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58화 (158/285)

제158화. 던전의 비밀통로 (3)

“그게 말입니다.”

청년의 빤한 시선을 피한 고은진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며칠 전부터 이곳에 있었지 말입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아마 못 보셨을 겁니다.”

“아하, 그랬군요.”

천연덕스럽게 웃은 청년이 다시 한 발짝 더 다가왔다.

눈은 반달처럼 접혀 있지만, 눈동자에선 이루 말할 수 없는 음험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근데 그쪽 분에게 궁금한 것이 하나 있어요.”

“저한테 말입니까?”

“네에.”

반달처럼 눈을 접은 청년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왜 요괴들은 거짓말을 할 때, 한결같이 시선을 피할까요?”

‘뭣?’

이상함을 느낀 고은진이 재빨리 요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청년이 팔을 뻗는 게 더 빨랐다.

“으윽.”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전신을 꽉 틀어쥔 것만 같다.

고은진은 전력을 다해 몸부림을 쳐봤지만, 몸이 마비된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던전엔 정말로 요괴들이 많이 있군요.”

청년은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내에선 보이지도 않는 요괴들이 던전에는 득실거리니 말이죠.”

고은진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인족들 중에서도 요괴에 대한 존재를 아는 건 각계 수뇌부와 극소수의 고위층들뿐이다.

설마 이 젊은 청년이 정부의 고위 인사쯤 된단 말인가?

“요괴 따위가 특별한 존재라곤 생각하지 마세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에 대해 알고 있으니까요.”

고은진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듯 청년이 피식 웃었다.

“다만 모르는 척할 뿐이죠. 세상에 공표를 하면 귀찮은 일이 벌어지니까.”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 말입니다.”

고은진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순순히 인정하기엔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요괴가 아니란 말인가요?”

“인, 인간이지 말입니다.”

“하하하.”

청년은 빙긋 웃으며 한 발짝 더 앞으로 다가섰다.

“그랬나요? 사실 저도 잘 구분 못 해요.”

“그, 그럼 빨리 풀어주시지 말입니다.”

“미안해요.”

고은진을 바라보는 청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당신이 요괴든 인간이든 어차피 살아서 나갈 수가 없어요.”

그것은 염라대왕의 최후통첩과 같은 말이었다.

고은진은 당혹감과 공포를 억누른 채 큰 목소리로 외쳤다.

“던전에서 사람을 죽이면 얼마나 큰 죄인지 모릅니까?”

“그런가요?”

“저는 그냥 던전 재료를 얻으러 온 배달꾼이지 말입니다.”

전력을 다해 등에 멘 보냉가방을 눈으로 가리킨 그녀가 다시 말했다.

“살려주십쇼. 풀어주면 조용히 나가서 평생 던전에 들어오지 않겠습니다.”

“아아, 마음 약해진다.”

청년은 장난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쩔까나.”

“살려주십쇼. 부탁입니다.”

고은진은 최대한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애원했다.

그런데 고개를 까닥거리던 청년의 눈이 예리한 칼날처럼 가늘어졌다.

“역시 안 되겠네. 요괴 맞잖아.”

고은진의 머릿속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겁에 질린 표정에서 덤덤한 용병의 모습으로 돌아온 고은진이 낮게 물었다.

“너, 대체 정체가 뭡니까?”

“정체? 글쎄요.”

두 눈을 반달처럼 접은 청년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그려졌다.

“저는… 뭘까요?”

들릴 듯 말 듯 작게 속삭이던 청년이 다시 한번 팔을 고은진에게 뻗어내려는 순간,

치익.

짧은 노이즈 소리와 함께 청년의 귀에 착용하고 있는 리시버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기다리라고 하세요. 제가 곧 나가죠.”

낮게 중얼거린 청년이 다시 고은진을 보며 윙크했다.

“잠깐 실례하죠.”

딱.

청년이 짧게 손가락을 튕기자, 미친 듯이 싸우고 있던 각성자들의 동작이 순식간에 멈췄다.

마치 손가락 튕기는 소리를 줄곧 기다렸다는 듯이.

