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80화 (180/285)

제180화. 정크 인테리어

“아아, 톨게이트만 빠져나가면 되는데.”

운전대를 쥐고 있던 여성이 고개를 파묻었다.

꽉 막혀 정체되어 있는 도로는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차가운 빌딩 숲.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 붙은 자동차의 행렬은 바라만 봐도 숨이 턱 막혀오는 듯했다.

“모처럼 쉬려고 마음먹고 결정했는데… 이게 뭐람.”

그녀의 이름은 정여진. 서른다섯 살.

출판업계에선 알아주는 동화작가다.

집필에 강연에, 사인회까지… 신작을 낼 때마다 올라가는 명성과 인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 뚫렸다.”

마침내 톨게이트 지점으로 빠지는 길이 뚫리자 그녀는 액셀을 세게 밟았다.

-띠링. 요금은 3천 원입니다.

부우우웅.

둥글둥글한 그녀의 승합차, 팬더가 낮은 배기음을 내며 톨게이트를 빠져나왔다.

한참 동안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의 작은 단독주택 앞이었다.

“오랜만이네. 여기도.”

고즈넉한 목조주택을 올려다보던 정여진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머물렀다.

열쇠 꾸러미를 꺼내어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의 눈에서 진한 그리움이 흘러나왔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가 홀로 지내셨던 곳이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다. 안부는 전화로, 효도는 넉넉한 송금으로 해결했다.

하지만 그런 건 제대로 된 효도가 아니었다.

일에 몰두하던 그녀가 그런 사실을 알았을 땐,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엄마.”

집 안을 둘러보니 차올랐던 그리움이 더욱 사무친다.

어머니가 사용하던 집기, 가구, 그리고 방 안 곳곳에 머물고 있는 그리운 냄새.

집 안으로 들어오자 지쳐 있던 그녀의 가슴엔 따뜻한 모닥불이 피어오른 듯했다.

“주말에 힐링이나 할까 하고 왔는데…….”

막상 이 낡은 집에 들어와 보니 너무나 아늑하고 기분이 좋다.

낡은 소파에 몸을 기대앉은 정여진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냥… 여기서 살까?”

생각해 보니, 새내기 작가 시절처럼 도시에 꾸역꾸역 머무를 필요가 없다.

그저 집필에만 전념하고, 원고만 건네주면 되니까.

“생각해 보니 굳이 차가운 빌딩 숲에서 살 필요는 없잖아.”

거실에 설치된 통유리 문을 열자 저 멀리, 나무들이 우거진 진짜 숲이 보인다.

바라만 봐도 눈과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그래. 결정했어!”

창밖을 바라보던 정여진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며칠 후. 시내 어느 인테리어 매장.

“안 된다고요?”

상담을 받던 정여진의 눈썹이 팔(八) 자를 그렸다.

벌써 다섯 번째였다.

인테리어 매장에 방문하여 사정을 이야기할 때마다, 직원들이나 실장들은 난색을 표하며 고개를 젓는다.

“인테리어라는 것이 보수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거든요.”

정여진이 찍어놓은 목조주택 내부의 휴대폰 영상을 바라보던 실장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내부 기성품들이 너무 낡았어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냥 기존에 있는 걸 수리해서 쓰고 싶어요.

정여진이 업체에 요구한 것은 오직 한 가지.

기존에 있는 기성품들을 철거하지 않고, 수리해서 쓰고 싶다는 조건뿐이었다.

하지만 목조주택 내부가 너무 낡은 탓에, 대대적인 공사가 들어가지 않고서는 집을 고칠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다.

“낡고 손상된 것들은 전부 철거하시고, 다시 공사를 하셔야 합니다.”

“이걸… 다 허물어야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차라리 전부 다 하는 게 비용면에서도 더 나을 듯하고요.”

안타깝지만 사실이었다.

인테리어는 기존 기성품과 자재들을 다 뜯고 철거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저렴하고 깔끔하다.

