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56화 (156/285)

제156화. 던전의 비밀통로 (1)

“진 팀장.”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김수웅은 진성령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지이잉.

금속 문을 여러 번 통과하자 마치 연구소처럼 꾸며진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각종 컴퓨터와 더불어 전면의 벽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띄워져 있었다.

“나노드론이 왜 오류가 난 거지?”

김수웅이 스크린에 띄워진 나노드론을 바라보며 묻자 진성령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인을 조사 중입니다만… 아무래도 단순 오류 같습니다.”

“단순 오류?”

“네. 실시간으로 감시 중이었으나, 원인 모를 오류로 영상 송출이 정지된 것뿐이니까요.”

“한심한 결론이군.”

줄곧 무표정을 유지했던 김수웅의 코끝이 살짝 일그러졌다.

“실험체의 빠른 이동속도 때문에 오류가 생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변던전의 히든몬스터들 중에는 통신을 방해하는 전파를 내뿜는 개체가 더러 있으니까요.”

“보안이 뚫렸을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침입의 흔적조차 없습니다.”

김수웅의 일그러진 표정이 펴지지 않자 진성령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노드론을 해킹했다면, 굳이 작동 오류만 시켜놓고 갈 리가 없으니까요.”

“실험체는?”

“무사히 귀환하였습니다.”

그러자 꽉 쥐고 있던 김수웅의 두 주먹이 사르르 풀렸다.

“그건 다행이로군.”

최악은 면한 셈이다.

줄곧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김수웅이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런데 진성령이 머뭇거리며 김수웅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뭔가.”

“정부 측에서 불스아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요원과 접촉해 영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불스아이 던전의 유일한 생존자라.”

김수웅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서유리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던전안전기술원으로 스카웃 제의를 했습니다만…….”

“데이터 마이닝팀에서 연구자료를 분석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군.”

“확률은 반반입니다. 어쩌면 단순히 불스아이 사건만을 염두에 두고 영입하려는 것일 수 있고요. 그녀를 제외하곤 모든 요원들이 사망했으니까요.”

“불스아이 실험까지 뒤적거릴 생각을 했다면 꽤나 알아봤다는 건데.”

턱을 쓰다듬은 김수웅이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곤란하군.”

의미심장한 눈빛과 목소리다.

“목줄을 끊고 나간 개는, 다시 되돌아오지 않지.”

진성령을 바라보는 김수웅의 눈동자에는 칼날 같은 한광이 번뜩였다.

그와 시선을 마주친 진성령은 호흡이 가빠왔지만 애써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

“자네가 꽤나 아끼던 요원이었던 것 같던데… 아쉽군.”

그 말을 끝으로 스크린을 바라보는 김수웅은 침묵했다.

* * *

[새로운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세이프던전 지역, 남서쪽 8킬로 지점. B급 던전 토끼굴.

드넓은 숲속이 우거진 곳 끝자락에 숨겨진 이 작은 던전의 바위틈으로 은밀한 계단이 생겨났다.

무명은 천마가 찾아낸 청동색 문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정말 대단합니다. 천마 님.]

천마는 대답 대신 흐뭇한 표정으로 들고 있던 철근을 내려놓았다.

던전 관리팀의 의뢰로, 토끼굴 던전에 들어간 천마.

그곳에 있는 가시당근을 잔뜩 채취하고 던전 밖으로 나오던 중, 그 부근의 땅에서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

잠시 고민하던 천마는 주변에 박살 나 있는 무기 조각으로 다우징 로드(수맥 탐지봉)을 만들었고, 결국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던 지하 던전을 발견한 것이다.

[그 철근 막대기만 있으면 천마 님께선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자가 되실 수도 있겠군요.]

새로운 던전을 발견하면 최소 보상금이 억 단위다.

무명의 말에 천마는 흥 소리를 내었다.

“어차피 등록도 못 하잖나.”

[그렇다면 저번처럼 기부를 하면 어떨까요?]

“기부?”

[네에. 자이언트 고구마가 열리는 새로운 던전 정보를 팀 ‘고인물’의 노인 각성자들에게 준 것처럼 말입니다.]

일전에 천마는 자이언트 고구마가 많이 열리는 새로운 던전을 찾았고, 그 위치를 각성자 등록센터에서 본 노인, 송근식에게 은근슬쩍 흘렸다.

덕택에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던 팀 고인물의 노인 각성자들은 저마다 크게 한몫 챙기고, 고된 각성자 생활도 은퇴할 수 있었다.

