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4화. 천마, 필름을 시공하다
-인테리어 시공자분들은 손재주가 좋으셔서 직접 시공도 하시더라고요.
‘그런 거였나.’
남성의 말을 또다시 이해한 천마가 고개를 끄덕일 무렵,
“으잉? 가격은 또 왜 이래?”
책상 위에 올려진 명세서를 바라보던 장채원은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뭐야, 일반 필름에 비해 가격이 3배 넘게 비싸잖아?”
자동차에 붙이는 필름은 인테리어 마감에 쓰이는 필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격이 비싸다.
명세서 아래를 바라보던 장채원이 또다시 입을 벌렸다.
“뭐야. 천마, 네가 전자계약서에 서명도 했네?”
“그게 뭐냐.”
“이거, 지장 말이야.”
장채원이 명세서에 적힌 천마의 지문을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내가 입금을 안 하면, 네 계좌에서 돈이 강제로 빠져나가는 계약이야.”
“그런가.”
지금까지 줄곧 느긋하게 앉아 있던 천마가 눈을 번뜩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 기다려라.”
“응?”
“본좌가 그자를 찾아내겠다.”
“뭘 어떻게 하려고?”
“아직 사용하지 않았으니 반품을 하면 되지 않나.”
“무슨 수로?”
그리고 천마는 창고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명 녀석이라면 금방 그 남성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렇다.
도시의 모든 기관의 전산망을 해킹할 수 있는 무명이라면 매장에 왔던 남성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장채원이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건 안 돼.”
“안 된다니. 그럼 본좌의 호주머니가 털리는 걸 가만히 두고 보란 말인가.”
“됐어. 내가 돈 보내줄게.”
장채원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돈 때문에 짐승을 잡는 사냥꾼처럼 도심을 헤매는 것도 그렇잖아. 이번 일은 그냥 사회에 대해 배웠다고 생각하고 잊어.”
“이해할 수 없군.”
“솔직히 말해서 무명은 그런 데 쓰려고 만들어진 게 아냐.”
장채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무명을 사용하는 건 말리지 않아. 하지만 고작 물건 좀 반품하려고 무명이 도심의 전산망을 해킹하라고 시킬 순 없어.”
“무명을 준 건 본좌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었나.”
“맞아. 네가 세계에 조금 더 빨리 적응하길 바랐으니까. 하지만 이건 조금 다른 문제야.”
“다르다는 기준을 모르겠다.”
천마가 집요하게 묻자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던전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무명을 써선 안 돼.”
그녀는 고개를 들어 먼 창밖을 바라보았다.
“무명은 전산망을 해킹하고 기계를 원격으로 조작할 수 있어. 결코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멋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냐.”
“흠.”
천마는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채원은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사용하는 걸 극도로 자제하고 있으니.
‘아니, 이 세계의 모든 강자들이 그런 건가.’
무림은 강자와 승자가 모든 걸 차지한다.
하지만 이 세계의 강자들은, 오히려 약자들을 위해 희생하고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천마는 그런 점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애당초 이 세계는 자신이 머물 곳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천마는 이 세계의 법칙을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반품은 하지 않는 걸로 하지.”
“그래. 고마워.”
손해를 본 건 장채원이지만, 고맙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납득하지 않아도 되묻거나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그녀는 천마가 따지지 않고 그저 넘어가 주는 것만으로 고마울 뿐이었다.
“뭐, 가격만 생각해 본다면 확실히 싸게 산 편이야.”
명세서를 유심히 살펴보던 장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건 자동차용 필름은 비싸니까. 꽤나 고가라고.”
“쓸 데가 있겠나.”
“자동차에 붙이면 되겠지. 천마, 네 라마스에 붙이면 딱 되겠다.”
힘없이 웃은 장채원이 쌓여 있는 필름들을 가리켰다.
“어차피 매장엔 쓸 데가 없으니까, 네 차에 실어놔. 옥탑방에 보관하던가.”
며칠 후, 일요일.
“준비 완료다.”
천마의 옥탑방 앞에는 여러 가지 재료들이 쌓여 있었다.
자동차용 필름을 시공한다는 말을 듣고 무명이 온라인으로 주문한 필름 시공 공구들이었다.
“시작해 보지.”
천마는 쌓아둔 필름 박스 중 하나를 꺼내었다.
비닐을 뜯자 우유 빛깔의 광택이 흐르는 필름이 보인다. 물끄러미 필름을 내려다보던 천마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기존 색깔과 비슷하군. 무명!”
