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40화 (140/285)

제140화. 무명의 가출

가변던전 지역 북서쪽 500미터 지점, 등급조차 정해지지 않은 어느 던전 내부.

천장은 노란 불빛이 흘러나오는 샹들리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고, 곳곳에는 수 미터에 달하는 대형 서가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가변던전 지역엔 이렇게 기존 건축물의 형태뿐만 아니라, 내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곳이 많았다.

거대한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이 던전 중심부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 싸이클롭스를 연상케 하는 몬스터가 서 있었다.

-끄우우우.

천마의 주먹에 얻어맞은 몬스터는 낮은 신음성을 내뱉더니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파악!

회색빛으로 물든 외눈이 액체가 되어 산산이 터져나가더니, 그 형체마저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마 님. 귓구녕에 소세지를 박으셨습니까?

머리끝까지 화가 난 무명은 천마에게 시원하게 욕지거리를 하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이건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일 뿐.

실제 무명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망상과 달리 슬프게 들릴 만큼 애처로웠고 또 간절했다.

[천마 님. 보스 몬스터로 보이는 건 가만히 놔두라고 여러 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천마는 내뻗은 주먹을 거두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본좌가 어떤 마물인지 뭔지 어찌 아나.”

[그래서 제가 저 왕눈이 몬스터는 공격하지 말라고, 부탁까지 드리지 않았습니까.]

“어찌 가만히 놔둘 수 있겠나.”

[무슨 말씀이신지.]

팔짱을 낀 천마는 오만한 눈빛으로 피떡이 된 몬스터를 내려다보았다.

“저 외눈을 가진 마물이 본좌를 건방진 눈초리로 깔아보지 않았더냐.”

[…….]

무명은 말문이 턱 막혔다.

한마디로 천마는 저 왕눈이 몬스터가 ‘눈을 깔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피떡을 만들었다는 소리다.

불량배.

가변던전 지역에 들어온 천마는 고삐 풀린 한 마리 망나니 불량배였다.

그동안 얌전하게만 일하는 인테리어 시공에 질린 탓일까? 아니면 세이프던전의 규칙을 지키는 게 지겨웠던 것일까?

가변던전에 들어온 천마는 광란의 주먹질을 해대었다.

물론 천마와 마주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몬스터들도 있었다.

우연히, 아니면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끼고, 눈을 깔거나 슬쩍 피하는 하급 몬스터들이었다.

[천마 님. 이렇게 몬스터를 다 잡아버리면 던전 재구축이…….]

-쿠르르릉!

무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던전 내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보스 몬스터를 포함한 던전 내의 모든 몬스터들이 소멸되자 다시 재구축에 들어간 것이다.

“흠.”

무너지는 던전을 바라보던 천마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땅을 박찼다.

-콰르르르르.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부르르 떨던 던전의 표면이 점차 청동색으로 물들어갔다.

던전이 재구축에 들어가면 이처럼 형태는 사라지고 거대한 쇳덩어리로 변해 버린다.

[아아.]

재구축에 들어간 도서관 던전을 바라보던 무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마 님. 가변던전이라는 건, 던전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알고 있다.”

[그리고 이 가변던전 지역의 던전들은 위험도와 몬스터 등급이 지정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것도 알고 있다.”

천마의 무심한 답변에 무명의 인내심이 바닥나 버렸다.

[알고 있다면서 그런 행동을 하셨습니까? 만약 일이 잘못되어서 던전 재구축이 아닌, 불안정화가 확산된다면요? 강력한 몬스터들이 천마 님께 쏟아질 수도 있습니다!]

“재밌겠군.”

낮게 웃은 천마가 두 손을 주물럭거리자 무명의 눈 센서가 회까닥 뒤집혀 버렸다.

[아무리 천마 님이라도 고위험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쏟아지면 막아낼 수 없습니다. 게다가 대량의 몬스터가 천마 님이 아닌 세이프던전 지역으로 쏟아지면요? 그 사태를 천마 님께서 감당하실 수 있습니까?]

