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26화 (126/285)

126. 고기방패 (3)

고기방패 대열의 가장 끝 쪽에 있던 김민수는 성채의 첨탑 부근에 우뚝 서 있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엄청난 근육질의 몸에 어깨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올려둔 모습이다.

‘저게 뭐지?’

김민수는 눈을 비볐다.

‘환각인가?’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하던 순간,

“민수야! 머리 넣어!”

김천식이 김민수의 머리를 꾹 눌렀다.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방패 위로 튀어나온 김민수의 머리로 날카로운 만도가 파고들었다.

“으악!”

놀란 김민수는 거북이처럼 재빨리 방패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멍청아! 어디에 정신을 파는 거야!”

엄숙한 김천식의 눈빛에 김민수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슬아슬했다.

만약 김천식 아저씨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김민수의 머리통은 말 그대로 뚜껑이 열렸을 것이다.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냐!’

이지스에 몸을 숨긴 김민수는 다시 한번 이를 깨물었다.

* * *

A급 던전 흉가의 성채 꼭대기.

천마는 첨탑 꼭대기에 올라 각성자들의 전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신잠영술을 펼쳤기에 기척과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지만, 이따금씩 하늘에서 번쩍이는 번갯불로 인해 그림자가 드러나기도 했다.

[저 각성자들, 패배하겠군요.]

어깨에 올라탄 무명의 말에 천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소리냐. 싸움은 이제 시작되지 않았나.”

[전법이 틀렸습니다. 탱커들로 하여금 스켈레톤 군대를 억제시키고, 후위의 각성자들이 공격하는 방법은 스켈레톤 듀크를 상대할 때나 먹힐 방법입니다.]

“스켈레톤 듀크?”

[이 흉가 던전 중심부에 들어오자마자 천마 님께서 일격에 처리한 몬스터의 이름입니다.]

“그럼 저건 뭐냐.”

천마가 허공에 떠 있는 해골바가지를 가리키자, 무명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건, 스켈레톤 듀크의 상위종이자 히든몬스터, 스켈레톤 로드입니다.]

“희한한 이름이군.”

천마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자 무명이 둥그런 이마를 매만졌다.

[이번에 천마 님께서 덤벼드는 스켈레톤 듀크를 산산이 태워 죽이지 않으셨습니까? 아마도 그것이 스켈레톤 로드의 출현 조건인 것 같습니다.]

무림세계의 무학으로 단숨에 몬스터를 처리한 천마.

그 신비하고도 강력한 힘을 사용할 때마다 꽤나 높은 확률로 히든몬스터가 등장했다.

심지어 천마가 몬스터를 때려잡을 때면, 그 모습 자체가 히든몬스터를 소환하는 의식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빨리 각성자들이 이상함을 깨닫고 도망가야 할 텐데요.]

“별 상관없는 것 같은데. 전술은 잘 먹히고 있잖나.”

천마는 다시 한번 전황을 살펴보았다.

무명의 걱정과 달리 고기방패 각성자들은 쏟아지는 스켈레톤 부대를 잘 막아내고 있었고, 팀 클놈의 각성자들 또한 근거리와 원거리에서 각각 스킬로 스켈레톤 로드를 연신 공격하는 중이었다.

[도감에 따르면 스켈레톤 로드는 그 개체 자체가 위험도 2만에 육박합니다. 결코 저들의 실력으론 잡을 수 없을 겁니다.]

“그렇군.”

천마는 알 바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그는 흉가 던전의 공동묘지에서 자라나는 ‘시취풀’이라는 것을 채취하러 왔었다.

하지만 갑자기 성채에서 스켈레톤 듀크가 대군을 이끌고 등장하자, 천마는 마화열극지를 사용해 단박에 태워 버렸다.

그리고 다시 시취풀을 열심히 뜯고 있는 찰나, 각성자들이 몰려들었고, 어쩔 수 없이 은신술을 펼쳐 성채 꼭대기에 숨은 것이다.

