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천마, 선물하다 (1)
[그, 그러니까…….]
숨 막힐 듯한 공기에 짓눌리던 무명이 신채영의 곁으로 바싹 다가와 말했다.
[이분은 앞집 빌라에 사시는 이웃사촌이자 각성자이신, 신채영 님이세요.]
“이,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협회 소속 각성자시라고.”
장채원이 어색한 미소를 짓자 무명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네네. 이곳 땅값이 싸서 그런지, 협회에서 여기다 건물을 올렸더라고요.]
신채영이 말없이 눈을 깜빡이자, 다시 한번 무명이 나섰다.
[여기는 천마 님의 고용주이신, 복복 인테리어 대표 장채원 님이십니다. 이쪽은 저희 매장 타일 기사님이신 김찬원 님. 여기는 서류를 담당하고 계신 고은진 님이시고요.]
김찬원, 고은진까지, 순서대로 주절주절 소개한 무명이 다시 신채영을 가리켰다.
[여기 신채영 님께선, 저의 부탁으로 천마 님을 치료해 주시러 오셨습니다. 사실, 신채영 님뿐만 아니라 빌라에 사시는 모든 각성자 분들과 천마 님과는 제법 친분이 있습니다.]
“그, 그랬구나.”
장채원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녀는 무엇보다 무명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세계의 인족인 천마가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협회 소속 각성자들이었다.
그걸 뻔히 잘 아는 무명이 오히려 그들과 친분을 쌓고 있다니?
그때 김찬원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허허허, 그나저나 놀랍구먼. 천 씨가 이런 붙임성이 있다니. 협회 소속의 각성자를 다 사귀다니 말여.”
“그러게요.”
고개를 끄덕인 장채원이 신채영에게 농담을 건넸다.
“얼굴은 흉악범처럼 생기고 아무 사람에게나 반말을 해대는데, 어떻게 천마랑 친분을 쌓게 되셨어요?”
묵묵히 힐링 팩터를 주입하고 있던 신채영이 덤덤히 대답했다.
“좋은 사람이라서요.”
“네?”
“지금까지는요.”
묘한 대답이다.
그때 방 안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고은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그럼 이제 가볼게요.”
“아, 그래요. 수고했어요. 은진 씨.”
헛기침을 한 장채원이 김찬원을 힐끔 바라보았다.
“저희도 그럼 일어나 볼까요?”
“그, 그럴까?”
눈치를 보던 김찬원이 슬그머니 엉덩이를 자리에서 뗄 무렵,
“쿨럭!”
그때 누워 있던 천마가 잔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꽤나 상태가 좋지 않은지 얼굴이 조금 더 붉어졌고, 눈을 감은 채 연달아 잔기침을 계속했다.
열이 더욱 치솟았는지 입은 바싹 마르고 눈가는 찌푸려져 있다.
웅웅.
천마가 상태가 안 좋아지자, 신채영이 다시 정신을 집중해 강력한 힐링 팩터를 주입했다.
“후우.”
신채영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연녹광이 진해질수록, 찌푸렸던 천마의 얼굴이 조금씩 안정되었다.
[천마 님 몸이 괜찮아질까요?]
무명의 물음에 신채영이 말했다.
“이상하게 힐링 팩터가 들어가는 게 더뎌서.”
무한한 내공과 궁극에 이른 무학에 도달한 천마.
그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으며, 어떠한 상처나 병도 스스로 치유시키는 완전무결한 육체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완벽한 육체는 어떠한 도움도 필요치 않기에, 외부의 모든 힘을 튕겨낸다.
다만 내공이 소실되었을 뿐만 아니라, 금강지체가 깨졌기 때문에 신채영의 힐링 팩터가 간간이 주입될 수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명이 걱정스럽게 중얼거리자 신채영이 고개를 저었다.
“계속 주입하면 괜찮아질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굳센 의지가 담겨 있었다.
치료 스킬을 펼치면 육체가 지치고 정신력이 소모된다.
하지만 신채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속으로 스킬을 펼치고 있었다.
꼬르륵.
그때 신채영의 배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 천마 님을 치료하느라 지금까지 식사를 못 하셨군요.]
그러고 보니 낮부터 저녁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천마를 치료했다.
거기다 체력을 소모하는 스킬을 계속 발휘 중이라 허기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얼른 식사를 준비해 드릴까요?]
무명의 말에 신채영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래도 잠깐 쉬었다 하세요. 그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음식 싸 왔지 말입니다.”
