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77화 (177/285)

제177화. 양양 신뢰 (3)

“좋은 술이군.”

괜한 소리를 내뱉은 천마가 다시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다행히 장채원은 천마의 어색한 기분을 모르는지 방실방실 웃고 있을 뿐이었다.

“아아, 좋다. 이번 신뢰 맡기를 잘했어.”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채원.

어딘가 모르게 성숙하면서도, 그동안 보이지 않던 매혹적이면서 아찔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설마, 심마에 빠진 건가.’

흩어진 마음을 다잡을 무렵, 장채원이 맥주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거기선 휴가 같은 거 없었어?”

“휴가?”

“아무것도 안 하고, 풍광 좋은 곳에서 쉬는 거 말야.”

“흠.”

잠시 고민하던 천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다.”

“그렇구나.”

장채원의 목소리엔 왠지 모를 안타까움과 연민이 녹아 있는 것 같았다.

천마는 당치 않다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육체의 피로감은 운공과 명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본좌는 언제나 심령과 육체를 최고조의 상태로 유지하지. 애당초 휴가 따위는 필요 없는 셈이다.”

“휴가라는 게 꼭 컨디션 때문에 가는 건 아냐.”

장채원은 아름다운 테라스의 풍경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렇게 좋은 풍경에 있는 곳도 구경하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려고 하는 거지.”

“추억이라.”

본래 천마에겐 생소한 단어였다.

지나간 과거는 기억하지 않는다. 오직 미래를 내다보며 전진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 오고 나서부터는 지나간 기억을 되새김질할 때가 잦았다.

그리고 지금 시간을, 훗날 반추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휴가라는 건 추억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나.”

천마가 이상한 결론을 짓자 장채원이 손을 내저었다.

“꼭 그런 뜻은 아닌데…….”

“그럼 뭐냐.”

“그냥 삶이 팍팍하니까 억지로라도 좋은 시간을 갖자는… 아, 나도 모르겠다. 말로 설명하려니 힘드네.”

열심히 설명하려던 장채원이 갑자기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마, 넌 생긴 것답지 않게 모든 걸 머리로 이해하려 한단 말이지.”

“이 세계는 본좌에게 낯선 곳이다. 당연히 머릿속으로 미리 파악해야 할 것들이 많지.”

“그냥 겪어봐.”

장채원은 봄바람 같은 미소를 떠올렸다.

“미리 알려고 하지 말고, 때론 직접 경험해 보고 느껴봐.”

“…….”

“금방 가는 거 아니잖아? 여기에 있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될 거야.”

아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는 듯한 자애롭고 따스한 햇살 같은 눈길과 미소다.

그 미소를 보자 천마는 갑자기 피가 빨리 도는 것 같고, 심장이 요동침을 느꼈다.

‘확실히 뭔가 잘못되었군.’

저녁 식사 때부터 느껴왔던 이질감이 다시 솟구친다.

아침에 일어나 눈만 뜨면 보는 것이 장채원의 얼굴이다.

설령 용모가 아름답다고 한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보는 그녀의 미소에 심장이 두근거릴 리 없다.

‘점주가 날 암산하기 위해 섭혼마소(攝魂魔笑) 같은 공력을 사용했을 리는 없을 터.’

진기를 모은 천마는 단숨에 한령빙백신공을 끌어올렸다.

쩌저쩍.

한령빙백신공은 얼음보다도 차가운 극음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비록 일 갑자 남짓의 공력에 불과하나, 들끓었던 피가 단숨에 식고 멍했던 정신도 서서히 맑아졌다.

‘가만 이 냄새는?’

정신이 맑아지자 오감도 또렷해졌다.

천마는 장채원의 몸에서 묘한 향기가 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여인들의 문파, 사라밀전에서 즐겨 사용하는 몽환향(夢幻香)과 비슷했다.

“점주. 오늘 일을 마치고 어딜 갔었나.”

“가긴 어딜 가. 온천욕 즐기고 저녁 먹은 게 다잖아.”

따끈한 온천물을 떠올린 장채원이 갑자기 팔뚝을 쓱 내밀며 말했다.

“봐. 여기 온천 정말 효과가 좋은 것 같아. 단숨에 피부가 좋아졌어.”

천마는 그녀의 뽀얀 팔뚝을 빤히 바라보았다.

원래도 백옥처럼 하얀 피부다. 딱히 온천욕의 효과라고 할 만한 건 없다.

오히려 팔뚝을 내밀자, 몽환향과 같은 달큰한 향기가 더욱 짙어졌다.

