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31화 (131/285)

제131화. 외국인 정책본부의 오류

강민주가 눈을 껌뻑였다.

무슨 나노봇이 이렇게 똑똑하지? 군사용으로 제작된 슈퍼컴퓨터와 비슷한 수준 같다.

“뭐?”

[사실 천마 님은 영지에서 일하시는 직원입니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 미등록 각성자 신분으로 계시고요.]

“영지? 아, 어쩐지…….”

강민주 역시 상급요괴인 탓에 세계의 법칙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씁쓸히 웃자 무명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두 분께선 왜 굳이 위험한 던전에 들어가시려는 겁니까? 요괴분들은 애당초 던전에 들어가면 안 되잖아요.]

강민주는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대부분의 요괴들은 환경에 민감해. 상급요괴와 달리 일반 요괴들의 요력의 원천은 대부분 자신과 연관된 대지에서 흘러나오니까.”

고개를 든 강민주의 금빛 눈동자는 신비롭게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던전에는 여러 가지 재료들이 있어. 특히 환경오염 때문에 아픈 요괴들에게 잘 듣는 특효약이 많으니까.”

순간 천마는 과거 몸이 아팠던 이무기 모자를 떠올렸다.

당시 던전에서 얻었던 유물로 이무기를 치료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건 내단을 빼 오기 위한 계획된 호의였을 뿐이다.

“이제는 들어가선 안 되겠지만.”

[어째서요?]

강민주는 대답 대신 쓴웃음을 머금었다.

간악한 장성륜 커플의 행동. 그리고 양복을 입은 청년의 강력한 힘.

더 이상은 위험을 무릅쓰고 던전에 들어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우물이 있는데 왜 목마르다고 하는지 모르겠군.”

“네?”

“좋은 기술이 있다면 먹고 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팔짱을 낀 천마가 강민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무명, 본점의 연락처를 알려줘라.”

매달려 있던 무명의 눈에서 하얀빛이 반짝였다.

순간 강민주의 휴대폰에 띠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복복… 인테리어요?”

휴대폰을 켜보니, 전화번호와 약도가 적힌 명함 하나가 전송되어 있었다.

“그렇다. 주 업무는 집수리지.”

팔짱을 낀 천마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테리어 공사부터, 던전 재료 입수까지 맡고 있다.”

“던전 재료도요?”

“그렇다.”

천마는 고객을 대하듯 강민주를 바라보며 상세히 설명했다.

“본점을 통해 의뢰는 넣을 수 있을 거다. 유물은 몰라도 재료 정도는 재량껏 얻을 수도 있지.”

“하지만 저희는 신뢰 같은 걸 맡길 수 없는데요?”

“그런가.”

입맛을 다신 천마가 매몰차게 말했다.

“그럼 안 되겠군.”

“네?”

“신뢰가 아니면 아무 소용없단 말이다.”

사람이 이리도 야박할 줄이야.

천마의 계산적인 태도에 옥탑방 내부는 잠시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왈칵.

그때 강민주의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심안.

그것은 수안일족 중 선택받은 자들만이 발휘할 수 있으며, 발휘하는 순간 몸이 크게 망가지는 금단의 기술이었던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무명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강민주가 엷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 그냥 몸 안쪽이 조금 다친 것뿐이야.”

[내상…….]

무명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상 치료는 천마의 전문이 아니던가?

[천마 님. 죄송하지만 진기 주입을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무명은 반극진기를 주입하면 그 누구든, 내상을 거뜬히 낫게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천마는 구두쇠 영감처럼 손을 휘휘 저었다.

“깨어났으면 얼른 가라.”

[천마 님.]

차가운 축객령을 내리자 피를 쓱 닦은 강민주가 비틀거리며 강윤후를 부축했다.

“어쨌든…… 감사했어요.”

살짝 고개를 숙인 강민주는 강윤후를 데리고 밤하늘 위로 사라졌다.

[천마 님. 너무 야박하신 거 아닙니까? 기왕 도와주신 것 끝까지 도와주시면 더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본좌는 거래 조건에 응했을 뿐이다.”

[그럼 계속 거래라도 하지 그러셨습니까? 어차피 던전 관리팀의 재료 채취 업무도 신뢰가 아니라 돈으로 계산되는데 말입니다.]

