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레인저 강태식 (1)
“후우.”
지리산.
깊은 산속을 오르던 남성은 깎아지른 절벽에 이르자,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이름은 강태식.
A급 경질화 스킬을 갖고 있는 4급 각성자로, 솔로로 활동하는 레인저다.
-레인저가 뭐예요?
강태식이 직업을 밝히면 사람들에게 늘 듣는 말이다.
이름만 들어선 감이 오지 않는 생소한 직업, 레인저.
퍼스트 버스터 이후, 협회가 만들어지고 던전은 안정화되었지만, 가변던전에서 나온 일부 몬스터들은 산속에 숨어 서식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레인저는 전국 각지의 산을 떠돌며, 행여라도 남아 있는 몬스터들을 수색, 박멸하는 전문 사냥꾼이었다.
“이제는 정말 보이지 않구먼.”
강태식의 나이는 올해로 마흔다섯.
레인저로 활동한 지는 어느덧 이십오 년이 넘었다.
그동안 숨어 있던 몬스터는 대부분 박멸되었고, 더 이상 산속에서 몬스터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한창 몬스터가 산을 돌아다닐 시기에는 팀을 이루며 활동하던 레인저 팀만 수백여 팀.
하지만 지금 협회에 등록된 레인저는 강태식을 포함해, 전국에 열 명 정도뿐이었다
띠리리링.
그때 강태식의 팔에 부착된 스크린형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바가지 매니아’라고 적혀 있는 걸 보니 아내 전화다.
-여보! 대체 언제 집으로 오는 거야?
아닐까 다를까. 휴대폰 스크린에는 아내, 한현진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여, 여보.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요새 몬스터가 어디 있다고 산에 나가? 언제는 은퇴한다면서?
“집에서 놀면 뭐 하겠어. 밖에 나가서 돈이라도 벌어야지.”
더듬거리는 강태식의 말에 아내의 표정이 더욱 살벌해졌다.
-돈? 돈을 더 벌어서 뭐 하게? 딴 살림 차리게?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산속 몬스터를 잡는 포상금은 엄청나게 후한 편이었다.
이십오 년 동안 줄곧 레인저 일을 해왔던 강태식.
그는 이미 차고 넘치는 은퇴자금까지 마련해 둔 터였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는 그냥 소일거리 삼아…….”
-됐으니까, 오늘까진 꼭 들어와. 태선이는 아빠 얼굴 까먹겠다고 난리야.
“여보, 나 아직 지리산이거든? 오늘은 안 되고, 모레까진 들어가 보도록…….”
뚝.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으음.”
끊긴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던 강태식은 침음을 하며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 관둬야 하나.”
털썩 주저앉은 그는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곳엔 해맑게 웃고 있는 중년남성이 있었다. 강태식의 아버지, 강연석이었다.
“아버지.”
사진을 바라보던 강태식의 눈빛은 물결처럼 흔들렸다.
사실 그가 레인저 일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하나. 산속에서 실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어느덧 제가 아버지 나이를 추월했네요.”
털썩 주저앉은 강태식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이젠 정말 포기해야 할까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강태식.
자상하고 다정한 아버지 강연석.
그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낄 수 없도록, 강태식을 사랑으로 키웠다.
그리고 강태식이 열 살이 되던 해, 세계에 곳곳에선 던전과 몬스터가 쏟아지는 퍼스트 버스터 현상이 일어났다.
동시에 강연석은 생명의 빛을 감지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발휘되었다.
그 놀라운 능력이 알려지자 나라에선, 그를 실종자를 찾는 임무에 투입시켰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강연석.
하지만 3년 뒤.
산속에서 실종자를 찾던 강연석이 되려 신비스럽게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산속을 뒤지는 레인저가 되었는데.”
회상을 끝낸 강태식은 고통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결국 평생을 뒤져도 아버지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어요.”
콰쾅!
그때, 갑자기 커다란 폭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돌 더미가 맞은편 절벽에 부딪친 것이다.
우르르릉.
산이 무너지는 듯한 진동음과 함께 맞은편의 절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뭐야?’
몸을 일으킨 강태식의 눈에서 예리한 빛이 퍼져나갔다.
첩첩산중에 있는 멀쩡한 바위들이 갑자기 하늘 위로 떠올라 절벽에 부딪칠 일은 없다.
분명 인위적인 현상이었다.
‘몬스터가 분명해!’