“역시 독이었나.”

“응? 뭔 소리야?”

“잠깐 실례하지.”

앉아 있는 장채원에게 바짝 다가간 천마는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뭐, 뭐야. 왜 이래.”

천마가 얼굴을 바짝 들이대자 코가 뺨에 닿을 듯하다.

거기다 몸에서 형언할 수 없는 짙고 야성적인 체취가 느껴지자,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린 채 두 뺨을 붉혔다.

“확실히 이상하군.”

천마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평소 같으면 ‘더러운 면상 저리 치워!’라고 소리칠 그녀였다. 그런데 뺨을 붉힌 채 시선을 피하다니?

“중독이 분명한데.”

하지만 눈동자는 맑았고 중독 증상은 없다. 그렇다면…….

“그렇군. 잇몸이었나.”

천마는 두 손가락으로 장채원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위아래로 힘껏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하얀 치아와 함께 연분홍빛 잇몸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상하군. 잇몸도 붓지 않았어.”

“야이, 이게 무슨 짓이야!”

입술이 위아래로 쭉 늘려진 장채원이 보다못해 천마의 머리통을 세게 쥐어박았다.

“왜 남의 입술을 위아래로 벌려? 네 콧구멍도 위아래로 늘려줄까? 엉?”

벌떡 일어나 버럭 소리친 장채원은 그제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까지는 줄곧 나른하면서도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버럭 소리를 치자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고 시야도 또렷해진 기분이다.

“어라?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네.”

“이제 느낀 건가.”

“그러게. 지금까진 좀 나른한 느낌이었는데. 뭔가 달콤한 케이크를 끊임없이 먹는 듯한 기분도 들고 말야.”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잘못됐다니?”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점주의 몸에서 뭔가 몽환향 같은 것이 나고 있다.”

“몽환향? 그게 뭔데?”

“일종의 음약이다. 악의를 가진 자가 점주의 몸에 하독했겠지.”

“뭐, 뭐? 음약?”

장채원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걸 누가 내 몸에 뿌려?”

“하지만 몸에서 냄새가 난다.”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 누가 내 몸에 뭘 뿌릴 수 있겠어?”

“흠.”

턱을 쓰다듬은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채원은 내공을 원래대로 되찾는 천마보다도 더 윗길에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의 이목을 속이고 하독을 할 만한 고수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지 않았다.

“점주. 오늘 시공을 마치고 대체 뭘 했나.”

“뭘 했냐니. 온천욕하고 저녁 먹은 것밖에 더 있어?”

“그런 건가.”

천마는 그제야 이해가 갔다.

장채원 같은 고수의 몸에 직접 몽환향을 뿌릴 순 없지만, 미리 갈 장소에 뿌릴 수는 있는 것이다.

“역시 온천이었군.”

“뭐?”

“온천에 미리 하독을 한 것이다.”

이 정도의 몽환향이라면 최소한 탕 근처 부근에도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눈을 번뜩인 천마가 장채원에게 말했다.

“잠깐 점주의 객실 온천을 살펴봐도 되겠나.”

장채원의 객실 앞에 설치된 전용 온천탕.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이곳저곳 살펴보던 천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뭐가?”

“독이 없다.”

“하아.”

장채원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냐.”

“점주도 느꼈잖나. 분명 심령을 흔드는 향이 풍겼다.”

“그거야… 그냥 분위기에 취했나 보지.”

민망한 듯 장채원은 코를 훔치며 시선을 피했다.

“이 온천랜드는 신 님들도 자주 오는 곳이야. 독을 푼다던가 그런 일은…….”

그런데 고개를 돌린 장채원은 탕 내부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오색빛깔 보석 가루가 풀어진 듯한 아름다운 빛이었다.

“어라?”

“뭐냐.”

“저 탕 안에…….”

고개를 갸웃거린 장채원이 물속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천마 역시 온천 안에 가라앉은 빛 가루를 발견했다.

“저것은…….”

미세한 반짝임을 발견한 천마의 눈에서 혈염광휘가 쭈욱 치솟았다.

마침내 하독의 원인을 찾은 것이다.

* * *

다음 날 아침. 월광 온천랜드 카운터 앞.

“아아, 알고 있습니다.”

카운터에 서 있던 지배인이 묘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그것이 선녀탕의 효능이니까요.”