무명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본인의 일도 아니고, 다른 요괴들이 아파하는 것 때문에 목숨을 걸고 던전에 들어가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본좌가 알 게 뭐냐.”

손을 휘휘 저은 천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나온 그는, 바로 운공에 몰입했다.

짹짹짹.

아침이 밝아오자 천마는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불현듯, 자신이 중대한 것을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명.”

[네, 천마 님.]

“정비소를 운영한다는 요괴 여성의 신상 정보와 매장 위치를 파악해 놨겠지.”

1회에 한해 망가진 부품을 모두 교체해 준다는 요괴 남매 강윤후, 강민주.

두 사람의 연락처라던가 그들이 운영하는 매장의 위치를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그야 당연히…….]

무명이라면 설령 알지 못한다고 해도 조사해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야박하게 그들을 쫓아낸 천마의 모습을 떠올린 무명이 매정하게 말했다.

[저도 모르죠.]

“뭐라.”

[천마 님 께서 안 물어보셨나요?]

무명은 작정하고 시치미를 뚝 뗐다.

‘천마 님은 조금 더 고생을 해야 해. 그리고 남 들의 고달픔을 더 알아야 해.’

천마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

“본좌가 그런 걸 일일이 물어봐야 하나.”

[죄송합니다.]

천금 같은 라마스 수리 기회를 놓칠 순 없는 일.

천마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조사해 보도록.”

[알겠습니다.]

…는 개뿔, 절대로 안 찾아줄 겁니다. 절대로요.

“가능한 빨리. 본좌의 라마스를 수리해야 하니 말이다.”

무명은 밝은 목소리로 최대한 힘있게 말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하함.”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내당에서 나온 장채원이 어깨를 늘어뜨린 채 매장으로 향했다.

“공포영화 같은 건 역시…….”

어젯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TV에서 방영해 주는 공포영화를 보았다.

내용은 단순했다.

미래에서 온 기계 인간이 장래의 적이 되는 소년을 죽이기 위해 파견되었고, 도시를 괴멸시키며 싸운 끝에, 결국 기계 인간에게 승리했다는 내용이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줄거리였지만, 영화 자체는 꽤나 흥미진진했고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그 탓인지 잠이 들자 엄청난 악몽을 꾼 것이다.

“천마처럼 생긴 로봇이 밤새 쫓아왔어.”

푸석한 얼굴로 두 손을 내려다본 장채원이 공포스런 표정을 지었다.

꿈속에선 천마를 꾹 찍어 닮은 로봇이 끝없이 쫓아왔는데, 무슨 짓을 해도 파괴되지 않았다.

결국 로봇에게 잡힌 그녀는 외마디 비명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다시는 그런 영화 보지 말아야지.”

심호흡을 한 장채원은 두 뺨을 짝 때리며, 힘있게 매장의 뒷문을 열었다.

“좋은 아침!”

매장 바닥을 대걸레로 닦고 있던 천마는 장채원을 보자마자 성큼성큼 걸어왔다.

“잘 왔군.”

“어?”

평소에는 인사를 받는 둥 하거나 ‘왔나’라는 단답형 대답만 하던 천마가 웬일인지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리하라.”

“뭐, 뭘?”

장채원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온 천마가 갑자기 품속에 손을 넣었다.

설마? 아직도 꿈이야?

품속에서 50구경짜리 매그넘 탄환이 장전된 권총을 꺼내는 듯한 모습에 장채원은 눈을 감고 비명을 질렀다.

“꺄아!”

“왜 그러나.”

“으응?”

다시 눈을 떠보니 천마가 노란 봉투에 든 우편물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우편물을 건네받은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외국인 정책본부?”

“어젯밤 본좌의 거처로 날아온 서신이다. 하지만 무슨 소린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더군.”

장채원이 천마가 건넨 봉투를 꺼내 들자, 그곳에는 글자가 빼곡히 적인 안내문이 있었다.

한참 동안 문자를 들여다보던 그녀가 입을 벌렸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기술자 양반. 단기 취업 비자가 만료되었다니?”

“본좌도 모르는 말이다.”

“무명한테 안 보여줬어?”

“보여줬다. 무명의 말로는 점주에게 보내면 해결이 된다더군.”

사실 무명이 자세히 설명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강윤후 남매 사건 이후로 무명이 은근히 심통을 부린다는 걸 천마는 모르고 있었다.

