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레인저 강태식 (2)
강태식은 성공한 레인저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오직 솔로로 산속을 헤맸던 그는 수많은 잔여 몬스터를 발견했고 토벌했다.
그가 받은 상금은 역대 레인저 누적 상금 중에서도 2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큰, 큰 집에 사는구나.”
작은 식물원처럼 꾸며진 커다란 정원을 걸어가던 강연석이 입을 벌렸다.
강태식의 집은 부자들만 산다는 고급스런 전원주택단지 중에서도 단연 크고 웅장했다.
“복, 복권이라도 당첨된 거냐?”
“아뇨, 그냥 예전에 경기가 좋을 때 바짝 벌어 둔 거죠.”
“뭘로?”
“뭐긴요. 아버지처럼 실종자도 구하고 몬스터도 때려잡았죠.”
강연석은 최초의 각성자 라인이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의 핏줄을 이어받은 강태식은 솔로 구조가 가능한 4급 각성자가 되었다.
탁월한 전투 센스와 좋은 감 때문에 3급 각성자들도 포기한 던전을 클리어한 적도 있었다.
“제가요, 한창때는 혼자서 B급 던전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강태식이 저택의 현관문을 여는 순간,
“당신!”
문을 열자마자 강태식의 아내, 한현진이 이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몰래 산에 좀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어제까진 들어오라고 분명 말했는데, 대체 뭘 하다가……!”
바가지를 긁으려고 득달같이 달려온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똑 닮은 강연석을 보고 입을 벌렸다.
“분신 스킬?”
“아아, 여보.”
강태식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아내의 손을 잡았다.
“드디어 찾았어! 내가 찾았다고!”
“어? 뭐, 뭐를?”
“아빠야. 이분이 우리 아빠야!”
“…….”
저택 내부에는 황량한 바람이 불었다.
“흥.”
싸늘한 공기가 내려앉자 도끼눈을 뜬 한현진은 코웃음을 쳤다.
“또 무슨 장난을 치려고?”
장난기가 많은 강태식은 종종 아내를 놀리는 걸 즐겼다.
던전에서 몰래 가져온 대형 슬라임으로 유령코스프레를 한다던가, 신기한 스킬을 가진 후배들을 불러 아내를 놀래키기도 했다.
“뭐야? 이번에는 변신 스킬… 뭐 그런 거 쓰는 후배를 데려온 거야?”
그때 뒤에서 아주 키가 큰 소녀가 2층에서 쪼르르 내려왔다. 강태식의 딸 강태선이다.
“아빠는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이런 장난을 해?”
가자미눈을 한 강태선은, 강연석의 얼굴을 주물주물 하며 말했다.
“우와, 진짜 같네. 엄마 요새 스킬 중에는 얼굴도 바꾸는 게 있나 봐? 진짜 똑같아?”
“태선아, 뭐 하는 짓이야! 네 할아버지라고!”
강태식이 방방 뛰자, 강연석이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태식아. 나도 못 믿겠다.”
“뭐가요?”
“지금 이 상황 말이다.”
손녀, 강태선에게 볼을 꼬집히고 있던 강연석이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빠가 이 나이에 며느리랑 손녀를 볼 거란 생각을 못 해서 말야.”
모든 사정을 들은 한현진은 입을 벌렸다.
실종된 시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도 놀랍지만, 심지어 남편보다 젊은 나이로 돌아왔다니.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한현진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아니라 헤어진 동생이라면 차라리 믿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만큼 두 사람은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정말이야. 우리 아빠라고.”
다 큰 강태식이 다시 한번 강연석을 꼭 끌어안자, 한현진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안, 안녕하세요. 아버님. 처음 뵙겠어요.”
한현진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강연석도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네에, 처음 뵙겠습니다. 강연석이라고 합니다.”
실종될 당시의 강연석은 마흔 살이었다.
그런데 나이도 얼마 차이 나지 않은 며느리와 올해 중학생 된 손녀가 생겼다니.
“아버지. 며느리한테 처음 뵙겠습니다가 뭐예요?”
“아, 그런가.”
“태선이, 너는 할아버지한테 인사 안 해?”
“안녕하세요.”
고개를 까닥거린 퉁명스런 인사다.
아무래도 이 상황이 미심쩍은지 여전히 의심스런 눈초리를 하고 있다.
“너, 똑바로 인사 안 해?”
강태식의 엄한 목소리에 강연석이 손을 내저었다.
“그만하면 됐지. 뭘 애한테 소리를 지르냐.”
“아빠. 그게 아니라…….”