천마의 외침에 옥탑방에 있던 무명이 떼굴떼굴 굴러왔다.
[부르셨습니까?]
“작업을 시작하겠다. 준비하라.”
[알겠습니다.]
천마와 무명은 옥탑방에서 내려와 주차되어 있는 라마스의 앞으로 갔다.
그동안 거금을 들여 부속들을 정비한 탓에 내부는 쌩쌩했으나, 아무래도 외관은 조금 낡아 있었다.
“먼저 차량 손잡이와 차량 앞뒤에서 불빛이 나오는 부분을 떼는 방법을 설명하라.”
[홀로그램 화면으로 띄우겠습니다.]
공구 통에서 꺼낸 연장을 쥔 천마는 무명이 알려준 영상대로, 라마스의 손잡이와 라이트, 테일등 등을 제거했다.
위이이잉. 달칵.
차량의 부속을 해체한 천마는 박스를 열어 마스킹테이프를 뜯어 차량 곳곳에 붙였다.
그리고 조금 울퉁불퉁한 부분은 차량용 퍼티로 메꿈을 시작했다.
“인테리어 시공 필름과 별 차이는 없군.”
[밑 작업은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차량에 필름을 씌우는 건 인테리어 시공보다 상당한 시간과 난이도를 요구…….]
무명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커터키를 쥐고 필름을 재단하는 천마의 손이 수십 개로 쭉 늘어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쓰으윽. 싸아아악.
잘라낸 필름이 차량 위에서 춤을 추었다.
[천마 님. 인테리어 필름과 차랑용 필름은 재질이 틀립니다. 먼저 설명부터…….]
“필요 없다.”
필름을 손끝에 댄 천마는 예리한 감각만으로, 차랑용 필름의 탄성과 두께가 인테리어 시공 필름과 다르다는 걸 대번에 깨달았다.
차차차착.
이번엔 필름을 라마스에 붙이기 시작한 천마의 몸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천마 님. 보통 차량 랩핑은 숙련자들이 팀을 꾸려도 이틀 이상은 걸리는 작업입니다.]
천마는 개의치 않고 더욱 손과 발을 빨리 움직였다.
마치 그 모습은 오묘한 신법과 검법을 동시에 전개하는 듯한 모습이다.
사아악. 휘리리릭. 타탁.
필름을 잡아당기고 재단하고, 오려내는 동작은 이제 보이지 않을 만큼 빨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읍.”
낮은 호흡 소리와 함께 번개처럼 움직이던 천마의 동작이 마침내 멈췄다.
[이건……]
무명은 탄성을 질렀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느새 라마스의 낡은 외관이 새 차와 마찬가지로 매끈하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군. 좋은 필름지군.”
라마스에 붙인 필름을 매만진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깡마른 남성이 준 필름의 재질은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여러 번 떼어도 자국이 남지 않았고, 재질도 튼튼하고 질겼다.
“천마 아저씨!”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팽이를 든 한호조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와아.”
우윳빛으로 반짝이는 라마스를 바라보며 한호조가 입을 벌렸다.
“차 새로 산 거예요?”
이런 한호조의 순수한 반응은 천마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미소를 억지로 삼킨 천마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필름 시공이다.”
“네?”
“네가 모르는 오묘한 시공 비법이지.”
“은호야!”
그때 한호조의 뒤로 훤칠한 그림자가 따라왔다. 유은호였다.
“어? 천마 님. 뭐 하고 계세요.”
“필름… 뭘 하고 계셨대요.”
“필름? 아, 차량 랩핑?”
한호조가 대신 대답하자, 유은호는 그제서야 반짝이는 라마스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우와, 완전 새 차 같다.”
유은호의 말에 천마의 입꼬리는 은근히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때, 반짝이는 라마스를 바라보던 유은호가 멀리 빌라 앞 주차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 멋지다. 우리 차량들도 이런 거 하면 좋을 텐데.”
순간 천마의 눈이 번뜩였다.
장채원의 손해를 만회해 줄 방법이 생각난 것이다.
“못 해줄 것도 없지.”
“대당 30만 원 어떠냐.”
“네?”
뜬금없는 천마의 말에 유은호가 눈을 깜빡였다.
“뭐가요?”
“본좌에겐 이 필름지가 많다. 원한다면 거기 있는 차량들에게도 본좌가 시공해 주겠다.”
“대당 30만 원이요?”
“그렇다. 그저 재료값만 계산한 거지. 본좌의 인건비는 넣지도 않았다.”
유은호는 랩핑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었다.
