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35화 (135/285)

제135화. 테세우스의 배 (2)

천마의 시선은 금속으로 뒤덮인 송병호의 피부에 고정되어 있었다.

“뇌까지 교체하면, 백은마녀의 몸엔 더 이상 원래의 것은 남아 있지 않은 것이지요.”

“굳이 뇌까지 교체할 필요가 있나.”

“노후된 뇌를 교체하지 않으면 더 이상 온전한 기억력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오.”

“흐음.”

“시간이 갈수록 백은마녀는 점차 기억을 잃어갔소이다. 고민 끝에 그녀는 결국 뇌를 교체하기로 결심을 했지요.”

하지만 그 이후로 천마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흥미롭게 듣던 송병호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모르오.”

“응? 모르다니.”

송병호가 입을 벌렸다. 결국 결론이 없단 말인가?

천마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왜냐하면 뇌를 교체한 백은마녀는 그 후, 무림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전히 종적을 감춰 버렸소.”

“어째서 종적을 감춘 건가?”

궁금증을 참지 못한 송병호의 질문에 천마가 덤덤히 답했다.

“그것엔 전해 내려오는 두 가지 설이 있소. 첫 번째는 뇌가 인간의 영혼이 담겨 있는 도구였다는 것이오.”

“영혼?”

“그렇소이다. 영혼이 담겨 있는 뇌를 갈아치웠기 때문에 백은마녀가 아닌, 본래 뇌의 주인으로 영혼이 바뀐 것이오. 그리고 모든 걸 알게 된 뇌의 주인은 결국 심산유곡으로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설이오.”

“두 번째는?”

“두 번째는 노야의 의문과 비슷한 결론이오. 마지막 원본이라 할 수 있는 뇌를 교체하자 백은마녀의 원래 존재는 사라지고, 아예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오.”

천마는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몸속에 있는 모든 알맹이를 새로 교체했으니, 더 이상 백은마녀라고 불릴 수 있는 존재가 사라진 것이지요.”

잠시 이야기를 음미하던 송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두 이야기 모두 그럴듯하구만.”

“정확한 진실은 아무도 모르오. 백은마녀는 실제로 완전히 사라졌으니.”

송병호는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천마가 들려주는 말에는 여운이 있을 뿐 아니라, 묘한 이치가 담겨 있었다.

시선을 허공에 고정시켜 놓았던 송병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재밌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노부는 한 가지 의문이 드는군.”

“어떤 것이 말이오.”

“정말로 백은마녀라는 여인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말일세.”

송병호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천마에게 물었다.

“혹시 노부를 설득시키기 위해 즉석에서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겠지?”

그러자 천마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이 이야기에선 백은마녀가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오.”

“어째서?”

“그것이 노야가 한 질문에 대한 본인의 대답이니 말이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백은마녀가 존재했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러한 의문을 가진 자가, 바로 노야의 알맹이란 말이지요.”

순간 송병호의 눈에서 번갯불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자네는…….”

송병호의 깨달음을 짐작한 듯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결국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오. 다만 그러한 개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차이일 뿐. 안 그렇소이까?”

인간이 깨우칠 수 있는 무학의 최고 경지에 도달한 천마.

그는 마종방학뿐만 아니라 정파의 핵심 무공이라 할 수 있는 불가무공과 불문대법, 즉 불법에도 일가견이 있다.

“허어.”

천마가 화엄경(華嚴經)의 사상을 예로 들자 송병호가 탄식을 했다.

“그렇군. 내가 괜한 의문을 품고 있었구만.”

오랜 시간 전 세계의 전장을 떠돌던 송병호.

그는 끊임없이 부상을 당하면서, 피부와 장기를 교체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이 반복되자, 줄곧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가져왔던 것이다.

“대답이 되었다니 다행이오.”

천마의 당당한 눈빛을 보자 송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에게 빚을 졌군.”

금속피부를 붙이든, 인공피부를 붙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줄곧 딱딱한 인상으로 보였던 송병호의 얼굴이, 어딘가 부드러워 보였다.

“정말 빚을 졌다고 생각하시오?”

“그렇네. 지금까지 내 어리석은 생각을 깨우쳐 주었으니…….”

“그렇다면 드릴 말씀이 있소.”

“말해보게.”

“크험.”

천마는 헛기침을 했다. 이제야 본론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이 방에는 습기가 많소. 그러니 물기에 취약한 데코타일을 시공하는 것보다 장판을 시공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소만.”

그제야 천마의 속내를 파악한 송병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것 때문에 줄곧 노부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인가?”

이쯤 되자 천마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렇소. 겸사겸사 설명도 할 겸 말이오.”

“으허허허, 자네는 다 계획이 있었구만?”

유쾌하게 웃는 송병호의 금속 얼굴엔 주름살이 활짝 피어올랐다.

“자네에게 모두 맡길 테니 알아서 잘 시공해 주시게.”

부우웅.

낡은 배기음이 울려 퍼지며 천마의 라마스가 송병호의 단독주택을 빠져나갔다.

의도한 대로 데코타일 대신 장판을 시공했다. 장채원의 갑작스러운 시공 의뢰를 완벽히 처리하였음에도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떠나기 전, 송병호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궁금한 것이 하나 있네.

