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22화 (122/285)

122. 초대 (1)

천마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운공을 마치고 방 한쪽에 걸린 우리옷을 입고, 지하철을 타고, 역사에서 내려 복복 인테리어가 있는 한옥 건물로 걸어간다.

신사로 만들어진 우리옷은 언제나 쾌적한 온도를 유지해 주지만, 그 사이 얼굴에 닿는 바람은 쌀쌀해졌다.

천마는 불현듯 가을이 깊어졌음을 느꼈다.

찰랑.

열쇠 꾸러미를 꺼내 복복 인테리어의 문을 열려던 천마는 고개를 들었다.

이미 매장의 불은 켜져 있었고 인기척이 느껴졌다. 내부에 들어서자 먼저 출근해 있던 장채원이 빙그레 웃는다.

“어서 와.”

장채원은 항상 천마보다 이삼십 분 늦게 출근한다.

그런데 오늘은 일찍 출근했을 뿐 아니라, 매장 내부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설마 또 점주에게 사발을 푼 것이냐.”

천마는 무서운 눈으로 무명을 노려봤다.

설마하니 그새를 못 참고 어제 있었던 사건을 장채원에게 떠벌렸단 말인가.

[그, 그럴 리가 있습니까?]

당황한 무명이 두 손을 저을 무렵.

“뭐 해?”

장채원의 말에 도깨비처럼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던 천마는 재빨리 얼굴을 평온하게 고치고 물었다.

“어쩐 일로 일찍 출근했나.”

“아아.”

장채원은 매장을 쓱 둘러보더니 코를 훔쳤다.

“모처럼 대청소를 좀 했어. 매장 분위기 좀 바꿔보고 싶어서.”

그러고 보니 집기와 샘플 위치가 조금 달라져 있다. 아마도 새벽부터 일어나 청소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군.”

“다 청소해 놨으니까 오늘은 걸레질 안 해도 돼.”

“알겠다.”

천마가 시선을 돌리자 어깨에 올라타고 있는 무명이 눈 센서를 몹시 억울한 모양으로 만들어놓았다.

“들어가라.”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무명을 창고 방에 내려둔 천마가 녹차 티백을 꺼내 들었다.

오늘도 전과 다름없는 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 * *

전략기획실 산하 전략분석팀 회의실.

의자에 깊이 기댄 김수웅은 허공에 띄워진 홀로그램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에선 이십여 명의 각성자들이 하늘을 찌를 듯 몸을 세운 기간트 펩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공격 스킬들이 허공을 수놓았지만, 기간트 펩은 쉽사리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각성자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콰릉!

그때 먼 하늘에서 시뻘건 구름이 기간트 펩의 머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키리리릭!

위험을 감지한 듯 기간트 펩이 낫 모양으로 생긴 거대한 팔을 휘두르려던 찰나.

달칵.

김수웅이 허공에 손가락을 뻗자 화면이 정지되었다.

“흠.”

정지된 화면에는 시뻘건 빛으로 뒤덮인 희미한 형체가 보였다.

마치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태어난 악마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다.

“몬스터라고?”

김수웅의 말에 홀로그램 화면을 바라보던 한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태를 봐선 아무래도 확인되지 않은 새로운 타입의 히든몬스터인 것 같습니다.”

“아니.”

활활 타오르는 듯한 붉은빛으로 뒤덮인 형체를 바라보던 김수웅이 고개를 저었다.

“몬스터 따위가 아냐.”

김수웅은 손가락을 돌려 악마 형태의 얼굴 측면으로 화면을 이동시켰다.

“단지 워낙 빠르게 이동한 데다, 붉은빛에 뒤덮여 있어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것뿐이지.”

손가락으로 화면의 시점을 측면으로 바꾼 김수웅은 악마처럼 보이는 얼굴의 측면 경계선을 가리켰다.

“이 부자연스러운 경계는… 가면인가.”

“저 붉은빛을 내는 형체가 사람이란 말씀이십니까?”

요원의 물음에 김수웅이 싸늘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럴 수도 있지. 몬스터들은 저런 가면 따윈 쓰지 않으니까.”

몬스터들 중 가면을 쓰는 건, 히든몬스터 ‘가면신사’뿐이었다.