기존 기성품을 수리하고 보수하는 건 마감이 깔끔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비용과 시간이 더 많이 든다.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괜찮아요. 정말로요. 어떻게 안 될까요?”

정여진의 말에도 실장은 난색을 표할 뿐이다.

수리라는 건 완성도가 주관적이며, 고객의 만족도도 매우 낮다. 차라리 인테리어 업체 입장에선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나을 정도였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정여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매장에서도 난색을 표하자, 온몸에 힘이 빠져 버리는 느낌이다.

밖으로 나가는 정여진을 향해 인테리어 실장도 미안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밖으로 나왔지만 더 이상 알아볼 업체도 없다.

그냥 도시에서 살까? 아니면 그냥 확 다 고쳐 버려?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서도 피곤이 몰려온다.

지쳤다. 그냥 전원주택에서 사는 꿈은 꿈으로 남겨둘 수밖에.

부르르릉.

다시 팬더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정여진, 그녀는 문득 저 멀리 보이는 간판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어?”

저 멀리 대로변에 작은 한옥으로 된 인테리어 매장이 보인다.

복복 인테리어.

어딘가 모르게 인테리어라는 외래어와 한옥으로 된 건물의 조합이 이질적이다.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 오히려 눈에 확 띄었다.

“마지막으로 한번 가볼까.”

한옥으로 꾸민 인테리어 매장이라.

어쩌면 저곳은 가능해요! 라고 말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좋아.”

결국 정여진은 핸들을 돌렸다.

마지막 남은 체력을 이곳에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안녕하세요?”

지금까지 방문한 인테리어 매장의 사장은 중년의 배 나온 아저씨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복복 인테리어의 실장은 이십 대 정도로 보이는 아주 예쁜 여성이었다.

“저, 상담 좀 받으려고 하는데요.”

정여진이 삐죽삐죽한 얼굴로 들어오자 예쁜 여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이곳에 앉으세요.”

정여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성이 가리킨 둥그런 응접 테이블에 앉았다.

쿵.

그런데 매장 뒤편에서 낮은 진동음이 들리더니, 뒷문에서 시꺼먼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다.

“손님인가.”

‘엄마야!’

그림자를 확인한 정여진은 내심 비명을 질렀다.

마치 조선시대 나무꾼이나 입을 법한 요상한 작업복을 입은 남성이었다.

그녀가 크게 놀란 이유는 그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험악한 인상에, 시뻘건 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먼지들은 뭐야? 여기로 오지 말고 내당 쪽에 가서 씻어.”

“알겠다.”

험악한 인상과 달리 남성은 말 잘 듣는 군인처럼 다시 몸을 홱 돌려 밖으로 나갔다.

“어떤 걸 문의하시려고 하는데요?”

어느새 여성이 정여진이 앉아 있는 응접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저, 그게요…….”

정여진은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니가 살던 집을 수리를 하려고 하는데요.”

한참 동안 정여진의 설명을 듣던 여성, 장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살던 낡은 집 내부를, 가능한 그 상태 그대로 보존해서 수리하고 싶다는 말씀이네요.”

“네, 맞아요. 가능하시겠어요?”

“음.”

잠시 침음을 낸 장채원이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녀 역시 인테리어 전문가다.

새로 하는 공사가 아니라 ‘수리’라는 건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한마디로 새것이 될 수 없는 걸, 새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요. 기존의 물품을 유지한 채 인테리어를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역시 그럴까요.”

“네. 설령 같은 제품을 똑같이 시공한다고 해도… 느낌이 달라질 거예요.”

“같은 자재를 써도요?”

정여진이 눈을 크게 뜨자 장채원이 곤란한 미소를 머금었다.

“새것은 새 거니까요. 예를 들어 어머니의 손길이 자연스레 닿은, 낡은 제품의 느낌이 나오긴 어렵죠.”

순간, 정여진은 살짝 놀랐다.

어떻게 이 젊은 여성은, 내가 집을 원래대로 수리하려는지 알고 있는 걸까?

