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화. 천마, 치과 가다 (1)
그 모습을 보던 천마는 침음을 내며 눈썹을 긁었다.
그는 남녀관계에 대해 잘 모를뿐더러, 안다한들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마도방파도 아닌, 정파무림의 일에까지 신경을 써야 하다니.
‘어쩔 수 없군.’
천마는 할 수 없이 마기자에게 판단을 넘기려 했다.
“조용히 하시오.”
하지만 마기자는 천마의 속내를 들여다본 듯, 재빨리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천마대제께서 말씀을 내리실 테니.”
‘뭐라?’
천마가 고개를 홱 돌리자 마기자가 딴청을 피웠다.
마치 ‘알아서 해결하십쇼.’라는 듯이.
‘저놈이?’
슬그머니 올라오는 화를 꾹 누른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남궁세가 30년 봉문.”
“네?”
“군림방은 이 길로 서부 변방까지 물러나라. 그리고 남궁려가 죽을 때까지 들어오지 말도록.”
“네에?”
남궁려와 한성강이 동시에 펄쩍 뛰었다.
당연히 한쪽이 결단이 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두 문파가 모조리 패가망신을 당하다니?
“선공을 먼저 한 곳은 군림방주였습니다! 어찌 저희 세가가 봉문을 해야 하옵니까?”
남궁려가 억울한 듯 말하자, 한성강이 질세라 외쳤다.
“두 방파의 일에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일을 벌인 건 남궁세가주였습니다. 어찌 저희 방에게 벌을 내리시는 겁니까?”
“시끄럽다.”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천마는 엄숙하게 말했다.
“남녀 간의 일이라 이 정도로 끝난 줄 알아라.”
남궁려는 충격을 받았다.
천마는 무시무시한 마공을 연성했을 뿐 아니라, 희로애락을 점칠 수 없는 대마인이었다.
하지만 남을 먼저 치는 일. 즉 선제공격을 극히 경멸하며, 그 죄를 엄중히 묻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그가 무림에 출도한 이후, 먼저 타인을 공격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 말이다.
‘당연히 먼저 선공을 한 군림방주의 죄를 물을 줄 알았건만, 봉문이라니!’
한성강 역시 충격을 먹었다.
천마는 무를 숭상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지독한 무공광이라고 알려져 있다.
무공을 연마하느라 노력한 자신에 비해, 가정에 소홀히 한 남궁려를 더 벌할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천마는 어찌 되었건 마도의 인물.
단숨에 남궁세가를 멸하고 본방의 체면을 세워줄 줄 알았는데!
‘남궁려가 살아 있을 때까지 서부 변방으로 물러나라니. 이건 봉문보다 더한 처벌이 아닌가.’
“저, 천마 님.”
예상외로 너무나 가혹한 처벌 탓일까?
옆에 서 있던 마기자가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크흠. 이렇게 양쪽으로 가혹한 벌을 내렸다간 정사양도에서 본궁을 원망할 텐데 말입니다.”
“알 게 뭐냐.”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천마 님께서 벌을 거두고 너그러이 용서해 주신다면, 이 부부도 다시 생각을 해볼 것입니다.”
‘이놈이?’
마기자의 옆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가 눈을 부릅떴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 아무래도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두 사람을 부른 것 같다.
‘고얀 놈. 감히 본좌를 이용해?’
기분이 상한 천마가 입을 열려는데, 한성강이 재빨리 두 손을 모았다.
“바로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희 부부가 싸움이 조금 과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남궁려도 억지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모았다.
“대제께서 용서해 주신다면 지금이라도 양파의 싸움을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싹싹 빌자 천마는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너희들은 분명 또 싸울 것이다.”
“어찌 감히 천마대제 앞에서 허언을 아뢰겠습니까?”
남궁려와 한성강이 약속한 듯 동시에 외쳤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두말 않고, 처분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 * *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장채원이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합친 거야? 아님, 결국 무림이 멸망한 거야?”
“합쳤다.”
“그렇구나. 잘 살았네?”
“그렇진 않다.”
코를 후비적거린 천마가 덤덤하게 말했다.
“듣자 하니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은 없다고 하더군. 모두 혼외자식을 두었다는 걸 보니, 죽지 못해 산 것 같았다.”
장채원이 눈이 짝짝이가 되었다.
