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화. 양양 신뢰 (5)
[천마 님. 염령에겐 페이징과 비슷한 패시브 스킬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흥!”
코웃음을 친 천마는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또다시 수천 가닥의 장력을 연달아 뻗어냈다.
페이징 스킬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짐작하고 뻗어낸 전술이다.
-쿠후후!
하지만 염령에게 페이징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슈욱 소리와 함께 다시 하늘 위로 솟구친 염령은 순식간에 천마가 쏘아낸 장력을 피해내었다.
“어림없다.”
하지만 그 엄청난 속도를 따라잡은 천마는 이미 회심의 장력을 모아둔 채 염령의 뒤에 서 있었다.
“빙천동지(氷天凍地)!”
파아!
천마의 손이 뻗자 하늘이 열리며 거대한 얼음기둥이 염령에게 쏟아졌다. 이 정도의 극음지기라면 단숨에 염령을 얼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지잉.
하지만 얼음기둥이 몸에 파고들려는 순간, 염령은 또다시 페이징 기술을 사용해 몸을 피해냈다.
“이런.”
그 모습을 본 천마는 낭패스러운 표정을 금치 못했다.
건물이 아닌 외부와 완전히 노출된 화산 던전.
그 드넓은 산꼭대기를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는 데다, 결정적인 순간엔 페이징을 발휘할 수 있는 위험도 5만의 히든몬스터.
던전에 들어온 이래 천마는 최악의 상황을, 그리고 최강의 몬스터를 마주한 것이다.
“천 씨. 아무래도 우선 후퇴를 해야 쓰겄는디.”
“후퇴?”
천마의 눈썹이 솟구친 것을 발견한 김찬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저 몬스터가 온갖 재주를 다 부리면서 공격을 흘리잖여. 우선 방법을 강구해서 다시 오자고.”
그때 바위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무명이 소리쳤다.
[천마 님. 독문무학이라는 걸 사용하면 되지 않습니까?]
순간 천마의 눈썹이 솟구쳤다.
장력이 미치는 공간마저 일그러뜨려 버리는 신마멸천장.
그 천고의 장법이라면 설령 페이징을 펼친 상태라고 해도 단숨에 염령을 소멸시켜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불가하다.”
염령을 노려보던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좌의 내공이 온전하지 않은 탓에 신마멸천장을 펼치기 위해선 격렬한 자세와 천마대능력을 합일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거기다 장력 범위는 불과 한 장(약 3미터) 남짓이지.”
[그랬군요.]
그제서야 무명은 천마가 부비스톤을 굳이 양손으로 모아 터뜨렸던 이유를 깨달았다.
[한마디로 근접박투전용 기술이라는 것이군요.]
“그렇다.”
최강의 파괴력을 가진 신마멸천장에 이러한 제약이 있었다니.
위이잉.
무명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용자인 천마는 결코 전투 중에 몸을 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빨리 염령을 처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김찬원 님. 바람으로 저 염령의 발을 잠깐 동안 묶어놓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을매나?”
과거, 천마가 화재 현장에서 신마멸천장을 발휘했던 시간을 계산한 무명이 눈 센서를 번뜩였다.
[6초, 아니, 5초 남짓입니다.]
그러자 김찬원이 눈을 번뜩였다.
“그 정도면 문제 읎지.”
-쿠…….
그때 허공에 떠 있던 염령의 몸이 더욱 붉어졌다.
설마 지금까지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활활 타오르는 염령의 눈빛은 천마가 아닌 양팔을 쭉 뻗은 채 요력을 모으고 있는 김찬원에게 향해 있었다.
“천 씨! 저놈의 눈치챈 거 같어! 어서 빨리 시작혀!”
지지지직!
천마가 반극진기를 끌어올리자 발밑에서 노란 광점들과 불꽃들이 격렬하게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쿠우!
괴음을 쏟아낸 염령은 양팔을 벌리더니 천마와 김찬원이 서 있는 곳으로 거대한 불꽃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어림음서!”
천마의 앞을 가로막은 김찬원이 양팔을 벌리자 바람으로 만들어진 투명한 실드가 생겨났다.
콰우우우우!
거대한 불꽃과 바람이 쏟아지자 김찬원의 몸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김찬원 님. 힘내세요!]
무명의 외침 소리가 끝날 무렵,
“신마…….”
