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32화 (132/285)

제132화. 천마의 뒤를 캐는 하이에나 (1)

“위장 취업이라고요?”

“확실해.”

정창욱 계장이 손에 들고 있던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말했다.

“분명 유물이나 던전 재료를 국외로 빼돌리려 온 거겠지.”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던전 재료가 풍족하고 고가 유물이 많이 나오는 던전이 많다.

때문에 타국의 각성자들이 평범한 노동자로 들어온 후, 유물과 던전 재료를 밀반출하는 경우가 잦았다.

각성자 신분으로 취업을 하면 엄청나게 세금을 많이 떼니까.

“그럴 리가요?”

천마의 서류를 힐긋 내려다본 여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좀 의심이 나서 아까 물어봤는데요. 정말 저희 신혼집 상담해 준 실장님보다 훨씬 더 인테리어 지식에 빠삭하던데요?”

“스킬일지도 모르지.”

“네?”

정창욱 계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스킬 중에는 별의별 것들이 많아. 때로는 단기간에 지식을 한꺼번에 집어넣을 수 있는 것들도 있고.”

“에이, 설마요. 아까 그분, 우리나라 말도 제대로 못 했잖아요.”

“그런가?”

그는 입 안에 물고 있는 사탕을 으득 깨 먹었다.

그리고 여직원을 바라보더니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근데 아까 그 사람. 주소지가 어디로 되어 있지?”

* * *

실드경계지역.

주택가와 멀리 떨어진 이곳은 유령도시처럼 낡고 텅 빈 건물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지잉. 지이잉.

경계지역 끝자락으로 올라가는 좁은 도로에 낡은 자동차 한 대가 힘겹게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최근에는 거의 생산하지 않는 낡은 전기 차량인데, 차량 옆에는 지구본처럼 생긴 로고가 박혀 있었다.

철컥.

마침내 언덕 위로 올라선 차량이 멈춰 서고 차량의 문이 열렸다.

“끄응.”

운전석에서 내린 정창욱이 꽉 조여진 넥타이를 살짝 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경계지역 끝엔, 파랗게 펼쳐진 실드에 맞닿을 것만 같은 낡은 건물이 보였다.

“이런 곳에서 산다고…….”

옥탑방이 만들어진 낡은 건물을 바라보던 정창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실드경계지역은 언제 어디서 돌발적으로 튀어나오는 히든몬스터와 조우할지도 모르는 곳이다.

실제로 몇 번의 큰 사고가 있었고, 일반 사람들뿐만 아니라 각성자들도 몽땅 짐을 싸 들고 도망간 곳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 평범한 외국인 노동자가 살다니?

“주소를 엉터리로 써놨군.”

딱 걸렸다.

이제 보니 그 우락부락한 외국인은 주소를 허위로 기재해 놓고, 몰래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 분명했다.

“잠깐, 저건 또 뭐야.”

정창욱은 눈을 비볐다.

놀랍게도 이 경계지역 끝자락엔 옥탑방이 있을 뿐 아니라, 번듯한 빌라까지 지어져 있지 않은가?

“각성자 협회?”

놀랍게도 빌라 앞엔 각성자 협회 마크가 찍힌 몬스터 트럭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이 빌라는 외관만 가정집처럼 되어 있을 뿐, 옥상 꼭대기엔 중계기와 레이더 같은 장비들이 잔뜩 설치되어 있었다.

“희한하군.”

빌라를 유심히 바라보던 정창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여기가 협회 각성자들의 바라크(병력 주둔지)란 말인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턱을 쓰다듬던 정창욱의 등 뒤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오셨죠?”

고개를 돌려보니 놀랄 만큼 잘생긴 금발머리 청년이 눈을 껌뻑껌뻑거리고 있다.

‘언제 온 거지?’

기척도 소리도 없이 다가온 청년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정창욱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협회 각성자구나.’

오랫동안 불법체류 각성자들을 상대해 온 정창욱.

그는 청년이 착용한 컬러렌즈가 고속 이동 능력 각성자들이 끼는 프로텍트 렌즈라는 걸 알아챈 것이다.

“아아, 실례합니다.”

청년을 바라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인 정창욱이 옥탑방을 가리켰다.

“여쭤볼 게 있는데요. 저기 앞 건물엔 사람이 안 사는 거죠?”

“사는데요?”

“산다고요? 그럴 리가요?”

의외의 대답이 돌아오자 정창욱이 입을 벌렸다.