시공을 마치고 자재를 주섬주섬 챙기는 천마를 바라보며 송병호는 불현듯 묘한 질문을 던졌다.

-자네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들었네. 그렇다면 원래 자네는 아직도 그 세계에 있는 건 아닐까?

송병호는 인체로 만들어진 눈동자와 금속으로 뒤덮인 눈동자를 연신 깜박였다.

-원본이 그대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 복사본이 온 것일 수도 있잖나.

순간 천마는 굳건한 심령에 미세한 파탄(破綻)을 느꼈다.

줄곧 스스로를 인간이 아닌,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새로운 존재라고 믿던 천마.

하지만 신비한 존재가 나타나 그의 기혈을 끊어놓았다. 심지어 자신만이 펼칠 수 있다고 믿었던 천지무극통령을 실행해 다른 세계로 보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마문대법의 분야에서 자신을 능가한 신비한 인물이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송병호의 말을 듣자 조금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본좌는 정녕 본좌란 말인가.”

상념에서 깨어난 천마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차 안에 얌전히 타고 있던 무명이 눈 센서를 깜빡였다.

[갑자기 무슨 소리십니까.]

“지금 본좌는 새로운 세계로 왔다. 그렇다면 무림에 있는 본좌가 아닌, 새롭게 만들어진 존재일 수도 있지 않느냐.”

얼핏 듣기엔 기묘한 이야기다.

무명은 섣불리 입을 열지 않고 침묵했다.

영문은 잘 모르지만, 지금 천마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음을 짐작한 것이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건가요.]

천마는 지금까지 송병호와 나누었던 대화를 짧게 들려주었다.

무명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침묵하다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천마 님이, 오리지널이 아니라, 시공간의 균열로 인해 새롭게 만들어진 존재일 수도 있단 말씀입니까?]

“그렇다.”

무명은 천마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무명은 천마가 단순히 내공을 잃어버리고 기혈이 끊겼다는 이유로,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혹시 말입니다. 오시기 전에, 별다른 일은 없으셨나요?]

“없었다.”

[큰일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거라도 말입니다.]

순간의 말에 천마는 왼쪽 눈썹 하나를 치켜세웠다.

심경 변화.

천마는 나약한 육체를 버리고, 희로애락(喜怒哀樂)마저 버렸다.

여러 가지 감정이, 무학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인간의 한계를 돌파한 새로운 존재, 천마라는 절대무인이 탄생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무림의 변화가 생겨났다는 걸 깨달았다.

“한 가지 있긴 하다.”

[그게 뭔가요?]

“지루하다는 걸 깨달았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본좌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걸 이룩했지.”

천마의 눈동자에선 엄숙한 빛이 흘러나왔다.

“무엇이든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원한다면 무림을 개미 한 마리 남기지 않고 쓸어버릴 수도 있었지.”

그 당시를 회상하는 천마의 입가엔 쓸쓸한 미소가 흘렀다.

“그래서 본좌는 반발하는 세력들의 싹을 밟지 않고 숨통을 열어주었지.”

당시 정파에선 무림맹주 정천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키워 천마에게 대항했다.

무림의 성지, 무원정종 역시 걸핏하면 천마의 행동에 제약을 걸었다.

하지만 천마는 그들을 처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커나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었다.

[천마 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깊이 생각을 하던 무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쩌면 천마 님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기억을 지우고 무공을 줄인 채, 이 세계에 온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천마는 잠시 침묵했다.

사실 그 역시 오랫동안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무림에 본좌를 능가하는 자는 없다!

고양이 쥐 가지고 놀 듯, 정천과 팔주야 동안 신나게 싸우고 만마집궁으로 돌아온 천마.

그런 그를 갑작스럽게 이 세계에 보냈고 신비스럽게 기혈을 끊어놓을 수 있는 자.

그런 일을 가능케 할 사람은 바로 천마, 본인밖에 없지 않은가?

“그럴 수도 있겠지. 본좌도 가끔 그러한 생각을 했으니까.”

오른손으로 기어봉을 매만지던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왠지 그런 이유 같진 않더군.”

[그렇습니까?]

무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의 직감은 천하제일이다. 그가 아니라고 하면 반드시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니 새삼 낯설군.”

천마는 문득, 쥐고 있는 라마스의 운전대,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의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본좌가 있던 곳은 이런 곳이 아닌데.”

희미하게 떠오른 감정을 또다시 애써 지우는 천마를 보자 무명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전부 이해할 순 없지만, 천마 님의 혼란스럽다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마 님께서 송병호 님에게 설명한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지금의 혼란스러움에 대한 대답이 되진 않을까요?]

“그렇다. 그와 본좌가 처한 상황은 완전히 다르니까.”

천마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노인네는 그저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몸 일부를 교체해 왔기에, 자신의 존재를 혼란스러워한 것뿐이다. 그래서 본좌가 일체유심조라는 말로 납득시킬 수 있었지.”

운전대를 잡은 천마의 눈동자에선 심원한 빛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본좌는 아예 다른 시공간에서 넘어온 존재가 아니더냐.”