“어머니 집이라고 하셔서요. 아마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해서…….”

정여진의 놀란 표정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그런 이유라면, 공사는 더욱 힘든 작업이 될 테고요.”

“그렇군요.”

말하지도 않은 속내를 헤아린 전문가마저 난색을 표한다.

정여진은 마침내 완전하고 깨끗이, 인테리어를 포기할 수 있었다.

“감사해요. 시간을 뺏어서 죄송…….”

고개를 숙인 정여진이 자리에서 일어날 무렵,

“가능하다.”

어느새 뒤에서 시꺼먼 그림자가 장채원 뒤로 불쑥 솟았다. 천마였다.

“네?”

“가능하다고 말했다.”

“무슨 소리야.”

장채원이 인상을 쓰자, 팔짱을 낀 천마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크 인테리어. 그 개념으로 수리를 하면 되겠지.”

순간, 그 말을 들은 장채원이 눈을 반짝였다.

정크 인테리어.

195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확산된 정크 아트(junk art)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잘 쓰지 않는 잡동사니나 폐품, 혹은 망가진 기계 부품 등을 이용하는 정크 아트.

이 개념이 인테리어에 접목되어, 페인트칠이 벗겨지거나 손때가 묻어 빛바래 낡아 보이는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정크 인테리어 개념을 이런 곳에다 써먹겠다고?”

장채원은 실소를 하며 고개를 저었다.

“실험적인 생각은 좋은데… 해본 적 없잖아. 게다가 가정집에 말야.”

“천만에. 현대적인 인테리어와 접목도 가능하다. 점주도 책자에 내용을 봤을 텐데.”

“으음.”

장채원이 고민하자 정여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뭔가요?”

“간단히 말하자면, 낡고 유행이 지난 소품들을 감각 있게 배치하여 더욱 익숙해지고 분위기 있게 만드는 연출법이라고나 할까요?”

“빈티지 인테리어…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비슷하긴 해요. 하지만 오래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빈티지 인테리어와 달리, 정크 인테리어는 리폼과 개념이 비슷해요.”

열심히 설명을 했음에도 정여진의 얼굴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쉽게 말해 기존 기성품이 갖고 있는 느낌을 달리 해석해서 바꾸면 되는 것이다, 여성.”

무심히 서 있던 천마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낡은 테이블을, 호신 방망이로 재탄생 시키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비유가 틀렸어.”

“비유는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고객의 만족도지.”

“으응?”

장채원은 눈을 크게 떴다.

저 나무토막 같은 천마가 고객의 만족도를 운운하다니.

“그동안 너무 많이 쉬었다. 본점도 이제 슬슬 일을 해야겠지.”

매장의 상황을 걱정하는 천마의 말에 장채원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좋아, 알았어.”

천마에게 다가선 장채원이 그의 우람한 어깨를 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그나저나 제법인데? 정크 인테리어를 생각하다니. 괜히 인테리어 서적을 읽는 게 아니구나?”

“후후후. 당연하지 않나.”

다시 한번 팔짱을 낀 천마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좌는 천마다.”

며칠 후.

천마와 장채원은 정여진과 함께 그녀가 소유한 외곽의 단독주택을 방문했다.

실제 내부를 실측하고, 어떻게 수리할지를 소비자에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찻장에 쌓인 찻잔을 이용해 전등을 만드는 건 어때요?”

장채원은 내부 곳곳을 돌아다니며, 기성품을 다른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탄생 시킬 아이디어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저, 바깥에 만들어놓은 원두막은 야외 테이블로 다시 만들면 어떨까요?”

“망가진 자전거 페달은… 드레스룸 천장에 달아서 옷 거는 행거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은데.”

“바깥에 무너진 벽은 다시 허물고 기존 벽돌로 다시 무늬를 만들 거예요.”

장채원은 집수리 전문가답게, 기존에 손상되어 있는 기성품들을 기발한 방식으로 리폼 제안을 했다.

그런데 내부를 둘러보던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점주.”

“왜?”