“그럴 리가요?”

“보세요. 저기에 이불 걸려 있잖아요.”

청년이 가리킨 옥탑 위에는 정말로 커다란 이불이 널려 있었다.

“그럼, 혹시 저기에 사시는 분 아시나요?”

“아, 천마 님이요? 그야 당연히…….”

청년이 입을 여는 찰나, 현관문이 열리며 앞치마를 입고 있는 여성이 밖으로 나왔다.

“은호야, 뭐 해. 계란 사 온다면서.”

“아, 맞다.”

손뼉을 친 청년, 유은호는 정창욱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께서 뭘 여쭤보길래…….”

“누구세요?”

앞치마를 입은 여성, 초홍이 정창욱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협회에서 오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디 소속이신가요?”

정창욱은 이 둥그렇고 선하게 생긴 여성이 대번에 자신이 공무원이라는 걸 파악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여성이 이곳 책임자인가?’

용모는 단아했으니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뿐만 아니라 금발머리 청년을 대하는 눈빛에 상당한 권위가 녹아 있는 걸 파악한 정창욱이 고개를 숙였다.

“아, 실례합니다.”

그리고 재빨리 안쪽 호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출입국 정책본부 이민조사과?”

받아든 명함을 내려다보던 초홍이 눈을 크게 떴다.

우리나라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을 조사하는 곳의 공무원이 실드경계지역엔 왜 온 것일까?

“팀장님. 이민조사과가 뭐예요?”

옆에서 명함을 같이 내려다보던 유은호가 묻자, 정창욱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아, 불법체류자들을 조사하는 부서입니다. 불법체류 각성자들도 포함해서 말이죠.”

“그러시군요.”

유은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창욱은 빌라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앞집에 말입니다. 외국인 분이 사신다고 들었는데…….”

“천마 님이요?”

“잘 아시나요?”

“아, 그럼요. 저희를 몇 번이나 구해주신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요?”

정창욱이 눈을 깜빡이자 초홍이 유은호의 등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다크 나이트… 같은 게임을 종종 모여서 같이 하거든요.”

“오, 그러시군요. 많이 친하신가 봐요?”

“그야…….”

입을 떼려던 초홍이 눈썹을 찌푸렸다.

이제 보니 이 중년남성은 은근히 천마에 대해서 캐물어 보고 있지 않은가?

“천마 씨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는 건가요?”

초홍의 직설적인 질문에 정창욱이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습니다.”

“천마 씨는 불체자도 아니고 조사할 것이 없을 텐데요?”

“아뇨. 조사라기보다는… 조금 이상해서요.”

“뭐가 이상하다는 말씀이죠.”

옥탑방을 바라보는 정창욱의 입가엔 묘한 미소가 그려졌다.

“엄청난 근육질에 붉은 눈빛. 분명 각성자 같은데 인테리어 일을 한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정창욱의 눈빛에서 예리한 광채가 번뜩이자 초홍은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천마 씨가 던전에 들어가는 게 들통난 걸까?’

불법체류 각성자를 조사하는 부서이니만큼, 분명 눈앞의 중년인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각성자일 것이다.

천마의 이중적인 던전 생활을 잘 알고 있는 초홍은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쓸데없는 조사를 하시네요.”

“네?”

“천마 씨는 매일매일 인테리어 일을 열심히 해요. 각성자라면 저희가 모를 일 없잖아요.”

“저희라면…….”

“전략기획실 산하 특수대응팀장, 초홍입니다. 이곳은 저희 특수대응팀의 막사구요.”

‘전략기획실…….’

정창욱의 눈에선 이채가 떠올랐다.

전략기획실 소속 요원들은 불법을 저지른 각성자들을 체포할 수 있는 사법 권한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다른 곳이면 몰라도 협회 소속이시니…….”

“당연한 말씀을.”

뻔뻔하게 대답했지만 초홍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그 바윗덩어리 같은 남자를 위해 거짓말까지 하고 있다니.’

정창욱은 문득 초홍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데 많이 친하신가 봐요?”

“네?”

“아뇨. 막노동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협회 소속의 요원분께서 친분이 있다는 게 좀 놀라워서요.”

말투에 가시가 있다.

묵묵히 초홍의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유은호의 눈빛이 동시에 차가워졌다.

“거, 말씀이 차암 재밌네요.”

“네?”

“어디에 있는, 높은 나으리께 취조받는 느낌이라서요.”