[각성자들 중에서는 의외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던전 정보를 살짝 흘리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죠.]

무명의 말에 천마는 상한 음식을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기부가 아니라 던전을 빨리 등록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저 안면이 있는 노인이었을 뿐, 신경을 쓴 것은 아니었다.

[천마 님.]

“시끄럽다.”

천마가 새로운 지하 던전의 입구에서 몸을 돌리던 찰나,

끼이이이.

굳게 닫혀 있던 던전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 마치 한번 들어오라는 것처럼.

“흠.”

던전의 입구를 바라보던 천마가 턱을 쓰다듬자 무명이 말했다.

[한번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어떤 던전인지 안다면 기부할 때 더 좋을 테니까요.’라는 말을 삼킨 무명이 두 손을 비볐다.

[자자,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저벅저벅.

지하 던전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동굴 같은 내부가 보였다.

지이잉.

내부 어디에도 빛 한점 들어오는 곳이 없자, 무명은 눈 센서에서 강렬한 빛을 쏟아내 깜깜한 내부를 환히 밝혀주었다.

[갈림길이 정말 많군요.]

아치형으로 생긴 동굴 내부의 갈림길은 마치 탄광의 갱도처럼 단단한 기둥들이 박혀 있었다.

수십 갈래로 솟구치는 분수처럼 곡선을 그리며 뻗어진 수많은 갈림길을 둘러보던 무명이 말했다.

[미로형 구조는 아닌 듯하고… 어쩌면 이곳은 던전이 아니라 단순한 지하통로일 수도 있겠군요.]

“지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 말인가.”

[그렇습니다. 일전에 한호조 군을 구했던 지하동굴처럼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구조의 갈림길이 만들어진 것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지상으로 갈 수 있는 통로라.”

침음을 한 천마가 턱을 쓰다듬었다.

만약 이 통로를 잘 써먹는다면 던전 전 지역을 은밀히 오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번 둘러보도록 하지.”

정면으로 보이는 갈림길을 선택한 천마가 걸음을 옮겼다.

“흠.”

길은 끝이 없었다. 한참을 걸었지만 끝도 없이 길이 나오고 또 나왔다.

그러자 빛을 쏘아내며 앞장서서 걷던 무명이 말했다.

[구조나 크기를 미루어봤을 때, 역시 이곳은 던전 내부가 아니라 사방으로 뻗어 있는 통로 같습니다.]

“통로라.”

덤덤히 대답한 천마는 빛이 흘러나오는 천장을 가리켰다.

“던전이 아닌 곳에서도 빛이 흘러나온단 말이냐.”

모처럼 질문을 하자 무명은 반갑다는 듯 눈 센서를 반짝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천장에 빛이 새어 나오는 곳을 황혼지대(트와일라잇존), 그리고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을 암전지대(다크존)라고 하죠.]

“이곳은 암전지대겠군.”

[그렇습니다. 만약 던전 내부가 깜깜한 암전지대로 되어 있다면, 몬스터들은 포악하고 대체로 위험도가 높죠. 반대로 황혼지대 내의 던전 몬스터들은 온순하고 위험도도 낮은 편입니다.]

그때, 통로 끝으로 커다란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마가 힘껏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낯설고 생소한 풍경이 보였다.

태초에 만들어진 거대한 동굴처럼 보이는 내부엔 반딧불이 같은 것들이 날아다녔고, 벽 곳곳엔 노란 유등 같은 게 걸려 있었다.

“여기도 던전은 아닌 것 같은데.”

[확실치 않지만, 저도 던전보다는 어디론가 이어진 통로처럼 보입니다.]

“천장은 빛이 흘러나오지 않지만, 벽에는 등 같은 게 걸려 있군. 그럼 여긴 황혼지대인가 암전지대인가.”

[어디까지나 천장을 기준으로 나뉘기 때문에, 아마도 여긴 암전…….]

무명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짐승의 성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르.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뜨자, 어둠 속에서 시뻘건 눈을 번뜩인 채 싯누런 엄니를 드러낸 몬스터가 보였다.

“이곳이 던전 내부가 아니라면 가변던전 지역이겠군.”

어둠 속에 웅크린 몬스터를 발견한 무명이 재빨리 말했다.

[추정 위험도 2천. 광란토끼입니다.]

“토끼?”

천마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겉모양만 토끼일 뿐, 덩치는 불곰만 하고 톱날 같은 이빨이 길쭉하게 자라 있다.

입술과 손발은 까맣게 물들어 있어 마치 어둠 속에서 태어난 작은 악마를 보는 듯한 형상이었다.