“아무래도 천장과 벽은 철거해서 수리를 해야 할 것 같군.”

자세히 보니 평평해야 할 천장은 처져 있었고, 벽에 붙어 있는 석고는 배가 불러 있거나 덜렁거렸다.

“천장 버팀목까지 모두 철거해야 할 것 같다. 석고보드와 단열재도 철거 후 재시공해야 할 것 같군.”

“철거요? 없앤다고요?”

정여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장채원이 웃으며 말했다.

“싫으시면 반드시 하실 필요는 없어요. 다만 천장 보수 같은 건 기왕 집을 수리할 때 제대로 하는 게 낫겠죠.”

“그럴까요?”

“일, 이 년 살 것이 아니라면요.”

천장과 벽 정도는 괜찮을까……?

잠시 고민하던 정여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생각 좀 해볼게요. 괜찮겠죠?”

“물론이에요.”

이후로도 정여진은 장채원과 천마와 함께 방 곳곳을 살피며 설명을 들었다.

그러다 다락방에 올라간 그녀는 그곳에 놓인 낡은 서랍장을 살짝 열어보았다.

“엄마 옷이 여기에 남아 있었네요.”

정여진은 낡은 스웨터 한 벌을 소중히 집어 들었다.

“돌아가실 때 옷은 무조건 다 태워야 한다고 해서 다 태웠는데…….”

그녀는 양손에 쥔 스웨터를 안아 들었다.

그러자 엄마 품에 안긴 듯 따스하고 그리운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이 냄새요.”

스웨터를 내려다보던 정여진이 장채원에게 물었다.

“이 냄새 같은 것도 인테리어에 포함되면 좋을 텐데. 그쵸?”

“네?”

“아, 아니에요. 그냥 농담한 거예요.”

정여진이 손을 내저으며 웃는 찰나, 장채원의 입에선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가능해요.”

“가능하다뇨?”

“물론 자주 사용되는 분야는 아니지만… 인테리어 시공할 때 냄새를 만들어주는 전문가도 있거든요.”

“냄새를 만들어준다고요?”

“네. 고객이 원하는 냄새를 향수로 만들어줘요.”

정여진은 눈을 크게 떴다.

“정말요?”

“네.”

“이 냄새를 향수로 만들 수 있다니…….”

정여진의 눈에선 미망(未忘:잊을 수 없음)과도 같은 빛이 흘렀다.

어머니의 냄새를 재현할 수 있다니. 그렇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인테리어가 아닐까?

“비용이 비싸진 않을까요?”

“음, 저렴하진 않지만 상식 밖의 가격은 아니에요. 한번 물어볼까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만요.”

장채원은 들고 있던 구형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 낮고 중후한 음성이 들려왔다.

-누님. 어쩐 일이십니까.

“너, 사람 체취도 만들 수 있다고 했지?”

-물론이죠.

“그럼, 내가 샘플 갖다주면 그걸로 향수를 만들어줄 수 있겠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대답이 돌아오자 헛기침을 한 장채원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비용이 얼마나 들까?”

-음. 원래는 최소 300만 원 받는데, 누님이라면 뭐… 그냥도 만들어드려야죠.

“아니. 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 고객님이 필요해서 그래. 저렴하게 해줄 수 있어?”

-그럼요. 원하시는 금액대를 말씀해 보세요. 맞춰드릴게요.

시원한 대답이 돌아오자 장채원이 낮게 속삭였다.

“100만 원에 좀 해달라고 해볼까요?”

정여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300만 원에 해주세요. 대신 꼭 잘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장채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들었지? 대신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주고. 샘플은 나중에 갖다줄게.”

-하하하. 물론입니다. 염려 마십쇼.

전화를 끊은 장채원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건 제 생각인데요. 저 향수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재현되는지, 어느 정도로 만족도가 있는지 확인부터 하고 공사를 진행하는 게 어떨까요?”

“네?”

“만약에 그 향수가 고객님의 만족도를 올릴 수 있다면… 수리할 수 있는 부분도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어요.”

