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화. 우렁총각 돌금 (1)
전래 동화, 우렁각시.
바다 용왕의 딸이 아버지 몰래 인간 세상으로 구경을 나왔다.
하지만 이 일탈이 탄로 난 바람에 우렁이가 되는 벌을 받았고, 그러던 중 농부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매번 농부가 없는 사이 집안일을 거들어주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건 동화가 아니었다.
실제로 우렁이들은 영물이었으니까.
우렁이들은 도를 닦거나 혹은 다른 이들을 도와 공덕을 쌓아, 신선이 되거나 인간으로 환생을 한다.
“요즘에는 남을 도울 일이 없단 말이지.”
한적한 농촌마을 어귀.
느티나무 앞에 설치된 평상에 앉아 있던 우렁각시. 아니, 우렁총각 돌금(突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농촌 인구의 고령화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젠 그나마 남아 있는 사람들조차 세상을 떠나갔고, 이제 대부분은 유령마을이 되어버렸다.
즉, 이젠 사람들을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 이젠 도나 닦아볼까.”
먼 하늘을 바라보던 돌금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도를 닦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신력이 흐르는 신지를 찾아가 매일같이 명상과 고행을 반복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할 만큼 괴롭고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차라리 남을 돕고 공덕을 쌓는 일이 더 편한 수준이었다.
“정말 이제는 도시로 가봐야 하나.”
도시.
매연을 뿜어내는 쇳덩이들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정 따위는 메말라 버린 사람들이 사는 곳.
돌금은 백 년이란 시간 동안 도시에 가본 적은 손에 꼽았다.
마지막으로 가본 게 30년 전 정도?
거의 농촌지역에서만 살아왔던 돌금이, 막상 도시로 떠날 결심을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쩔까나…….”
지금까지 쌓은 공덕은 90년.
앞으로 십 년의 공덕만 더 쌓으면 인간으로 환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천년 정도의 공덕을 쌓으면, 작은 식물을 담당하는 신 정도는 될 수 있다.
하지만 돌금은 애당초 인간으로 환생을 원할 뿐, 신 따윈 되고픈 생각이 없었다.
“그래, 한번 가보는 거야!”
이대로 허송세월을 보내느니 도시로 가는 게 나을 것이다.
마음을 먹은 돌금은 봇짐을 매고 주저 없이 마을을 떠났다.
“후우.”
얼마나 걸었을까?
농촌지역을 떠나 실드지역을 넘어 하염없이 걷고 또 걷던 돌금이 도착한 곳은 실드경계지역이었다.
“오랜만에 꽤 멀리 이동했구만.”
아무리 공덕을 빵빵하게 쌓아온 돌금이라고 해도, 이만한 거리를 움직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영기를 보충하기 위해선 다시 우렁이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저쪽이 괜찮겠구만.”
돌금은 어느 빌라 건물 앞에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앞마당을 발견했다.
사방이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 주변에서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뽀옹.
연기와 함께 다시 우렁이로 변한 돌금이 바위 밑, 축축한 흙을 파고들었다.
“와아.”
일요일 오전, 앞마당을 살피던 한호조가 입을 벌렸다.
전능시야를 통해 화단 앞 돌 밑에 커다란 우렁이 한 마리가 엎드려 있는 걸 확인한 것이다.
“우리 마당에도 이런 게 사는구나.”
학교에서 배웠을 땐 강이나 호수, 연못 등지에서 산다고 배웠다.
그런데 우렁이가 앞마당에 살고 있다니? 한호조는 신기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말랐잖아?”
바위틈 안에 있는 우렁이를 바라보던 한호조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다간 죽을 텐데.”
잠시 고민하던 한호조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나온 한호조의 양손엔 채집통과 주머니삽 하나가 들려 있었다.
채집통에 흙과 물, 그리고 상추와 사과까지 예쁘게 담아놓은 후, 조심스레 우렁이를 안으로 넣었다.
“이젠 괜찮을 거야.”
장식장 위에 채집통을 올려놓은 한호조는 씨익 웃었다.
“호조야, 올라와서 밥 먹어.”
그때 거실 스피커에서 초홍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크게 대답한 한호조가 후다닥 방을 나섰다.
그날 밤.
“끼요옷.”
한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돌금이 기지개를 켰다.
뽀옹.
영기를 이용해 몸을 인간의 형태로 변신한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자고 있었더니, 알아서 공덕을 쌓을 기회가 오네!”
비록 잠을 자고 있었지만, 영물인 돌금은 한호조가 자신을 채집통에 넣어주고 집 안에 들여다 준 것을 알고 있었다.
“어디 보자.”
인간의 몸에 우렁이 얼굴을 한 돌금은 집안 내부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영물인 우렁이 특유의 능력으로 인해, 인간 형태로 돌아다니는 돌금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집이 크구나.”
4층으로 된 빌라를 둘러본 돌금이 입을 벌렸다.
농촌의 한가로운 주택만 보다 이런 곳을 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잘됐어.”
집이 크다는 건 그만큼 할 일이 많다는 것. 수년 동안 집안일을 하지 못했던 돌금은 의욕에 찬 표정으로 주방을 뒤적거렸다.