“추접스럽게 생긴 마물이로군.”

천마가 코웃음을 치자 무명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천마 님. 광란토끼는 동작이 워낙 빠른 데다 엄니에 치명적인 독이 있어서 주의해야…….]

-켕!

무명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시꺼먼 광란토끼 한 마리가 천마의 앞으로 달려 나왔다.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르며 두 다리로 달려오는 토끼의 모습을 보자, 천마는 오히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용기가 가상하구나.”

퍼억!

가볍게 휘두른 천마의 주먹에 얻어맞은 광란토끼가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가볍게 내지른 것 같지만 천마의 반 갑자의 내공이 가득 실려 있던 터였다.

“허.”

놀랍게도 광란토끼는 공력이 담긴 천마의 주먹을 맞고도 천천히 일어났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광란토끼를 보자 천마가 깊은 탄식을 했다.

“토끼를 잡는 데도 무공을 사용해야 한단 말이냐.”

[천마 님. 아무래도 저 광란토끼의 위험도가 심상치 않습니다. 추정 위험도가 3천 이상으로 측정됩니다.]

“그게 어쨌단 말이냐.”

[어쩌면 이곳이 가변던전으로 가는 통로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몬스터들은 틀로 찍어 만든 것처럼 개체의 위험도가 항상 일정하다.

그럼에도 가변던전에 있는 몬스터들은 세이프던전에 있는 몬스터들보다 더 강하고 포악스러웠다.

“그래봤자 토끼가 아니더냐.”

[천마 님.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는 생김새가 아닌 ‘위험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심지어 위험도가 5만이 넘는 히든몬스터 베히모스도, 변신 전에는 온순한 고양이처럼 생겼으니까요.]

-케켕.

입가에서 시꺼먼 피를 흘리는 광란토끼가 엄니를 드러내며 천천히 다가왔다.

천마가 버거운 상대라는 걸 알고 기회를 노려 기습하려는 것이다.

“허어… 저놈 보게.”

허점을 찾는 듯한 동작을 취한 광란토끼의 눈빛을 본 천마가 낮은 탄식을 했다.

저 하잘것없는 마물이 신중하게 허점을 노리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도 어쩔 수 없이 권법을 펼치기 위해 내공을 끌어올렸다.

“황당하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천마는 쓴웃음을 머금고 탄식했다.

“아무리 마물이라지만, 본좌가 토끼 한 마리를 때려잡으려 자세를 취하다니.”

과거의 천마였다면 광란토끼 따윈 손가락 하나 쓰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공이 대부분 소실된 상태. 하지만 언제까지 과거에만 집착할 순 없었다.

“흠.”

침음을 한 천마는 고개를 떨군 채 어깨를 늘어뜨렸다.

-카아!

광란토끼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손톱을 뻗어냈다.

“권마칠식…….”

-끼이?

달려오던 광란토끼는 불길함을 느끼고 동작을 멈추었다.

천마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승풍항룡!”

이제 보니 천마가 몸을 늘어뜨린 것은 승풍항룡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퍼억!

불꽃에 뒤덮인 용이 솟구치는 듯한 주먹에 턱을 얻어맞은 광란토끼는 비명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그대로 쓰러졌다.

[대단하십니다!]

권법을 사용한 천마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무명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마대능력 없이 위험도 3천 이상의 광란토끼를 처리하시다니요. 정말 몸이 많이 회복되신 것 같습니다.]

“삼십 분지 일도 안 되는 수준일 뿐이다.”

차갑게 대답한 천마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희미한 빛과 함께 토끼굴 던전의 중심부에 다다를 무렵,

사사사삭삭.

사방에서 기묘한 소리와 함께 동굴 내부가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순간 무명의 눈 센서가 붉게 반짝이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천마 님. 광란토끼 이십여 마리가 주위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포위?”

주위를 쓱 둘러본 천마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날파리 떼가 본좌 주변에 모인 것뿐이겠지.”

두 주먹을 쥔 천마의 눈동자에선 혈염광휘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파앙!

일일이 상대하기도 귀찮은 듯 천마는 단숨에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렸다.

“권마칠식…….”

그리고 사방으로 쏟아지는 광란토끼를 향해 벼락같은 고함성과 함께 한 팔을 내뻗었다.

“천수공파!”

* * *

뽀도도도동.

독특한 배기음과 함께 하늘색 스쿠터가 복복 인테리어 건물의 주차장에 멈춰 섰다.

터억.