차앙! 쿠앙!

스켈레톤 부대와 각성자들의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전투에 방패를 들고 있는 탱커들이 신음성을 내었고, 후위에서 스킬을 사용하던 각성자들도 지쳐갔다.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건가.”

[착실히 공격은 들어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단지 스켈레톤 로드의 체력이 스켈레톤 듀크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 그렇게 안 보이는 것뿐이죠.]

전황을 내려다보던 무명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십 분. 아니, 오 분 안에 고기방패 전열이 무너지든가, 공격 포지션을 맡은 각성자팀이 스켈레톤 로드에게 패배할 겁니다.]

“크으윽!”

무명의 예상대로 점차 고기방패 전열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리 공격해도 허공에 떠 있는 보스몬스터, 스켈레톤 로드는 쓰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클놈의 팀원들은 슬슬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더니, 슬그머니 전열 밖으로 후퇴했다.

“후퇴! 후퇴!”

자신들이 안전하게 몸을 빼고 나서야 결국 후퇴를 외친 클놈의 리더 장재환.

그것을 본 각성자들이 분노에 몸을 떨며 소리쳤다.

“저 새끼들이 왜 먼저 몸을 빼?”

“이봐! 돌아오지 못해?”

방패를 든 각성자들의 외침을 못 듣는 척을 한 장재환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후퇴! 아까 만났던 휴게소에서 다시 집결!”

“저 미친놈들이!”

뒤를 돌아보던 김민수의 입에서도 욕설이 튀어나왔다.

고기방패가 투입된 전투에선, 공격자들이 시간을 벌어줘 방패를 든 탱커의 후퇴를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저 클놈의 팀원들은 행여라도 자신들이 후퇴하지 못할까 봐, 은근슬쩍 먼저 발을 뺀 것이다.

“어차피 대열이 무너졌으니, 각자 알아서 몸을 뺍시다!”

김천식이 소리치자 방패를 든 각성자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쿠웅!

공격을 밀어낸 김민수 역시 방패를 접고, 미친 듯이 후퇴했다.

하지만 스켈레톤 부대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각성자들을 끈질기게 쫓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숨 가쁘게 달려 나가던 김민수는 던전의 중심부에서 벗어나, 어느새 벽돌집들이 지어진 던전 초입까지 후퇴했다.

“민수야!”

그때 저 멀리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집과 집 사이에서 쓰러진 채 김천식이 방패 스킬로 스켈레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아저씨!”

김민수는 재빨리 달려가 들고 있던 이지스 방패로 스켈레톤의 머리통을 힘껏 후려쳤다.

빠각 소리와 함께 머리가 부서진 스켈레톤은 쌓아둔 블록이 무너지듯, 뼈다귀를 사방에 쏟아내었다.

“괜찮으세요?”

스켈레톤이 들고 있는 만도에 찔린 김천식의 허벅지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려던 그는 끙 소리와 함께 다시 벌러덩 누워버렸다.

“젠장. 다리가 안 움직이네.”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김민수가 재빨리 어깨에 팔을 감고 들어 올리자 김천식이 코를 훔치며 웃었다.

“덕택에 살았다. 고맙다.”

“고맙긴요. 아저씨도 저 많이 구해주셨잖아요.”

그런데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김천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끼끼끼끼…….

반대편 골목으로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젠장! 젠장!’

외통수에 걸린 것을 깨달은 김민수는 이를 깨물었다.

부상당한 아저씨를 두고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저것들을 막고 아저씨부터 대피시킬 것인가?

“어여 가.”

김천식은 체념한 듯 미소 지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어서. 집에 동생들 기다리잖아.”

김민수는 이를 꽉 깨물었다.

비록 인력소에서 만난 사이지만, 김천식은 수없이 자신을 도와준 인정 많은 아저씨였다.

‘하지만 내가 없으면 동생들은…….’

사랑스러운 두 여동생의 얼굴을 떠올린 김민수는 김천식을 부축하는 손을 풀었다.