천마는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존재.

그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사상만으로는 자신이 오리지널임을 확신할 순 없었다.

[하지만 천마 님은 천마 님입니다.]

결국 무명은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천마는 천마. 이 세상에 이러한 인물은 두 명이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렇군.”

앞유리창 너머 도롯가를 바라보는 천마가 실소를 흘렸다.

무명의 말엔 진심이 담겨 있다.

고작 이 조그만 기계가 자신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니.

[천마 님. 오늘은 일 끝나고 모처럼 한잔 어떻습니까?]

뜬금없는 무명의 제안에 천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네 녀석이 술을 마실 수 있단 말이냐.”

[저야 술자리를 지키는 거죠. 같이 마시는 건 장채원 님과 김찬원 님, 고은진 님이고요. 회식을 한 지도 꽤 되지 않았습니까?]

무명은 신이 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천마 님이 한 건 해결하셨으니, 비싼 삼복구를 한잔 사 달라고 하는 겁니다. 물론 소주도 괜찮지만요]

“흠.”

그윽한 향을 풍기는 삼복구를 떠올리자 천마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독한 술, 맛있는 안주, 흥겨운 분위기…….

이 세계에 온 이후, 처음으로 술자리가 간절해진 것이다.

* * *

늦은 저녁 무렵, 선술집, 노병.

창가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장채원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야.”

무명에게서 천마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들은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요새 영화고 소설이고, 멀티버스가 유행이긴 하니까.”

멀티버스.

다중우주를 뜻하는 말로, 흔히 영화나 소설 속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뜻하기도 한다.

“천 씨가 둘이나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재밌겄네. 안 그려?”

술에 취한 김찬원이 껄껄대고 웃자, 옆에 앉아있던 고은진이 인상을 썼다.

“근육몬이 둘이나 있다니. 그건 그냥 재앙이지 말입니다.”

-뀨우.(동감하는 바다냥).

[천마 님 입장에선 진짜 심각한 고민인 겁니다.]

무명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다들 술에 취해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흠.”

천마는 말없이 삼복구를 들이켜고 있었다.

사실 그는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다.

천마조차 가늠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 장채원.

사회생활 경험이 많고 오랜 연륜이 있는 김찬원.

이 두 사람이라면 어쩌면 자신의 번뇌를 이해하진 않을까?

한없이 높은 경지에서 하승의 경지로 떨어진 자신의 괴로움을 공감하진 않을까? 라는 기대를 말이다.

하지만 막상 술집에 오자 공감은커녕,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정신없이 먹고 마시더니 금세 고주망태 상태가 되었다.

“아! 멀티버스 하니까 뭔가 떠올랐어요.”

갑자기 장채원은 매우 큰 발견을 한 듯, 크게 눈을 뜨며 말했다.

“천마 말이에요. 완전 보라돌이 우주파괴자 캐릭터 닮지 않았어요?”

천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자신의 번뇌와는 하등 상관없는 단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에헤이, 장 사장도 참.”

천마의 그런 마음을 헤아린 듯, 김찬원이 핀잔을 주듯 말했다.

“천 씨 얼굴을 봐봐. 그런 말이 나와?”

하지만 뒤 이어진 말은 장채원이 하는 헛소리와 별반 다름없었다.

“얼굴로 보나 근육으로 보나 초록 근육맨이지. 안 그른감?”

“에이, 천마는 깍두기 세계에서 왕초 노릇을 했다잖아요. 스케일이나 하는 일은 그쪽에 가깝죠.”

“누가 들으면 천 씨가 피비린내 나는 생활을 접고 이리로 온 줄 알겄어. 천 씨가 을매나 고상한 성격인디.”

김찬원은 걱정 반, 농담 반이 섞인 얼굴로 천마에게 말했다.

“그렇게 나쁜 일을 하진 아니했을 꺼여? 그렇지, 천 씨?”

두 사람은 그저 무림의 지배자이자, 고금제일인인 천마를 건달패거리의 두목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흥.”

천마의 표정이 구겨지자 김찬원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천 씨. 지난 일은 잊어. 왕년에 잘나가지 않은 사람이 어딨어? 내도 말여, 왕년에는 결혼해 주지 않으면 죽겠다던 미녀들이 줄을 섰어. 으허허허.”

그가 싯누런 이를 드러내며 껄껄 웃자 고은진이 엑 소리를 내었다.

“미녀가 아니라 마녀 아닙니까. 이빨이 훌렁 다 빠진 마녀 말입니다.”

“은진 씨가 사람 볼 줄 모르네. 나 김찬원이여, 김찬원. 젊었을 때 사진 보여줄까?”

“사양하지 말입니다.”

“어허, 그러지 말고 한번 봐바. 내가 소싯적엔 말여…….”

또다시 이어지는 수다에 천마는 초점 없는 눈으로 술만 들이켜고 있었다.

한편으론 신기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앞에서 주접을 떠는 인물들도 없었거니와, 여태껏 일행들이 고주망태로 취한 것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정말 너무들 하십니다!]

줄곧 유리창과 테이블 사이에 서 있던 무명이 버럭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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