“나한테? 무명! 이 우편물 뭐야?”

그러자 창고 방에 들어가 있던 무명이 기다렸다는 듯 떼굴떼굴 굴러 나왔다.

[출입국 정책본부의 착오인 것 같습니다.]

“착오?”

[그렇습니다. 천마 님께선 E-9(비전문 취업) 비자를 받으셨는데, 전산상의 착오인지, 현재 C-4(단기 취업)으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뭐라고?”

장채원이 눈을 크게 뜨자 무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산상의 오류는 제가 해결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 출입국 정책본부로 넘어간 서류입니다. 수기로 작성된 서류를 다시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천마 님이 직접 서류를 들고 출입국 정책본부로 방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야.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실수한 거잖아?”

[누구나 실수는 하는 법이니까요.]

“으음.”

부처님 같은 무명의 인자한 대답에 장채원은 입맛을 다셨다.

“천마야. 지난번에 기억나? 보건증 받으러 보건소에 갔었잖아.”

“기억난다.”

“분명 제대로 등록을 했는데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봐. 그래서 외국인 정책본부에 가서 등록증을 갱신해야 한대.”

장채원이 곤란한 미소를 보였다.

“그런데 말야, 갱신 같은 건 본인이 가야 하거든.”

“흠, 알겠다.”

천마가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장채원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내가 같이 가주고 싶은데… 아침부터 출장 견적 업무가 많아서 말야. 갱신 같은 건 그냥 간단한 절차니까 문제없을 거야. 잘할 수 있겠지?”

“물론이다.”

시원하게 대답하는 천마를 보며 장채원이 가자미눈을 떴다.

“외국인 정책본부도 보건소 근처에 있어. 또 각성자 등록센터로 들어가지 말고.”

“그런 실수는 안 한다.”

천마가 무명을 집어 어깨에 태우자 장채원이 각종 서류를 담은 봉투를 천마에게 내밀었다.

“건물에 들어갈 땐 무명은 차에 놔두는 게 좋아. 인테리어 노동자로 등록되었는데 나노봇을 가지고 다니면 괜히 의심받을 테니까.”

“그렇군.”

“던전에 가는 업무 외에는 무명은 안 된다는 걸 항상 잊지 마.”

고개를 끄덕인 천마가 라마스 키를 집어 들었다.

“그럼 다녀오겠다.”

딸랑.

천마가 지체 없이 무명을 어깨에 태우고 밖으로 나가자, 장채원은 노트북을 켜 견적서를 뽑기 시작했다.

“흐음.”

멀어져 가는 천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천마도 각성자로 등록시킬 걸 그랬나?”

새로 들어온 고은진은 파트타임 직원임에도 신계에 요청해 각성자로 등록시킨 터였다.

하지만 일주일에 서너 번은 던전에 들어가는 천마는 평범한 외국인으로 등록되어 있다.

“아냐.”

장채원은 힘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 괜히 더 곤란한 일이 생길 것 같단 말이지.”

영지의 직원은 혜택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신분증을 신계에서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원한다면 천마를 각성자로 등록시키고 내국인 신분으로도 바꿀 수 있지만, 장채원은 그저 평범한 외국인으로 등록시켜 두었다.

성격도 외모도 독특한 천마가, 행여라도 협회의 인물과 마찰이 생긴다면?

각성자 협회에 등록된 스킬과 등급이 엉터리라는 것이 대번에 들통날 것이 뻔했으니까.

“우선 놔둬보지, 뭐.”

도리질로 찜찜한 기분을 털어버린 그녀는 다시 텀블러 잔에 손을 뻗었다.

* * *

끼익.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도로를 달리던 천마의 라마스가 보건소 부근, 800미터쯤 떨어진 빌딩에 멈춰 섰다.

외국인 정책본부.

은빛으로 물든 빌딩 꼭대기 부근에 파란 글씨로 쓰여 있는 건물을 가리킨 무명이 말했다.

[천마 님. 6층에 있는 체류관리과에 가시면 됩니다. 이름만 대시면 그곳에서 알아서 처리해 줄 겁니다.]

“알겠다.”

천마가 덤덤히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무명의 눈 센서가 희미하게 깜박였다.

심통을 부리는지도 모른 채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하는 사용자 천마.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미안함을 느낀 것이다.

[천마 님.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해 저를 품속에 넣어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괜찮다.”

