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83화 (183/285)

제183화. 이혼과 재혼

“실례합니다.”

부부로 보이는 남성과 여성이 복복 인테리어 매장을 찾았다.

이제 막 사십 대 초쯤 되었을까? 두 사람 모두 꽃중년이라고 불려도 될 만큼 용모가 수려했다.

“인테리어를 좀 알려보려고 하는데요.”

“아, 이쪽으로 앉으세요.”

장채원이 응접 테이블을 가리키자 두 남녀가 의자에 앉았다.

신혼부부일까? 상담을 하면서도 때때로 서로를 싱긋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장채원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두 분, 사이가 너무 좋으시네요. 꼭 신혼부부 같으셔요.”

“아, 그래요?”

서로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짓더니 남성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저희, 재혼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인테리어도 그것 때문에 알아보고 있고요.”

“아, 그러세요?”

“네. 저희보다는, 아이들을 위해서 따스하면서도 분리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서요.”

두 남녀 모두 결혼을 했다가 다시 이혼을 한, 속칭 ‘돌싱’ 같았다

장채원이 열심히 상담해 주고 있는데, 구석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천마가 불쑥 나섰다.

“다시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네?”

“아니, 그만둬라.”

“뭐가요?”

남성이 눈을 껌벅이자 천마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실패는 한 번이면 족하지 않겠나.”

매장 내부엔 적막이 흘렀다.

실패. 그것은 이 두 남녀의 결혼을 지칭하는 말이 아닌가?

“천마, 너 미쳤어?”

분노한 장채원이 스프링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무슨 실례되는 말이야?”

“이건 두 사람을 위한 일이다.”

“뭐?”

천마는 진지한 얼굴로 두 남녀를 바라보았다.

“당장 헤어져라. 매장 문 밖을 나가는 즉시.”

그리고 매우 근엄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순간 두 남녀의 표정이 굳었다.

세상에 미친놈이 많다지만, 손님의 면전에 대고 이러한 말을 하는 자가 있을 줄이야?

“…….”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두 남녀가 매장 밖으로 나갔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장채원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딸랑.

풍경 소리와 함께 두 남녀 고객이 밖으로 나서자, 장채원이 몸을 홱 돌렸다.“천마, 너 죽고 싶어?”

이를 드러낸 장채원의 눈동자에서 시퍼런 빛이 흘러나왔다.

“고객한테 이게 무슨 실례야! 우리 매장 문 닫게 하려는 거야? 엉!”

“천만에.”

입에서 불을 뿜는 듯한 장채원을 보며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본좌는 방금 두 사람의 생명을 살렸다.”

“무슨 헛소리야?”

“아니, 수많은 가문들의 생명까지 살렸지. 어찌하다 보니 소림파의 고승들처럼 공덕을 쌓아버렸군.”

천마의 눈빛은 맑고 또렷해 결코 정신이 나간 것 같진 않았다.

장채원은 혼란스러웠다.

늘 삭막하고 위험한 세계관을 유지하는 천마라고 하지만, 생각해 보니 매장을 찾은 고객에게 무례를 저지른 적은 없다.

“말해봐. 생명을 살렸다니?”

“결혼이라는 건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지. 가문과 가문, 더 크게는 정과 사의 결합이라 할 수 있지.”

“그래서?”

“그런 게 있다.”

잇몸을 드러낸 장채원이 두 눈을 부릅떴다.

“자세히 설명해! 당장!”

쩝 소리를 낸 천마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까 두 사람, 본좌가 아는 자다.”

장채원은 이게 또 무슨 헛소린가 싶어 천마를 바라보았다.

“여자 쪽은 과거 남궁세가의 여식, 남궁려. 그리고 남성은 군림방의 방주 아들 한성강이다.”

“잠, 잠깐만.”

장채원은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몇 개월 전에 싱크대 만들어 달라고 찾아온 신혼부부처럼, 또 무림에서 본 사람들이랑 겹친다는 거야?”

“그렇다.”

“말이 안 되잖아. 방금 들어온 손님은 최소 40대는 되어 보였다고.”

너무 어릴 적에 버려진 탓에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천마의 나이는 대략 사십 대 후반.

만약 두 남녀가 무림에서 환생한 사람이라면 천마가 10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는 뜻밖엔 되지 않는다.

“사실 본좌도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 본좌가 아는 자들이다.”

“착각한 거 아냐?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확신해?”

“용모가 똑같다. 나이가 들긴 했지만, 본좌의 눈을 속일 수 없지.”

“거기선 몇 살이었는데.”

“본좌보다 어렸다. 이십 대 초중반쯤 되었으니.”

확신에 찬 천마의 눈빛을 보자 장채원은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래. 그렇다 치고.”