“됐어. 우선 좀 씻자. 화장실이 어디냐?”
“응, 아빠. 나 따라와.”
강태식이 희희낙락한 얼굴로 강연석의 손을 이끌었다.
마흔다섯 살인 아빠가 마치 열다섯 살의 치기 어린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현진과 강태선은 뜨악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다음 날.
한현진은 2층의 서재가 딸린 방문을 조심스레 두들겼다.
“아, 아버님. 식사하세요.”
“아, 네.”
자리에서 일어난 강연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야, 원.”
고작 하루가 지났음에도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다.
아들 집에 왔지만, 자신은 이방인이었다.
며느리, 한현진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들인 강태선보다 젊어 보이는 자신을 시아버지로 대하는 것이 어려운 듯 보였다.
“아빠! 많이 드세요!”
게다가 아들 녀석은 자신을 볼 때마다 아이가 된 것처럼 애교를 부렸다.
한창 사랑을 받을 시기에 사라진 탓에, 아버지의 빈자리가 더욱 그리웠을 것이다.
하지만 한현진과 강태선은 변해 버린 강태선의 모습을 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야 원, 가시방석이구만.’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아들과 함께 차를 마시던 강연석.
잠시 고민하던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기, 태식아.”
“네, 아빠.”
“부탁이 있는데 말야.”
“말씀하세요.”
“아빠 친구를 찾아줄 수 있니?”
순간 강태식의 눈이 반짝였다.
“아빠 친구요?”“응, 친구들이 잘 지내는지 보고 싶은데.”
강연석은 호주머니에서 이름이 적힌 종이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걸로 찾을 수 있을까? 각성자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데.”
강연석이 걱정스런 표정을 짓자 강태식이 활짝 웃었다.
“물론이죠! 친구들한테 부탁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 그래? 고맙다.”
방으로 돌아간 강연석은 모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웠다.
‘아마도 내 얼굴을 보고 펄쩍 뛰겠지, 이 녀석들? 배 아파 죽을 거다.’
억울한 표정을 짓는 친구들의 표정을 떠올린 강연석은 미소를 지으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버지의 친구를 찾기 위해 아침 일찍 전화를 돌린 강태식.
오전 내내 통화를 하던 그는 울적한 표정으로 2층 서재로 올라갔다.
똑똑.
문을 두들기고 들어가자 기대에 찬 강연석의 얼굴이 보인다.
“벌써 알아본 거야?”
“네, 다 알아봤는데요…….”
잠시 망설이던 강태식이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상박 씨는 3년 전 폐암으로 돌아가셨대요. 고운학 님은 20년 전 가변던전 ‘수정궁’의 안정화를 위한 작업 중 돌아가셨고요.”
“…그랬구나.”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강연석의 가슴은 이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들었다.
“하지만 김석진 씨는 아직 생존해 계시대요.”
“그래? 석진이가?”
강연석은 다시 활짝 웃었다. 다행히도 가장 친했던 석진이가 살아 있다니!
“어디, 어디에 있는데?”
“그게… 실버타운 병원에요.”
“병원?”
“응. 몸이 좀 안 좋으신가 봐요.”
강연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당장 그리로 가자!”
실버타운 병원 808호실.
그곳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채 창밖을 바라보는 노인이 있다.
“석진아.”
강연석이 병실에 천천히 걸어 들어오자, 침대에 누워 있던 노인, 김석진의 눈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으응? 연석이.”
놀랍게도 김석진은 아직도 장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의 친구, 강연석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설마, 연석이냐?”
“그래, 임마.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어떻게,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게, 그렇게 됐다.”
친구의 두 손을 맞잡은 강연석은 한참 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후로도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긴 이야기를 나눈 강연석과 김석진.
두 사람은 오랜 단짝이자, 실종자를 구하는 동료이기도 했다.
“그랬구나. 허허허허.”
김석진이 웃음을 터뜨리자 강연석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부럽지? 난 이제 40대라고.”
“그러게. 딱 그때의 모습이구먼. 아니, 더 젊어진 것 같기도 하다.”
절친한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던 김석진의 눈은 어두워졌다.
“근데, 우리 연석이는… 이제 어쩔꼬.”
“뭐가?”
“쓸쓸해서 말야.”
김석진은 알고 있었다.
강연석이 아는 모든 이들은 대부분 죽었다.
이제 자신마저 죽게 된다면 강연석은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걸.
“뭔 소리야. 이렇게 장성한 아들도 있는데. 너 걱정이나 해라, 임마.”
“걱정 마. 아직 50년은 더 살 거니까.”
콜록콜록.