“당신들. 여기 있는 분을 잘 감시하세요.”

수십 명이었던 각성자들 중에 살아남은 자는 고작 다섯 명이었다.

청년이 고은진을 가리키며 외치자 다섯 명의 각성자들이 순식간에 고은진을 에워쌌다.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고은진이 소리치자 출구로 몸을 돌린 청년이 방긋 웃었다.

“곧 알게 될 겁니다.”

“이봐!”

버럭 소리치려던 고은진은 자신을 에워싼 각성자들을 보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눈동자가 크게 확장되었고 초점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약에 중독되거나 정신이 나가 버린 병자 같았다.

“이익!”

전력을 다해 요력을 끌어올린 고은진이 몸을 버둥거렸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떻게든 나가야 해!’

더 이상 방법이 없다.

각성자들을 올려다보던 그녀의 눈동자에서 하얀 섬광이 피어올랐다.

* * *

신채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차피 공략팀 외에는 누구도 들어가지 않는 가변던전이다.

그런데 왜 가변던전 경계지역에 정체 모를 요원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통제를 하고 있단 말인가?

저벅저벅.

그때 저 멀리, 경계지역 안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청년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신채영은 청년이 걸어 나오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경계지역을 지키고 있던 요원 중 하나가 청년에게 달려가 귓속말을 했다.

“실험체 중 한 놈이 간이로 만든 ELT(Emergency Locator Transmitters, 비상 위치 송신기)를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됐으니까, 철수 준비나 하세요.”

낮게 대답한 청년은 몬스터 트럭과 그 앞에 서 있는 신채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협회 마크가 생생하게 찍힌 짐칸을 발견하고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협회라…….’

그때 신채영이 다가오는 청년을 향해 물었다.

“그쪽 분이 여기 책임자신가요?”

“아, 네에.”

빙긋 웃은 청년이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정신이 없군요.”

책임자라고 하기엔 너무나 젊다.

하지만 말투와 눈빛은, 제법 관록이 붙은 고위 공무원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구조 요청을 받고 오셨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협회에게 분명 말씀드렸는데.”

정중히 고개를 숙인 청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는 협회 승인을 받고 가변던전 관리 실태를 조사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요원의 실수로 구조 요청 신호를 보냈네요.”

“비인가 통신장비라고 하던데요.”

“그렇습니다. 비인가 장비에 대한 관리와 조사도 이번에 포함되어서요.”

“방금 실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명백한 실수였죠.”

청년은 당황하지 않고 덤덤히 설명했다.

“원래는 비인가 장비를 사용한다고 협회에 보고한 후, 누르려 했거든요. 그런데 긴장한 요원이 조사 중에 그냥 눌러 버렸습니다.”

어디 하나 허점을 잡기 힘든 매끄러운 대답이다.

하지만 신채영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찜찜함을 느꼈다.

“아 참. 깜빡했군요.”

청년은 눈썹을 찌푸리고 있는 신채영을 향해 휴대폰을 내밀었다.

“여기 승인코드입니다. 바로 확인해 보시죠.”

휴대폰에는 청년의 얼굴이 찍힌 사진과 함께 승인코드가 떠 있었다.

이러한 승인코드는 정부에서 특별감사를 할 때나, 혹은 비밀요원들이 소속과 신분을 숨긴 채 검문을 당했을 때 확인용으로 쓴다.

“팀장님. 승인코드 확인 좀 해주세요.”

휴대폰을 켠 신채영이 남성의 휴대폰을 비추자 잠시 후 초홍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협회에서 정식 인가된 승인코드 맞아. 던전 관리 실태를 위한 조사팀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쪽에서 구조 신호 보낸 거야?

“네. 요원 중에 한 분이 실수로 눌렀다나 봐요.”

-미등록 장비를?

“비인가 통신장비 조사가 포함되어 있었대요.”

-근데 왜 협회에선 잘못된 신호라고 했지?

잠시 말을 멈춘 초홍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우선 구조 신호 요청은 삭제하고 던전 관리팀에 보고할게.

