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49화 (149/285)

제149화. 가난 판매

TV를 바라보는 장채원의 눈이 촉촉해졌다.

화면 속에는 가난한 남매가 식당에서 국수를 나눠 먹고 있었다. 오빠는 어린 여동생을 위해, 여동생은 오빠를 위해 서로 먹을 것을 양보하고 있었다.

-자, 이걸 먹도록 해라.

마음씨 좋은 주인은 딱한 남매의 사정을 듣고는, 맛있는 음식들을 풍족하게 제공했다.

당연히 돈은 받지 않았으며, 남매가 나갈 땐 다시 음식을 두둑이 포장해 두었다.

-배고프면 언제든 와도 된다. 알겠지?

남매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모습을 몰래 지켜보던 사회자가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깜짝 카메라였습니다.

사회자는 크게 감동한 듯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어떻게 이런 호의를 베풀 생각을 했습니까?

주인은 별것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이들이 밥을 못 먹고 있다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을까요. 누구라도 다 했을 행동입니다.

화면을 바라보던 장채원의 눈동자에선 결국 눈물이 흘렀다.

“너무 감동적이야.”

“가난이라는 것도 흥밋거리가 되는가.”

“뭐?”

TV 맞은편에 앉아 짜장면을 먹고 있던 천마가 코웃음을 쳤다.

“이 시대에는 먹을 것이 풍족하다. 최소한의 의지만 있다면 굶어 죽을 일은 없지.”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하냐? 저건 그냥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

“인간의 아름다움?”

TV 화면을 바라보는 천마의 눈엔 경멸이 가득했다.

“풍족하게 쌓아놓은 음식을 먹고 있는 인간이, 먹다 남은 고기 한 점을 개에게 던져주는 것이 아름다운 건가?”

장채원은 볶음밥을 입에 넣다 말고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천마는 오늘도 삭막하고 멸망적인 세계관을 어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생각 따위를 용납할 수 없었다.

“힘든 과거가 있다는 건 아는데, 세상을 그렇게 삐뚤게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숟가락을 내려놓은 장채원이 천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도 남에게 호의를 받아본 적도 있을 거 아냐? 그… 예전엔 짜장면도 누가 사줬다면서?”

“곡 장로 말인가? 본좌의 자질이 뛰어난 걸 알고 만마집궁으로 데려가기 위해 사준 것뿐이다.”

“그럼 넌 태어나서 남에게 한 번도 도움 같은 걸 받아본 적이 없어?”

“있다.”

천마는 의외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굶어 죽어가던 나에게 한 걸인이 도움을 준 적이 있지.”

“걸인?”

“그렇다. 내 얼굴이 과거 굶어 죽었던 자식의 얼굴과 닮았다고 하더군.”

과거를 회상하는 천마의 눈에선 깊고 심원한 빛이 흘러나왔다.

“걸인은 굶어가는 날 위해 착춘의림(着春醫林)에 매혈(賣血:피를 팜)을 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내게 만두를 사주었지.”

장채원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무림에도 매혈이 있어? 거기도 뭐 적십자 같은 게 있는 거야?”

“착춘의림에선 사람의 피로 만든 구성환(求星丸)이라는 명약을 제조한다. 때문에 혈액을 비싼 가격에 매입하지.”

“으음. 그렇구나. 그래서?”

“그 걸인은 죽었다.”

황당한 대답이 돌아오자 장채원은 입을 벌렸다.

“뭐? 왜?”

“이유는 모른다. 다만 몸도 영양상태도 좋지 않은 걸인이었으니,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지.”

그 당시를 회상하는 듯 천마의 눈동자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걸인은 죽어가면서 후회를 했다. 왜 자신이 이런 짓을 했는지, 쓸데없는 호의를 베풀었는지를 뼈저리게 후회하며 말이다.”

“…….”

장채원은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그쪽 세계가 험악하고 흉흉하다지만, 천마에겐 유독 가혹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여하튼 저런 건 베푼다던가 도움 따위가 아니다.”

팔짱을 낀 천마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저 배부른 자들이 ‘이 세상이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다.’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뿐이지.”

“아냐, 틀려.”

장채원 역시 단호하게 말했다.

“차이가 좀 나긴 하지만… 저런 것도 엄연한 호의라고.”

“이 세계는 신선한 물과 음식이 넘쳐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저 정도의 베푸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지.”

천마는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저 주인도 아이에게 베푼 음식이라고 해봤자, 호주머니의 쌈짓돈 수준일 거다. 아닌가?”

