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48화 (148/285)

제148화. 천마, 선물하다 (2)

[천마 님. 이건 어떨까요?]

눈 센서를 최대한 확장시켜 진열대를 유심히 살펴보던 무명이 한켠에 놓인 회전목마 모양의 예쁜 무드등을 가리켰다.

[딱 이십 대 여성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입니다. 아마 채영 씨도 마음에 들어 하겠죠.]

회전목마 무드등의 재질을 유심히 보던 천마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던지면 쉽게 부서지는 재질이군.”

[네?]

무명이 눈 센서를 껌뻑거릴 무렵, 천마는 안쪽 진열대로 성큼 걸어갔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커피를 즐기는 채영 씨가 상당히 좋아할 만한 물건 같습니다.]

무명은 귀여운 곰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는 텀플러 잔을 가리켰다.

[게다가 바닥에 던져도 깨지지 않는 튼튼한 스텐 재질이고요.]

텀블러 잔을 들여다보던 천마가 고개를 저었다.

“하찮은 거라도 본좌가 직접 하사하는 물건이다.”

[네?]

“저런 곰 모양의 깡통컵을 준다면, 본좌의 위엄을 해치게 될 테지.”

또다시 엉뚱한 대답을 한 천마는 다시 진열대를 살피기 시작했다.

[천마 님. 그렇다면 이것을…….]

[이건 20대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물 3위에 꼽힌 것으로…….]

오기가 생긴 무명은 이후로도 끊임없이 추천을 해주었다.

하지만 천마는 그때마다 아무런 감흥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천마 님. 그렇다면…….]

지친 기색도 없는 무명이 또다시 물건을 권하던 찰나,

“잠깐.”

진열대 구석에 놓인 상자 하나를 발견한 천마의 눈에서 이채가 떠올랐다.

목갑에는 매우 그립고도 익숙한 기운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호오.”

목갑을 열어본 천마의 입에선 만족스런 탄성이 흘러나왔다.

형태, 강도, 재질, 그리고 실용성까지. 천마가 생각했던 모든 조건을 갖춘 물건이었다.

“이걸로 하겠다.”

[…이걸 채영 씨에게 드리겠다고요?]

“딱 마음에 드는군.”

[차, 차라리 옆에 건……]

당황한 무명이 목함 옆에 낡은 금속 케이스를 가리키다 입을 다물었다.

그곳엔 장식이 달린 머리핀이 올려져 있었다.

문제는 핀에 달려 있는 장식이 어느 흉가 바닥에 떨어져 있을법한 소름 끼치게 생긴 아기인형 얼굴 같다는 점이었다.

[아, 아닙니다.]

기괴한 장식을 발견한 무명이 다시 손을 젓는데,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괜찮은 물건이군. 상당한 물건이야.”

[네?]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군.”

무명은 입을 벌렸다.

두 가지 물건 모두 보는 순간 눈살을 찌푸릴 만큼 음험하게 생긴 물건이다.

하지만 천마는 매우 귀한 보물을 보는 것처럼 크게 고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쩔 수 없군.”

고심 끝에 천마는 나무로 되어 있는 목갑을 집어 들었다.

* * *

한가한 일요일 오후.

헤드폰을 쓴 채 창가를 바라보던 신채영은 문득 저 멀리 뛰어오는 하얀 물체를 발견했다.

하얗고 커다란 알 모양에 팔다리가 달린 로봇이다. 천마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특이한 나노봇, 무명이었다.

띵동.

빌라 앞에 도착한 무명이 비디오폰 버튼을 누르자, 2층에 있던 신채영이 헤드폰을 벗었다.

철커덕.

신채영이 문을 열자마자 등 뒤에 노란 보자기를 매고 있는 무명의 모습이 보였다.

[아, 때마침 계셨군요.]

언제나 능글맞은 목소리로 신채영을 대하던 무명.

그런데 오늘따라 왠지 목소리가 어두워 보였고, 눈 센서도 흐릿하게 깜빡인다.

[저어, 이거 받으세요.]

등 뒤에 보자기를 풀자 시꺼먼 목갑이 나왔다.

기묘한 무늬가 잔뜩 새겨진 목갑에선 까만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한 환상이 보인다.

얼핏 보기에도 예사 물건이 아닌 듯했다.

“이게 뭐야?”

[천마 님께서 보낸 감사의 표시입니다.]

목갑 한 개를 신채영에게 건네준 무명이 꾸벅 머리를 숙였다.

