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78화 (178/285)

제178화. 양양 신뢰 (4)

이준혁의 어깨에 있던 나노봇이 횡설수설할 무렵,

샤아아아악.

기분 나쁜 소리가 더욱 커질 무렵, 선두 대열 좌측에 서 있던 길드원 손민준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길드장님! 포이즌 스네이크… 상위종으로 나옵니다!”

손민준의 머리엔 헬멧형 나노봇이 장착되어 있었다.

신형 나노봇처럼 음성 안내라던가 다양한 기능은 없지만, 오류가 적어 갑자기 등장한 몬스터를 탐지하기엔 최적화되어 있었다.

“뭐? 그게 뭔데?”

“안개 속에 몸을 숨길 수 있고, 입속에서 유독가스를 퍼트릴 수 있는 몬스터라고 합니다! 위험도는 마리당 3000에 육박할 거라고 합니다.”

“뭐라고?”

탱커가 대부분인 청룡조합에서 주력 공격자들의 스킬은 대부분 폭발이다. 그런데 유독가스라니?

스스스슥.

그런데 저 멀리 뒤쪽에서도 낮은 진동음이 들려왔다.

-뒤쪽에서도 포이즌 스네이크가 나타났습니다!

후미에서 들려오는 외침이 나노봇으로 전해지자, 이준혁이 나노봇에 대고 외쳤다.

“호석이랑 준근이! 후미와 선두에 와서 각각 에너지 결계 만들어!”

-알겠습니다!

“세라야. 여기 안개 독 수준이 어때? 중독 증상 있는 애들 치료 가능하겠어?”

-순수한 독이 아니라 안개와 가스가 뒤섞여 있어서 장담은 못 해요. 우선 시도는 해볼게요.

스스스스스.

그 사이 안개 속에서 독을 뿜어내며 밀고 들어오는 수백 마리의 그림자가 있었다.

포이즌 스네이크.

보통은 독이빨을 아가리에서 발사하지만, 이 가변던전에서 서식하는 상위종은 입에서 독을 내뿜고 있었다.

“젠장! 이 망할 안개 때문에!”

이준혁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안개 색과 같은 수백, 수천 마리의 포이즌 스네이크. 거기다 유독가스를 뿜는 탓에 섣불리 폭발 스킬을 사용할 수도 없다.

칙.

그때 나노봇에서 협회 지휘 본부에서 보낸 무전이 들려왔다.

-각 길드와 팀원들에게 전달.

-대량의 포이즌 스네이크가 출현. 위험도 3500. 안개 속에 몸을 감출 뿐 아니라 유독가스를 살포하기 때문에 주의할 것.

“형님. 어쩌죠? 이러다 인명피해가 크겠어요.”

주위를 둘러보던 손민석의 말에,

‘제길!’

안개 속에 둘러싸인 주변을 바라보던 이준혁은 이를 깨물다 소리쳤다.

“우선 후퇴해!”

* * *

양양 비행장 근처, 화산 던전.

쿠우웅.

던전의 문을 열자 화악 소리와 함께, 뜨거운 공기가 쏟아졌다.

던전 내부로 들어오자, 화산 분화구로부터 멀지 않은 산 중턱의 풍경이 보인다.

월광 온천랜드의 비밀통로를 통해 들어온 화산던전. 던전 내부는 어떠한 건물이 아닌, 말 그대로 화산 그 자체가 던전이었던 것이다.

쿠우웅.

땅에는 기괴한 암석들이 깔려 있었고 낮은 진동이 간헐적으로 발생했다.

“…그런 사정으로 이 던전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화산 정상으로 걸어 올라가는 천마가 긴 이야기를 마쳤다.

그의 옆에는 반 조각난 미요석을 짊어진 김찬원이 나란히 나란히 걷고 있었다.

“허허허. 그랬구먼.”

산길을 오르는 동안 천마에게 모든 사정을 들은 김찬원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선녀탕에서 흐르는 기운 때문에 장 사장의 매력이 치솟았고, 그 때문에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는 거지?”

“그렇다.”