과거 던전이 없던 시절엔 우리나라 권력은 3권 분립, 즉 입법, 사법, 행정부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퍼스트 버스터 이후, 각성자 협회는 새로운 권력기관이자 독립기관으로 부상했다.

우리나라의 모든 각성자들을 컨트롤하는 대한각성자협회.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4권 분립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럴 리가요. 저따위 말단 공무원이 감히…….”

두 손을 내저은 정창욱이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다.

외국인 정책본부의 조사과 계장 수준에, 협회의 핵심부서 요원 나으리의 심기를 건드릴 순 없었으니까.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정창욱이 차로 몸을 돌렸다.

“천마 씨는 조사할 필요가 없어요. 불법 각성자라면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초홍의 말에 정창욱의 발걸음이 멈췄다.

“근데 말이죠.”

다시 몸을 돌린 정창욱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저분은 내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라… 저희 관할이라서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정창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협회라고 해도 말입니다.”

부르르릉.

낡은 자동차에 올라탄 정창욱이 창밖으로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럼 실례했습니다.”

부웅.

떠나는 정창욱의 차를 보며 유은호의 눈동자에서 한망이 번뜩였다.

“저 자식, 거슬리는데요.”

주먹을 꽉 쥔 유은호가 이를 깨물며 말했다.

“법무부 말단 공무원 나부랭이가 왜 천마 님을 조사하는 걸까요? 무슨 사고라도 치신 걸까요?”

“그냥 이상하다고 말한 걸 보면, 뭘 알고 그러는 것 같진 않아.”

초홍은 사라지는 낡은 차량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저 정창욱이라는 사람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말단 공무원을 자청했지만, 계장이라고 하면 사실 어지간한 부서의 팀장급이다.

“아무래도 천마 씨를 만나봐야겠어.”

“네?”

“우리도 가만히 놔두는 천마 씨를 저쪽에서 들쑤시게 할 순 없잖아.”

“어떡하시게요?”

“이야기해 봐야지.”

유은호의 걱정스런 표정에 초홍이 옥탑방을 응시하며 말했다.

“안 되면 내 권한으로 던전 출입증이라도 만들어주든가.”

저녁 무렵.

해가 저물자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천마는 옥탑방으로 돌아와 능숙하게 라마스를 주차했다.

후두둑.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수동 기어를 중립으로 맞춘 천마가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쭉 당긴 후 차에서 내렸다.

“흠.”

무명을 어깨에 태우고 옥탑방으로 올라가려던 천마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불이 켜지지 않는 어두운 주차장 뒤편을 빤히 응시하던 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냐.”

낮은 천마의 음성이 울려 퍼지자, 주차장 뒤편에서 작은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초홍이었다.

“바빠요?”

“바쁘다.”

무 자르듯 냉정한 천마의 말에 무명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최근 천마 님께서 드라마에 빠지셔서요.]

무명은 민망한지 주절주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전에 종영했던 나의 어사님이 시즌 2가 방영 중이거든요. 장르는 로맨스지만 액션 씬도 상당합니다. 퓨전사극에다 가볍고 유쾌한 스토리로 전개되니, 팀장님께서도 한번 감상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초홍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저 작은 나노봇의 언어 팩이 괴상하게 세팅되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유창하게 말을 할 줄이야.

“잠깐이면 돼요.”

초홍은 건물로 들어서는 천마의 앞에 서며 말했다.

“그쪽에게 중요한 이야기예요.”

“본좌에게 중요한 이야기라니.”

“오늘 낮에 외국인 정책본부 조사과에서 천마 씨를 조사하러 왔어요. 그래서…….”

초홍은 오늘 낮에 있었던 상황을 천마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아무래도 천마 씨가 불법으로 던전에 들어가는 걸 의심하는 것이 분명해요.”

나른하면서도 예리함을 머금고 있는 정창욱의 눈동자를 떠올린 초홍이 덧붙여 말했다.

“불법체류 각성자들을 처리하는 부서의 책임자라면,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닐 테고요.”

“상관없다.”

천마가 손을 내젓자 초홍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마 씨. 천마 씨가 아무리 좋은 일을 위해 던전에 들어간다고 해도, 유물을 착복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 신분으로는 출입 자체가 불법이에요.”

천마가 침묵하자 초홍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 팀원 모두 천마 씨를 걱정하고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저도 마찬가지고요.”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나.”