천마의 몸에서 시꺼먼 기운이 솟구치더니 혈염광휘가 맺힌 눈동자마저 까맣게 물들었다.
쿠쿠쿠쿠쿠…….
절망과도 같은 진동과 함께 전신을 검게 물들인 천마가 낮게 속삭이자,
-쿠우우우우!
불꽃을 쏟아내던 염령이 두려움을 느낀 듯, 공격을 멈추고 하늘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슈욱.
하지만 어느새 검게 물든 천마가 까마득한 상공에 떠 있는 염령의 뒤에서 나타났다.
“멸천장…….”
-캬아아아아아아!
어둠 속에서 깨어난 마신의 포효 소리가 이러할까?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음파가 울려 퍼지며 염령의 몸이 까맣게 물든 공간 속에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지잉. 지잉. 지잉.
천마의 양손에서 생겨난 까만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염령은 끊임없이 페이징을 시도했다.
하지만 마치 자석에 달라붙은 쇳가루처럼 염령의 몸은 가루가 되어 까만 공간 속으로 달라붙기 시작했다.
-콰우우우우우우!
까맣게 물든 신마멸천장의 장력이 하늘 위로 솟구치더니 염령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후우. 후우.”
다시 땅으로 착지한 천마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부비스톤을 파괴할 때처럼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었으나, 일 갑자의 반극진기와 천마대능력으로 신마멸천장을 펼치는 것은 엄청난 무리였다.
“흐으. 대단하구먼, 천 씨.”
염령의 전력을 다한 불꽃을 바람으로 막아낸 김찬원 역시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머리는 파마를 한 것처럼 풍성하게 변해 있었다.
[천마 님. 김찬원 님. 괜찮으십니까?]
재빨리 굴러온 무명은 다급히 천마와 김찬원의 몸 상태를 점검하려 했다.
“신경 쓸 필요 없다.”
몸을 꼿꼿이 세운 천마가 손을 내젓자 무명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던전에 갈 땐, 몸을 회복시킬 수 있는 물품들을 구매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냐.”
[앞으로 이만한 히든몬스터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각성자 상점에는 무기와 방어구뿐만 아니라 전투와 회복에 필요한 유용한 도구와 물품들을 팔고 있습니다.]
“본좌더러 잡졸을 상대하는 데 연장을 사용하란 말이냐.”
[꼭 무기가 아니더라도 회복 도구를 사두면 지금처럼 격렬하고 위험한 전투를 벌일 시에는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위험한 전투?”
방금까지도 가쁜 숨을 몰아쉬던 천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모습으로 팔짱을 꼈다.
“저런 잡물 따위 잡는 건 본좌에게 몸풀기에 불과하지.”
무명과 김찬원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 천마가 코를 훔치며 낮게 중얼거렸다.
“…내공을 모두 회복하면 말이다.”
“…….”
잠시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김찬원은 아무 말도 못 들은 것처럼 활기차게 두 손을 비볐다.
“자아, 일도 모두 끝냈으니 미요석이라는 걸 한번 붙여보자고.”
[이쪽입니다. 여기 화산의 분화구가 바로 마그마 연못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불길이 타오르는 작은 연못 같은 분화구를 가리킨 무명이 천마에게 말했다.
[자, 이제 두 분이 갖고 있는 미요석을 여기에 넣으시면 됩니다. 넣으면 두 돌이 알아서 붙을 겁니다.]
“그려. 그럼 얼른 넣어보자고.”
김찬원이 등 뒤에 짊어지고 있던 미요석을 꺼내어 분화구 앞에 집어 던졌다.
“천 씨도 얼른 던져봐아.”
“알겠다.”
쩌저적.
그때, 어딘가에서 불길하고도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냐. 무슨 소리냐.”
“천, 천 씨…….”
사색이 된 김찬원이 입을 벌리며 손가락으로 천마를 가리켰다.
천마의 등 뒤에 단단하게 짊어지고 있던 미요석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쩌쩍. 와르르르르.
결국 산산이 조각난 미요석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여.”
떨리는 걸음으로 다가온 김찬원이 박살 난 미요석을 바라보자,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신마멸천장의 여파로 인해 박살 났군.”
“뭐어???”
“마물을 때려잡을 때 이 돌을 짊어지고 있던 게 실수였다.”