회의실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턱을 괸 채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김수웅이 다시 달칵 하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퍼엉.

정지되었던 화면이 다시 재생되며 폭음과 함께 기간트 펩의 머리가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붉은 형체에서 쏟아진 무언가가 티타늄 합금보다 단단한 기간트 펩의 머리를 터트린 것이다.

“흐음.”

김수웅이 다시 침음을 낼 무렵,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실례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림자는 긴 머리를 단정히 묶은 이십 대 여성이었다.

“빅데이터 분석실,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팀의 김세라입니다.”

순간 회의실에 앉아 있던 요원들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데이터 마이닝팀.

데이터 분석실 중에서도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엘리트 각성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미안하군. 업무 외의 일로 오게 해서.”

김수웅은 도도한 눈빛에 전형적인 수재 얼굴을 하고 있는 김세라에게 화면을 가리켰다.

“아직 정식 보고될 만한 자료가 아니라서 말야.”

“아닙니다. 진성령 팀장님께 모든 사항 보고 받고 왔습니다.”

‘신입이라.’

김세라의 프로필을 살펴보던 김수웅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일에 갓 입사한 신출내기를 보냈다? 그렇다면 입이 상당히 무거운, 엄청난 수재일 것이 분명했다.

“그럼 한번 보지.”

고개를 끄덕인 김수웅이 다시 홀로그램 화면을 플레이시켰다.

화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김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뭐가 그렇다는 것일까. 김세라는 손을 뻗어 다시 영상을 뒤로 당겼다.

달칵.

붉은 형체가 기간트 펩을 향해 빛을 쏘아내는 장면에서 화면을 멈춘 김세라가 말했다.

“이건 빛이 아니라 빠르게 뻗어낸 팔입니다.”

“팔… 이라고?”

“그렇습니다. 너무나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데다 강렬한 에너지 파동으로 뒤덮인 탓에 빛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다시 화면을 매만진 그녀는 악마 형태의 얼굴에 맺힌 흐릿한 경계선을 가리켰다.

“이자는 가면을 썼을 확률이 높습니다. 측면 잔상을 보니 피부가 아니라 무언가를 얼굴에 덮어쓴 상태 같군요.”

그녀의 분석 역시 김수웅과 일치했다.

그때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전략분석팀 요원이 불신의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람은 역시 아니지 않을까요?”

김세라와 시선이 마주치자 요원이 이어 말했다.

“몸에 빛을 쏟아내면서 초고속으로 움직이고, 미사일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스킬은 없지 않습니까?”

“IR 스킬일 수도 있겠죠.”

IR 스킬. ‘이레귤러 스킬’이라고도 한다.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스킬이나, 매번 효과가 랜덤으로 달라지는 스킬 등의 총칭이다.

“설령 IR 스킬을 가졌다고 해도 저만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각성자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김세라의 대답에 요원은 다시 한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만약 있다고 해도 누구나 알 만한 우리나라 탑 랭커일 테죠.”

“탑 랭커 실력에, 등록되지 않은 스킬을 가진 자…….”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김세라가 요원을 바라보며 덤덤히 말했다.

“많지 않습니까?”

“네?”

“전략기획실에서도…….”

“거기까지.”

김세라의 말을 끊은 김수웅이 손을 저으며 말을 돌렸다.

“숨은 실력자들이야 항상 많지. 협회 근처에 술집에서도 순응인처럼 사는 자가 있으니까.”

홀로그램 화면을 뚝 꺼버린 김수웅이 김세라에게 말했다.

“수고했어. 돌아가 보게.”

“알겠습니다.”

김세라가 회의실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김수웅이 피식 웃었다.

“자꾸 재원들이 그쪽으로 몰리는군.”

김수웅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자 김세라가 걸음을 멈추었다.

“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다.”

“이쪽으로 올 생각은 없나.”

“죄송합니다. 제 전공은 던전공학이라…….”

살짝 미소 짓자, 딱딱한 표정에 숨겨져 있었던 김세라의 진면목이 눈에 띈다.

‘긴장하고 있었군.’

딱딱하고 냉철한 성격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감정의 빛을 드러내는 스타일인 것 같다.