물론 목이 없어 몸통까지 그냥 숙인 것뿐이지만.

[그리고…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몸을 돌린 무명이 조심스레 말했다.

[천마 님은 이런 걸 사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실례하겠습니다.]

신채영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무명은 재빨리 몸을 굴려 사라졌다.

“뭐야? 천마 님이 선물을?”

“누나, 그거 뭐예요?”

어느새 신채영 등 뒤로 아이스크림 통을 입에 물고 있는 유은호와 한호조가 있었다.

“채영아. 빨리 한번 풀어봐.”

“어서 풀어봐요.”

유은호와 한호조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다가오자, 신채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호기심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보니, 보여주지 않으면 스킬을 써서라도 훔쳐볼 요량이다.

“알았어.”

소파에 앉은 신채영은 탁자에 올려둔 목갑을 조심스레 열었다.

“이게 뭐야?”

목갑을 바라보던 유은호가 중얼거렸다.

목갑 안에 있는 건, 보기만 해도 흉측하고 혐오스런 악마가 새겨진 펜던트였다.

“이게… 선물?”

신채영은 입을 벌렸다.

이건 선물이 아니라, 철천지원수에게 저주가 담긴 인형을 받은 것만 같은 느낌이다.

“채영아, 어서 그 펜던트에서 손을 떼!”

그때 유은호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분명해! 이건 저주야.”

“뭐?”“천마 님이 너에게 저주를 건 거라고!”

그러자 옆에 있던 한호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누나. 가지고 다녔다간, 어둠의 세계로 사라질 것 같아요.”

철컥.

신채영은 대수롭지 않게 엄지손가락 크기 정도 되는 악마상을 매만졌다.

그러자 요사스럽게 생긴 악마가 혀를 길게 뽑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악마의 길고 날카롭고 혀가 바로 칼날이었던 것이다.

“아아, 뽑아버렸어.”

악마의 혀를 뽑아낸 신채영을 보자 유은호가 고개를 저었다.

“호기심 때문에 그 물건에 손을 대다니. 이젠 틀렸어! 신채영. 넌 이제부터 관짝에 들어갈 때까지 솔로가 될 거야.”

“누나, 정말 어둠의 세계로 떠나는 거예요?”

유은호와 한호조가 헛소리를 하든 말든 신채영은 목걸이 칼을 빤히 살펴보았다.

반들거리는 재질은 금속도 나무도 아니었고, 악마상의 혀(칼날)는 손톱깎이에 붙여진 칼보다 작았지만 날카로웠다.

-아마도 천마 님은 이런 걸 사본 적이 없어서……

“…….”

무명의 말을 떠올린 신채영은 자신이 끼고 있는 실 목걸이를 풀었다. 그리고 펜던트를 끼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은호와 한호조가 다급히 소리쳤다.

“안 돼! 채영아! 삶을 포기하지 마! 지구 어딘가엔 너 같은 얼음땡이를 좋아할 남자가 있을지도 몰라!”

“누나, 지하 세계로 가지 마세요! 이 세계에 머물러 주세요!”

유은호와 한호조의 헛소리에도 신채영은 펜던트를 끼운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악마상은 매우 작은 편이라 그렇게 눈에 띄진 않았다.

“그 사람답네.”

차갑게 중얼거린 신채영은 소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휙 들어갔다.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가늘게 피어난 미소를 숨긴 채.

며칠 후.

일을 마친 천마는 라마스를 타고 실드경계지역을 올라가고 있었다.

부르르릉.

제법 경사가 있는 언덕이었으나, 엔진 힘이 남아도는 라마스는 경쾌한 배기음과 함께 평지처럼 올라가고 있었다.

[어라.]

그런데 옥탑방 맞은편 빌라 앞에서 물건을 나르는 그림자가 있었다.

바로 초홍이었다.

[식구들이 많으니 식자재를 대량으로 사다 놓나 보군요.]

빌라 앞에 쌓여 있는 커다란 짐들을 옮기는 초홍을 보며 무명이 눈 센서를 반짝였다.

고위 각성자인 그녀는 대형 냉장고도 한 팔로 들 수 있다. 하지만 몸이 가녀린 탓인지 식재료를 나르는 모습이 애처롭고 힘들어 보인다.

[천마 님. 조금 도와드릴까요? 짐이 많은 것 같은데.]

“잘 들고 있잖나.”