지배인의 대답에 천마와 장채원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천마는 장채원의 몸속에서 몽환향과 비슷한 냄새가 풍긴다는 걸 깨닫고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온천수에서 반짝이는 가루가 그 원인이라는 걸 발견했고, 그 가루가 발생되는 진원지를 찾았다.

그곳은 다름 아닌, 숲속의 선녀탕 바닥이었던 것이다.

“그럼, 지배인님은 알고 계셨단 말인가요?”

“물론입니다.”

장채원이 입을 벌리자 지배인이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선녀라고 해서 남성들이 모두 다 열광하는 건 아닙니다. 선녀란 직업은 꽤나 고수익이지만 까탈스러운 상계의 신들을 보필해야 하는… 조금 3D 직종이거든요.”

지배인은 천마와 장채원을 번갈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맘에 드는 남성을 놓칠 수도 있기에, 선녀님 들은 상계에서 한 가지 물건을 가져옵니다.”

“물건이라면…….”

“미모를 한껏 돋보일 수 있으며, 남녀 사이에 호감도를 높일 수 있는 향기를 뿜어내는 미요석(美妖石)을 선녀탕 바닥에 깔아둔 겁니다.”

“잠깐만요. 선녀탕 바닥에 있던 돌이 미요석 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지배인을 바라보는 장채원의 눈이 짝짝이가 되었다.

여성의 음기를 순간적으로 높여주는 미요석은 호선(:구미호)들이 남성을 유혹할 때 쓰는 보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아니, 그걸 알면서도 선녀탕에 놔뒀단 말이에요?”

“미요석은 아무에게나 반응하지 않습니다. 호감이나 연심(戀心)을 품은 여인. 혹은 시기를 놓친 노처녀들에게만 반응하죠.”

“뭐, 뭐라고요?”

장채원의 얼굴이 달아오르자 지배인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때문에 저희 온천랜드가 명소로 소문난 겁니다. 이곳에 오면 다들 좋은 일이 생겨서 가거든요. 후후후.”

천마는 약간 음흉스런 미소를 머금은 지배인을 보며 혀를 찼다.

“이젠 명소가 되지 못하겠군.”

“무슨 말씀이신지.”

“본좌가 파괴했다.”

잠시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입가를 씰룩이며 웃던 지배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무엇을 파괴했다는 말씀이신지.”

“미요석이라는 돌 말이다.”

팔짱을 낀 천마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젯밤, 선녀탕 아래 있는 돌이 원인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단숨에 뜯어서 파괴하였지.”

줄곧 정적이며 조용한 태도를 유지해 왔던 지배인이 분노의 탭댄스를 추며 카운터 밖으로 나왔다.

“뭐, 뭐, 뭐, 뭐라고요? 파괴요?”

“정확히 말하면 두 조각을 냈다. 두 조각으로 갈라지니 더 이상 이상한 빛 같은 건 내뿜지 않게 되었지.”

장채원 역시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남의 사유재산을 멋대로 파괴하면 어떡해?”

“멋대로 타인의 심령을 파고들고, 음기를 솟구치게 하는 물건이다. 어찌 그대로 놔둘 수 있겠나.”

“아침에 지배인님에게 이야기만 하기로 했잖아. 대체 언제 간 거야?”

“점주와 헤어지고 바로 숲속으로 갔다. 아무래도 가만히 놔두면 또 다른 피해가…….”

천마와 장채원이 한창 투닥거릴 무렵,

“안 됩니다! 안 돼요!”

머리칼을 움켜쥔 지배인의 이마엔 땀이 빗줄기처럼 흐르고 있었다.

“선녀탕은 저희 온천랜드의 대주주이신 적희(赤姬) 님도 때때로 방문하셔서 사용하신단 말입니다.”

“적희 님이 온천랜드의 대주주시라고요?”

“모르셨습니까?”

손수건을 꺼낸 지배인이 이마에 있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사실 저희 온천랜드가 적희 님의 투자를 받게 된 것도 다 그 미요석 덕택입니다. 선녀탕의 효능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셨거든요.”

이번엔 장채원이 머리칼을 두 손으로 잡았다.

적희. 여인들에게 시기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요신으로, 성깔이 무지무지 더럽기로 유명했다.

오죽하면 그 괴팍하다고 소문난 소조신조차 적희를 보면 슬쩍 자리를 피할 정도였다.

그런데 하필 이 온천랜드의 대주주가 그 적희일 줄이야.

“말도 안 돼요. 여기 온천랜드 대표는 묘무(妙舞)신 님 앞으로 되어 있던데요?”