그리고 오른 팔뚝에 착용하고 있는 이지스 방패를 폈다.

철컥.

방패를 최대한으로 확장한 김민수가 뒤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제가 막을게요. 어서 피하세요, 아저씨.”

쿠웅!

그사이 덤벼든 스켈레톤의 공격을 김민수는 재빨리 받아내었다.

묵직한 무게가 방패를 통해 팔뚝으로 전해진다.

“벌써 고장 난 거야?”

이지스에 장착된 싸구려 충격흡수장치가 벌써 고장 난 것 같았다.

쿠웅! 쿠웅!

“으으으.”

이를 악물고 버텨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민수는 힘에 부쳐 나동그라졌다.

-키키이이.

엎어진 김민수를 바라보는 스켈레톤의 뻥 뚫린 눈 부근에서 비웃음의 눈초리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웃기지 마!”

벌떡 일어난 김민수는 온 힘을 다해 스켈레톤의 공격을 받아내었다.

하지만 들고 있는 만도로 번갈아 방패를 후려치자 김민수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민수야! 나는 괜찮으니까 너부터 얼른 피해!”

“어떻게 그래요! 아저씨는 저를 몇 번이나 도와주셨는데.”

김민수가 자리를 피하면 다리를 다친 김천식은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될 것이 뻔했다.

“그렇게 살아남았다간 평생 후회할 거예요.”

고개를 돌린 김민수가 씩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좁은 골목이잖아요. 이 정도는 혼자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어요.”

비록 팀은 아니지만, 일당을 뛰는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의리는 있다.

줄곧 힘든 일을 같이하며, 서로를 이끌어주었던 진득하고 깊은 정이.

“빨리 피하세요. 가다가 신호탄 좀 하나 쏴주시고요.”

“아, 알았어.”

김천식은 주머니에서 둥그런 쇳덩이를 꺼내 힘껏 손으로 쥐었다.

삐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던전의 천장 위로 치솟은 붉은 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던전 내에선 통신이 완전히 두절된다. 때문에 대규모 팀을 꾸려 던전에 들어왔을 땐, 신호탄을 통해 던전 내부에 있는 다른 각성자들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다.

“민수야. 다른 사람들이랑 다시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김민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쩔뚝거리며 뛰어가는 김천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하지만 신호탄은 소용없었다.

스켈레톤 듀크에 혼이 빠진 각성자들은 정신없이 후퇴를 하고 있었다. 신호탄을 수십 발 터뜨린다 한들 도와줄 동료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버티고 버텨도 이쪽으로 오는 각성자들은 없었다.

‘안 오잖아?’

쿠웅.

그사이 또다시 스켈레톤의 공격이 밀려들었다.

호기롭게 외친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오른팔은 점차 마비되었고, 몇 번이나 바닥에 밀려 쓰러질 뻔했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스켈레톤의 칼에 온몸이 난도질당하게 될 것이다.

‘젠장. 젠장!’

눈앞이 흐려질 무렵, 갑자기 바닥에서 묘한 음성이 들렸다.

[네놈의 대가리는 허전해서 달아놓은 거냐?]

고개를 내려다보니 방패 아래로 둥그런 기계가 보인다.

바로 금수저들만 갖고 있다는 나노봇이다.

끼리릭.

둥글둥글한 몸체에 팔과 다리를 뽑아낸 나노봇이 순식간에 김민수의 어깨에 올라탔다.

[본좌께서 친히 가르침을 내렸는데 왜 써먹지 않는 건가.]

“뭐, 뭐라고?”

나노봇이 인공지능 탑재를 했다는 둥 광고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입력된 정보를 사람 말투로 흉내 내 안내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 나노봇은 인간 특유의 감정까지 잔뜩 실어 말하기 시작했다.

[귓구멍을 씻고 잘 들어라. 방패는 공격을 막을 땐 회전시켜 비스듬히 흘리는 거다.]

‘회전시켜서 흘리라고?’