“으허허허. 안 그래도 이상하게 생각했구먼.”

“뭐가 말이냐.”

“글쎄, 어제 장 사장의 용모가 새삼스레 예뻐 보이는 것이여.”

껄껄 웃던 김찬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 늙은 노인네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 정도라니. 선녀탕 효능이라는 게 확실하긴 확실한 것이구먼.”

“김 씨도 느꼈었나.”

어제저녁 자리에서 종종 가슴을 부여잡던 김찬원. 그 역시 장채원의 아름다운 미모에 가슴이 쿵쾅거리는 걸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근디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구먼.”

김찬원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은진 씨한테는 선녀탕의 효능이 없었던 겨? 은진 씨는 평소랑 똑같던디?”

순간 천마는 지배인의 말을 떠올렸다.

-호감이나 연심을 품은 여인. 혹은 시기를 놓친 노처녀들에게만 반응하죠.”

“노처녀에게만 반응한다고 하더군.”

지배인의 설명을 반 이상 잘라먹는 천마가 덤덤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 회색 눈깔 애송이에겐 효과조차 나타날 수 없었던 게지.”

“그랬던 겨?”

김찬원은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정말 괴상한 효능이구먼. 하긴 요희 양반도 나이가 자실 때로 자셨으니, 선녀탕에 목을 매는 것이겠지만.”

고개를 끄덕이던 김찬원은 문득 천마의 어깨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무명을 바라보았다.

“근데 무명, 너는 오늘따라 왜 이리 조용한 겨?”

[너무 더워서요.]

예상을 뒤엎는 대답에 김찬원이 입꼬리를 실룩였다.

어지간한 농담에도 진심으로 웃지 않는 김찬원도 때때로 무명의 말에 폭소를 터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전방에 몬스터가 감지됩니다.]

무명의 외침과 동시에 땅에서 시뻘건 불꽃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푸스스슷.

하얀 연기와 불꽃이 분수처럼 퍼져나가더니 마침내 칼과 창을 든 인간의 형태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불꽃전사입니다. 위험도는 1500. 고열을 내뿜는 칼과 창을 사용합니다. 공격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불꽃의 형태로 돌아가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흠.”

천마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주먹을 주물럭거리자 김찬원이 손을 내저었다.

“천 씨. 이런 몬스터 때문에 힘 뺄 필요 없어. 이런 건 그냥 나한테 맡겨.”

씨익 웃은 김찬원이 팔을 뻗자 등 뒤로 맹렬한 돌개바람이 떠올랐다.

파라라라락.

세차게 쏟아지는 돌개바람이 불꽃 형태의 불꽃전사를 두 조각 내기 시작했다.

화르륵.

바람칼 세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불꽃전사들은 또다시 불꽃 형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피잉.

그러자 예리한 바람칼이 불꽃전사의 몸을 통과해 헛되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아따, 고놈덜. 머리 좀 쓰는구마잉.”

빙긋 웃은 김찬원의 눈에서 싸늘한 빛이 맴돌았다.

동시에 양팔을 벌리자, 불꽃 형태로 바뀐 불꽃전사의 몸뚱이들이 하나둘씩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허공으로 떠오르는 전사들이 다시 형태를 되찾자 바람칼이 날아온다.

불꽃 형태로 바꾸자니 돌개바람이 허공으로 몸을 띄워 공중으로 날려 버린다.

푸르르릇. 휘리리리릭!

예리한 바람 소리가 끊임없이 공기를 가른다. 그때마다 위험도 1500에 육박하는 불꽃전사들이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소멸되고 있었다.

화르르륵!

땅속에서는 불꽃전사들이 연달아 생성되었으나, 그때마다 김찬원은 바람을 일으켜 그들을 두 조각 내거나 날려 버렸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김찬원이 능수능란한 전법으로 불꽃전사들을 해치우는 모습을 바라보던 무명이 탄성을 내었다.

[바람의 힘으로 불속성 몬스터들을 소멸시키다뇨. 정말 들어보지도 못한 전법입니다.]

본래 바람과 불은 상성이 좋아 서로의 힘을 극대화시킨다.