고은진이 다시 한번 가져온 바구니들을 가리켰다.
“괜찮으심 잠깐 드시고 하지 말입니다.”
장채원이 시킨 배달 음식은 열 명의 장정이 잔치를 벌이고도 남을 만한 양이었다.
하지만 환자를 앞에 두고 밥을 먹는 것이 부담스러웠던지, 다들 음료와 과일 몇 조각을 먹었을 뿐이다.
그렇게 짧고도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유은호. 유은호.
그때 신채영의 휴대폰에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벨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신채영이 휴대폰을 열자 유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채영아? 천마 님은 괜찮아? 왜 이리 오래 걸려?
“힐링 팩터가 잘 들어가지 않아. 늦을 거니까 기다리지 말고 밥 먹어.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왜?
그때 다시 잠들어 있던 천마가 눈썹을 찌푸리며 기침을 했다.
“콜록.”
“바쁘니까 끊어. 나중에 얘기해.”
휴대폰 종료 버튼을 누른 신채영이 다시 힐링 팩터를 강력히 주입하자 기침이 멎었다.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김찬원이 혀를 차며 말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구먼. 그 튼튼한 천 씨가 감기에 걸린 것도 신기한데, 치료 스킬을 이만큼 집어넣었는데도 회복하지 못하다니.”
그러자 힐링 팩터를 주입하고 있던 신채영이 낮게 말했다.
“감기 아니에요.”
“잉? 저렇게 기침하고 열이 나는데?”
“마음이 아프니 몸도 약해진 거겠죠.”
“마, 마음?”
수수께끼와 같은 말이다.
방 안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걸 느낀 신채영이 짧게 대답했다.
“향수병 같아서요.”
“천 씨가 향수병이라고?”
김찬원이 펄쩍 뛰자 신채영이 차분히 물었다.
“외국 분으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장채원과 시선을 교환한 김찬원이 더듬더듬 말했다.
“그, 그야 그렇지만설라무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천마의 얼굴을 바라보던 신채영이 다시 말했다.
“외국인들 중에는 이런 환자들이 많아요. 몸은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고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노련한 힐러들은 인간의 육체뿐만 아니라 심령의 아픔까지도 들여다본다고 한다.
신채영은 젊지만 수십 년간 진료를 한 의사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진찰하고 또 치료했다.
그녀는 천마의 아픔이 육체의 병이 아닌, 정신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짐작한 것이다.
“천마가… 향수병?”
장채원이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 무감정하고 인간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과거에 연연하지도 않으며, 과거에 즐거운 기억 따위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천마가 향수병이라고?
아마도 그건 절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몸보다 마음 쪽에 문제인 건… 왠지 맞는 것 같아.’
저 무심한 녀석이 무슨 마음에 병이 있는 걸까? 요새 너무 신경을 안 썼나?
누워 있는 천마가 왠지 가여운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으음.”
침음을 흘린 장채원은 누워 있는 천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 시간 후.
장채원을 포함한 복복 인테리어 직원들은 모두 떠났다.
계속 치료 스킬을 주입하자 천마의 상태가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채영아. 아직도 안 끝났어?”
그런데 이번엔 특수대응팀, 그리고 한호조까지 몽땅 옥탑방으로 몰려왔다.
“천마 아저씨.”
천마가 누워 있는 모습을 보자, 한호조가 놀란 표정으로 달려왔다.
“아저씨, 괜찮아요?”
“그냥 잠든 것뿐이야.”
신채영의 대답에 초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야? 저 강철 같은 사람이 어떻게 심한 감기에 걸렸대?”
“감기라기보다, 향수병 같아요.”
“향수병?”
이번엔 한만재가 입을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천마 씨, 외국 사람이었지.”
특수대응팀은 천마를 샅샅이 조사했고, 각성자가 아닌 평범한 외국인으로 등록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향수병 걸릴 만도 하네요.”
그때, 잠든 천마를 바라보던 유은호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홀로 이런 외딴 옥탑방에 살면서, 낮에는 인테리어 시공 일을 하고, 시간 날 때마다 던전에서 사람들을 구해주니… 걸리지 않는 게 용한 거죠.”
순간 방 안에는 장엄하고도 정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다크 나이트.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특수대응팀은, 천마를 던전을 지키는 어둠의 수호자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채영아. 아직 저녁 전이지?”
화제를 돌리려는 듯 음식이 가득 든 바구니를 양손에 든 한만재가 씩 웃으며 말했다.