갑자기 김석진이 기침을 터트렸다.
기침이 멈추길 한참을 기다렸지만, 5분이 지나도록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면회는 여기까지 하셔야겠어요.”
소리를 듣고 달려온 간호사의 말에 강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얌마, 다시 올 테니까 몸조리나 잘하고 있어.”
“그래. 다음에 올 땐 같이 바깥 구경이나 하자. 영화도 같이 보고.”
“알았어. 또 올게.”
피식 웃은 강연석이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석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돌아서는 강연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며칠 후, 실버타운 장례식장.
김석진의 장례식장을 찾은 강연석의 눈엔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해서 바깥 구경을 하자는 거냐? 이렇게?”
강연석은 흐르는 눈물로 인해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
하지만 영정사진 속, 환하게 웃는 친구의 얼굴은 또렷이 보였다.
“석진아.”
삼 일 동안 밤새, 떠난 친구의 곁을 지켜주고 무덤까지 따라간 강연석.
그는 비통하게 엎드려 울고 또 울었다. 만약 강태식이 옆에 있지 않았더라면 그는 정신을 잃고 혼절했을 것이다.
“영화는 다음 세상에서 보자, 석진아.”
파릇파릇한 잔디가 돋아난 친구의 무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연석은 몸을 천천히 돌렸다.
며칠 후, 강태식의 저택.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강연석을 바라보던 강태식이 펄쩍 뛰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돌아간다니, 대체 어디를요?”
“내가 신세 졌던 마을로.”
“아빠.”
“아무래도… 내가 돌아갈 곳은 거기밖에 없는 것 같아.”
“그게 말이 돼요?”
강연석은 사랑스런 아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빠를 이해해 주렴.”
“이해라뇨. 그런 걸 어떻게 이해해요.”
“미안하다, 태식아.”
“절대로… 안 돼요!”
강태식은 큰소리로 외쳤다.
“아빠를 찾기 위해 30년 가까이 전국을 헤맸어요! 레인저가 된 것도 행여라도 실종된 아빠를 찾을 수 있을까!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해서 지원한 거라고요!”
“태식아.”
“더 이상 말하지 마요!”
강태식은 아빠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
“그냥, 제 곁에 같이 있어줘요. 제발요. 네?”
강연석은 두 팔을 벌려 장성한 아들을 품에 꼭 안아주었다.
“아픈 기억을 남겨주어서 미안하구나.”
눈물을 뚝뚝 흘린 강연석이 다시 한번 아들의 품을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고맙다. 이렇게 훌륭하게 커줘서.”
“아빠.”
“하지만 아빠는 제자리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구나.”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은 강연석이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늦게 나타난 아빠를 바라보며 살기엔 넌 너무 컸고 말야.”
자신을 꼭 닮은 아들의 두 볼을 부드럽게 맞잡은 강연석이 웃으며 말했다.
방긋 웃고 있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굵은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이젠 아빠가 아닌 아내랑 딸을 보며 사는 거야. 알겠지?”
“아빠.”
“사랑한다, 태식아.”
강연석은 강태식의 두 볼을 잡고 쪽 뽀뽀를 했다. 어린 시절 사랑스런 아들에게 해주었던 뽀뽀다.
“잘 지내렴.”
“아빠!”
아버지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강태식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영영 가는 거 아니죠? 다시 볼 수 있는 거죠?”
“그러엄. 우리 태식이 보러 또 와야지.”
나이는 비슷해 보이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강태식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품에서 원 없이 울었다.
지리산.
강태식은 처음 아버지를 발견했던 동굴이 보이는 산속의 중턱에 도착했다.
우우웅.
강연석이 도착하자 빽빽한 숲속에선 하얀빛과 함께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마치 오랫동안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태식아. 아빠는 갈게.”
다시 한번 아들을 꼭 안아준 강연석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건강해라. 항상 몸조심하고.”
“아빠도요.”
“응.”
빛 안으로 걸어가려던 강연석은 다시 아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어서 가.”
“아버지, 거기서 지내시다, 꼭 다시 찾아와 주셔야 해요. 알겠죠?”
“그래. 어여 들어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던 강연석은 이내 빛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강태식은 빛과 함께 사라진 아버지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능 노반. 대체 왜 그러시오.”
“어허. 한 수만 물려주게나.”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리자, 강태식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보이는 동굴에서 또다시 일전의 곰과 도깨비가 투탁거리고 있다.
자세히 보니 나뭇등걸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대체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눈물을 흘리던 강태식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이 세계에는 몬스터뿐만 아니라 말하는 동물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