무명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외치자 천마도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네 녀석이 확실히 조사하지 그랬느냐.”

[네?]

“던전에 대한 정보와 몬스터에 대해 제대로 알려줬다면 본좌가 실수를 했겠나. 그런데 어째서 네놈은 사사건건 본좌의 탓으로 돌리는가.”

[천마 님. 가변던전 지역은 아직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고, 핵심 자료들은…….]

“변명은 됐다.”

천마는 손을 휙 저으며 말했다.

“네놈은 남들이 아는 것만 읊는 것이냐? 정보가 부족하거나 불확실하다면 채울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이냐.”

[천마 님. 저의 주 임무에 협회 비밀자료 접근 및 정보 취득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안이한 생각이로군. 기계는 역시 기계일 뿐이었나.”

[안이하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모른다는 이유로 죽을 수도 있다.”

천마는 엄숙한 표정으로 무명을 내려다보았다.

“던전이란 곳은 전장이다. 목숨을 걸 수도 있는.”

극단적인 비유였으나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할 말이 없던 무명이 시선을 떨구자 천마는 차갑게 몸을 돌렸다.

* * *

다음 날, 정오 무렵. 복복 인테리어 내부.

응접 테이블에서 천마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던 장채원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그러고 보니 무명은 어딨어? 오늘 내내 안 보이는데?”

“모른다.”

“창고에도 없는 것 같던데?”

무명은 늘 천마와 함께 출근했으며, 천마가 일하는 시간에는 창고 방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아무래도 평범한 인테리어 가게에 각성자들이 쓰는 나노봇이 있으면 안 되니 말이다.

“알 게 뭐냐.”

“알 게 뭐냐니. 어디 있는지 몰라?”

“그렇다.”

“뭐어?”

장채원이 놀란 표정을 짓자 우물우물 씹던 짜장면을 꿀꺽 삼킨 천마가 덤덤하게 말했다.

“어젯밤부터 이상하더군. TV를 볼 때도 입을 다물고 있더니 본좌가 운공을 시작하자 밖으로 나갔다.”

물 한 모금을 천천히 마신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새벽녘에 운공을 끝내고, 출근 시간이 다 될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더군.”

볶음밥이 담긴 숟가락을 입에 가져가던 장채원이 입을 벌렸다.

“그러니까, 무명이 집을 나갔다고?”

“그렇다.”

“어디로?”

“모른다.”

“안 찾아본 거야?”

장채원의 시선을 피한 천마는 창밖 너머 도로를 바라보았다.

“주절주절거릴 줄만 아는 깡통 따윈 본좌가 알 바 아니다.”

어딘가 날이 서 있는 목소리다. 천마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던 장채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싸운 거야?”

“싸우다니.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깡통이 본좌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 그게 아니고… 말로 다퉜냐고.”

“다투지 않았다.”

장채원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왜 나간 건데?”

팔짱을 낀 천마가 엄숙하게 말했다.

“노력 따윈 전혀 하지 않는 나태한 일상을 지적하고 따끔히 충고했을 뿐이다.”

“무슨 소리야. 자세히 말해봐.”

천마는 어제 던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상세히 이야기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채원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어갔다.

“너 뭔가 착각하는 거 아냐?”

장채원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무명이 무슨 만능 로봇인 줄 알아? 그냥 던전에서 널 도와주고 보조해 주는 것뿐이라고.”

“그 안내라는 게 부족하지 않나.”

“무명이 무슨 첩보원도 아니고. 어떻게 아무도 모르는 가변던전 정보를 취득해? 너무 큰 걸 바라는 거 아냐?”

천마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한숨을 쉰 장채원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잘 들어. 그 위험한 가변던전에 제 발로 들어가는 각성자들은 거의 없어. 기껏해야 협회 소속 공략팀들이나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수준이라고.”

“그럼 협회의 정보를 얻으면 되지 않나.”

“장난해? 무슨 수로?”