아무리 저렴한 소형차라고 해도 랩핑 비용은 100만 원대. 차종과 크기에 따라 300만 원도 훌쩍 넘는 것이 랩핑이었다.
“차량 랩핑을 고작… 30만 원에 해주신다고요?”
“그렇다.”
“그럼 저 903트럭도 가능한가요?”
유은호가 던전용 몬스터 트럭, M903을 가리키자 천마가 턱을 쓰다듬었다.
“저건…….”
재료비 계산에 들어간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40만 원을 받도록 하지.”
정직한 가격, 아니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역시 던전의 다크나이트 천마 님! 이런 일도 무료로 해주다시피 하다니!’
“불안해할 필요 없다. 마감은 본좌의 차량 정도로 마감을 해줄 테니.”
막 뽑은 새 차처럼 우윳빛으로 반짝이는 라마스를 본 유은호가 입을 벌렸다.
이 정도면 솜씨도 초일류급이다.
거기다 가격을 생각한다면, 고민할 필요조차 없다.
“해주세요. 전부 다!”
“좋다.”
천마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까지 모두 끝내주지.”
“정말요? 감사합니다! 돈은 지금 드릴게요.”
휘이이잉.
초고속 이동 스킬을 써서 재빨리 지갑을 가져온 유은호가 천마에게 빳빳한 현금을 지불했다.
“여기, 현금으로 드릴게요.”
“전액 받았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천마 님!”
“알겠다.”
한호조의 손을 잡고 돌아가던 유은호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참, 호조야. 이건 비밀이니까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마.”
“네?”
“내가 몰래 해주는 깜짝 선물이니까.”
“아아, 네. 알겠어요!”
한호조의 미소를 본 유은호는 뿌듯한 감정이 몰려 들어왔다.
내일 깜짝 놀라며 즐거워하는 초홍과 한만재, 신채영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날 밤.
특수대응팀의 차량을 시공해 주기 위해 천마는 옥탑방에 쌓아둔 필름들을 개봉했다.
“허어, 이거 좋군.”
쌓여 있는 필름지를 바라보던 천마의 눈에서 이채가 떠올랐다.
이제 보니 라마스에게 붙인 필름보다 훨씬 더 질이 좋은 필름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으음. 이걸로 시공할 걸 그랬나.”
천마는 아쉬운 표정으로 라마스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고객과의 약속이 우선이지.”
손을 뻗어 지붕을 가볍게 두드린 천마가 씩 웃었다.
“넌 다음에 다시 해주도록 하겠다.”
다음 날 아침.
특수대응팀은 4층의 식탁에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제 슬슬 가볼까요?”
초홍의 말에 팀원들은 저마다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초홍은 김수웅 실장의 호출로 협회 출근 준비를.
신채영은 903트럭을 타고 한 바퀴 경계 근무를.
유은호는 비번이라 모처럼 ‘여자사람 친구’를 만나러 갈 준비를 했고, 한만재는 한호조를 학교에 데려가 주기 위해 차 키를 집어 들었다.
“으응?”
가장 먼저 밖으로 나간 한만재는 자신의 픽업트럭을 바라보며 펄쩍 뛰었다.
“이, 이게 뭐야!”
그때 밖으로 나와 트럭을 바라보던 한호조가 입을 벌렸다.
‘이, 이게 뭐야?’
한호조는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지만,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깜, 깜짝 선물이에요.”
“깜짝 선물?”
“네. 아빠나 팀원분들의 차가 너무 낡았다고. 천마 님께 랩핑이라는 걸 부탁했거든요.”
“천마 씨에게… 이런 걸?”
한만재가 석상처럼 굳어 있을 무렵, 커피 한잔을 들고 밖으로 나온 신채영이 뾰족한 비명 소리를 내었다.
“이게 뭐야!”
한만재는 옆에서 딱딱하게 굳어 있는 신채영을 보며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 은호의 선물이래…….”
“선물요?”
“천마 씨에게 부탁했다고 하더라고. 차가 너무 낡았다고.”
“유은호! 이 멍청이가!”
M903 트럭을 바라보던 신채영이 빌라를 향해 소리쳤다.
“유은호! 내려와 봐!”
소리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유은호의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차에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아. 깜짝 놀랐지? 잠깐 기다려.”
소리치던 유은호는 신난 표정으로 뛰어 내려갔다.
‘너무 감동하지는 말라구. 어디까지나 천마 님 덕택에 저렴하게 한 거니까.’
활짝 웃으며 주차장으로 뛰어간 유은호가 두 팔을 벌렸다.