심호흡을 한 강태식은 절벽으로 힘껏 달려 나갔다.
“하압!”
육체각성도가 150%에 달하는 그가 땅을 박차자, 몸뚱이가 쏘아진 로켓처럼 하늘 위로 솟구쳤다.
휘이이익.
반대편 산으로 튀어 오른 강태식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하강했다.
아무리 각성자의 육체라도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무사하지 못한다.
“아머 스킨!”
순간 강태식의 피부가 투명하게 반짝였다.
A급 경질화 스킬, ‘아머 스킨’을 사용한 것이다.
콰직! 쿠웅!
전신이 금속보다 단단하고 견고해진 강태식이 땅에 착지하자, 바위가 깨지고 둔탁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어디냐!”
주위를 둘러보던 강태식.
문득 멀리 보이는 산 중턱의 동굴에서 희미하게 움직이는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 마리가 아니군.’
허리춤에서 단분자 커터를 뽑아 든 강태식은 몸을 낮추고 천천히 동굴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뭐야, 이건?’
그런데 동굴로 다가가자 땅에서 반짝이는 광채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땅에서 흘러나오는 신비한 힘이 강태식의 발을 움켜잡듯 휘감았다.
‘으으으윽.’
아무리 발을 빼내려 했지만, 두 다리가 땅속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던전?’
땅에서 이러한 힘이 흘러나오는 건, 던전 외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산 중턱 전체가 거대한 던전이었단 말인가?
“하하하! 정말 마음에 드는군.”
그때 웃음소리와 함께 동굴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한 그림자는 곰, 그리고 옆에 있는 그림자는 놀랍게도 한 마리의 도깨비를 닮은 거대한 형체였다.
“앞으로도 이 약선동의 인테리어를 종종 맡길 터이니, 잘 부탁하네!”
“감사하외다. 최선을 다하겠소이다.”
“아, 기왕 예까지 온 김에 한 그릇 하고 가는 게 어떤가? 때마침 어제 좋은 재료를 캤는데 말야…….”
너털웃음을 터트리던 까만 곰은 도깨비의 어깨를 친근하게 두들기며 다시 동굴로 향했다.
‘곰이 말을 한다고?’
몬스터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각성자협회 따윈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스윽.
까만 곰과 도깨비가 동굴에 들어가자, 땅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점차 사라졌다.
동시에 땅에 박혀 버린 듯한 강태식의 다리도 점차 움직여지기 시작했다.
“대체… 뭐였지? 내가 헛것을 본 건가.”
입을 벌리고 있던 강태식이 고개를 가로저을 찰나,
스르라라랑.
묘한 소리와 함께 좌측에 보이는 숲에서 하얀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샤랑샤랑샤랑.
쏟아지는 빛은 태양처럼 강렬해지더니, 마침내 둥그런 형태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후우.”짧은 탄성과 함께 그 공간 안에선 한 사람의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역사책에서나 볼 법한 오래된 한복에 밀짚모자를 쓴 중년의 농부였다.
“어, 어라?”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중년의 농부는 우뚝 서 있던 강태식을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강태식의 얼굴이 자신과 한 틀에 찍어낸 것처럼 꾹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강태식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눈앞의 농부는, 방금 전 절벽 위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사진과 꼭 닮아 있었다.
아니, 똑같은 사람이었다.
“아빠!”
달려간 강태식은 눈앞의 농부를 덥석 끌어안았다.
30년 전 자신을 따스하게 안아주었던 푸근한 몸, 시큼텁텁하면서도 기분 좋은 체취.
확실하다. 이 농부는 아버지가 분명했다.
“아빠!”
쓰러지듯 오열하는 강태식을 보자, 농부 차림의 중년인, 강연석도 입을 벌리며 소리쳤다.
“설마. 태, 태식인 거냐?”
“아빠…! 아빠아……!”
대성통곡을 하며 쓰러진 강태식을 보며 강연석이 당황하며 입을 벌렸다.
“어떻게 된 거냐? 네가 왜 여기 있어?”
품에 안긴 채 울먹이는 아들의 머리를 찬찬히 쓰다듬던 강연석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식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아빠한테 차분히 말해봐.”
“무슨 일이라뇨! 아빠, 지금까지 실종되었잖아요.”
“하하하. 실종은 무슨.”
사랑스런 아들의 등을 토닥인 그는 손가락으로 반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빠가 실종자 수색을 하다 절벽에서 떨어진 것뿐이야. 하필 다리가 부러져서… 저쪽 마을 사람들에게 조금 신세를 지고 왔지.”