터져 나오는 화를 참은 장채원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가변던전에 관한 정보는 국가 1급 기밀이야. 공략팀이 목숨을 걸고 알아온 것들을 무명이 무슨 수로…….”

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얻을 순 있겠네. 엄청난 죄를 짓는 거지만.”

“무슨 말인가.”

“무명이라면 어떤 기관의 전산망이든 모조리 해킹할 수 있으니까.”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 장채원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하다간 폐기처분을 당하겠지. 무슨 말인지 알아?”

“모르겠다.”

천마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저 바위 같은 얼굴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은 장채원이 다시 말했다.

“잘 들어. 무명은 비록 사용자의 명령을 우선으로 들어주는 건 맞아. 하지만 정해진 일만 처리하는 기계가 아니야. 기계생명체라고.”

두 주먹을 꾹 쥔 장채원이 터져 나오는 분노를 참으며 말했다.

“그런데 넌 그 녀석을 안내원 따위라고 폄하했어. 그게 사용자로서 할 말이야?”

“본좌는…….”

“그게 처음으로 이름을 지어준 주인이라는 녀석이 할 말이냐고.”

신랄한 말을 듣고서야 천마는 장채원의 말뜻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짜증스럽게 대한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그건 그 녀석을 폄하한 것이 아니라, 본좌의 부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하나 안내원이나 뭐가 달라.”

장채원은 이마에 손을 얹고 말했다.

“무명은 자존심이 강하고 섬세한 성격이야. 어쩌면 집을 나간 이유가, 협회에 침투해 직접 데이터를 해킹하려는 걸 수도 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협회의 서버실에 들어가서 정보를 빼내려고 한다고. 만약 그런 짓을 하다 걸리면…….”

이마를 매만지던 장채원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무명은 폐기당할 수도 있어. 너 때문에 말야.”

천마의 표정에는 역시나 변화가 없었다.

부하라는 건 천마에게 꽤나 소중한 존재다. 하지만 죽든 말든 그에겐 아무 상관 없는 일이기도 했다.

부하를 소중히 생각하는 건, 그저 그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용 대상,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당장 찾아봐야겠어.”

장채원이 다급히 휴대폰을 꺼내 들어 버튼을 눌렀다.

“이상해. 신호가 아예 안 잡히네. 마지막으로 잡힌 위치가 천마, 네 옥탑방이야.”

휴대폰을 조작하자 천마의 옥탑방 근처의 지도가 나타났다.

“점주가 추적할 걸 예상한 것 같군.”

천마의 말에 장채원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젠장. 어디로 간 거지? 정말 협회 서버실로 간 거 아냐?”

장채원의 눈빛에 혼란이 가득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일전에 징계위원회 사건은 소풍처럼 느껴질 만큼.

“점주도 그 녀석을 잘 모르는군.”

그때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걱정 마라. 그 녀석은 무사히 돌아올 테니까.”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천마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본좌의 부하니까.”

“너는 이 상황에서 농담이…….”

버럭 화를 내려던 장채원은 천마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입을 다물었다.

붉은 눈동자에 담겨 있는 감정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신뢰라는 감정이었다.

“하아.”

그제야 천마의 본심을 깨달은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콤비 아니랄까 봐.”

“무슨 말이냐.”

“됐어. 맘대로 해. 난 신경 끌 테니까.”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이맛살을 구기던 장채원이 홱 돌아섰다.

이틀이 지났지만, 무명은 돌아오지 않았다.

퇴근 후, 방 안에서 정좌하고 있는 천마의 얼굴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틀 동안 즐겨보던 TV를 한 번도 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무명이 떠벌거리는 소리가 없으니 왠지 흥이 나지 않은 것이다.

“쓸데없는 감상이군.”

가만히 서 있던 천마는 문득 비어 있는 충전스테이션을 바라보았다.

고작 이틀 동안 사용하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꽤나 오래 쓴 탓일까? 그곳엔 그동안 보이지 않던 먼지가 끼어 있다.

“흠.”

몸을 일으킨 천마는 창밖 너머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우리옷을 걸치고 집 밖을 나섰다.