그 순간 타이어를 죽도록 빙글빙글 돌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동시에 방패를 쥐고 있던 김민수의 팔에서 기묘한 회전력이 솟구쳤다.

[그것이 바로 방패를 운용하는 요결, 전사(纏絲)의 힘이다. 쏟아지는 외력을 회전시켜 공격을 흘려라. 죽기 싫으면…….]

잠시 말을 멈춘 나노봇, 무명이 눈 센서를 반짝이며 말했다.

[…라고 천마 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절거리던 나노봇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어디론가 빠른 속도로 굴러갔다.

‘회전시켜… 공격을 흘리라고?’

쿠웅. 쿠웅.

반쯤 넋을 잃은 사이 스켈레톤의 만도가 방패를 망치처럼 무겁게 후려쳤다.

“이익.”

김민수는 이지스 방패를 쥐고 손목과 팔뚝을 가볍게 회전시켰다.

순간, 손목과 어깨, 그리고 몸 전체에서 흘러나온 회전력이 쏟아지는 압력을 가볍게 상쇄시켰다.

“되잖아?”

김민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회전시켜 흘려라.

이 단순한 말을 듣는 순간, 실제로 가능하게 되다니?

쿵! 쿵!

연달아 스켈레톤이 공격을 퍼부었지만, 어느새 여유롭게 막아내거나 심지어는 공격을 밀어내고 있었다.

-깨달음의 극치는 극한의 결투 속에서 발휘되는 법이지. 연습만 한다고 해서, 비결을 깨우칠 순 없다는 말이다.

순간 김민수는 일전에 천마가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게 이 말이었구나!’

연습은 그저, 연습일 뿐.

목숨을 건 사투 속에 들어가야만, 정신과 육체는 살기 위해 변화하는 것이다.

-크크르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무아지경 속에서 움직이던 김민수의 귓가로 낮은 괴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화려한 옷을 입은 해골이 검은 안개를 뿜어대며 허공에 떠 있다.

스켈레톤 듀크.

어느새 다가온 이 던전의 보스몬스터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휘익!

번개처럼 움직인 스켈레톤 듀크가 김민수의 머리를 후려쳤다.

콰웅!

본능적으로 방패를 들어 막아내자, 엄청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커억.”

엄청난 충격이 팔을 통해 다리로 빠져나가자, 입에선 새빨간 핏물이 터져 나왔다.

사실 눈앞의 몬스터는 스켈레톤 듀크가 아닌, 히든몬스터 스켈레톤 로드. 위험도 2만의 히든몬스터 공격을 이지스 방패로 막아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이제 끝인가.’

아니, 여기서 죽을 수 없다. 여기서 죽는다면 사랑스러운 동생들은 누가 돌본단 말인가?

“퉤!”

피가래를 내뱉은 김민수가 이를 깨물었다.

“여기서… 죽을 순 없어!”

콰웅!

하지만 또다시 날아든 스켈레톤 로드의 공격에 김민수의 이지스 방패는 산산조각이 났다.

콰직. 후두두둑.

조각난 방패를 내려다보던 김민수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정말이지 이번엔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다.

“최선을 다했어.”

힘이 빠진 김민수는 무릎을 꿇었다.

-크르릇!

괴음과 함께 스켈레톤 로드가 다시 허공에서 하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민수가 천천히 두 눈을 감는 순간.

“천마대능력!”

파앙!

천둥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먼 하늘에서 붉은 구름이 스켈레톤 로드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 * *

‘스켈레톤 로드 고기방패’ 사건의 반향은 꽤나 컸다.

돈으로 방패 든 각성자들을 잔뜩 고용해, 몬스터 사냥을 하는 고기방패 전술.

하지만 팀 클놈은 고용한 각성자들을 외면한 채 도망갔고, 그로 인해 대량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던전을 놀이터처럼 생각하는 이 금수저 각성자팀에 대한 성토가 매체에서 이어졌고, 결국 클놈 팀원들은 각성자 등록이 모두 취소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협회에서는 각지의 각성자 인력 사무소에 공문을 띄웠다.