“적희 님은 그저 투자만 하셨을 뿐, 경영권에는 일체 관여를 안 하십니다. 그저 간간이 선녀탕을 방문하실 뿐이죠.”

눈앞이 깜깜해진다.

장채원은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고 미소 지었다.

“미요석은 다시 구할 방법은 있겠죠?”

하지만 돌아온 지배인의 대답은 한없는 절망의 구렁텅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럴 방법이 있으면 걱정도 안 했겠죠.”

“큰일 났네요.”

“네, 큰일, 났어요.”

“망했네요.”

“네, 완, 존망했어요.”

초점 없는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장채원과 지배인의 이마엔 또다시 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아니. 있습니다!”

부적을 붙인 강시처럼 굳어 있던 지배인이 손뼉을 쳤다.

“화산 던전! 저희 양양에는 화산 던전이 있거든요.”

“화산 던전이요?”

“네. 양양 비행장 부근에 있는 던전입니다. 가변던전 지역 내에 위치하긴 하지만, 유일하게 안정화가 된 A급 던전이죠.”

지배인은 한층 밝아진 얼굴로 두 손을 모았다.

“화산 던전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마그마 연못을 이용한다면 미요석을 다시 붙일 수 있을 겁니다.”

“정말요? 아, 하지만……”

활짝 웃으며 손뼉을 치려던 장채원이 다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비행장 부근이라면 가변던전 지역 끝자락이잖아요.”

양양의 가변던전 역시 위험도 1만이 넘는 몬스터들이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뿐만 아니라 공략을 완료한 세이프던전 면적은 십 분지 일도 채 되지 않는다. 양양 가변던전을 배회하는 몬스터의 숫자는 전국 최고라는 통계도 있다.

“설령 저희 직원 전부 나선다고 해도,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가늠이…….”

“그건 염려 마세요.”

지배인이 카운터 안쪽에 있는 작은 문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예전 저희 온천랜드 건물은 모두 화산석으로 지었거든요.”

문 손잡이를 조심스레 열자 한없이 까맣고 어두운 공간이 드러났다.

“여기가 바로 화산 던전으로 갈 수 있는 비밀통로입니다.”

* * *

마침내 청룡조합의 각성자들은 1회차 정복 목표인 1킬로 지점 막바지에 다다랐다.

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피어오르는 안개는 더욱 짙어졌고 하늘은 뿌연 탓에, 주변은 밤처럼 어두웠다.

[백 미터 앞. 1차 목표 지점에 도달합니다.]

나노봇의 안내에 S급 경질화 스킬, ‘금강신’을 끌어올린 채 걷던 이준혁이 걸음을 멈추었다.

“다른 길드 상황은?”

[비슷한 상황입니다. 대부분의 길드에서 1킬로 내의 몬스터들을 전부 정리하고 실드 설치를 준비 중입니다.]

“후우. 그래도 어찌어찌 1차 지점은 성공이네요.”

옆에서 나란히 걷던 손민국의 말에 이준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드 설치팀이 와서 실드 설치를 완료할 때 까지가 성공이야, 임마.”

“뭐, 지금 상황으로는 이 지점에서 튀어나올 몬스터는 없는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현재 지점에서 관측되는 몬스터는 없습니다.]

나노봇의 말에 이준혁이 후우 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실드 완료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복귀하자.”

“복귀요? 온천랜드는 안 가실 겁니까?”

“야, 너는 양양 온천 홍보대사냐? 그냥 빨리 돌아가지 뭘 온천이야, 온천은?”

“아이,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팀원들 데리고 온천욕 한번 즐겨야죠. 안 그래요?”

손민국의 말에 뒤에 있는 길드원들이 좋다고 껄껄거렸다.

-저렇게 사정하는데 한번 가봅시다.

-그러고 보니 민국이 형이 이번 출정 때 한 이야기라곤 온천랜드밖에 없네.

‘못 말리겠군.’

이준혁은 웅성거리는 길드원들과 활짝 웃는 손민국을 보며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알았다. 그럼 실드 설치팀이 끝나는 대로…….”

치이이이.

그때 안개 속에서 비릿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누구보다 가변던전 지역 전투에 익숙한 이준혁은 이 냄새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안개에 독이 있다!”

스스스스.

그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짙은 안개 너머로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커덕.

그때, 안개 너머로 센서를 들이민 나노봇이 말했다.

[몬스터 출현. 포이즌 스네이크. 위험도 1천… 3천… 5천. 시스템 오류입니다. 시스템을 재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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