“뭐, 나는 집안일만 해주고 공덕만 쌓으면 되니까!”
근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집이 비어 있을 때 일을 해야 하는데, 이 집은 한시도 사람이 텅 비어 있질 않는다.
결국 고민 끝에 돌금은 사람들이 모두 자고 있는 새벽녘에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디 보자. 뭐부터 할까.”
새벽 4시 무렵.
4층 주방으로 올라간 돌금이 의욕에 찬 눈빛으로 팔을 둥둥 걷어붙였다.
“그래, 밥부터 해야겠다.”
아침이 되면 밥부터 먹을 것이 분명하다.
주방을 뒤적거리던 돌금은 쌀이 가득 채워진 투명한 기계 하나를 발견했다.
“이게 쌀통인가. 어디 보자. 우선 쌀을 씻고…….”
돌금이 조심스럽게 쌀통을 열려고 하는데,
[예약 취사를 시작합니다.]
낮은 기계음과 함께 쌀통에서 촤아아 하는 물소리와 함께 쌀이 회오리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으응?”
깨끗하게 세척된 쌀은 아래쪽에 있는 밥통으로 쏟아졌다.
달칵.
밥통이 닫히며 정수기에 연결된 호수에서 물이 채워지더니 취사 버튼에 불이 켜졌다.
“이게 뭐야?”
돌금은 입을 벌렸다.
기계가 혼자 쌀을 씻고 밥을 할 수 있다니?
“하긴, 도시라는 게 이렇지.”
인간들은 그저 편리함을 추구한다.
그 결과 삶은 기계라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따스한 손길이 들어간 것이, 더 좋다는 걸 모른 채.
“그럼 빨래나 할까.”
입맛을 다신 돌금이 세탁실로 들어갔다.
세탁기라는 물건이 있긴 하지만, 세탁물을 담고 꺼내서 건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니까.
[자동 세탁을 시작합니다.]
“으잉?”
이번엔 세탁기에서 팔이 뽁 나오더니 통에 담긴 빨래를 주섬주섬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세탁물을 입 안으로 삼킨 세탁기가 낮은 진동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세탁도 자동?”
이를 꽉 깨문 돌금이 어지럽혀진 거실로 나갔다.
“그럼 청소나…….”
[자동 청소를 시작합니다.]
그 이후로도 자동 식기세척기, 자동 건조기, 자동 먼지털이, 자동자동자동…….
빌라 내부의 집안일은 무엇이든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뭐 좀 하려면 다 자동이래!”
새벽녘, 무소음 모드로 조용히 돌아가는 기계들을 바라보던 돌금이 절망했다.
문명의 발달은 확실히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돌금의 입장에서는 공덕을 베풀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한 셈이다.
“할 게 없어…….”
밤새 돌아다녀 봤지만, 이 빌라에서 할 집안일 따윈 없었다.
“내가 할 게 없다고.”
결국 해 뜰 무렵, 돌금은 우울한 표정으로 빌라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선 자신의 존재는 성가실 뿐이다.
청소도 빨래도 밥도 모두 기계가 하는 세상에서 돌금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터벅터벅.
그때 저 멀리 세워진 낡은 건물에서 험악한 인상을 가진 거구의 남성이 걸어 나왔다.
“와아.”
순간 돌금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남의 집안일을 백 년 가까이 했던 돌금이다.
얼굴만 봐도 대충 그 사람의 상태를 볼 수 있다.
홀아비 냄새를 풀풀 풍기는 것으로 보아, 혼자 사는 늙다리 총각이 분명하다.
“저길 가야 해!”
돌금은 저 남성이 나온 건물을 빤히 바라보았다.
펄럭이는 이불이 옥탑에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저 건물 꼭대기에 사는 것이 분명했다.
부르르릉.
거구의 남성이 차를 타고 떠나자, 돌금은 황급히 옥탑방 위로 올라갔다.
“오오.”
다행히 옥탑 위에는 선물로 받은 듯한 다양한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이 정도라면 집안일을 하면서 얼마 동안 편하게 머물 수 있을 것이다.
“으응?”
그런데 문이 닫혀 있다.
또 저 망할 놈의 전자식 도어락이니 뭐니 하는 게 달려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돌금도 알고 있었다.
훤히 대문을 열어놓는 시골과 달리 도시는 문단속을 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어쩔 수 없지. 또 새벽에 일을 하는 수밖에.”
뽀옹.
돌금은 다시 우렁이로 변해 화분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거구의 남성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덜컹.
저녁 무렵이 되자 계단 문이 열리고 거구의 남성이 나노봇을 어깨에 매달고 성큼 걸어왔다.
천마였다.
‘오, 왔다 왔다.’
투명한 형태로 변한 돌금은 화분 뒤에 쪼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천마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얼른 뒤따라 들어갔다.
후두둑.
방으로 들어간 천마는 우리옷을 입은 채 욕실로 들어갔다.
그의 우람한 등을 바라보던 돌금이 입을 동그랗게 모았다.
‘오, 나무꾼 저리 가라네.’