“그거야…….”

“하지만 극심한 기아와 가난에 허덕이는 자라면? 혹은 식재료의 가격이 지금보다 수백 배 더 비싸다면? 저 주인은 아이에게 결코 호의를 베풀지 않았을 것이다. 본좌의 말이 틀린가.”

장채원은 대답 대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의 시선을 보자면, 천마는 30년 전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주민과 같은 생활을 영위해 왔다.

하지만 퍼스트 버스트 이후, 던전이 생성되고 각성자가 생긴 뒤론 기아 문제는 사라졌다.

비록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캐도 캐도 계속 생성되는 던전 재료들과 몬스터.

끊임없이 제3세계를 괴롭히던 굶주림이 마침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너희 쪽엔 아직도 식량문제가 많아?”

장채원의 물음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계속되는 혈투와 기근이 반복되는 세계, 무림.

굶어 죽거나 칼부림을 하다 죽는 것이 일상화된, 그야말로 살짝 스쳐도 치명적인 곳이다.

‘아아. 차이점을 설명할 자신이 없네.’

생각을 마친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 입장도 잘 알겠어.”

그리고 온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천마의 붉은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작은 호의도 호의고, 큰 호의도 호의야. 사람의 정이라는 것을, 너무 그렇게 단편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음 좋겠어.”

“단편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물컵에 담긴 보리차를 쭉 들이켠 천마가 덤덤하게 말했다.

“다만 가난과 빈곤을 볼거리로 전락시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낮게 가라앉은 천마의 눈동자를 발견한 장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생각도 맞아.”

지금에서야 비로소 천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풍족한 세계에도 빈곤과 기아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자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담부터 TV에 저런 게 나오면 내가 당장 꺼버릴게.”

장채원은 상냥한 미소를 보였다.

지금 천마에게 해줄 수 있는 호의라곤, 그저 다정함이 담긴 미소를 보이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날 저녁.

장채원은 침대에 누운 채, 홀로그램을 화면을 띄워놓고 웹서핑을 하고 있었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둘러보던 그녀는 문득 검색창에 ‘식량 부족’이라는 단어를 쳐보았다.

-에티오피아·마다가스카르·남수단·예멘 등, 2억 7만 명 기아 상태. 150억 달러 규모 긴급 지원 필요.

유일하게 나오는 것이 바로 수십 년 전의 뉴스다.

그 외에는 모두 수험생들이 듣는 역사에 관한 강의였다.

“그렇구나.”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던전에 대한 혐오감이 조금은 줄어든 느낌이다.

그토록 증오스럽게 느껴졌던 던전이 한편으로는 인간세계를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었으니까.

달칵.

묵묵히 화면을 바라보던 장채원은 허공에 떠 있는 키보드를 조작해 컴퓨터를 껐다.

“장단점은 다 있는 거네.”

낮게 중얼거린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 * *

다음 날.

실드경계지역, 엄마손 백반 건물.

주인의 허락하에, 2층에 상황실이 꾸며졌다.

대형 스크린과 무전기, 마이크 등이 설치되었고, 헤드셋을 낀 직원들이 백반집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오늘도 깜짝 카메라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상황실에 있던 사회자가 활짝 웃으며 카메라에 앞에 섰다.

“오늘은 실드경계지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주택단지에 있는, 백반집에 왔습니다.”

대형 스크린에 뜬 백반집 풍경을 가리킨 사회자가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이 지역은 어려운 각성자 분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죠. 오늘의 주제는, 배고픈 아이에게 온정을 내미는 각성자입니다!”

사회자가 문을 가리키자 일부러 허름한 분장을 한 어린 남매 연기자가 카메라 앞에 섰다.

“지금부터 이 백반집에 두 어린이가 한 그릇의 밥을 시켜서 먹을 겁니다. 오빠는 굶은 상태로 말이죠.”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사회자는 카메라를 보며 익살스런 표정을 지었다.

“과연 이곳에 들어온 손님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과연 온정의 손길이 이어질까요?”

오늘의 깜짝 카메라도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어린 두 남매가 밥을 시켜 먹는 걸 보고 관심을 가져주거나, 맛있는 음식을 더 시켜주었다.

때때로 집에 갈 때 먹으라고 포장을 시켜주거나, 돈을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괜찮은 장면은 거의 다 나온 것 같긴 한데…….”

지금까지 녹화된 화면을 쭉 살펴보던 피디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각성자 손님은 거의 없단 말이지.”

그렇다.

