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던전 관리조사원 김세라 (2)
“어?”
정신을 차린 그녀는 또다시 귀면탈을 쓴 천마와 마주치자 몸을 떨며 입을 뻐끔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명이 재빨리 다가와 말했다.
[안심하세요. 그냥 탈을 쓴 것뿐입니다.]
“탈?”
[네네네. 하회탈 같은 거 말입니다.]
그제야 김세라는 천마의 얼굴에 씌워진 것이 정교하게 만들어진 탈이라는 걸 깨달았다.
“왜 던전에서 그런 걸…….”
눈을 껌뻑이며 천마를 바라보던 김세라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심장마비 올 뻔했잖아요!”
[죄송합니다. 우연히 던전에서 얻은 유물인데 여러모로 쓸모가 있어서요.]
그제야 김세라는 의아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한 모든 대답이 둥그런 나노봇의 머리에서 흘러나왔음을 깨달은 것이다.
“나노봇?”
김세라가 눈을 깜빡이자 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저는 나노봇입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뻗어 천마를 가리켰다.
[저분은 제 사용자이시고요.]
무명은 가명 따윈 말하지 않았다.
협회 소속 각성자에게 엉터리 이름을 댔다간 나중에 의심 나서 조회를 해보면 큰일일 테니 말이다.
“그, 그렇구나.”
묵묵히 대화를 듣고 있던 천마가 무명을 어깨에 집어 올리며 말했다.
“잡담은 그만하고 출발하지.”
“잠, 잠시만요.”
돌아서는 천마를 뒤쫓아온 김세라가 말했다.
“죄송한데 던전에서 나갈 때까지 같이 다니면 안 될까요? 갑자기 던전이 이상하게 변해서 돌아갈 수도 없고요.”
정중한 그녀의 부탁에 천마는 흔쾌히 고개를 저었다.
“귀찮다.”
“네?”
당황한 김세라가 어쩔 줄 몰라 하자, 무명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저의 사용자께서는 당연한 걸 귀찮게 뭣 하러 물어보냐는 뜻입니다. 워낙 무뚝뚝하시거든요.]
“아아, 그렇구나.”
어색하게 웃은 그녀는 천마의 곁에 조심스레 다가서며 말했다.
“죄송해요. 그럼 잘 좀 부탁드릴게요.”
천마가 싸늘하게 표정이 굳자 어깨에 올라탄 무명이 귓속말로 음성을 전달했다.
<천마 님. 세라 씨가 잘못되면 던전을 폐쇄당할 수도 있습니다.>
“흠.”
침음을 한 천마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던전 내부는 빛 한점 들어오지 않았지만 천마는 어둠 속을 대낮처럼 들여다볼 수 있다.
옆에 서 있는 김세라가 뻗어낸 단분자 커터의 빛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자, 무명이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협회 각성자신가요?]
“어떻게 알았어?”
[슈트에 협회 마크가 찍혀 있으니까요.]
무명의 대답에 김세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천마에게 손을 뻗었다.
“저는 협회에서 온 김세라라고 해요.”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냉담한 천마의 태도에도 김세라는 익숙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
각성자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정보를 알려주는 걸 극히 경계한다.
특히 각성자들의 등록증을 조회할 수 있는 협회 소속 각성자들은 염병귀신 보듯 하는 수준이었다.
[김세라 님이셨군요.]
그때 무명이 답했다.
아무래도 질문을 하는 것도, 대답을 하는 것도 오롯이 저 작은 나노봇의 몫 같았다.
[그런데 이 광산 던전엔 어쩐 일로 오신 건가요? 여긴 유물도 안 나오는 몬스터들만 가득 있는 곳인데.]
“으응. 그게… 조사할 게 있어서.”
‘조사’라는 단어가 나오자 무명의 눈 센서가 번뜩였다.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다.
역시 그녀는 최근 벌어졌던 여러 가지 사건 때문에 던전에 온 것이었다.
[아, 그러셨군요.]
무명이 은근슬쩍 너스레를 떨었다.
[어쩐지 높은 분 같으시더라고요.]
“그런데 너와 저… 사용자분은 어쩐 일로 광산 던전에 온 거야?”
김세라의 질문을 예상한 듯, 무명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저희는 소량으로 던전 재료를 납품하는 배달꾼입니다. 이곳에 있는 대형 광석을 캐러 왔죠.]
“배달꾼?”
순간 김세라의 눈빛과 말투가 약간 달라졌다.
그건 아주 미세한 차이였으나, 무명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재빨리 감지했다.
[아, 원래는 던전에서 짐을 나르셨는데, 요새 워낙 불경기라 최근에 배달꾼으로 직업을 바꾸셨거든요.]
“그랬구나.”
김세라는 천마의 우락부락한 몸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엄청 말 잘하네. 언어팩 진짜 좋은 걸 깔았나 봐.”