장채원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만약 그 향수가 고객님이 만족할 만큼 그리움을 채워준다면… 집안 분위기가 조금 더 달라지더라도 망가진 부분은 수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하나부터 열까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정여진의 마음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장채원의 따스한 배려에 감동한 정여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주일 후. 시내 외곽, 정여진의 단독주택.

장채원은 정여진과 함께 이 집에서 향수의 효과를 시험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한번 꺼내볼게요.”

장채원은 핸드백에서 금빛으로 물든 향수병을 내밀었다.

병을 받아든 정여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향수병의 뚜껑을 열었다.

“아.”

향수병을 열자마자 그리운 냄새가 밀려온다.

바로 어머니의 옷에서 맡았던 그 냄새였다. 그립고도 따스한…….

향수병에 들어 있는 향기는 어머니의 옷에 배어 있던 냄새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똑같았다.

“똑같아요. 완전히.”

“다행이네요.”

장채원이 안심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한번 뿌려볼게요.”

“네.”

정여진은 조심스레 향수를 집 안에 뿌렸다.

치익.

그러자 집 안 내부가 어머니 옷에서 맡았던 따스한 냄새로 가득 찼다.

“아아…….”

정여진은 홀린 듯 그 냄새를 맡았다.

마음이 안정되고 가슴속에 따스한 불이 또다시 켜진 느낌이다. 아니, 느낌이어야 했다.

‘어라?’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냄새는 분명 같았는데 무언가가 빠져 있다. 마음이 편안해지지도, 가슴이 따스해지지도 않았다.

“왜 그러세요?”

“뭔가… 빠져 있는 것 같아서요.”

“그런가요?”

장채원은 장롱 속 스웨터와 향수의 냄새를 비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냄새는 같은데…….”

“그러게요. 근데 뭔가가 빠져 있는 것 같아요.”

곰곰이 생각하던 정여진은 집 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의 풍경은 변함이 없었으나, 따스한 미소를 머금던 어머니는 없었다.

‘그렇구나.’

동화작가인 정여진은 그 누구보다 감수성이 예민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향수에서 단숨에 무언가가 빠져 있는지를 깨달았다.

엄마의 따스함.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향수는 엄마의 냄새를 완벽히 재현해 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의 그 따스한 기운은 복사하지 못했다.

‘냄새는 그저 냄새일 뿐.’

진짜 어머니의 그리운 냄새는 살아 계실 때만 맡을 수 있다.

똑같은 냄새를 만든다고 해도 그 냄새는 같지 않다.

집 안을 똑같이 만든다고 해도, 그 집은 똑같지 않다.

왜냐하면 사랑했던 어머니는 곁에 없기에.

“그렇군요.”

“뭐가요?”

“저, 결정했어요.”

눈물이 가득 찬 채로 활짝 웃은 정여진이 말했다.

“여기 집 안, 깨끗하게 다 철거 후 새로 만들어주세요.”

며칠 후.

단독주택의 내부 공사가 시작되었다.

낡고 부서진 기성품은 흔적도 없이 철거되었고, 깨끗한 새 자재들로 하나씩 채워져 갔다.

그대로 보존한 것은 그저 장롱 속에 남은 어머니의 옷이었다.

몇 달 후.

도심에서 외곽의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정여진.

그녀는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고즈넉한 슬로우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다.

타타타탁.

고요함이 흐르는 서재 내부.

테이블에 올려둔 노트북으로 글을 쓰던 정여진은 마침내 타자기에서 손을 내렸다.

“끝났다.”

원고의 제목을 바라보던 정여진은 미소 지었다.

-사랑은 별이 된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는 작은 시가 적혀 있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두 개의 별이 됩니다.

하나는 아름다운 별이 되어 하늘에 남고, 나머지 하나는 내 가슴속에 남습니다.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하늘에 있는 별은 반짝이고,

먹먹한 그리움에 마음이 어두워지면, 가슴속의 별이 반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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