짧게 대답한 천마는 덤덤히 라마스의 문을 닫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천마는 자연스레 자동문을 지나쳐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건물 내부의 모습은 예전에 잘못 들어갔던 각성자 등록센터와 비슷해 보였다.

“흠.”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천마는 문득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던 탓에, 이 세계, 대한민국 사회에 상당 부분 적응을 한 상태였다.

“여긴가.”

천마는 체류관리과라고 적힌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데스크에 앉아 있는 여직원이 빙긋 웃으며 인사하자, 천마가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등록에 착오가 있었다고 하더군.”

“아, 네에. 잠시만요.”

봉투를 받아든 여직원이 서류를 확인하며 말했다.

“아, 인테리어 업체에 취업을 하셨군요. 그런데 왜 체류자격 코드가 이렇게 되어 있지?”

연신 서류를 확인하던 여직원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다시 제대로 갱신해 드릴게요. 거기 의자에 앉아서 잠시만 기다리시겠어요?”

“그러지.”

의자에 앉은 천마는 여직원이 서류를 만지는 모습을 덤덤히 살펴보았다.

“근데 인테리어 힘들지 않으신가요?”

여직원은 서류를 보며 자판을 두들기면서도 연신 천마에게 말을 걸었다.

“참,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인테리어 하시는 분들은…….”

“아참참, 그러고 보니 저희 집도 이번에 인테리어를 했는데…….”

서류를 매만지면서도 여직원은 쉴 새 없이 수다를 늘어놓았다.

천마는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때때로 물어보는 인테리어 지식에 대해선 상세히 설명해 주기도 했다.

끼익.

그때 사무실 안쪽의 문이 열리며 와이셔츠 차림의 중년남성이 밖으로 나왔다.

입에 막대사탕을 입에 문 남성은 방금 일어난 백수처럼 나른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어라?”

사무실 안쪽에서 걸어 나온 중년남성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천마를 올려다보았다.

“어이쿠. 각성자신가? 몸이 상당히 다부지시네.”

그러자 서류를 정리하던 여직원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뇨. E-9(비전문 취업)이신데, C-4(단기 취업)으로 잘못 등록되어서, 다시 갱신 중이세요.”

“저 덩치로… 비전문 취업이라고?”

“네. 인테리어 시공 기술자로 취업하셨어요.”

“인테리어 시공 기술자?”

중년남성은 다시 한번 천마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이, 무슨 소리야. 딱 봐도 각성자구만.”

천마는 자신을 연신 힐끔 바라보는 중년남성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넌 뭐냐.”

“네?”

“뭔데 본좌를 가리키며 이러쿵저러쿵 하는 거냐.”

험악하다 못해 살벌한 인상. 대뜸 던지는 무례한 반말. 거기다 온라인에서도 이제 쓰지 않는 ‘본좌’라는 단어까지…….

천마에겐 일상이라 할 수 있는, 무례함 3종 콤보세트에 얻어맞은 중년남성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아,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남성은 품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천마에게 내밀었다.

“하는 업무가 이렇다 보니…….”

싸구려 종이로 된 명함에는 외국인 정책본부의 마크와 함께 ‘이민조사과 정창욱 계장’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그게 뭐냐.”

천마가 명함을 내려다보며 묻자 정창욱이 웃으며 답했다.

“우리나라에 불법체류 중인 해외 각성자들을 조사하는 부서입니다.”

순간 불쾌한 표정을 지은 천마의 눈동자엔 붉은 기운이 맴돌았다.

“본좌를 의심하는 건가.”

“아뇨, 아뇨. 각성자처럼 보이시는데, 인테리어를 하신다고 해서 놀랐을 뿐입니다.”

그때 타이핑을 하던 여직원이 천마에게 새로운 등록증을 내밀었다.

“등록을 다시 정정해 드렸습니다. 저희 착오로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알면 됐다.”

무심한 대답과 함께 등록증을 집어 든 천마가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섰다.

“계장님의 직감이 틀리는 일도 다 있네요?”

문이 닫히자, 여직원은 정창욱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정창욱 계장.

이민조사과의 하이에나라고 불리는 그는 취업비자를 들고 온 불법체류 각성자들을 대번에 잡아내는데, 도사로 정평이 나 있었다.

“아니. 저놈, 위장 취업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