천마가 코웃음을 치며 빌라 앞을 지나갔다.

라마스가 지나치자 초홍이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숙였으나, 천마는 옆을 보지도 않은 채 매정하게 지나갔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천마 님을 가장 알뜰살뜰 챙긴 건 초홍 님인데!]

“무슨 헛소리냐.”

[천마 님이 골렘을 부수는 것을 봤는데도 신고도 안 하고, 이민관리과 조사가 나오자 불법적으로 신분증도 만들어주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명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장채원 님도 성의 표시를 하라고 당부드렸는데… 깜빡하고 초홍 님 선물을 잊어버렸네요.]

협회 데이터베이스를 조작해 불법적으로 각성자 등록증을 만들어주려 했던 초홍.

그 행동은 협회를 관둘 각오가 아니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 장채원도 그 점을 알기에 반드시 감사의 표시를 하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 일에 본좌가 일일이 감사를 표시해야 한단 말이냐.”

심드렁한 천마의 말에 무명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게 강호의 도리가 아닙니까?]

“허튼소리. 본좌가 인지하지 못한 호의까지 갚을 필요는 없다.”

얼음 가루가 풀풀 떨어질 것만 같은 차가운 대답이다.

무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늦은 밤, 천마의 옥탑방.

평상에 올라 가부좌를 튼 천마가 운공을 하고 있었다.

쿠웅.

그때 먼 하늘에서 낮은 진동과 함께 폭음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평온하게 앉아 있던 천마의 눈썹이 눈에 띄게 꿈틀거렸다.

“……!”

운공이라는 것은 모든 정신을 외부가 아닌 자신의 몸 내면으로 향하는 것.

때문에 상당한 집중력을 요할뿐더러, 외부의 자극에 취약하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을 때, 갑자기 누가 놀래키면 더욱 크게 놀라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지잉.

그때 천마의 귓가로 묘한 감응과 진동이 느껴졌다.

동시에 머릿속엔 불현듯 동그랗게 생긴 여성의 얼굴을 떠올렸다. 오늘 퇴근하면서 보았던 초홍의 얼굴이다.

‘본좌가 여성의 얼굴을 떠올렸다고?’

큰 충격을 받아 번쩍 눈을 뜬 채 천마가 운공을 중단했다.

‘심마인가?’

그럴 리 없다.

내공을 잃었다고 혹독하게 단련한 심령마저 약해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초홍이란 여성을 갑자기 떠올리기엔 아무런 접점도, 감정도 없지 않은가?

지잉.

그런데 또다시 천마의 귓가로 묘한 감응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둡게 물든 밤하늘에 희미한 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연기처럼 가늘고 곡선을 가진 빛이었는데, 위치를 보니 실드 너머 던전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저게 뭐냐.”

몸을 일으킨 천마가 빛을 가리키자 평상에서 대기하던 무명이 눈을 번뜩였다.

[어떤 게 말입니까.]

“저 빛 말이다.”

[빛이요?]

무명이 난간 위로 올라 천마가 가리킨 곳을 봤지만,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요.]

“네놈에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냐? 저 빛깔이?”

철커덕.

천마의 말에 이상함을 느낀 무명이 몸에서 온갖 센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빛이라고 표현될 만한 전자기파는 감지되지 않았다.

[뭔가 있나 보군요.]

그럼에도 무명은 천마의 말에 동조했다.

천마는 보통 사람이 아닐뿐더러, 무서울 만큼 뛰어난 직감을 가지고 있다. 무언가 보았다, 라고 말했다면 결코 헛것일 리 없다.

“살펴보도록 하지.”

천마가 몸을 날리려 하자, 무명이 어깨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푸르르릇.

신법, 야월극속을 펼친 천마가 실드 너머 빛이 흘러나오는 곳을 향했다.

던전에 들어가자 곳곳엔 야영을 하는 각성자들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폐건물 사이를 빠르게 날아다니는 천마의 모습을 감지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타악.

발걸음을 멈춘 천마가 도착한 곳은 가변던전 경계지역 부근이었다.

“이거 놓으라고! 알아서 간다고!”

그리고 그곳엔 평상복을 입은 다섯 명의 각성자들이 나노슈트를 입은 각성자들에게 바늘 수갑이 채워지고 있었다.

바로 특수대응팀의 한만재, 유은호, 신채영이었다.

[또 미등록 각성자들이 이곳에서 불법으로 히든몬스터를 불렀나 보군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무명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히든몬스터를 몰래 부르는 곳은 던전 초입 아니면, 이 가변던전 경계지역이니까요.]