“서프라이즈!”
퍼억.
기다렸던 감동의 포옹 대신, 유은호의 안면엔 신채영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어억.”
이마를 맞은 유은호가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뭐야. 왜 이래?”
“왜 이러긴!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야, 이런 짓이라니? 차가 낡아서 깨끗한 차로 만들어준… 건데…….”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치던 유은호가 입을 쩍 벌렸다.
그제서야 주차되어 있는 차량의 모습을 본 것이다.
“이, 이거…….”
유은호는 금붕어가 된 것처럼 입을 뻐금거렸다.
랩핑은 깔끔했다. 아니, 완벽했다.
어디 하나 티를 잡을 수 없을 만큼 매끈하게 시공되어 있고, 미세한 부분까지 완벽히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었다.
문제는, 차량을 씌운 필름이 모두 번쩍번쩍한 크롬 골드색(번쩍번쩍한 황금색)으로 시공되었다는 점이었다.
“야! 우리가 무슨 중동 재벌이냐?”
번쩍이는 금덩이처럼 변한 트럭을 가리킨 신채영이 이를 깨물었다.
“이렇게 해놓으면 쪽팔려서 어떻게 다니라는 거야?”
한만재 역시 금덩이가 된 픽업트럭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우리 차를 알아볼 순 있겠네. 주차를 어디에 했는지 두리번거릴 필요가 없겠어.”
“아, 아니. 왜 이런 색으로 랩핑을…….”
유은호는 입을 벌리며 더듬거렸다.
‘분명 천마 님 차량은 평범한 흰색으로 랩핑을 해놨는데. 왜?’
“어떡할 거야? 부끄러워서 타지도 못하겠어.”
침을 꿀꺽 삼킨 유은호는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전부 해주세요!
그 전부에는 자신의 애마, ‘매버릭’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아, 안 돼!”
바이크를 발견한 유은호는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남성스러우면서 빈티지한 멋스러움이 있던 상남자의 바이크 메버릭.
하지만 이젠 석유 재벌이 집 안에 전시해 놓을만한 번쩍번쩍한 금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으아아아!!”
두 눈을 부릅뜬 유은호는 하늘을 보며 절규했다.
“내 상남자의 메버릭이 금은보화가 됐잖아!!”
“무슨 일이야?”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온 초홍은 주차장에 펼쳐진 광경을 목격하곤 입을 벌렸다.
“이, 이게 뭐야?”
그때,
부우우웅. 끼익.
흰색 라마스 한 대가 특수대응팀이 서 있는 주차장으로 다가와 멈춰 섰다.
복복 인테리어로 출근하는 천마였다.
“맘에 드나.”
창문을 열고 머리를 불쑥 내민 천마가 유은호를 보며 씩 웃었다.
“맘에 들지 않을 리 없겠지. 본좌가 심혈을 기울여 시공한 거니 말이야.”
그 순간, 특수대응팀의 낯빛은 약속이나 한 듯 어두워졌다.
“천, 천마 님.”
그 와중에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은 유은호가 말했다.
“근데 왜 흰색이 아니라 이런 색으로…….”
“골드 크롬 필름이라고 하던가? 일반 필름에 비해 상당히 고가라고 하더군.”
“네?”
“걱정 마라. 추가금은 받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고 타라.”
부우웅.
짧은 한마디 말을 남긴 천마는 엄지손가락을 내민 채 라마스를 타고 떠나갔다.
“…….”
날씨는 화창했지만 특수대응팀의 빌라 주차장에는 한파가 몰아치는 듯했다.
‘이래선 안 돼!’
무서운 심령사진을 보는 것처럼 바이크를 바라보던 유은호가 너스레를 떨었다.
“좋, 좋은데요?”
기왕 이렇게 된 거 ‘긍정긍정 작전!’으로 나가는 거다!
억지로 활짝 미소 지은 유은호가 바이크에 올라타며 말했다.
“막상 타보니 승차감이 좋네요.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랄까?”
유은호의 너스레에도 몰아치는 한파는 멈추지 않았다.
꿀꺽.
심호흡을 한 한호조가 금색 픽업트럭을 올려다보았다.
이걸 타고 학교에 가면, 그날로 전교생이 주목하는 유명인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빠, 오늘은 그냥 지하철 타고 갈게요.”
“어? 그, 그래.”
“여보세요? 거기 콜택시죠?”
“여기 실드경계지역인데요.”
어느새 초홍과 신채영은 휴대폰을 열고 콜택시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