불처럼 달궈져 있던 김수웅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수재라 해도, 그에겐 순박한 성격의 인물은 필요가 없었다.

“아쉽군.”

김수웅의 미묘한 대답에 김세라는 고개를 숙이고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파일이 담긴 나노칩을 회수한 김수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건은 추후에 다시 처리하도록 하지. 수고했어.”

그리고 몸을 돌려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요원들의 눈빛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추후에 다시 처리하도록 하지.

이 말은, 전략기획실장이 된 이후 김수웅 실장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방금 전의 사안은 전략분석팀의 손을 떠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야, 우리 부서도 팽당한 거 아니냐.”

김수웅이 떠나자 회의실 한쪽에 앉아 있던 중년남성, 전략분석팀장 이순철이 말했다.

“추후에 처리한다고 말한 것들… 나중에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다 종결이 되어 있잖아.”

순간 회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가 전략기획실장이 된 이후, 그 산하에 있는 부서들은 조직간 공유하는 정보나 연락 체계가 없는 점조직처럼 변했다.

“아무래도 그 소문, 사실인가 봅니다.”

그때 김세라와 설전을 벌였던 젊은 요원, 김영민이 침묵을 깨었다.

“실장님께서 소속에 관계없이 요원들을 뽑아, 따로 직속부서를 운용한다는 것 말입니다.”

순간 사무실 내부에는 찬바람이 돌았다.

본래 전략분석팀은 전략기획실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서였다. 기획실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수집, 분석했으며 다른 부서들을 관리했다.

하지만 김수웅 실장이 들어온 이후, 팀원들은 그저 알 수 없는 분석과 결과를 도출해 내는 일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설마.”

이순철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전략기획실의 머리는 이쪽이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 * *

개인 집무실로 돌아온 김수웅 실장.

천연가죽과 대리석으로 마감한 책상 앞에 앉았다.

“후후.”

불이 완전히 꺼져 있는 집무실 내부를 쓰윽 둘러보던 그는 돌연 어둠 속의 한 곳을 빤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인간? 그저 인간의 형체를 한 것이겠지.”

그리고 회의실에서 보았던 영상의 붉은 그림자를 떠올렸다.

영상 속의 그림자는, 1급 각성자를 아득히 능가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텅 빈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직통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다.

“진행 상황은.”

-90퍼센트 이상 안정화가 되었습니다.

“그렇군. 그럼 슬슬 시험해 보도록 하지.”

다시 인터폰 버튼을 누른 김수웅은 의자 깊숙이 몸을 뉘었다.

그리고 홀로그램 영상이 저장되어 있었던 나노칩을 손에 쥔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음에도 보고를 하지 않았다… 라.”

달칵.

손에 들고 있던 나노칩을 책상 위에 가볍게 던진 김수웅이 나직이 속삭였다.

“초 팀장이 재밌는 짓을 하고 있군. 안 그런가?”

후후 하는 소리를 내며 웃던 김수웅이 어둠 속을 바라보며 말했다.

“게다가 이 영상, 편집이 되어 있더군. 앞뒤가 모두 잘려 나간 상태야.”

그러자 김수웅의 맞은편, 짙은 어둠 속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가? 하긴. 초 팀장은 매사에 용의주도한 인물이니 원본은 따로 보관해 놓았을 수도 있겠군.”

묘한 미소를 머금은 김수웅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면 팀 내에 배신자가 있다는 걸 눈치챈 것일 수도.”

쿵.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는 듯한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리는 듯하다.

“정신방벽장치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침입 흔적도 없고요.”

“흠.”

“멋대로 스킬 사용 명령을 어겼다면, 실장님께서 먼저 아셨을 것 아닙니까.”

그림자에서 흘러나오는 단호한 목소리에 김수웅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담 자네도 모른다는 건가. 이자의 정체를?”

“그렇습니다.”

“알겠네.”

의자에서 일어난 김수웅 실장은 화려하게 반짝이는 도심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어쨌든 자네가 요구한 대로 일을 진행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잠깐의 망설임 끝에 어둠 속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노 드론, 이번에 나온 신형으로 바꾸시죠.”

“신형?”