[별말씀을요.]
무명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최근에 던전에서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들리는 소문에는 곧 협회 소속의 팀이 던전을 조사하러 온다고 하던데. 혹시 그 일로 오신 건가요?]
김세라가 깜짝 놀라 눈을 깜빡였다.
“정말? 벌써 그런 소문이 퍼진 거야?”
[물론입니다. 어제도 술집에서 각성자들이 협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던전을 조사하는 듯한 모습을 봤다는 이야기가 나오던걸요.]
새빨간 거짓말이다.
다만 무명이 자신 있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던 건, 협회의 최고 브레인이라는 데이터 마이닝 팀 요원이 하릴없이 술집에 죽치고 앉아 있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구나. 나름 조심히 다닌다고 다녔는데.”
무명의 허풍에 홀랑 속아 넘어간 김세라가 싱긋 웃었다.
“맞아. 최근에 반복되는 던전 이상 현상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조사하러 온 거야.”
순간 무명의 눈 센서가 또다시 가늘어졌다.
김세라의 말투와 표정은 마치, 혼자 온 것만 같은 뉘앙스가 풍겼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드디어 협회에서 조사팀을 보내셨군요.]
무명은 일부러 ‘팀’이라고 말했다.
협회에서 어떻게 조사단을 구성했는지, 인원은 얼마나 되었는지 떠보기 위해서였다.
“글쎄.”
빙긋 웃으며 대답을 회피한 김세라가 무명에게 물었다.
“근데 넌 언제부터 여기에 온 거야?”
질문을 받는 순간 무명은 후회했다.
그녀가 데이터 마이닝 팀에 소속된 엘리트 요원이라는 걸 깜빡 잊었다.
꼬치꼬치 캐묻는 무명의 모습에 그녀는 의심을 시작한 것 같다.
‘대답 잘해야 해!’
김세라가 천마가 있는 광선 던전에 온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 혼자서 온 걸까? 아니면 다른 팀원들이 또 있는 걸까?’
연산회로를 빠르게 굴린 무명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35분 전에 던전에 진입하였습니다. 쓸만한 광석을 찾기 위해 던전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김세라 님과 마주친 것입니다.]
만약 천마가 던전 중심부로 가는 최단 루트로 움직였다면?
뒤늦게 들어온 김세라와 마주칠 일이 없다.
때문에 무명은 미로 같은 던전 갱도를 이리저리 움직였다고 대답한 것이다.
“그랬구나.”
김세라의 표정은 의심이 조금 풀어진 듯하다.
기계 생명체인 무명을 평범한 나노봇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을 탑재한 나노봇이라고 해도 거짓말 따윈 할 수 없으니까.
[그럼 김세라 님은 이 광산 던전에 이상이 생긴 걸 발견하고, 조사하러 오신 거였군요.]
무명의 말은 매우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협회 조사단인 그녀가 갑작스럽게 이상이 생긴 광산 던전에 우연히 들어올 리는 없을 테니.
“맞아. 나는 지금까지 모인 정보를 기반으로, 또다시 이상이 발생될 만한 던전을 몇 개 선정했어.”
김세라는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감진기를 설치했지. 분명 이상이 생긴 던전엔 커다란 진동이나 진파가 발생될 테니까.”
무명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프로필상 그녀는 데이터 마이닝 팀에 갓 입사한 신출내기.
그럼에도 지금까지 얻은 데이터만으로 특이사항이 발생될 던전을 예측했다.
뿐만 아니라 감지기를 이용해 아주 기발한 방법으로 이상 현상이 발생한 던전을 빨리 감지했던 것이다.
‘과연 그렇군요.’
이로써 무명은 확신했다.
김세라는 데이터 마이닝 팀 요원답게 날카로운 직감과 뛰어난 두뇌를 가졌다.
만약 던전에 같이 있는 동안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한다면, 결코 그녀의 의심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스윽스윽.
그때 어두운 갱도 내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나타났다.
사자만 한 크기에 바위처럼 단단한 몸집을 갖고 있는 거대한 도마뱀이었다.
바로 이 광산 던전의 보스몬스터, 기간토마뱀이었다.
“왜 던전 중심부에 있어야 할 기간토마뱀이 여기 있는 거지?”
김세라의 외침에 무명이 입을 꾹 닫았다.
-천마 님께서 미로를 부순 탓에 던전 자체가 맛탱이가 가버린 것 같습니다.
라고 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여느 나노봇과 마찬가지로 출현한 몬스터에 대한 안내를 했다.
[기간토마뱀이 출현하였습니다. 개체 크기로 추측하건대, 추정 위험도는 250. 바위 같은 육체에 발톱에 맹독이 묻어 있는 도마뱀 형태의 몬스터입니다. 다만 동작이 몹시 느린 편이고, 꼬리 부위는 매우 연약하여…….]