오늘 실드경계지역의 주택단지에서 촬영하는 이유는, 등급이 낮은 각성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들어온 손님들은 모두 평범한 일반인이었고, 각성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게요. 여기에 각성자들이 많이 온다는 소문을 받고 온 건데.”

입맛을 다신 사회자가 모니터를 바라보는 찰나,

“저기, 각성자 같은 분이 옵니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직원 하나가 소리쳤다.

골목 입구에는 붉은 눈동자에 거구의 사나이가 백반집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각성자가 분명했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피디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빨리 준비해!”

끼익.

낡은 쇠문을 열고 들어온 천마는 자연스레 구석 자리에 앉았다.

“생선구이, 제육 백반 하나씩.”

“응? 으응.”

단골인 천마가 오자 주인 이모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쩐 일이야? 일요일 저녁에?”

“타박하는 것처럼 들리는군.”“아, 아니 그게 아니라…….”

시원한 물과 물수건을 갖다준 이모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다른 곳에서 저녁을 먹는 게 어때?”

이모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천마의 성격이 야멸찬데다 타인에게 지독하리 관심 없다는 것을.

평소와 같은 행동을 했다간, 깜짝 카메라 팀이 화들짝 놀랄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배고픔에 요일이 어딨겠나.”

현학적인 대답을 한 천마가 물수건으로 얼굴을 박박 닦았다.

‘잘못되면 방송에 내보내지 말라고 부탁하면 되겠지.’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모가 자포자기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금방 해줄게.”

후루룩.

뜨거운 배춧국을 훌훌 마신 천마는 숟가락을 집어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쌀밥을 떴다.

그리고 따끈한 고등어구이를 한 점과 시금치나물을 그 위에 올렸다.

우물우물.

짭짤한 고등어 살점과 신선한 시금치나물이 쌀밥과 함께 춤을 춘다.

이 세계엔 먹을 것이 정말 풍족했지만, 그중에서 백반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후우.”

이번에는 양파와 함께 얼큰하게 볶아진 제육볶음을 집어 들었다.

쌀밥을 듬뿍 퍼먹은 천마는 김가루가 뿌려진 부분과 제육을 다시 입 안으로 투입시켰다.

“흐음.”

기분 좋은 콧소리가 흐른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정말이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크나큰 행복 중 하나였다.

꿀꺽.

상황실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던 사회자도 군침을 삼켰다.

“먹, 먹방 찍어도 되겠네요, 저 사람.”

지금까지 상황실에서 여러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봐왔지만, 저 거구의 사내처럼 맛있게 먹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우리도 왠지 출출하지 않아요?”

사회자의 중얼거림에 옆에서 보고 있던 피디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만 찍고 우리도 쌀밥에 고등어구이 한 그릇 딱… 헛.”

홀린 듯 스크린을 바라보던 피디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역 연기자 분들, 어서 들어가세요!”

“네에!”

피디의 외침에 구석에서 김밥을 우물우물 먹고 있던 아이들이 입을 닦고 벌떡 일어났다.

끼익.

낡은 쇠문이 열리고 허름한 옷을 입은 남매가 손을 잡고 백반집으로 들어왔다.

오빠의 나이는 열 살, 동생의 나이는 여덟 살쯤 되어 보인다. 주위를 쓰윽 둘러본 남매는 천마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했다.

“저희 국수 하나 주세요.”

“으응.”

메마른 미소를 지은 이모는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팔팔 끓는 국수 하나가 남매의 테이블에 올라왔다.

“오빠는 안 먹어?”

어린 동생의 말에 오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배불러. 괜찮아.”

“오빠도 저녁 안 먹었잖아.”

“아까 먹었어.”

오빠는 자신을 바라보는 순진무구한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서 빨리 먹어.”

성인 남성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음에도 천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밥을 먹고 있었다.

우물우물.

숟가락과 젓가락을 되는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밥과 반찬을 먹을 수 있을까? 에 대한 깊은 고민 끝에 나온 움직임이다.

뿐만 아니라 쌀알과 반찬, 그리고 양념 하나하나의 맛을 음미한다.

우물우물.

음식에 대한 경외와 찬탄이 담겨 있는 천마의 식사법은 한편으론 경건하기까지 보인다.

“오, 오빠.”

다음 대사를 이어가야 할 오빠가 넋을 잃고 천마를 바라보자, 동생이 당황했다.

“나, 나 먹는 거만 봐도 배부르지 않아?”

“어?”

원래는 오빠가 했어야 할 대사다.

