5단계까지입니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습니다.]

천마의 품속에서 튀어나온 무명은 앙상한 팔을 뻗어 컨트롤러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자, 스코어에 천마 님 이름을 새겨드리겠습니다.]

-32th. score 495,235. 천마.

5단계까지 천마는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적기를 격추하였다.

하지만 컴퓨터의 방어 실수 때문에 스코어는 50만에도 미치지 못했다.

“저 위의 글자들은 뭐냐.”

천마의 이름 위엔 수십 명의 이름 혹은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당연히 점수가 높은 플레이어들이다.

[천마 님보다 높은 기록을 경신한 플레이어들입니다.]

“본좌의 기록을 능가한 자들이라는 거냐.”

[그렇습니다.]

“허튼소리.”

천마는 인상을 쓰며 다시 조종간을 잡았다.

“다시 한번 한다.”

[다시 시도해도 소용없습니다. 천마님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완벽한 타이밍에 적기를 격추했으니까요. 이 스코어는 천마 님 실력 문제가 아니라 솔로 플레이의 한계일 뿐입니다.]

“한계라고?”

[아니, 그러니까… 그냥 그런 설정이죠.]

“그렇다면 본좌가 바꾸도록 하지.”

막무가내의 천마를 보자 무명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천마가 게임을 하도록 자극한 것은 TV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의 문물을 가볍게 즐기길 원해서였다.

하지만 승부욕이 넘쳐흐르다 못해 눈이 시뻘게진 천마의 성격을 깜빡 잊은 것이다.

[천마 님. 이건 그저 가벼운 유희일 뿐입니다. 천마 님의 실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력을 평가하지 않는다면서, 순위를 매긴다고?”

[그…….]

말문이 막힌 무명은 시선을 떨구었다.

천마의 뜻대로 할 수밖에.

[최고의 기록을 얻고 싶다면 방법은 있습니다.]

“말하라.”

[천마 님을 보조해 줄 솜씨 좋은 디펜더 플레이어를 섭외하면 됩니다.]

잠시 고민하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녀석이 하면 되잖나.”

당황한 무명이 두 손을 내저었다.

[제가 게임에 개입하게 되면 기록을 경신하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저는 손을 대지 않고도 최고 기록을 새길 수 있으니까요.]

무명은 기계들을 모두 원격으로 해킹할 수 있다.

이 조그만 게임기의 기록 하나쯤 바꾸는 것은 일도 아니다.

[천마 님의 기록을 ‘조작’해 1등으로 바꿔둘까요?]

무명은 장난스런 말투로 물었다.

하지만 ‘조작’이라는 단어를 듣자 천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동시에 시뻘건 혈염광휘가 무명의 눈 센서를 태워 버릴 듯 쏟아졌다.

“다시는 그런 단어를 본좌의 면전에 내뱉지 마라.”

[죄송합니다.]

“본좌의 이름은 언제 어디서곤 반드시 정점에 새겨져 있어야 한다. 알겠나?”

천마의 목소리는 더없이 엄숙하고 싸늘했다.

[네. 알겠습니다.]

키리리릭.

연산회로를 돌려 고민하던 무명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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