결국 두 집안이 멸족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결혼생활을 유지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방금 나갔던 두 사람이 그 남궁 씨와 한 씨라고?”
“그렇다.”
“참나.”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고작 부부싸움으로 무림 전체가 패싸움을 벌였다니.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확실하다. 나이가 조금 차이 날 뿐, 분명 남궁려와 한성강이 분명하다.”
“만약 네 말이 맞다고 해도, 이곳은 무림과 다른 곳이야. 여기서는 잘살 수도 있잖아? 심지어 그분들, 재혼이었다고.”
“재혼이 뭐냐.”
“처음 결혼한 사람과 갈라서고, 다시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는 거야.”
장채원의 말에 천마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그 짓을 두 번이나 한단 말인가?”
“야, 이.”
장채원은 잇몸을 훤히 드러내며 손가락질을 했다.
“넌 실수 한 번 안 하고 사니? 결혼도 실패할 수 있어.”
“실수라는 건 한 번이면 족하잖나.”
“한 번 실패하면 인생이 망하니? 재혼 역시 행복을 찾는 과정이라고.”
“그러다 삐끗하면?”
“뭐?”
천마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다 또 실패하면? 세 번째 결혼을 하는 건가.”
“그거야…….”
“멍청한 자들은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지.”
“하아.”
장채원은 천마의 사상에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손님은 떠났으니… 넘어갈 수밖에.
“어쨌든 이번엔 넘어가지만, 다음에 또 손님에게 이러면 그 달 월급은 없는 거야? 알겠어?”
장채원의 단호한 경고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로부터 한 달 후.
장채원은 퇴근 후 모처럼 대형 마트에 들렀다.
식료품도 생필품도 다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라라라.”
카트를 끌고 이리저리 장을 보던 그녀 앞으로 문득 익숙한 얼굴이 들어온다.
한 달 전, 천마가 쫓아내었던 돌싱 여성 손님. 천마의 말에 의하면 남궁세가의 무남독녀, 남궁려였다.
‘어, 어라?’
정면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입을 벌렸다.
남궁려의 옆엔 다정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남성이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때 온 남성, 한성강이 아니었던 것이다.
‘천마 말이 맞는 거였어?’
한 달 사이, 두 사람은 벌써 헤어졌단 말인가?
“아냐. 다른 사람일 수도 있잖아.”
하지만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두 남녀의 모습은 평범한 사이론 보이지 않았다.
“설마.”
장채원은 혼란스러웠다.
이 세계와 천마가 사는 무림이 연결된 걸까?
“나이가 다르고 사람은 같다… 그럼, 전생이 아니라 평행세계라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천마는? 이곳에도 천마와 똑 닮은 인간이 있을까?
그때, 두 남녀가 얼어붙은 채 서 있는 장채원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전에 만나는 사람과는 잘돼가는 거야?”
“으응. 식은 생략하기로 했고, 지금 집수리 중이야. 같이 살아야 하니까.”
‘에엥?’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장채원은 입을 벌렸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사이좋은 오누이 사이였던 것이다.
‘천마, 이 멍청한 녀석!’
결국 모든 것이 천마의 착각이라는 걸 깨달은 장채원은 주먹을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는 저 헛소리에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두 오누이의 대화가 계속 이어져 내려가는 걸 듣기 전까진.
“근데 그 사람… 너무 일만 열심히 하는 게 흠이야. 결혼 후에도 그럴까 걱정이야.”
“그게 무슨 흠이야. 성실한 거지.”
오빠는 철없는 여동생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나 조심해. 다시 재혼하면, 이젠 너도 사교모임 나가는 걸 줄여야 해. 와이프가 바깥으로 도는 걸 좋아하는 남자는 없다고.”
‘뭐야? 맞잖아?’
장채원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여성의 성격은 천마가 이야기했던 남궁려의 성격을 꾹 찍어 닮은 것이 아닌가?
‘대체 뭐가 맞는 거야?’
장채원은 혼란스러웠다.
어디까지 천마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뭐, 내가 알 바 아냐.”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리듯 장채원은 고개를 힘차게 가로저었다.
* * *
어느 시내 아파트, 인테리어 시공 현장.
천마는 모처럼 장채원에게 도배를 배우고 있었다.
도배는 시공도 중요하지만 하자가 없어야 한다. 최근 김찬원에게 다양한 일을 배운 천마는 대부분의 시공을 그럭저럭 완수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종종 하자가 있었는데, 그것은 시공 방법의 잘못이라기보다 시공 현장의 문제였다.