“아뇨. 다 안 했어요.”

초홍이 천마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각성자 등록증을 만들어드릴게요.”

심호흡을 한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스킬이나 육체각성도도 대충 입력할게요. 그럼 되는 거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이냐.”

“육체각성도랑 스킬이 공개되면 난리가 날까 봐, 너무나 엄청난 수치라서 등록을 못 하는 거잖아요. 아닌가요?”

초홍은 천마가 지금까지 각성자 등록을 하지 않는 이유가, 너무나 강력한 스킬과 상식을 벗어난 육체각성도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제가 그렇게 해줄게요. 그러니까 이제 등록하고 당당히 던전으로 들어가요.”

“헛소리 마라.”

“억지라는 거 알고 있어요. 천마 씨가 갑자기 각성자 등록을 하면, 조사과에서도 더 의심을 한다는 걸요.”

“…….”

“하지만, 상관없잖아요? 천마 씨가 던전에 가는 이유가 유물이나 돈 때문이 아닌, 사람들을 돕기 위해 간다는 게 알려지면…….”

천마는 대답 대신 덤덤히 초홍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호의를 무시당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해서였을까?

초홍은 고개를 떨군 채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할 리 없는 건가?’

그렇다.

저 사내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며, 위험에 빠진 각성자들을 구해주는 정의로운 다크 나이트.

결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지 않을 것이다.

[천마 님.]

무명은 황급히 옥탑방으로 들어와 TV를 켠 천마를 보며 말했다.

[협회의 상급 각성자라고 해도, 멋대로 신분증을 조작하는 건 중범죄입니다.]

“무슨 말이냐.”

[만약 들통났다간 초홍 팀장님은 엄청난 징계와 처벌은 물론이고, 평생 각성자 등록은 하지 못할 겁니다.]

무명은 TV에 시선이 고정된 천마를 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었다.

[모르시겠습니까? 그분은 자신의 안위 따윈 돌보지 않고 천마 님을 도우려 한 것입니다.]

천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오직 TV 속의 배우들에게 고정되어 있고, 귀는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배우들의 대사만을 듣고 있었다.

[천마 님…….]

무명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눈 센서를 번뜩였다.

결국 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 * *

“뭐어? 이민조사과?”

다음날, 아침.

천마와 함께 출근한 무명은 창고 방이 아닌, 장채원이 앉아 있는 책상 앞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어젯밤에 초홍이 들려주었던 말을 모두 그녀에게 전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정창욱 계장이라는 자, 이력이 화려하더군요. 30이 넘는 나이에 조사과의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 불법체류하는 각성자들만 잡아내어, 6급 계장까지 올랐습니다.]

이미 외국인 정책본부의 전산망을 해킹한 무명이 빠르게 말했다.

[공무원 특성상 협회 각성자 등록을 하지 않았지만, 단신으로 불법체류를 알선하는 조직을 일망타진한 경력이 여러 번 있는 걸로 보아, 4급 각성자 이상의 능력을 소유한 것 같습니다.]

“흐음.”

무명의 설명을 들은 장채원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앞집에 사는 협회 각성자가 천마를 위해, 각성자 등록증을 만들어주려 했다니.”

무명에게 알음알음 특수대응팀과의 사연을 들은 장채원은 그들이 천마를 좋은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중범죄를 각오하고 천마를 도와주려고 마음먹었을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천마를 각성자로 등록시킬 걸 그랬나.”

[역시 지금은 늦은 거겠죠?]

“당연하지. 갑자기 인테리어 일을 하던 시공자가 각성이 되었다고? 뭐, 우연찮게 일이 그렇다 쳐. 하지만 그 조사과 공무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턱을 괸 채 책상을 손가락으로 탁탁 치고 있던 장채원은 천마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건 말건, 청소를 마친 천마는 응접 테이블에 앉아 덤덤히 책을 읽고 있었다.

“천마, 들었어? 네 얘기 하잖아. 네 얘기. 이게 남의 일이냐?”

장채원이 소리치든 말든, 천마는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책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그래. 책이나 읽으셔.”

짜증스럽게 중얼거린 장채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뿐이네.”

고민 끝에 장채원이 신뢰용 전화기를 들자 무명이 눈 센서를 반짝였다.

[신지 관리팀에 연락하실 생각입니까?]

“그래.”

잠시 깊은숨을 들이쉰 장채원이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럴 땐 그냥 권력으로 눌러버리는 게 가장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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