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85화 (185/285)

제185화. 천마, 치과 가다 (2)

장채원을 빤히 바라보던 천마는 신기한 동물을 발견한 것처럼 눈을 껌뻑였다.

“닦아야 하나.”

“뭐? 뭐라고?”

“치아 따윈 닦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다.”

“야, 너… 그걸 말이라고.”

장채원의 머릿속엔 오만가지 욕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무협지에서 양치질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설마 천마가 더러운 게 아니라, 그쪽엔 아예 양치질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 아냐?’

마음을 가라앉힌 장채원이 차분히 물었다.

“설마 너희 쪽 세계에선 양치질이라는 게 없어?”

“그럴 리가 있나.”

“있어?”

“있다.”

장채원은 의심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칫솔은? 그곳에 칫솔도 있어?”

“물론이지. 무림인들을 뭘로 보는 거냐.”

“무슨 칫솔 쓰는데? 거긴 플라스틱 없잖아.”

천마는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양한 동물의 털과 뼈로 만든 칫솔이 있다. 물론 상당히 고가인 탓에 대부분 사람들은 손으로 닦지만 말이다.”

순간 장채원의 얼굴이 밝아졌다.

천마는 자신이 무림에서 제일가는 부자라고 했다.

백억 원어치의 금도 시원하게 줄 수 있는, 엄청난 부자였으니, 동물 뼈가 아니라 금가루로 만든 칫솔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구나. 넌 지금까지 무슨 칫솔 썼는데?”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장채원의 눈 밑을 검게 만들었다.

“안 썼다.”

“뭐라고?”

“본좌의 치아는 매우 튼튼하다. 이를 닦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지.”

팔짱을 낀 천마는 천마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장채원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세히 보니 치아 사이사이에 누런 치석이 끼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치아가 엄청 튼튼하구나.”

장채원은 초점 없는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는 원시인이었다. 지금까지 태어나 양치질이라곤 하지 않는 원시인이 분명했다.

“이건 모두 내 잘못이야.”

“갑자기 무슨 말이냐.”

“옷 같은 걸 신경 쓸 게 아니라, 우리 세계의 위대한 위생 관념부터 전수해야 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걱정 마. 곧 알게 될 테니까.”

힘없이 미소 짓던 장채원이 천마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어서 옷 입어. 당장 치과 가게.”

방실방실 치과.

상급 요괴가 운영하는 곳으로, 시내와 조금 떨어진 상가단지 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가끔 찾아오는 인간들을 치료하기도 하지만, 역시나 주 고객은 요괴들이었다.

장채원은 천마가 애당초 평범한 몸뚱이를 지니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요괴가 운영하는 방실방실 치과에 온 것이다.

끼익.

천마가 주차장에 라마스를 세우자 장채원이 말했다.

“치료 중엔 절대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해. 입 안에 뭘 넣는다고 널 헤치는 건 아니니까.”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줄곧 그녀는 천마에게 치과라는 개념과 진료 방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기계가 입 안으로 들어가는 걸 납득하지 못한다면 분명 난리를 피울 테니까.

띵동.

문을 열자 맑은 차임벨 소리와 함께 카운터에 있는 간호사가 보였다.

“어서 오세요.”

용모단정한 간호사의 머리 위에는 하얀 털에 분홍빛으로 물든 토끼 귀가 쫑긋 솟아 있었다.

천마를 바라보던 그녀는 장채원을 보고 이내 싱긋 웃었다.

“장채원 님. 오랜만에 오시네요.”

“안녕하세요?”

자연스럽게 천마의 외국인등록증을 내민 장채원이 말했다.

“검진이랑 스케일링 좀 받으려고 하는데요.”

외국인등록증과 천마의 얼굴을 여러 번 확인하던 간호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분이 인족이시라고요?”

“네.”

“그러니까, 저분이 인족이라는 말씀이시죠.”

“네, 네에.”

간호사의 머리 위엔 ‘저 얼굴이요?’라는 단어가 떠올라 있는 듯하다.

“생긴 게 좀 험하죠?”

장채원이 어색하게 미소 짓자 간호사가 정신을 차리며 소파를 가리켰다.

“아, 아니에요. 잠시만 앉아 계세요.”

장채원을 따라 소파에 앉은 천마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본좌는 입냄새 같은 건 나지 않는다.”

“원래 자기 입냄새는 자기가 못 맡아.”

“고작 입냄새 가지고 행림(의사)를 찾는단 말인가.”

“천마야. 아까 오면서 내가 뭐라고 했지?”

-이건 업무 명령이야! 입냄새를 풍기는 건 손님에게도 실례라고.

장채원의 단호한 표정을 떠올린 천마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억지로 끌려오다시피 한 탓에 아무래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진료실에서 고주파 소리를 내고 있는 모터 기계음과 쿰쿰한 약냄새도 거슬렸다.

“천마 님. 들어오세요.”

천마는 간호사의 안내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방긋 웃으며 진료실로 들어왔다.