“그, 그럼 어떡혀? 지금까지 개고생한 게 모두 헛수고가 되었잖여?”
무릎을 꿇은 김찬원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난리 났구먼. 미요석을 원래대로 하지 않으면 장 사장도 복복 인테리어도 곤란해질 텐디.”
“곤란해지다니.”
“장 사장을 갈구러 올 수도 있어. 적희, 그 양반이 말여.”
“별일 아니로군.”
“별일 아니라니? 잘 생각혀 봐.”
적희의 성격을 익히 잘 알고 있는 그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 지랄 맞은 성격으로 염병귀신처럼 광분하면 장 사장도 이성을 잃을지 모른다고. 장 사장 눈 돌아가면 어찌 되는지 몰라?”
순간 천마는 두 눈이 하얗게 뒤집힌 채, 하단 차기를 날렸던 장채원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짧은 순간은 천마가 태어난 이래, 칼을 깨물고 싶을 만큼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렇군. 큰일이로군.”
휘이이잉.
그때 갑자기 머리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천마와 김찬원, 무명은 모두 하늘 위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주 작고 반짝이는 파란 보석이었다.
[저건… 염령의 유물일까요?]
멍하니 바라보던 무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포옹.
그 파란 보석은 용암이 흐르는 화산 분화구에 똑 떨어져 버렸다.
“…….”
천마 일행은 약속이나 한 듯 넋을 잃은 표정으로 분화구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퍼엉!
갑자기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분화구에서 뜨거운 열기와 함께 파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하늘 위로 뭉게뭉게 퍼지는 파란 연기를 바라보던 무명이 천마와 김찬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분화구에서 파란 연기가 피어오를 수 있을까요?]
“그러게 말여.”
김찬원이 머리를 쑥 내밀어 분화구를 바라보는 순간,
후두두둑.
갑자기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점차 거세어진 빗발은 마침내 장대비가 되어 온 대지를 적시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분화구에서 솟구치는 파란 연기가 하늘에서 만나 비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묘하군.”
손끝으로 비를 매만진 천마의 눈에서 이채가 떠올랐다.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엔 마치 신력이 담겨 있는 듯, 오묘한 힘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치이이이이.
비가 내리자 놀랍게도 분화구에 흐르던 용암들이 차갑게 식기 시작했다.
그런데 용암이 식자 김찬원이 던져놓았던 네모난 미요석이 다시 위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으잉? 저게 왜 빛이 나는 겨?”
어느새 분화구 위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반쪽의 미요석.
그 전과 달리 신비로운 하늘색을 머금은 채 오묘한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 * *
양양 가변던전 지역 1킬로미터 지점.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몰려드는 포이즌 스네이크를 바라보던 이준혁이 눈을 비볐다.
굵은 빗줄기가 안개와 뒤섞인 유독가스를 모조리 씻겨내려 주었다. 뿐만 아니라 비에 맞은 포이즌 스네이크들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바닥에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부르르르.
고통스럽게 몸을 떨던 스네이크들은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절명했다.
후퇴하던 청룡조합의 길드원들은 그 모습을 바라본 채 멀뚱히 서 있었다.
“설마, 비에 독이 있는 걸까요?”
이준혁의 옆에 서 있던 손민석이 초점 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도 곧 이렇게 되는 건 아니죠?”
하늘을 멀뚱히 바라보던 이준혁은 떨어지는 빗방울에 손을 뻗었다.
“오히려 힘이 나는 것 같지 않냐?”
“네?”
“이상하게 힘이 나고… 머리도 맑아진 것 같은데.”
손민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로마 마사지를 받고 한잠 푹 잔 것처럼 몸에 활력이 넘쳐흘렀다.
주위를 둘러보니 피로에 지쳐 있던 길드원들 역시 활기를 되찾은 얼굴로 우뚝 서 있었다.
며칠 밤 동안 지독한 전투를 반복했던 각성자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포이즌 스네이크는 모두 퇴치되었다.
-곧 실드 설치팀이 작전 지역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실드 설치가 완료되면 조속히 본부로 복귀하길 바란다.
어깨에 멘 나노봇에선 협회 지휘 본부에서 들려오는 무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형님. 이제 우리… 온천랜드에 갈 수 있는 거죠?”