신채영이 초홍과 통화를 끝내자 청년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괜한 고생을 하셨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요.”

“그럼 실례합니다.”

“네.”

청년이 고개를 숙이자 신채영도 목례를 하고 트럭으로 걸어갔다.

부르르릉.

차에 올라탄 그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던전 앞에 서 있는 청년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차량의 짙은 선팅을 투시하여 신채영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같다.

“…….”

고개를 돌린 그녀는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액셀을 밟고 가변던전 경계지역을 떠나갔다.

* * *

갑옷을 입은 기사 모습을 한 투명한 형체가 고은진을 안아 든 채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엔 낡은 죄수복을 입은 각성자들이 엄청난 속도로 그녀를 쫓고 있었다.

“이이…….”

뒤를 돌아본 고은진은 큰소리로 외쳤다.

“그만 좀 따라와라!”

그녀의 외침에도 각성자들은 쉼 없이 달려와 바짝 따라붙었다.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달려오는 각성자들의 얼굴을 보니, 영혼이 빠져버린 언데드에게 쫓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체 저것들은 뭡니까!’

이를 악물고 달리던 고은진이 방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몸이 마비되었지만 요력까지 봉인된 것은 아니었다.

고은진은 자신을 둘러싼 각성자들의 눈을 피해 회심의 기술, 신병기사를 불렀다.

휘이이익.

투명한 안개와 함께 신병기사가 등 뒤로 나타나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우선 저 맞은편 벽에 숨겨진 문을 열어. 그리고 다시 돌아와 날 안아 들고 그곳으로 도망쳐!

휘익.

은밀히 비밀통로의 문을 연 신병기사는 단숨에 고은진을 안아 들고 각성자들의 포위망을 뛰어넘었다.

-쿠우?

하지만 어딘가 정신이 나간 듯한 각성자들의 눈은 의외로 매서웠다.

그녀가 비밀통로로 사라지는 걸 보자 전력을 다해 쫓아온 것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방향도 위치도 모르겠다. 고은진은 이 미로 같은 지하통로를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리고 있었다.

“나랑 무슨 원수졌습니까?”

때때로 달려오는 각성자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그들은 사냥개처럼 묵묵히 뒤를 바짝 쫓을 뿐이었다.

“근데 왜 몸은 안 움직이는 겁니까.”

신병기사에 안겨 있는 고은진은 몇 번이나 요력을 끌어올려 마비를 풀려고 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있는 건 목 위쪽뿐, 밧줄에 꽁꽁 묶인 것처럼 어깨조차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후우!

그때 선두에서 달려오던 각성자의 동공이 확장되더니 점차 근육이 커지기 시작했다.

으드드득.

다리 근육이 부풀수록 달리기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거구의 괴물 형태로 변해가는 각성자는 마침내 고은진의 코끝에 손이 닿을 정도가 되었다.

‘방법이 없어.’

더 이상 도망갈 방법이 없다.

이러다가 그 반달눈을 하고 있는 청년이 다시 돌아온다면?

꼼짝없이 잡혀가야 할 판이다.

“좋아!”

이를 꽉 깨문 고은진의 회색빛 눈동자에서 찬란한 광채가 퍼졌다. 그런데,

펑!

요력을 개방하기도 전에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고은진은 수십 미터 밖으로 처박혔다.

완전한 괴물로 변한 각성자가 엄청난 힘으로 신병기사의 등을 후려쳐 버린 것이다.

“웩.”

바닥에서 웅크리고 있던 고은진이 입 안에 차오른 핏물을 뱉어냈다.

신병기사는 완벽히 독립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고은진의 정신과 육체의 힘을 분리시켜 만들어낸 존재.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신병기사의 몸을 통과하자, 그 여파가 고은진에게도 미친 것이다.

“풀, 풀렸다.”

천만다행으로 바닥에 뒹구는 순간 마비되었던 몸이 완전히 풀렸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자 등이 부서진 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다.

-으으으으.