“이 아파트는 천장 테두리가 스티로폼으로 마감되어 있어. 여기에 바로 도배지를 바르니까 벽지가 꼬이는 거야.”
장채원은 거실과 안방의 벽 테두리를 가리켰다.
천장과 몰딩 경계선 부분 군데군데에 벽지가 살짝 일어나 있었고, 당나귀 뱃가죽처럼 늘어진 곳도 있었다.
“그럼 저 자재를 모두 제거해야 하나.”
천마의 물음에 장채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가능하지. 천장 자체에 붙어 있는 데다, 제거한다고 해도 마감이 안 되니까.”
우마 사다리에 올라 천장을 바라보던 그녀는 다시 천장 모서리 부분을 가리켰다.
“평평한 합판 같은 걸로 마감하고 다시 도배를 하자. 그럼 벽지가 떨어지진 않을 거야.”
“벽지를 발라주면서 목공사도 해준단 말인가.”
천마의 속뜻을 짐작한 장채원이 힘없이 웃었다.
“물론 도배공사 하나만 했다면 곤란했을 문제지. 하지만 이곳은 올 수리 현장이잖아. 서비스로 목공사를 해줄 여지가…….”
목을 젖히며 벽지를 가리키던 그녀가 순간 다리를 삐끗했다.
“엄마야.”
중심을 잡으려고 몸을 기우뚱거리자 오히려 허리가 완전히 젖혀졌다.
장채원이 사다리에서 떨어지려는 찰나, 천마가 번개와 같은 동작으로 그녀를 재빨리 부축했다.
“괜찮나.”
“으, 으응.”
장채원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의 얼굴이 한 뼘도 채 되지 않은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마의 얼굴을 바라보는 장채원의 눈동자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설마, 그녀의 못 말리는 금사빠 기질이 발동되었단 말인가?
“우욱.”
아니었다.
장채원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악취를 맡자, 눈동자가 흔들린 것이다.
“우우우…….”
그녀는 허리를 구십 도로 꺾고는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어어억!”
포효하는 곰처럼 걸쭉한 함성을 내뱉은 장채원이 떨리는 시선으로 물었다.
“이게 무슨 냄새야.”
“냄새라니.”
“우웩.”
또다시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눈물 콧물을 쏟은 장채원이 사냥개처럼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이 악취를 못 맡는다고? 너 코 막혔어?”
“악취라니? 안 난다.”
“우욱. 잠, 잠깐만.”
이상하게 냄새가 짙어졌다 옅어진다.
소매로 코를 가린 그녀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너한테 나는 것 같은데.”
“무슨 소리냐.”
천마는 우리옷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냄새 같은 건 나지 않는다. 특히나 우리옷은 항상 옷을 깔끔하게 세탁해 다려 입지.”
“우욱.”
신기하게 천마의 대꾸가 길어지자 악취가 더욱 심해졌다.
그제서야 원인을 찾게 된 장채원. 그녀는 불길하게 생긴 저주인형을 발견한 눈빛으로 천마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 악취. 너 입냄새야?”
“입냄새?”
천마는 솥뚜껑 같은 손을 벌려 하아 하는 숨결을 내뱉었다.
“후아아아아.”
순간 정화조 구멍 안쪽에서나 맡을 수 있는 강렬한 악취가 장채원의 코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아니군.”
“아니긴!”
“자, 확인해 봐라.”
천마는 자신의 숨결이 가득 담긴 커다란 손바닥을 장채원의 안면에 바짝 내밀었다.
“우웨엑.”
그 순간 장채원은 또다시 고개를 바닥으로 숙인 채 구역질을 했다.
“어제 과음이라도 한 건가.”
“시끄러! 네 입냄새 맞잖아!”
눈물 콧물을 쏟은 장채원이 짜증스럽게 외치자 천마가 고개를 저었다.
“본좌는 입냄새 같은 건 없다.”
신기하게도 입냄새는 한번 의식하면 매우 또렷하고 강렬하게 느껴진다.
장채원은 천마가 한 글자 한 글자를 내뱉을 때마다 하수구에서 헤엄치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
“너… 양치질은 언제 했어?”
“양치질?”
“이 언제 닦았냐고!”
순간 천마의 표정이 괴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