눈물을 닦은 강태식은 아버지가 가리킨 손가락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곳은 그냥 우거진 숲일 뿐이었다.
“저 숲에 마을이 있다고요?”
“어, 어라? 분명 여기가 마을 입구인데. 언제 숲이 되었지?”
강연석은 눈을 껌뻑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180센티가 넘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강태식의 얼굴을 빤히 보며 물었다.
“그런데 태식아. 근데 너 왜 이리 늙었냐?”
“늙었다뇨. 이래 봬도 저 꽤 동안 취급을 받는…….”
입술을 내밀던 강태식은 그제야 아버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삼십 년이 지난 아버지의 얼굴이 사진 속 얼굴과 완전히 똑같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
“아빠 왜 얼굴이 그대로예요?”
“왜 그대로라니?”
강태식은 눈을 껌뻑거리며 말했다.
“아빤 얼굴이 다친 게 아니라 저쪽 절벽에서 굴러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진 것뿐이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강태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그 마을에서 얼마나 계신 거예요?”
“한 달 반 정도 되었나? 다리가 붙는 데 꽤 오래 걸리더라고.”
“한 달 반… 이라고요?”
강태식은 혼란스러웠다.
무려 30년간 실종된 아버지다. 어쩌면 온전한 정신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이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맑은 눈빛과 동년배처럼 보이는 용모를 하고 있다.
“아빠.”
심호흡을 한 강태식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선, 병원부터 가요.”
* * *
xx대학병원, 건강증진센터.
정밀검진 결과를 듣고 있던 강태식은 입을 벌렸다.
검사 결과는 완전 깨끗.
아무런 질병도, 몸에 이상도 없고, 신체나이는 20대에 가까울 정도로 튼튼하고 유연하다고 한다.
“정말 거기서 한 달하고도 보름만 있었다고요?”
“그렇다니까.”
병원 밖으로 나온 강연석은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거냐? 뭔 도시가 이렇게 바뀌었어?”
하늘을 찌를 듯한 대학병원의 건물을 올려다본 그는 입을 벌린 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무슨 로봇이 이상한 검사를 한 시간 만에 후딱 다 하고 그러냐? 여기 병원 아니냐?”
“아빠.”
강태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했잖아요. 아빠, 실종된 지 30년이 넘었다고.”
“이 녀석. 자꾸 그럴 거야? 아빠는 그저 다리가 부러져서…….”
“아빠, 그럼 이런 거 본 적 있어요?”
강태식은 손목에 찬 휴대폰을 내밀었다.
“이건 그냥 시계…….”
픽 웃은 강연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칵 소리와 함께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스크린 창이 허공에 띄워졌다.
[부르셨습니까, 강태식 님.]
스크린 속에 있는 여성이 방긋 웃자, 강연석이 침을 꿀꺽 삼켰다.
“…가 아니네.”
“주위를 봐요. 저런 건물 본 적 있어요? 저런 차는? 저런 건물은?”
“으음.”
강연석은 침음을 내었다.
“하지만 아빠는 정말로, 한 달 반 정도만 그 마을에 있었어. 정말이야.”
서로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건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30년과 45일이라는 차이는 두 부자가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소위 웜홀이라던가? 아님, 필라델피아 사건 같은 것과 비슷한 건가?’
머리를 긁적이던 강태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 그 마을은 어떤 곳이었어요?”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힘없이 웃던 강태식의 물음에 강연석이 방긋 웃었다.
“그야말로 무릉도원이었지. 풍요롭고, 고즈넉하고, 마을 사람들 모두 좋은 분들이었고.”
회상하는 강연석의 눈엔 행복한 빛이 흘렀다.
강태식은 느낄 수 있었다.
분명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아버지는 매우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고.
[앗.]
그때 둥그런 계란 모양처럼 생긴 나노봇 하나가 강연석의 발에 부딪쳤다.
[죄송합니다. 감지 센서가 수리 중이라서요.]
“아, 아냐. 내가 못 본 건데.”
[제 사용자님을 찾다가 정신이 팔려 버렸네요. 실례합니다.]
둥그런 머리 부분을 긁적이다가 다시 걸어가는 나노봇을 보자, 강연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30년이라… 그럼 이제 어떡하나.”
넋을 잃은 그의 중얼거림에 강태식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저랑 같이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