정말이지 온천에 미친 놈 같다. 온천랜드 사장도 저 정도로 온천을 홍보할 것 같지 않다.
“실드 설치팀 왜 이리 안 오죠? 빨리 가고 싶은데…….”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손민국의 중얼거림에, 이준혁이 피식 웃었다.
“미친 새끼.”
* * *
월광 온천랜드, 카운터 휴게실.
“이거 청령석이잖아요?”
천마가 내민 파란 돌을 유심히 바라보던 지배인이 입을 쩍 벌렸다.
“대체 이걸 어디서…….”
“그 화산 던전 꼭대기 연못(분화구)에 집어넣었더니 이렇게 됐다.”
“말도 안 돼요. 마그마 연못에 넣었다고 미요석이 청령석이 된다고요?”
신비로운 빛을 번뜩이는 청령석을 매만지던 지배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청령석은 신력이 가득 담긴 신지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신비의 돌이에요. 주먹만 한 청령석만 해도 보기가 드문데…….”
“이걸론 안 되는 건가?”
천마의 물음에 지배인이 두 손을 저었다.
“그럴 리가요? 청령석은 그 가치로만 따져도 미요석의 오십 배, 아니 백 배 이상은 차이 나는 보물인걸요.”
“백 배?”
“청령석을 담가놓은 물은 몸 안의 탁한 물질을 배출시킬 뿐만 아니라, 쌓여 있는 피로를 단번에 날려주는 효능이 있어요. 그저 여인들이 예뻐 보이게 만드는 미요석과는 그 가치가 천지 차이죠.”
가만히 듣고 있던 김찬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하지만 기존 미요석보다 절반 정도로 작아졌는디. 정말 괜찮겄소?”
“물론이죠. 이 정도 크기의 청령석이라면, 기존 미요석보다 더 확실한 효능을 발휘할 거예요.”
지배인의 말에 굳어 있던 천마와 김찬원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그리고 천마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무명도 신이 난 음성으로 말했다.
[정말 다행입니다.]
지배인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요석을 청령석으로 바꾸어주셨으니, 적희 님이 아시면 큰 상을 내릴지도 모르겠네요.”
* * *
부우웅.
통통한 곡선을 가진 하얀 승합차가 경쾌한 배기음을 내며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천마 일행이 타고 있는 장채원의 승합차였다.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뒷좌석 시트에 푹 기댄 채 무명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채원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애시당초 천마 네가 멋대로 미요석을 부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는 일이었단 말야.”
“맞습니다. 애당초 돌을 부순 근육몬 잘못이지 말입니다.”
옆에 있던 고은진 역시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근육몬하고 김 기사님이 던전에서 시간을 보낸 사이, 우리가 나머지 작업을 다 했단 말입니다.”
천마의 활약상과 관계없이, 장채원과 고은진은 둘이서 욕탕 보수작업을 한 것이 불만인 것 같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네 사람이 함께했을 때와 달리 두 사람이 보수를 시작하니 공정도 복잡해지고 작업도 더 힘들었던 것이다.
“미안하게 됐구먼. 우리가 빨리 왔었어야 하는디.”
조수석에 앉아 있는 김찬원이 머리를 긁적이자 고은진이 손을 내저었다.
“김 기사님 잘못이 아니지 말입니다.”
“어쨌든 좋은 일이 될지도 몰러. 미요석을 청령석으로 바꿔놨응께.”
“뭐가 좋아요. 온천랜드만 더 호황일 텐데요.”
장채원이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김찬원이 고개를 저었다.
“적희, 그 양반이 자주 온다고 하잖여. 혹시 알어? 고맙다고 팍팍 신뢰를 밀어줄지도?”
“됐어요. 그런 요신 님은 안 보는 게 더 고마운 일인걸요.”
운전대를 잡은 채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천마가 눈썹을 모았다.
“적희라는 신이 그렇게 개차반인가.”
“잘 아네. 오죽하면 별명이 풍작 님이실까.”
“풍작이라니.”
“지랄이 풍작이라고.”
한동안 쓰잘데기없는 대화가 차 안에서 오갔다.
한참 동안 시끌벅적했던 차 내부에서 점차 대화가 끊어졌다.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던 제비가 뀨 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래도 재밌었다냥!
즐거움에 찬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동시에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가엔 모두 즐거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