“잘 보입니다. 그래서 외눈박이를 처리할 때 발각된 거고요.”

“참고하지.”

그 대답을 끝으로 김수웅 실장은 미동도 하지 않고 도심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무언의 축객령이었다.

“그럼.”

낮게 고개를 숙인 그림자는 어둠 속에서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 * *

부르르릉.

모든 일과를 마친 천마는 라마스를 타고 덤덤히 옥탑방 건물로 돌아왔다.

부드러운 눈빛으로 차량의 배기음 소리와 계기판을 꼼꼼히 살펴본 그는 천천히 시동을 껐다.

차량 하부에 외부 도장 상태까지 꼼꼼히 확인한 천마가 보닛을 열어 엔진룸을 살폈다.

“뭔가 이상하군.”

엔진에 귀를 가까이 댄 천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명. 차량을 점검하라.”

[알겠습니다.]

라마스의 엔진룸으로 뛰어오른 무명이 열심히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약간의 엔진 부조가 있군요. 스로틀 바디 청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플러그도 노후가 된 것 같군요. 교체를 권해드립니다.]

“음.”

천마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올드카인 라마스의 정비 비용은 만만치 않다. 호환되는 부품도 없는 데다 정비도 까다롭다.

공구도 현재 차량과는 전혀 맞지 않기 때문에, 정비를 위해서 따로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본좌가 열심히 일을 하는 수밖에.”

[천마 님은 참으로 차량을 아끼시는군요.]

“아끼는 것이 아니라 관리다.”

무명의 말에 천마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발이 되어주는 병기를 소홀히 관리하는 건 곧 죽음이니까.”

[네에…….]

또각또각.

그때 천마의 등 뒤로 발소리와 함께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이제 퇴근한 거예요?”

볼륨감 있는 버섯을 연상시키는 보브컷 헤어스타일에 화장기 없는 얼굴.

온순해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굳센 눈빛을 한 여성이 천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초홍이었다.

“흠.”

시선을 마주쳤음에도 천마는 초홍을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다.

“저기, 천마 씨.”

달려와 천마의 앞을 막아선 초홍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혹시 시간 있으세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지.”

황당한 대답이 돌아오자 초홍은 입을 벌렸다.

“그러니까 제 말은…….”

천마는 초홍을 말을 기다리지 않고 무심히 스쳐 지나갔다.

“저, 저기 잠깐만요.”

다시 뛰어와 천마의 앞을 가로막은 초홍이 말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해요.”

“하라.”

“여기서요?”

[설마 데이트 신청인가요?]

그때 무명이 주책을 떨며 앞으로 나섰다.

[제가 좀 자리를 비켜드릴까요?]

“그래 줄래? 데이트 신청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설마!]

무언가를 깨달은 듯 무명의 눈 센서가 번뜩였다.

[던전에 몰래몰래 들어가는 천마 님을 협박해 금전과 다량의 향응을 제공받으시려는 건가요!]

무명은 양팔을 하늘로 치켜들며 넙죽 엎드렸다.

[아쉽지만 천마 님은 월급쟁이 노동자입니다. 그런 주제에 수입차 유지비 뺨치는 올드카를 모는 카푸어라서, 아무리 쥐어짜 봤자 나올 건덕지는…….]

한참 주절거리던 무명은 천마의 타오르는 눈빛을 보자 둥그런 머리통을 긁적였다.

[그러니까 저는… 천마 님이 얼마나 청빈한 삶을 사시는지를 알려서, 금전 협박을 차단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헤헤.]

“진짜 이상한 언어팩을 넣으셨네요.”

무명을 바라보던 초홍이 픽 웃었다.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 하는 거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감사의 인사요?]

“그래.”

초홍의 대답에 무명이 팔다리를 뽁 하고 뽑더니 경례 자세를 취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다녀오십쇼! 그럼 전 이만.]

그리고 쌩하니 옥탑방 위로 올라갔다.

“정말 독특한 취미를 가지셨네요.”

뛰어가는 무명을 보며 픽 웃은 초홍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런 말투와 행동 모두가, 천마가 의도적으로 개조를 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할 말이 뭐냐.”

“그게…….”

천마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하라. 본좌는 상관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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