하지만 김찬원이 쏟아내는 바람은, 너무나 강력하고 예리하여 불의 힘을 남김없이 소멸시키고 있었다.

“대단하군. 이만한 강력한 바람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다니.”

묵묵히 걸어가는 천마마저 감탄성을 내뱉자 김찬원이 쑥스럽게 손을 내저었다.

“별거 아녀. 불을 사용하는 몬스터라면 이골이 나부러서.”

대수롭지 않게 말한 김찬원의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깊어졌다.

불을 사용하는 몬스터로 인해 화염산 던전에서 헤어졌던 자신의 친우, 김광욱이 떠오른 탓이리라.

[이제 마그마 연못이 있는 던전 중심부, 화염산 정상에 곧 도착합니다.]

어느새 화염산 정상에 도착할 무렵,

우우웅.

던전 중심부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땅에서 낮은 진동과 함께 커다란 화염이 치솟았다.

화르르르륵.

동시에 시뻘건 형태의 액체가 땅에서 흘러나오더니, 점차 갑옷을 입은 기사의 모습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화산 던전의 보스 몬스터, 불꽃기사입니다. 위험도는 7000. 전신에서 500도 이상의 고열을 내뿜기 때문에…….]

“한심한 몬스터군.”

[네?]

“적의 앞에서 느긋하게 형태를 변환하고 있잖나.”

코웃음을 친 천마는 내공을 끌어 올리더니 한 팔을 내뻗었다.

“북령극정(北靈極晶)!”

외마디 기합과 함께 천마의 쌍장에선 새하얀 냉기가 폭풍처럼 쏟아졌다.

사아아아악.

폭풍처럼 지나간 냉기와 함께, 변신하고 있던 불꽃기사는 허리를 구부린 엉성한 자세로 얼어붙었다.

“별거 아니군.”

얼어붙은 불꽃기사를 내려다보던 천마가 비웃음을 머금고 지나쳤다.

그런데 허연 얼음 속에 들어간 불꽃기사를 바라보던 김찬원이 입을 벌렸다.

“천 씨.”

“말하라.”

“몬스터가 화가 난 거 같은디.”

“무슨 말이냐.”

천마가 고개를 돌리자 얼음 속에 갇혀 있던 불꽃기사의 몸에서 붉은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동공이 없는 투명한 눈동자에서도 시뻘건 불꽃이 타올랐다.

쩌적. 콰지지직.

균열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파악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얼음이 터져 나갔다.

“어라? 소멸된 겨?”

불꽃기사가 있던 자리엔 붉은 액체만이 흥건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가 보군.”

천마가 대수롭지 않게 몸을 돌리려 하는데,

부글부글.

붉은 액체가 고여 있던 곳이 들끓기 시작하더니, 또다시 시뻘건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머여. 이거 또 뭔가 나오려는 거 같은디?”

김찬원이 눈을 껌뻑이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가 다시 한번 북령극정의 빙공을 펼쳤다.

화아아악.

싸늘한 냉기가 쏟아졌음에도 부글거리는 액체는 전혀 얼어붙지 않았다.

“천 씨. 내가 해볼게.”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김찬원이 한 손을 들어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려는 찰나,

콰우우우!

액체에서 시뻘건 섬광이 폭죽처럼 솟구치더니 이윽고 하나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저게 머시여.”

액체가 있는 자리엔 숯불처럼 타오는 빛을 내는 그림자가 있었다.

땅을 향해 휘어진 두 개의 뿔이 머리 위에 달렸고 등 뒤엔 뾰족한 날개가 달렸다. 마치 활활 타오르는 악마와 같은 모습이다.

[저건…….]

그 모습을 바라보던 무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히든몬스터, 염령(炎靈)이 출현하였습니다.]

[위험도는 5만으로 추정, 공략법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위험도 5만?”

무명의 말을 들은 김찬원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위험도 5만. 이 시뻘건 몬스터 한 마리가 어지간한 마을 하나를 날려 버릴 수 있다니.

“그런 엄한 몬스터가 왜 이런 B급 던전에서 나온 겨?”