“천마 씨 먹을 반찬도 드릴 겸, 팀장님께서 음식 좀 싸 왔어.”
“먹었어요.”
“응?”
“아저씨가 일하는 인테리어 매장 사장님하고 직원분들이 음식을 싸 오셨거든요.”
“아, 그래?”
초홍은 음식 보따리를 들고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정말이네. 가득 싸 오셨구나.”
포장 음식이 꽉꽉 채워져 있는 냉장고를 보며 초홍이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몬스터를 단숨에 때려잡는 괴력에, 성격은 나무토막보다도 딱딱한 천마.
땅속 깊은 비밀기지에 혼자 살고, 음식은 쇠를 씹어먹을 것만 같은 이미지의 사내다.
하지만 실제로는 평범한 일을 하며 직장동료가 있다니…….
“냉장고가 텅 비어 있을 줄 알고 많이 싸 왔는데. 몇 개는 도로 가져가야겠다.”
초홍의 중얼거림에 한만재가 웃으며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그럼 우리가 먹죠.”
“네?”
“귀찮게 도로 가져갈 필요 있나요? 어차피 저희도 아직 저녁 전인데. 저기 평상에서 먹고 가요.”
한만재가 씩 웃으며 들고 있던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몇 시간 후.
깊이 잠들어 있던 천마는 천천히 눈을 떴다.
뼈마디가 시원하고 개운한 느낌이다.
실타래처럼 꼬여 있던 정신줄도 바르게 정렬된 듯하고, 몸에선 활력이 차오르고 있었다.
완전히 회복된 것이다.
“뭐냐.”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깨끗이 정돈되어 있어야 할 방 안이 왠지 어수선하게 보인다.
[일어나셨습니까? 천마 님.]
천마의 곁에 앉아 있던 무명이 환한 목소리로 말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개운하군. 그런데…….”
방 안을 둘러보던 천마가 눈썹을 찌푸렸다.
“집안이 왜 이리 지저분한 거냐.”
[아, 그게요….]
무명이 말꼬리를 흐리자 천마는 방을 나섰다.
주방 싱크대에는 먹다 남은 음식들이 쌓여 있었고, 바깥 평상에도 과일과 과자 같은 게 남아 있었다.
[앞 빌라에 사는 특수대응팀 팀원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던전에서 긴급상황이 발생하는 바람에…….]
“뭐라?”
천마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무명이 처음부터 차분히 설명했다.
[제가 부탁을 드려서 신채영 님께서 낮부터 저녁까지 천마 님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러다 고은진 님이 오셨고…….]
무명의 이야기를 곰곰이 듣던 천마는 낭패스런 표정을 지었다.
고금제일인이 반나절 동안 의식을 잃은 채, 남이 보는 앞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니?
“어째서 본좌의 허락도 없이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이냐.”
[네? 저는 그저 천마 님이 많이 편찮으신 것 같아서…….]
“본좌는 천마다.”
무명의 말을 싹둑 자른 천마의 눈동자에선 붉은빛이 번뜩거렸다.
“고금제일인의 육체는 언제나 완벽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병 따위는 침범할 수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병이 침범할 수 없다.
무명은 그 말이 문득 슬프게 들렸다.
천마의 말은 마치, ‘몸이 아파서는 안 된다.’라는 의미로 들렸기 때문이다.
-고금제일인이라는 건 아파서도 안 되는 겁니까?
무명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장채원과 특수대응팀에게 아픈 모습을 보였다는 것. 천마는 그 자체를 치욕스럽게 느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늘 그렇듯이 무명은 천마에게 정중한 목소리로 용서를 구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힘이 없고 서글픔이 담겨져 있었다.
천마가 말없이 몸을 돌리자, 무명이 다시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출출하시진 않으십니까? 냉장고에 고은진 님과 특수대응팀에서 가져온 음식들이 가득 있습니다.]
“필요 없다.”
손을 내저은 천마는 방을 주섬주섬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럼 저는 평상에 있는 물건들을 치우겠습니다.]
팔다리를 뽑은 무명이 욕실에 있는 작은 걸레를 집어 들었다.
천마는 가타부타 말없이 방 내부를 정돈하고 있었다.
평상으로 나가려던 무명은 방 안을 깨끗이 청소하는 천마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천마 님…….]
천마를 빤히 응시하는 무명의 눈 센서는 엷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인복은 있으신 것 같아서요.]
* * *
다음 날.