당황한 동생이 자신의 대사를 읊자 오빠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서 먹어. 나는 너 먹는 거만 봐도 난 배불러.”

오빠가 다시 대사를 읊자 동생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럼 같이 먹자.”

“아냐.”

꿀꺽꿀꺽.

그 사이 게 눈 감추듯 깨끗이 그릇을 비운 천마가 시원하게 물을 들이켰다.

동작을 보아하니, 밥을 먹고 바로 나가려는 듯하다.

“아, 아저씨.”

그때 동생이 천마를 바라보며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오빠도 배고픈데, 밥 사주시면 안 될까요?”

노골적인 도움을 구하는 대사다.

사실 이 대사는, 몰카 대상자가 자신들의 대사를 듣지 못한 상황에서 사용하라고 감독이 일러준 내용이었다.

“배가 고프다고?”

치아에 달라붙은 반찬들을 쫍쫍거리며 훑는 천마가 피식 웃었다.

“웃기는 소릴 하는군.”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앞으로 걸어갔다.

“여기 계산.”

엉덩이 가방에서 돈을 꺼내는 천마를 보며 이모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애, 애들이 배가 고픈 것 같은데 좀 사주지. 삼촌.”

“허튼소리다.”

“응?”

천마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밖으로 휑 하고 나갔다.

상황실에서 이 모든 모습을 보고 있던 피디와 사회자가 어어 하는 소리를 내었다.

“뭐야? 저 사람.”

스크린을 응시하던 사회자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이 밥 한번 사달라는데 안 사준단 말야?”

“그러게요. 꽤나 실력 있게 생긴 각성자구만, 아주 각박한 사람이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린 피디도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만 해. 아역배우들도 다시 올라오라고 해.”

“괜찮을까요? 아직 각성자들은 오지 못했는데.”

모니터를 바라보는 부하 직원의 말에 피디가 손을 내저었다.

“원래 곳간 속에서 인심 나는 거야. 이런 각박한 동네에서 사는 각성자래 봤자 똑같겠지. 얼른 철수 준비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철수 준비가 한창인 상황실에 얼굴만 한 사탕을 핥고 있는 남매 아역배우들이 올라왔다.

“응? 뭐야, 그 큰 사탕은?”

그 모습을 본 사회자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런 사탕은 처음 보네. 엄마가 준 거야?”

“아뇨.”

눈을 깜빡이던 여자 아역배우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가 사줬어요.”

“아저씨? 무슨 아저씨?”

그러자 귀여운 여자 아역배우가 웃으며 스크린 화면을 가리켰다.

“아까 밥 먹던 아저씨요.”

“응? 그 각성자가?”

옆에서 듣고 있던 피디가 달려오자 남자 아역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부를 테니까 이 사탕이나 먹으라고 했어요. 그리고 담부턴 거짓말하지 말라고…….”

“으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아저씨는 저희가 배고프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나가기 전에 김밥을 먹었거든요.”

그제서야 피디와 사회자는 아이들이 나가기 전에 오물오물 김밥을 먹고 있던 모습을 떠올렸다.

“뭐야? 그래서 밥 안 사준 거야?”

“네에.”

그 말에 피디와 사회자는 서로를 응시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 양반. 역시 각성자네요.”

“그러게. 확실히 우리랑은 다르네.”

던전에선 널린 게 각성자지만, 실생활이나 거리에선 보기 드물다.

인구수 대비 발현 비율이 워낙 낮은데다, 그 들은 대부분 밤낮으로 던전에 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 참, 그리고요.”

그때 사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 아역배우가 피디와 사회자를 향해 말했다.

“그 아저씨가 이런 일을 시킨 사람들에게 전해달래요.”

“응? 뭐가?”

피디가 눈을 깜빡이자 아역배우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가난이나 빈곤 같은 걸 볼거리로 만들어 팔지 말라고.”

잠시 적막이 흘렀다.

“…크험.”

헛기침을 한 피디가 남자 아역배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 말에 신경 쓰지 마. 그 아저씨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 이야기니까.”

“네에.”

하지만 남자 아역배우도 뭔가를 느꼈는지 표정이 어둡다.

그 모습을 보고 쓰디쓴 미소를 머금던 피디는 괜히 주위에 있는 직원들을 닦달했다.

“밤새 여기 있을 거야? 빨리빨리 정리해.”

-가난이나 빈곤 같은 걸 볼거리로 만들어 팔지 말라.

피디와 사회자, 두 사람은 억지로 바쁜 척을 했다.

하지만 아역배우가 전한 남성의 말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