퍼엉!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폭음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주먹을 틀어쥔 천마가 단숨에 달려가 기간토마뱀의 머리통을 터뜨려 버린 것이다.
후두둑.
핏덩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진 기간토마뱀의 머리를 보자 김세라는 입을 벌렸다.
“와, 와아…….”
바위와 같은 몸을 가진 기간토마뱀의 위험도가 고작 250에 불과한 이유는, 단 하나.
동작이 매우 느린데다 부드러운 꼬리만 잘라내면 즉사하는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마는 가벼운 주먹질 한방으로 강철보다도 단단한 머리통을 박살 내 버린 것이다.
“배달꾼을 하실 게 아니라 팀에 들어가셔도 되겠는데요.”
김세라의 탄성에 무명은 나오지도 않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슬쩍 눈치를 보던 무명은 천마의 어깨에 올라타 귓속말을 전달했다.
<천마 님. 앞으로는 몬스터가 나와도 쉽게 잡으면 안 됩니다.>
<무슨 말이냐.>
천마 역시 전음을 전하자, 무명이 곤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세라 님은 천마 님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딱 들킨 셈이지만요.>
<역시 없애야겠군.>
천마의 손에서 마화열극지의 시퍼런 빛이 맺히는 걸 본 무명이 다급히 말했다.
<아뇨아뇨! 죽이면 안 된다니까요!!>
천마의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은 욕망을 꾹 삼킨 무명이 다시 음성을 전달했다.
<그냥 던전을 나갈 동안만 평범한 배달꾼처럼 행동하시면 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거절한다.>
무명은 회심의 한 수를 날렸다.
<만약 이번 일이 들통난다면, 천마 님은 귀면탈을 앞으로 평생 못 쓸 겁니다. 일선 님의 오리 가면이나 빌려 쓰게 되겠죠.>
“뭐 해?”
김세라가 의아한 눈으로 무명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는 천마와 무명이 동작을 멈춘 채 굳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명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천마 님. 어서 대형 광석을 캐고 돌아가도록 하죠.]
무명은 억지로 웃으며 천마를 이끌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안 좋게 흘러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어둠 속에서 시꺼먼 몬스터 한 마리가 등장한 것이다.
“또 기간토마뱀이잖아?”
김세라는 눈을 비볐다.
그녀가 기억하기론 광산 던전의 보스몬스터는 기간토마뱀 하나뿐이며, 리스폰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다.
그런데 죽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은 보스몬스터가 또다시 앞을 가로막다니?
[저, 이번엔 김세라 님이 처리해 주시는 게 어떨까요?]
그때 불만 가득한 천마의 표정을 바라보던 무명이 기발한 제안을 했다.
김세라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펄쩍 뛰었다.
“뭐? 내가?”
[그렇습니다. 사실 아까 저희 사용자께서 사용한 스킬은 몸에 상당한 무리가 갑니다. 그러니 이번엔 김세라 님께서 한번 처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는…….”
단분자 커터를 내려다보던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김세라는 몬스터라면 질색팔색을 하는 편이다. 게다가 전투 스킬 따위는 없기 때문에 몬스터를 잡기 위해선 직접 손발을 써야 한다.
-사실 몬스터를 보는 것도 싫어해. 잡는 건 더더욱 못 한다고!
그녀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어진 무명의 말에 입을 다물 꽉 다물었다.
[협회 각성자는 일반 각성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공손히 두 손을 모은 무명이 다시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김세라 님.]
순간 김세라는 체념의 표정을 지었다.
몬스터를 싫어하건 말건 그녀는 협회에 소속된 고위 각성자다. 도움을 청하는데 외면할 순 없었다.
“좋, 좋아. 알겠어.”
마음을 단단히 먹은 김세라가 단분자 커터를 뽑아 들고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다행이다.]
무명은 그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함이란 자연스레 드러나는 법. 천마가 계속 몬스터를 처리하다 보면, 분명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이 들통날 게 뻔했다.
때문에 무명은 김세라를 전면에 앞세워 애당초 의심을 피하려는 계획이었다.
타앗!
땅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김세라가 순식간에 기간토마뱀의 등 뒤에 섰다.
그녀의 육체각성도는 160퍼센트. 한 번 땅을 박찬 것만으로 단숨에 뒤를 잡은 것이다.
“얍!”
싸악.
함께 치켜든 단분자 커터로 꼬리를 절반 이상 베어가려는 순간,
“웨엑.”
갑자기 김세라가 분수토를 하면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
[…….]
천마와 무명은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순간,
-워어!
꼬리가 반쯤 잘린 기간토마뱀이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동시에 쓰러진 김세라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천마 님!]
쿠웅!
무명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번개처럼 움직인 천마.
그는 왼팔로 기간토마뱀의 공격을 막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