매장으로 출근한 장채원은 일찍 출근하여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는 천마를 발견했다.
또렷한 눈빛에 몸에선 맑은 기운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 아픈 건 깨끗이 나은 듯 보였다.
“좋은 아침.”
자신의 책상에 앉은 장채원이 천마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의외야. 천마 양반.”
“무슨 말이냐.”
천마의 대꾸에 장채원은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그 아가씨랑 친한가 봐? 연예인처럼 엄청 예쁘던데.”
“누구 말이냐.”
“무명에게 이야기 다 들었어. 신채영 씨라고 했던가? 꽤 친하게 지낸다고?”
“친하지 않다.”
“둘이서 밥도 따로 먹었다면서?”
우직.
대걸레를 쥔 천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명 녀석!’
사생활 보호기능 어쩌고 하면서 떠벌거릴 땐 언제고, 점주에게 닦달을 당하니 몽땅 나발을 분 것 같다.
“어찌하다 보니 먹게 된 것뿐이다.”
천마의 변명에도 장채원의 입가에는 웃음꽃이 끊임없이 피어나고 있었다.
“내일 일요일이니까 채영 씨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사줘. 그게 예의니까.”
“선물이라니.”
“아픈 널 치료해 주려고 낮부터 밤까지 고생했잖아. 최소한 고맙다는 성의는 보여야지.”
천마는 매우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본좌는 그냥 피곤해서 잠을 잔 거다. 무명이 멋대로 오해하고 부른 것이지.”
천마가 모르쇠로 나오자 장채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야, 은혜를 받았으면 돌려줘야지.”
“본좌는…….”
“받은 게 있으면 갚는 것이 강호의 도리 아냐? 어떻게 그렇게 입을 싹 닦을 수 있어?”
강호의 도리.
예상치 못한 장채원의 강공에, 천마의 얼어붙은 양심이 스멀스멀 녹기 시작했다.
“뭐, 도움을 받은 건 없지만, 노력은 했다고 하니… 작은 신표 정도는 줄 수 있겠지.”
헛기침을 한 천마가 중얼거리자 장채원이 피식 웃었다.
“그래, 간단한 거면 돼.”
“알겠다.”
“부담되지 않는 걸로.”
장채원의 말에 천마가 곤란한 표정을 숨긴 채 말했다.
“참고하지.”
일요일 오후.
라마스를 탄 천마는 한적한 도심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목적지는 일전에 장채원과 같이 갔었던 골동품 가게였다.
[전방 50미터, 목적지 부근에 도착하였습니다. 안내를 종료하겠습니다.]
조수석에서 천마 앞 유리창에 경로와 각종 정보를 띄워주던 무명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차에서 내린 천마는 무명을 어깨에 올린 채 천천히 골목길로 향했다.
[과연 옷이 날개로군요.]
과거 광마혈투의를 입고 시내에 나온 천마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하지만 고급스러운 우리옷은 천마의 험악한 인상을 상당 부분 중화시켜 주었고, 전신에 흐르는 흉맹스러운 기운도 감소시켜 주었다.
“어서 오세… 아, 안녕하세요?”
천마가 골동품 매장에 들어서자 하얗게 머리가 센 노인이 웃으며 반겨주었다.
바로 천마에게 무료로 귀면탈을 선물한 골동품 사장이었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그러믄요. 장 사장님은 잘 계시죠?”
“그렇다. 여전히 목청도 굵고 짜증도 잘 내지.”
“오늘은 어쩐 일로 혼자 오신 건가요?”
겉보기엔 젊은 남성의 모습을 한 천마가 반말을 해도, 골동품 사장은 정중히 응대했다.
골동품이라는 귀한 물건을 오랫동안 다뤘기에, 천마가 평범한 남성이 아니라는 걸 자연스레 알고 있는 것이다.
“물건을 사러 왔다.”
골동품 사장의 넉넉한 미소를 바라보던 천마가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일전에 귀한 걸 거저 얻었으니 빚도 있고 말이지.”
“아이고, 그냥 평범한 나무탈 하나 드린 것뿐인데요.”
“굉장한 보물이었다. 보기 드문.”
귀면탈은 결코 평범한 나무탈 따위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힘이 깃들어 있어 천마의 힘을 증폭시켜 주었고, 위기에 빠진 천마를 구해주기까지 했으니.
“고로 오늘은 본좌에게 양껏 바가지를 씌우도록.”
보기 드물게 엷은 미소를 보인 천마가 진열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