괴로운 듯 머리를 움켜쥐던 변신각성자는 갑자기 송곳니를 드러내며 크게 포효했다.

-워어어어!

그러자 뒤따라오던 나머지 각성자들도 갑자기 옷을 찢어내기 시작하더니, 점차 괴물의 형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우우어어어!

점차 괴물의 모습으로 변한 나머지 각성자들이 고은진을 향해 다가올 무렵,

“흐음.”

콧노래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래쪽에 작은 온천이 있었고, 그 안에 느긋하게 누워 있는 근육질의 사내가 보였다.

천마였다.

“근육몬?”

고은진은 입을 벌리며 소리쳤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보면 모르나.”

천마는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몸을 담그고 있잖나.”

“내 뒤에 있는 건 안 보이십니까?”

머리를 쑥 내밀어 다가오는 변신각성자들을 발견한 천마가 눈썹을 찌푸렸다.

“이상한 놈들이군. 마물인가.”

“그게 답니까?”

두 손으로 온천물을 담아 머리를 적신 천마가 느긋하게 말했다.

“머리만 똑 떼어낸다면 인간이라고 해도 믿겠군.”

그러자 온천물에 둥둥 떠 있던 무명도 눈 센서를 반짝였다.

[정말 그렇군요. 하지만 생김새나 골격을 보아, 인간이라고 볼 순 없는 것 같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무명이 눈 센서를 번뜩였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천마 님과 조우했던 언데드 계열의 인간과 매우 비슷한데요?]

“그렇군.”

한가로이 떠드는 천마와 무명을 보자 고은진은 머리에 김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도와달라고 부탁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크우!

그 사이 괴물로 변한 각성자들이 괴음을 내지르며 고은진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치잇.”

그녀는 재빨리 페이징을 사용해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각성자들은 유령처럼 따라붙으며 연달아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저리 가!”

이를 악문 고은진이 페이징을 연달아 사용했지만, 공격을 모두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녀는 그들의 주먹과 발길질을 직접 막아내며 난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콰앙! 쿠웅!

미사일 같은 각성자들의 주먹을 막아낼 때마다 번번이 그녀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괴물처럼 변한 각성자들의 힘과 스피드는 육체각성도가 최대치에 도달한 각성자와 맞먹었다.

‘마비에서 풀리긴 했는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체력도 떨어지고 신병기사는 더 이상 불러낼 수 없다.

낭패스런 상황에 직면한 그녀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뒤에서 느긋하게 누워 있는 천마는 도와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이 망할 선임 근육몬!’

어쩔 수 없이 고은진은 온천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크흠, 그러니까 날 조금만 도와… 어헉!”

연못에 나와 알몸 상태로 쭈그리고 있는 천마를 발견하곤 비명을 질렀다.

“뭡니까? 근육몬? 왜 훌러덩 벗고 있습니까?”

“네놈은 탕에 들어갈 때 옷을 입나.”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선임몬?”

“선임이든 근육이든 하나만 하라. 회색 눈깔.”

고은진은 잇몸을 드러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여기 혼자 있슴까? 빨리 옷 입으십쇼!”

“입으려고 지금 빨고 있다.”

천마는 덕지덕지 오물이 묻은 우리옷을 온천물에 깨끗이 빨기 시작했다.

처억. 싹싹싹.

두툼한 천마의 손가락이 옷감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우리옷이 섬세하게 세탁되어 가고 있었다.

그 한가롭고도 고즈넉한 모습에 고은진뿐만 아니라, 다가오던 변신각성자들도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촤아아악.

물기를 조심스럽게 짠 천마가 후읍 하며 내공을 일으키자 하얀 연기와 함께 젖어 있던 우리옷이 말끔히 건조되었다.

“흠.”

다시 우리옷을 입은 천마가 쭈글거리는 부분을 발견하곤 코끝을 찡그렸다.

“돌아가서 다시 다듬이질을 해야겠군.”

그리고 무명을 다시 어깨에 태운 채 반대쪽 갈림길로 걸음을 옮겼다.

“근육몬!”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은진이 버럭 소리쳤다. 도저히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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