-앞으로 각성자들을 대거 고용해,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를 억지로 잡는 고기방패 전술을 금지합니다. 적발 시…….

암암리에 행해졌던 이 전법이, 팀 클놈의 비겁한 행위로 인해 아예 사용이 금지된 것이다.

일각에선 협회에서 각성자들의 일거리를 왜 제한하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TV에서 스켈레톤 고기방패 사건 피해자들의 처참한 상태가 연신 비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불만의 소리는 사라졌다.

한 달 후.

취직된 기념으로 김민수는 선물을 들고 각성자 인력 사무소에 들렀다.

“이야, 오랜만이다.”

문을 열자 소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웃으며 반겨주셨다.

“너 던전방어7팀 소속 탱커가 되었다면서? 등급도 올라가고?”

천마에게 배운 전사 비법을 익힌 김민수.

그는 일반 방패를 사용하면서 어지간한 탱커들 보다 더 공격을 잘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김민수의 활약을 유심히 지켜보던 협회 관계자가 그를 던전방어팀의 입사를 추천했고, 마침내 합격을 한 것이다.

“네에. 아직 시보 기간인걸요.”

“어쨌든 된 거잖냐.”

소장은 씨익 웃으며 김민수의 옆구리를 찔렀다.

“민수야, 나도 좀 가르쳐 주라. 대체 무슨 방법으로 등급을 올린 거야? 각성자 학원이라도 몰래 다닌 거야?”

“뭐, 그냥… 다른 방법을 찾은 거죠.”

타이어를 돌리다 배운 걸까? 아니면 정말 목숨을 걸고 싸웠기에 익힐 수 있었던 걸까?

김민수가 쓴웃음을 짓자 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게임처럼 몬스터만 잡으면 알아서 레벨이 올라가면 참 좋을 텐데. 이놈의 세계는 대체 어떻게 해야 업그레이드가 되는지 모르겠다. 아주 랜덤이여, 랜덤.”

“요새 일감은 어때요? 좀 많아요?”

“뭐, 클놈처럼 돈지랄하는 놈들이 없어서 외려 줄었지. 아, 맞다. 안 그래도 김천식 씨는 매일 네 얘기만 한다. 너 아니었으면 그때 죽었을 거라고.”

“뭘요. 저도 늘 도움만 받았는데…….”

“그래? 알긴 아는구나? 그럼 온 김에 한턱 쏴라. 협회 소속이면 돈도 잘 벌잖아.”

“나중에요. 오늘은 갈 데가 있어서.”

“어딜?”

김민수는 대답 대신 창고에 깔린 장판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택시에서 내린 김민수는 도로변에 있는 건물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따스한 느낌의, 한옥풍으로 지은 건물 위엔 ‘복복 인테리어’라는 간판이 크게 올려져 있었다.

“야, 이!”

투명한 유리문 안쪽에선 천마와 고은진이 서로를 가리키며 큰소리를 내고 있었다.

“단무지를 왜 네가 처먹습니까?”

“마지막 남은 한 젓가락에 맞춰 먹은 것뿐이다.”

“무슨 헛소리십니까? 두 개 남아 있음 하나만 먹어야지 말입니다!”

천마는 낮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억울하면 빨리 처먹으면 되지 않나.”

“처먹…? 근육몬도 처맞아 보겠습니까?”

그러자 중간에 끼어 있던 장채원이 짜장면 그릇을 또다시 들었다.

“아니, 좀 괜찮다 싶더니 또 싸워? 안 지겨워?”

시끌벅적한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들어가는 타이밍이 아닌 듯싶었다.

“…으음.”

유리문 밖에서 곤란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민수는 조심스레 들고 온 선물을 문 앞에 두었다.

“고맙습니다. 가르쳐 주셔서, 목숨을 구해주셔서요.”

천마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인 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자리를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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