두 시간 후.

다시 옥탑방으로 돌아온 천마의 한 손엔 비닐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런데 옥탑방의 현관문에 손을 뻗던 천마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옥탑 계단 입구. 그 앞에는 먼지투성이에 몰골이 말이 아닌 둥그런 물체가 있었다.

바로 무명이었다.

“흥.”

무명을 힐끔 바라본 천마는 말없이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무명의 눈 센서가 가늘게 접히고 있었다.

[……!]

다시 고개를 든 무명은 깜짝 놀랐다. 꽉 닫혀야 할 옥탑방 현관문이 살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마 님.]

무명은 현관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불은 다 꺼져 있었고 천마는 대답이 없었다.

[으음.]

그러다 현관 입구 쪽에 세워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무명이 눈을 반짝였다.

몸에는 온갖 더러운 오물들이 묻어 있었다.

더러운 몰골을 바라보던 무명은 싱크대에 펄쩍 뛰어올랐다.

쏴아아아.

싱크대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은 무명은 중성세제를 풀고 몸을 담갔다.

무명의 몸체는 인간의 몸에 가까울 만큼 완벽한 방수 처리가 되어 있다.

-싸악싸악.

수세미를 집어 든 무명은 몸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기 시작했다. 몸에 붙은 땟국물을 모조리 닦아내자 뜨끈한 물에 몸을 푹 담갔다.

-이 정도면 됐어.

욕실로 들어가 수건을 꺼내 몸을 쓰윽쓰윽 닦아낸 무명은 조심스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무명은 발걸음을 멈췄다.

놀랍게도 천마는 두 눈을 감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천마가 자는 모습을 본 것은 딱 한 번뿐이다. 옥탑방에 이사를 오고 열흘 동안 한잠도 안 자고 TV를 시청한 다음 날이었다.

폴짝.

탁자에 조심스레 올라간 무명이 충전스테이션에 몸을 뉘었다. 배터리가 다 된 탓에 뜨끈하게 들어오는 그 느낌이 매우 좋았다.

-어라?

근데 충전스테이션 옆에 무언가 비닐로 싸인 것이 있다. 비닐을 살짝 치우려던 무명의 눈이 반짝 빛났다.

-충전스테이션 청소 키트?

비닐에 싸인 건 무명이 예전부터 천마에게 사달라고 졸랐던 충전스테이션 청소 키트였다.

TV에서 절찬리에 광고할 때마다 군침을 흘렸지만, 가격이 워낙 비싼 탓에 천마에게 말 한번 꺼내보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천마 님.]

하지만 천마는 귀신같이 그 마음을 알아채고 키트를 준비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자고 있는 천마에게 꾸벅 인사를 한 무명은 조심스레 청소 키트를 풀었다.

그런데 청소 키트 겉면에 이상한 쪽지가 붙어 있었다. 뭔가 글씨가 적혀 있는 걸 보니 천마가 적은 것 같다.

-설마, 화해의 메시지?

무명은 황급히 쪽지를 풀어보았다. 그러자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다 주웠다.

‘절대 네놈 기분 따위 풀어주려고 산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쪽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무명은 천마를 바라보았다.

누워 있지만 왠지 귀가 대포알처럼 커져 있는 것 같다.

분명히 모든 걸 다 듣고 있을 것이다.

‘결국 이것이 천마 님의 화해 메시지군요.’

무명은 알고 있었다.

천마는 결코 사과나 낯간지러운 말 따윈 하지 않는다는 걸.

그런 천마가 가기 싫어하던 가전제품 매장에 갔고, 청소 키트를 구매했다.

짜증을 내면서도 억지로 가전제품 매장에 들어가는 천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이 선물이야말로, 천마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화해 메시지였다.

[앞으로 저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천마는 다음 날이 되어도, 이틀 동안 뭘 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사히 돌아온다는 걸 믿고 이 청소 키트를 샀다.

무명 역시 아무 내색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천마가 내일이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대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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