한숨을 쉰 그녀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왜 두 사람이 만나면 안 되는 거야? 서로 철천지원수였던 거야?”

“비슷하다.”

“비슷한 건 또 뭔데?”

“부부였다.”

순간, 장채원의 눈이 다시 험악해졌다.

“그게 무슨 또 헛소리야?”

“흠.”

헛기침을 한 천마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설명을 이어갔다.

“남궁려는 정파 사교계에서 여왕이라 불리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한성강은 무를 숭상하는 무인이었지.”

* * *

칠문팔가(七門八家) 중 남궁세가의 무남독녀, 남궁려.

사천지역의 패주로 급부상한 군림방 방주 한운룡의 외아들, 한성강.

두 사람은 가문과 방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로 사랑했고, 결국 백년가약을 맺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연애 때에는 볼 수 없었던 성향과 삶의 방식을 결혼 후에나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거 정말 너무하는군.”

한성강은 텅 비어 있는 집 안을 바라보며 짜증스럽게 외쳤다.

“집 안 꼴은 둘째치고, 도대체 집에 붙어 있질 않는구만.”

연공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아내는 늘 집에 없었다.

“객잔이나 가야겠어!”

짜증스럽게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갈 무렵, 마차에서 내리는 아내, 남궁려의 모습이 보였다.

한껏 치장을 한 모습을 보니, 또 어디 사교계의 모임에 나갔다 돌아온 것 같다.

“어머, 이제 오신 거예요?”

한껏 천연덕스럽게 말을 꺼내는 아내를 보자, 결국 한성강은 폭발했다.

“결혼한 유부녀가 대체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요?”

“네?”

“연공을 마치고 돌아오면 집에 한 번이라도 있었냔 말이오.”

“식사 때문에 그래요? 빨리 준비하라고 할게요.”

“식사? 말 한번 잘했소.”

한번 물꼬가 트이자,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만두나 국수라도 손수 끓여준 적 있소?”

“그거야…….”

“아니면 집안일을 한 적이나 있소? 시비들이 정리하지 않으면 집 안도 개판이 되어 있지 않소? 대체 어딜 그리 싸돌아다니는 거요?”

그러자 이번엔 참다못한 남궁려가 소리쳤다.

“뭘 잘했다고 큰소리예요?”

“뭐라?”

“줄창 무공만 연마하지, 집에 언제 일찍 들어온 적이 있냔 말이에요.”

“무인의 본문은 무공을 연마하는 것이오. 그걸 트집을 잡는 거요?”

“연마도 적당히 해야죠? 걸핏하면 폐관수련에, 험지훈련에…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떠돌아다닐 거예요?”

한성강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일월성극공(日月星極功)을 대성할 때까진 어쩔 수 없다고 혼약 전에도 미리 말했잖소. 십 성을 연마하지 않으면 군림방을 물려받지 못한단 말이오.”

“그깟 걸 물려받아 뭐해요? 그래봤자 어차피 마도의 이류 문파인데.”

남궁려의 말에 한성강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방금 뭐라고 했소?”

남궁세가는 무림의 명문세가.

흔히 칠문팔가라 불리는 곳에서도 우두머리의 위치에 있다.

사천에서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수준인 군림방이 남궁려의 눈에 찰 리가 없는 것이다.

“아니, 저는……”

자신이 실언한 것을 깨달은 남궁려가 재빨리 변명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한성강이 똥볼을 찼다.

“허구한 날 상인들의 고혈이나 빠는 정파의 세가 집안의 골빈 여식과 결혼한 내가 멍청이였지!”

“뭐, 뭐라고요?”

“내가 뭐 틀린 말 했소?”

이번엔 남궁려의 눈이 돌아갔다.

“지금 말 다 했어요?”

“다 안 했소! 말이 칠문팔가지, 대대손손 쌓아온 부로 축적만 하고, 사교질만 해대는 백수 집단이 아니오? 근래 남궁세가에서 걸출한 인물이 나온 적이 있소?”

“이이……!”

친절히 물어봐도 자칫 욕이 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집안 사정과 부모 안부를 여쭙는 거다.

하물며, 정파와 마도. 서로 간 금기시되는 말을 빗대어 욕을 했으니, 부부 사이라도 웃고 넘어갈 수 없는 패륜적 공격이었다.

“야! 한성강!”

“감히! 부군의 이름을 그따위로!”

“부군 좋아하네! 그게 남편이 할 소리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용조수와 호조수를 펼쳐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

하지만 두 사람의 무공수위는 막상막하.

결국 서로 큰 부상을 입게 되었고, 남궁려는 남궁세가로, 한성강은 군림방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마도의 백정놈 떨거지가!

-이 정파 개백수 호로쌍년이!