[아마도… 천마 님이 출현 조건을 달성하신 것 같습니다.]

“달성한 것 같다니?”

김찬원의 질문에 무명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불꽃기사가 만들어지기 전에, 천마 님께서 얼려 버렸던 탓에 등장한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것이 출현 조건이라고 확신합니다.]

엄청난 열기를 내뿜는 염령의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가 한가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상하군. 무명, 네 녀석조차 잘 알지 못하는 몬스터가 어떻게 도감에 등록되어 있는 거지?”

-출현 조건이 알려지지 않은 히든몬스터입니다.

예전부터 무명이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때마다 천마는 궁금했었다. 어떻게 출현 조건도 알려지지 않는 몬스터가 도감에는 어떻게 등록되어 있단 말인가.

[퍼스트 버스터 시절, 인류는 몬스터를 잡고 던전을 파괴하기 위해 다양한 화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로 인해, 지금은 출연하지 않는 희귀한 히든몬스터들이 그 당시엔 수없이 나타났죠.]

명쾌한 무명의 대답에 천마는 단숨에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엔 오만 히든몬스터들이 다 쏟아졌다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무명의 목소리엔 염려가 가득했다.

천마의 강력한 힘 때문일까? 아니면 독특한 무공절학 때문일까?

천마가 몬스터를 좀 처리하는가 싶으면, 히든몬스터들이 어김없이 등장했으니 말이다.

쩌어억.

염령은 천마를 바라보며 갑자기 하품을 했다. 마치 ‘네놈들의 수다가 지겹군’이라고 말하듯이.

콰앙!

그 순간, 폭음과 함께 염령의 몸뚱이가 일자로 날아가 바위 벽에 부딪쳤다.

기분이 나빠진 천마가 번갯불과 같은 일권을 쏟아낸 것이다.

치이이익.

하지만 염령을 날린 천마의 주먹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엄청난 고열로 인해 주먹 전체가 붉게 달아오른 것이다.

만약 천마가 금강지체에 이르지 못했다면, 이 한 수로 그의 주먹은 녹아내렸을 것이다.

“흥.”

코웃음을 친 천마가 한령빙백신공을 끌어올리자 치이익 소리와 함께, 달아올랐던 천마의 주먹이 원래 색을 되찾았다.

“천 씨. 괜찮여?”

“별거 아니다.”

-쿠후후.

벽에 처박혀 있던 염령이 어느새 서서히 허공에 떠오르더니 천마와 김찬원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몸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더욱 짙어진 것으로 보아 굉장한 공격을 할 기세다.

“천 씨. 아무래도 쉽지 않을 껏 같은디.”

염령을 올려다보던 김찬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촤아아아아!

허공에 떠 있던 염령이 수백, 수천 가닥의 불꽃을 어지럽게 쏘아내었다.

마치 거미줄처럼 퍼진 불꽃들은 천마와 김찬원이 피할 수 있는 방위를 모조리 선점한 상태였다.

“어림음서!”

콰우우우우!

김찬원이 양팔을 벌리자 강력한 바람이 불꽃들을 반대로 튕겨내었다.

“불꽃은 내가 막아낼 테니, 천 씨가 몬스터를 처리혀!”

“알겠다.”

대답과 동시에 천마의 몸뚱이는 어느새 허공에 떠 있는 염령의 코앞까지 솟구쳤다.

“북령극정!”

한령빙백신공을 끌어올린 천마는 쌍장을 펼쳐 다시 냉기를 쏟아냈다.

치익.

일 갑자의 내공으로 펼친 한빙장력은 염령의 몸에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좋다!”

파앙!

화가 난 천마는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려 다시 한번 일 장을 뻗어냈다.

“빙화난추(氷花亂追)!”

쏴아아아!

천마의 오른손에서 수천 가닥의 한빙장이 비처럼 쏟아져 염령의 몸을 꿰뚫을 찰나,

-지잉!

괴상한 진동음과 함께 염령의 몸이 희끗해졌다. 마치 고은진이 사용하는 페이징(물질 통과) 스킬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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