금테 안경을 쓴 젊은 청년의 모습을 한 의사는, 간호사와 마찬가지로 머리 위에 하얀 귀가 쫑긋 솟아 있었다.

의사는 근육으로 뒤덮인 짐승 같은 천마를 보자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쿠, 산도깨비 님이 방문해 주셨네요.”

“본좌는 천마다.”

“네?”

차트를 보니 ‘인족’이라고 또렷이 표시되어 있다.

숯불처럼 타오르는 천마의 붉은 눈동자와 마주치자 의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 그러시군요. 입 벌려보세요.”

천마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쩌억.

어찌나 입이 크게 벌려졌는지, 천마의 치아를 들여다보던 의사는 머리통이 빨려드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

“치, 치아가 엄청 튼튼하시네요.”

검치호랑이를 연상케 하는 긴 송곳니. 육중한 바위를 뭉쳐놓은 것 같은 어금니…….

마치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이빨의 장점만 합쳐놓은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대로 덥석 물어버릴 것만 같다.

“흠. 별 이상은 없어 보이는데요? 충치도 없고.”

다행히 천마의 치아는 갓 딴 옥수수처럼 깨끗하고 튼튼했다.

“…치석은 많네요.”

열심히 들여다보던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게도 치아와 치아 사이에 잔뜩 끼어 있었다.

“으응? 치석 색깔이 왜 이러지.”

보통 치석은 싯누렇거나 까만빛이 돈다.

하지만 천마의 치아에 낀 치석들은 세공한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혹, 혹시 스케일링 언제 받으셨나요?”

“받은 적 없다.”

“그렇군요.”

의사는 한숨을 푹 쉬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힘든 작업이 되겠군요.”

위잉이잉이잉.

스케일링 기계가 요란한 모터 소리와 함께 연신 치석을 갈아내었다.

하지만 갈리는 건 치석이 아니라 스케일링 기계였다.

아무리 힘을 줘도, 갈아내려고 해도, 치아 사이에 낀 치석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천마는 몸만 단단한 것이 아니라 치석도 엄청 단단했던 것이다.

“으음.”

잠시 고민하던 의사가 망가진 스케일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일반 기기로는 치석을 제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흠.”

천마는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의사가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구성일족이나 현무일족 분들에게 사용하는 기기를 사용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현무일족?”

“그렇습니다. 전신이 쇳덩이처럼 단단한 요괴분들인데… 그분들을 치료하기 위한 기계가 따로 있거든요.”

“상관없다.”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의사가 팔뚝만 한 장침이 꽂힌 주사기 하나를 들이밀었다.

“그럼 마취를 하겠습니다.”

“마취?”

“그렇습니다. 그 기계가 튼튼하긴 한데, 조금 아프거든요.”

“필요 없다.”

“아, 안 됩니다. 치석을 직접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잇몸을 통해 치아 자체를 미세하게 뒤흔들어 진동으로 제거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통증이…….”

치료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있던 천마가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껄껄 웃던 천마가 웃음을 뚝 그치며 차갑게 말했다.

“필요 없다고 했다.”

“네?”

“본좌는 오래전 마고에서 삼천 종의 고문기법과 금제를 스스로 시전해 보았지.”

“…그러니까 마취를 안 하시겠다고요?”

“마취 따윈 나약한 인간들이나 하는 거다.”

진료실엔 긴 침묵이 흘렀다.

천마의 단호한 눈빛을 바라보던 의사는 잠시 눈을 껌뻑였다.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의사는 어디론가 들어가더니 양손에 커다란 무언가를 들고 왔다.

전신이 쇳덩이처럼 단단한 현무일족을 위한 스케일링 기구였다.

“꼭 시공 도구처럼 생겼군.”

천마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커다란 모터와 연결된 날카로운 사슬톱날이 달려 있는 이 도구는, 흔히 말하는 전기톱을 꾹 닮아 있었다.

“조금 아프실 수도 있습니다.”

“필요 없다. 지옥음형이든 분골착근이든 마음대로 해봐라.”

“좋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비장한 목소리로 말한 의사가 기계에 달린 리코일 스타터를 쭉 잡아당겼다.

부아앙.

2행정 모터사이클에서 나는 요란한 배기음과 함께, 날카롭고 가느다란 사슬 톱날이 맹렬히 회전했다.

웨에엥!

미친 듯한 속도로 돌아가는 사슬톱날을 보자 천마는 안색이 변했다.

“이걸 본좌의 입에 집어넣겠단 말인가?”

“걱정 마세요. 이래 봬도 안전한 의료기기입니다. 잇몸에 살짝 구멍을 뚫는 것 외에는 어떠한 조직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웨에에에엥!

의사가 버튼을 누르자 커다란 사슬톱날이 더욱 맹렬히 회전하더니, 점차 가느다란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실처럼 변한 사슬톱날은 치석이 아닌 천마의 잇몸을 뚫기 시작했다.

번쩍.