천금 같은 딸과 귀한 아들이 부어터진 모습으로 돌아오자, 부부싸움은 결국 남궁세가주와 군림방주의 싸움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막상막하의 무공 때문에 또다시 서로가 큰 부상을 입게 되었다.

-감히 마도의 백정놈이 남궁 형에게 손찌검을 했단 말이오?

그 소식을 들은 화산파의 장령이자 남궁세가주의 절친, 우문성이 고수를 대거 이끌고 군림방을 치려 했다.

그러자 군림방주의 절친, 혈성문의 문주 역시 칼을 뽑아 들고 분개했다.

-한 방주. 내 그 간악한 호로자식들의 목을 대신 따주리다!

결국 싸움은 번지고 번져, 십여 개의 정사방파가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싸움에 참여하는 방파의 숫자가 갈수록 늘어났다.

만마집궁 내부, 신마대전.

기둥 곳곳엔 신비로운 빛이 흘러나오는 오색야명주가 반짝이고 있었고, 천장에는 천신과 악마가 싸우는 그림들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대전 중심부엔 높다란 제단이 있었고, 보석으로 깎아 만든 용이 새겨진 웅장한 태사의엔 천마가 앉아 있었다.

“그래서.”

의자에 기댄 채 마기자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천마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본좌더러 어쩌라는 거냐.”

“천마 님께서 나서지 않으면, 정사방파들이 계속 박 터지게 싸울 겁니다.”

“알 게 뭐냐.”

“무림맹과 칠문팔가도 이 싸움에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마기자는 입맛을 쩝 다시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마디로 2차 정사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이라는 거죠.”

천마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고작 부부싸움 하나로, 정사의 모든 고수들이 서로 뚝배기를 깨는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이라니.

“웃기는군.”

“차라리 이권 다툼이라면, 협상의 여지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하필 싸움의 시작점이 정파와 사파 간의 자존심을 건드린 문제라…….”

자존심.

어쩌면 전투의 역사는 이 자존심으로 인해 발생되었는지도 모른다.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이 감정 하나가, 인간의 존재가치를 결정하기도 하니까.

“지엄하신 천마 님의 명령 외에는, 독이 오른 정사방파 고수들의 다툼을 멈출 수 없습니다. 만약 이대로 놔둔다면 결국 정사양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겠죠.”

“흠.”

천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무림을 일통한 천마대제 나으리께서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라는 걸 인정한 것이다.

“좋다. 두 연놈을 불러들여라.”

천마의 지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마기자가 입을 가리고 살짝 속삭였다.

“천마 님. 그래도 좋게 이야기해 주십쇼.”

“시끄럽다.”

잠시 후.

신마대전엔 수려한 용모를 지닌 젊은 두 남녀가 조심스레 걸어 들어왔다.

바로 이 싸움의 원인, 남궁려와 한성강이었다.

“천마대제를 뵙습니다.”

“천마대제를 뵈어요.”

두 사람은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읍을 했다.

그러다 시선이 마주치자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싸움은 크게 번질 만큼 번진 상태였다.

남궁세가의 가신, 우문검 주자양이 반신불수가 되었고, 군림방의 부방주 목붕은 오른 손목이 잘렸다.

두 사람을 내려다보던 천마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 본좌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나.”

혈광을 번뜩이는 불세출의 마도대종사, 천마를 보자 두 사람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천마의 말은 즉, 무림의 법.

허튼소리를 하게 된다면 오히려 그 화가 자신에게 미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건 저자의 잘못입니다.”

심호흡을 한 남궁려가 먼저 입을 떼었다.

“저희 결혼생활은, 죽도록 무공을 연마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게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은 생각지도 않고 저와 저의 가문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털썩.

무릎을 꿇은 남궁려가 한 맺힌 목소리로 외쳤다.

“부디 군림방을 봉문시켜 저희 세가의 한을 풀어주세요.”

“제가 부단히 무공을 연마한 것은, 가문을 빛내고 떳떳한 남편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성강 역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가정에 소홀히 하고 밖으로만 돌았습니다. 물론 제가 사람을 볼 줄 몰라 생긴 일입니다. 그러니 제 눈을 파내시고…….”

그리고 피맺힌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대신 남궁세가를 멸문시켜 주십시오.”

“뭐? 이 미친놈이? 멸문? 너 죽고 싶어?”

엎드린 남궁려가 노려보자 한성강이 이를 깨물었다.

“본방은 봉문되면 재기불능이다. 코 묻은 아이들에게 무예를 팔거나 상인들에게 기부금을 뜯는 어느 세가와는 다르단 말이다.”

“뭐? 뭘 뜯어, 뜯기를? 이 망할 자식이!”

“오냐. 너 죽고 나 죽자!”

두 사람이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으려 하자 마기자가 엄숙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만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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