자연스런 동작으로 스쿠터의 사이드 스탠드를 바닥에 세운 여성이 착용하고 있던 헬멧을 확 벗었다.

“후우.”

까무잡잡한 피부에 신비로운 회색 눈동자를 가진 여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고은진이었다.

스쿠터에 매달아 놓은 보냉가방을 어깨에 멘 그녀는 복복 인테리어 매장으로 쓰윽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어라? 은진 씨.”

책상에 앉아 세금계산서를 작성하던 장채원은 활짝 웃고 있는 고은진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어쩐 일이에요?”

“포차에 준비해 놓은 재료가 슬슬 떨어질 때라… 던전에 볼일이 있지 말입니다.”

영지의 정식 직원이 된 고은진은 신계의 눈치를 보지 않고 던전에서 재료를 채취할 수 있었다.

특히 복복 인테리어 창고 뒤편엔 던전 지역을 은밀히 오갈 수 있는 통로가 있기에, 그녀는 늘 이곳을 통해 던전에 들어갔다.

“선임 근육몬은 없슴까?”

매장을 쓱 둘러보던 고은진의 물음에 장채원이 미소 지었다.

“던전 관리팀의 의뢰로 던전 재료 채취하러 갔어요. 천마가 있는 곳으로 가게요?”

“아, 아닙니다.”

씩 웃은 고은진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그럼 던전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세이프던전 지역, 어느 폐건물 옥상.

덜컹 소리와 함께 옥상의 문이 열리고, 가방을 든 고은진이 쓱 걸어 나왔다.

“가까운 곳으로 가볼까.”

비밀통로가 세워진 이 폐건물은 실제로는 가변던전 경계지역과 더 가까이 붙어 있었다.

재료 손질을 할 시간을 생각하던 고은진은 옥상에 올라 주위를 쓰윽 살펴보았다.

“그냥 근육몬이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할 걸 그랬나.”

역시나 몬스터와 싸우는 건 질색이다.

하지만 천마의 뒤를 따라다니면 던전에 널린 재료들을 편히 주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마주치면 싸운단 말이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신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던전에 있는 재료들이나 채취해야겠다.”

다행히도 이 근처엔 식재료가 풍족히 나오며 몬스터들은 거의 없는 F급 던전, 두레박이 있었다.

타악.

지체 없이 옥상 난간에서 몸을 날린 고은진은 힘차게 달려 나갔다.

상급요괴인 그녀의 평소 다리 힘은 3급 각성자의 육체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땅을 한번 박찰 때마다 바람 소리와 함께 고은진의 몸은 총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어라?”

2킬로 정도 달렸을까?

둥그런 박을 엎어놓은 듯한 던전 두레박에 도착할 즈음, 그녀는 달음질을 멈추었다.

“뭐야. 협회?”

저 멀리, 두레박 던전 입구 근처엔 던전용 트럭과 차량, 그리고 알 수 없는 기자재들이 놓여 있었다.

“던전 입구를 막아놨잖아.”

던전 입구 부근에는, 협회 각성자들로 보이는 요원들이 경계근무를 서듯 엄중히 지키고 있었다.

“무슨 연구를 하나.”

때때로 협회에선 많은 장비들과 인력들을 동원해 던전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다.

입맛을 다신 고은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곳이나 가야지.”

괜히 저런 곳에 얼쩡거리다간 검문을 당할지도 모른다.

물론 영지의 직원들은 신계에서 어떻게든 처리해 준다곤 하지만, 역시나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타악.

두레박 던전을 바라보던 고은진은 다시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달려 나갔다.

“차라리 북서쪽 던전으로 갈까.”

폐허가 된 건물과 빌딩 사이를 뛰어넘으려던 고은진이 입맛을 다셨다.

북서쪽은 숲으로 뒤덮인 지역으로, 다양한 식재료들을 구할 수 있는 던전이 많다.

하지만 그만큼 몬스터들도 많은 데다, 무엇보다 오늘은 왠지 먼 곳으론 가고 싶지 않았다.

“음?”

그런데 아래쪽을 살펴보던 고은진이 질주를 멈췄다.

문득 저 멀리 보이는 던전 앞의 땅이 푹 꺼져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저긴… 토끼굴 던전인데.”

커다란 동굴 모양의 토끼굴 던전을 바라보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주변으로 푹 꺼져 있는 곳을 발견한 것이다.

“뭡니까, 이건.”

토끼굴 던전 앞으로 도착한 고은진이 입을 벌렸다.

땅이 푹 꺼진 곳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지하 던전의 입구가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