그 순간, 천마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시종일관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의 표정이 달라진 것이다.

지잉. 지이이잉.

잇몸으로 들어간 사슬톱날이 천마의 신경과 치아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어억.’

붉은 눈동자가 하늘 위로 올라간 천마가 벙어리 비명을 내질렀다.

이것은 매우 생소하면서도 새로운 통증이었다.

잇몸을 통해 들어간 사슬톱이 치아 신경을 뚫고 두개골까지 튀어나와, 뇌의 뿌리까지 뽑아버리는 듯한 고통을 전해주었다.

‘으으.’

무림에 산재한 삼천 종의 고문기법 중엔 치아를 부수고 잇몸을 자르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실낱같은 사슬톱날이 잇몸을 뚫고 들어가 뇌의 신경까지 다발로 끊어버리는 듯한 고문은 없었다.

‘끄으으으.’

천마의 눈동자가 점차 하늘 위로 올라갔다.

어느새 눈동자엔 흰자밖에 보이지 않게 되자, 의사가 치료를 멈추고 말했다.

“많이 아프십니까? 마취를 해드릴까요?”

천마는 당장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하지만 천하마문의 절세 대종사가 어찌 아프다고 말을 번복할 수 있겠는가?

“괜찮다.”

“네?”

“괜찮다고 했다.”

또르르.

그때, 천마의 눈꼬리에선 한 방울의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뺨으로 흐른 맑은 액체를 쓱 닦은 천마가 덤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아, 날씨가 매우 덥군. 이마에서 땀방울을 흘릴 정도라니.”

“…….”

천마의 뻔뻔한 헛소리에 의사와 간호사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럼 이제 치석을 제거하겠습니다.”

“이제 제거하다니. 지금까지 한 건 뭐란 말이냐.”

의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전기톱을 천마의 잇몸에 갖다 대었다.

“잇몸에 미세한 구멍을 뚫은 것뿐입니다.”

‘뭣이?’

순간, 천마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졌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느꼈던 통증은 뭐란 말인가?

“이제 스케일러를 넣어서 치석이 떨어질 만큼 진동을 높일 겁니다.”

의사가 전기톱에 달린 버튼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말했다.

“아파도 참아주세요.”

“그렇군.”

천마는 무언가를 크게 깨달은 듯, 두 눈을 가늘게 접었다.

또르르.

전기톱을 들고 있는 의사를 바라보는 천마의 양쪽 눈동자에서 양 갈래의 땀이 흘러나왔다.

* * *

그날 밤. 천마의 옥탑방.

방 안에 앉아 운공을 하고 있던 천마가 눈을 번쩍 떴다.

치아가 연신 욱신거리자 신경이 쓰여, 운공조식을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혹시 출출하십니까?]

천마가 눈을 뜨자 충전스테이션에 앉아 있던 무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전에 사다 놓은 구봉산 맛과를 조금 갖다드릴까요?]

묵묵히 앉아 있던 천마는 엉뚱한 말을 했다.

“그동안 본좌에게서 입냄새가 났나?”

[네?]

“본좌의 입에 구취 같은 게 있었냔 말이다.”

무명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납니다.]

“어느 정도냐.”

무명은 또다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구취 농도를 숫자로 설명해 봤자 천마에겐 와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하수구에 쌓인 분변을 20년 동안 삭힌 아가리 똥내 같습니다.’라고 표현하자니, 마음에 상처를 입을 것 같다.

무명은 최대한 고상하게, 그리고 간접적으로 천마의 입냄새를 표현했다.

[구치 농도를 말로 표현하자면, 입냄새로 십여 미터 밖에서 자는 사람을 깨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 왜 지금까지 아무도 본좌에게 말을 안 했지.”

어딘가 원망이 섞여 있는 목소리다.

하지만 천마의 면전에 대고 ‘아가리에서 똥내가 납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무림세계에서도 이곳에서도 없었다.

그나마 장채원 정도 되니 천마에게 직설적으로 말한 것이다.

[어디 가십니까.]

천마는 대답 없이 욕실로 들어가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칫솔 바구니에 담긴 새 칫솔을 주섬주섬 꺼내었다.

스윽.

치약 뚜껑을 열어 치약을 듬뿍 바른 천마는 열심히 양치질을 시작했다.

이미 방실방실 치과에서 영상으로 양치질 법을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동작이었다.

치카치카. 샤카샤카.

매우 정성스럽게 칫솔질을 한 천마는 입 안을 깨끗이 헹구었다.

개운하다. 상쾌하다. 시원하다. 그리고 욱신거리던 통증도 조금 사라진 느낌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양치질이라는 개운함을 느낀 것이다.

[갑자기 왜 양치질을 하십니까?]

무명의 질문에 천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치료가 끝나고 주절주절 설명하는 토끼 의사의 모습이 비치는 듯했다.

-양치질만 잘해도 치과에 올 일이 없습니다.

“다시는…….”

심호흡을 한 천마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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