미등록 각성자들이 몰래 히든몬스터를 소환하는 곳은 던전 초입, 혹은 가변던전과 맞닿은 경계지역이다.

초입에서 부르면 일이 잘못될 경우 도망가기가 수월한 대신, 발각될 확률이 적다.

그리고 각성자들이 없는 가변던전 경계지역에서 부르면 발각될 확률은 적은 대신, 위험한 일을 맞닥뜨릴 확률이 높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스으으으.

갑자기 가변던전 경계지역 부근에서 짙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동시에 안쪽으로 까만 그림자들이 우수수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마치 그 형태가 늑대인간과 비슷했다.

가변던전 경계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몬스터, 블러드 시커였다.

“이제 저놈들이 몰려왔네.”

백여 마리가 넘는 듯한 블러드 시커를 본 한만재가 한숨을 쉬더니 옆을 바라보았다.

“팀장님이 고생하겠네요.”

그곳에는 두 눈을 감은 채 정신 조작 스킬을 발휘하고 있는 초홍이 있었다.

물론 능동위장슈트를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주방장 여성이 만들어낸 빛이었나.”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비록 모습을 감춰주는 능동위장슈트를 입고 있지만, 천마는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 위로 분홍색 광채가 하늘 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운공 중에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군.”

심마 현상처럼 운공 중에 갑작스럽게 떠오른 초홍의 얼굴.

그 이유는 그녀가 강력히 발휘하는 섭심대법,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 조작 스킬의 영향이었다.

[무슨 얼굴이 말입니까?]

무명의 질문에 천마는 흠 소리를 내며 화제를 돌렸다.

“이상하군. 전에는 저런 것이 없었는데.”

천마는 예전 스터디룸 가변던전에서 스킬을 발휘하는 초홍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저런 빛이 나지 않았다.

[그렇군요.]

무명의 센서도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초홍 님의 몸에서 희미한 전자기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크르르.

초홍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진해질수록, 몰려들었던 블러드 시커들이 우왕좌왕거리기 시작했다.

“그때처럼 마물을 조종해 정리하는 것이군.”

천마는 초홍이 섭심대법 같은 힘을 발휘해 경계지역에 나타난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정신 조작 스킬 각성자들이 협회의 특별관리 대상이라곤 하지만… 저런 것인 줄은 몰랐군요.]

“무슨 말이냐.”

[초홍 님의 귀 부근에 장착된 링 말입니다. 생체 정보를 입수하여 어디론가 전송하고 있습니다.]

천마는 눈에 힘을 주어 흐릿한 모습의 초홍의 귀 뒤를 살펴보았다.

그곳엔 아주 작은 링이 장착되어 있었는데, 시시각각 빛을 내고 있었다.

[협회 사람들은 가차 없군요. 저 정도라면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수준인데.]

“목줄이로군.”

귀에 링을 낀 초홍의 모습은 마치 목줄을 메고 있는 짐승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는 이내 무심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일요일, 시내 어느 골동품 상점 내부.

그곳엔 둥그런 나노봇을 어깨에 매달고 있는 거구의 사나이가 있었다.

바로 천마와 무명이었다.

성큼성큼 걸어간 천마는 상점 구석에 있는 낡은 금속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신채영의 선물을 살 때 고민했던, 소름 끼치게 생긴 아기인형 장식의 머리핀이었다.

[이걸 초홍 님께 보내란 말입니까?]

“그렇다.”

무명은 천마의 생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미움을 받고 싶으면 그 앞에서 욕을 하던가 침을 뱉으면 그만이다. 굳이 이렇게 복잡한 방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대체 왜 이런 걸 보내시는 겁니까.]

무명이 둥그런 머리를 긁적이며 묻자 천마가 말했다.

“강호의 도리다.”

[강호의 도리요?]

“그렇다.”

고개를 끄덕인 천마가 덤덤히 말을 이었다.

“무림인에겐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자존심과 명예니. 본좌라고 해도 무인의 명예는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니까… 이 병든 아기인형 얼굴을 보내는 게 명예를 존중하는 거라고요?]

꼬장꼬장 말대답을 하는 무명이 귀찮았던지 천마가 손을 휘저었다.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무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어찌 알았을까?

천마의 작은 호의가, 이 나라 전체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이러한 사실을 무명이 알게 되는 건, 조금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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