백 년 동안 살면서 본 인간 중에 가장 우람한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다.
촤아아아.
금세 샤워를 마친 천마는 그사이 우리옷까지 깨끗이 세탁을 해놓았다.
화아아악!
내공으로 단숨에 옷을 건조시킨 천마는 장롱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더니 밖으로 나갔다.
바로 다듬이질 세트였다.
통닥통닥.
평상에 단정히 앉은 천마는 세탁해 놓은 우리옷을 열심히 다림질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돌금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솜, 솜씨가 좋네.”
돌금 역시 다림질에 일가견이 있는 살림꾼이었다.
다림질을 할 때마다 잡히는 칼각을 잡는 천마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낀 것이다.
“하긴, 홀애비들 중에선 깔끔하고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있지.”
그러고 보니 기분이 쎄하다.
아까 들어갔던 방 내부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아냐. 분명 할 일이 있을 거야.”
집안일 경력도 어느덧 100년이다.
아무리 솜씨가 좋아도 분명히 허점이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이쪽은 자동 세탁기니, 청소기니 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안심한 돌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집 안을 둘러보았다.
“으잉?”
그 쎄한 느낌은 현실이 되었다.
집 안 내부는 마치 돌금이 직접 청소한 것처럼 깨끗했고, 먼지 한 톨도 없던 것이다.
“이게 뭐야.”
방금 전 샤워를 했는데, 욕실 내부는 습기 하나 없이 뽀송하다.
마치 고열로 열소독을 한 듯하다.
눈을 크게 뜨고 곳곳을 살펴도 물때나 찌든 때는 보이지 않는다.
싱크대에도 물기 하나 없다. 집에서 밥을 해 먹지 않으니 취사도구가 없다.
심지어 못된 시어머니처럼 창틀까지 손으로 쓰윽 살펴보았지만… 먼지 한 톨 없다.
“대체 뭐야? 왜 이렇게 되는 건데???”
돌금이 좌절하고 있는데 뒤에서 둥그런 기계가 쓰윽 나타났다.
[근데 누구십니까.]
“어, 어억?”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돌금은 까무러칠 만큼 놀랐다.
돌아보니 둥그런 기계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나 보고 말한 건 아니지?”
[이 방 안에 그쪽 말고 누가 또 있습니까?]
“기계가… 말대꾸?”
돌금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자 무명이 둥그런 머리를 긁적였다.
[우렁이 탈을 뒤집어쓴 투명인간이 말을 하는 게 더 신기하지 않을까요?]
“난 인간이 아닌데.”
[그럼 뭔가요?]
돌금이 으쓱한 얼굴로 말했다.
“아마 잘 모르겠지만, 난 우렁총각이라고 해.”
전래 동화로 치부되는 우렁각시.
심지어 돌금은 우렁각시도 아니고 우렁총각이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하, 집안일을 도와주고 공덕을 쌓는 영물, 우렁총각이셨군요.]
“으응? 날 알아?”
[그럼요. 제 데이터베이스엔 신계나 영물에 관한 것도 들어 있는걸요.]
“그, 그래?”
돌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기계가 내 모습을 볼 수 있지? 지금까지 한 번도 걸리지 않았는데.”
그가 우울한 표정을 짓자 무명이 위로하듯 말했다.
[저에겐 신력이나 영기를 측정할 수 있는 센서가 있어서요.]
“그, 그런 것도 있어?”
[물론이죠.]
돌금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럼 이 도시에선 어딜 가든 너 같은 기계가 있음 모습이 들킨다는 거잖아.”
모습을 들킨 우렁총각은 더 이상 우렁총각이 될 수 없다.
도시에서는 애당초 공덕을 쌓을 수조차 없는 것이다.
[아, 걱정 마세요. 아마도 우렁총각 님을 볼 수 있는 기계는 세계에 저 하나뿐일 테니까요.]
“응?”
[설명하면 좀 긴데요. 그냥 저와 같은 기계는 전 세계에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돌금은 신기하고도 이상했다.
세상에 저런 한 대밖에 없는 기계가 왜 이 허름한 옥탑방에 사는 독거총각에게 있을까?
그때 무명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신가요? 이렇게 멋대로 집 안을 헤집고 돌아다니다 천마 님에게 들키면 불호령이 떨어질 겁니다.]
“그, 그래? 그럼 새벽이 되면 조용히 떠날게. 미안하다.”
돌금이 기운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무명이 눈 센서를 반짝였다.
[아뇨. 제게 미안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좋지 않은데,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도울 일?”
무명의 말에 돌금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사실 그게 말야. 난 오랫동안 농촌에서 공덕을 쌓고 있었는데…….”
돌금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갈수록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농촌에는 아예 사람이 없어. 대부분 다 돌아가셔서.”
곰곰이 듣고 있던 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떠난 지는 꽤 오래된 일이다.
심지어 던전이 나타난 이후부터는 싸구려 식량이 무한 보급되는 추세라, 기업 외에 특별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렇다면 제가 추천드리고 싶은 곳이 하나 있는데요.]
“그래? 어딘데?”
[바로 천마 님의 고용주이신 장채원 님의 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