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교부신의 신뢰 (1)
따르릉.
요란한 벨소리가 매장에 울려 퍼졌다.
장채원의 책상 앞에 올려둔 신뢰용 전화기에서 울리는 벨소리였다.
“복복 인테리어입니다. 아, 어르신! 별고 없으셨어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던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아, 어르신 집에 조명 설치를요?”
곤란한 표정을 짓던 장채원은 책상 위에 놓인 수첩을 뒤적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시면, 저희 매장 근처에 6등급 영지로 분류된 ‘샛별 조명’이 있는데요. 그곳을 한번 방문해 보시겠어요?”
한참 동안 수화기에 귀를 기울이던 장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별말씀을요. 감사합니다.”
달칵.
그녀가 나팔꽃처럼 생긴 수화기를 내려놓자 대걸레로 바닥을 닦던 천마가 물었다.
“신뢰인가.”
“응, 그렇긴 한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니?”
“자연 조명 설치를 원하시거든.”
“자연 조명?”
며칠 전, <인테리어 조명의 모든 것>이라고 적힌 책을 떠올린 천마가 눈을 껌뻑였다.
“그런 것도 있나.”
“신계용 조명이야. 그중에서도 최고가에 속하는 특수 조명이랄까.”
“일전에 소조신의 의뢰에서 설치했던 조명과 비슷한 건가.”
“전혀 다른 거야. 완전히.”
“최고가의 특수 조명이라.”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천마는 매장 천장에 설치된 반짝이는 조명들을 올려보았다.
“분명히 전무후무한 광량과 패도적인 절전율을 자랑하겠지.”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한데… 굳이 말하자면 그 반대랄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설명하기가 좀 어렵네. 그냥 자연 빛을 담은 거야.”
“모호한 표현이로군. 자세히 말해봐라.”
천마가 집요하게 묻자 장채원이 손을 휘휘 저었다.
“뭐, 됐어. 어차피 신계용 조명 매장이 따로 있으니까. 천마, 네가 평생 그 물건들을 볼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다음 날.
매장은 몹시 한가했다.
휴대폰을 쥐고 있는 장채원은 한동안 밀린 공과금을 납부하고 있었고, 천마는 응접 테이블에 앉아 녹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겉표지엔 <다양한 소품들로 꾸미는 나만의 조명>이라는 글자가 필기체로 적혀 있다.
딸랑.
그때 풍경 소리와 함께 매장 문이 열리며 아주 작은 그림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터억.
그림자를 발견한 천마는 굳은 표정으로 책을 테이블에 내려두었다.
‘전서(田鼠:두더지)?’
문을 열고 들어온 그림자. 그것은 다름 아닌 두더지였다. 아니, 두더지가 맞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두 발로 선 채 멋들어진 정장을 입고,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으니까.
“어이쿠, 장 사장.”
두더지는 장채원을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일세. 허허허허.”
“아, 교부(橋夫)신 님.”
교부신.
세상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교각(橋脚:다리 기둥)을 튼튼하게 보수해 주는 신이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두메산골에 살기 때문에 도심에선 볼 수 없는 대지유신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뵈어요.”
장채원은 영업용 미소를 활짝 지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곤란한 모습이다.
천마는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해.”
웃으며 걸어 나온 그녀는 천마의 어깨를 툭 치며 복화술을 시전했다.
“뭘 쳐다만 보고 있어. 인사 안 해?”
“안녕하시오, 노야.”
그제야 정신을 차린 천마가 두 손을 모으며 포권하자 교부신이 껄껄 웃었다.
“아하! 자네가 그 유명한 복복 인테리어 시공자구먼. 반갑네.”
교부신이 아는 척을 하자 장채원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외딴곳에 사는 대지유신마저 천마의 소문을 들었을 줄이야.
무림을 뒤흔들었던 천마, 그는 이 세계에서조차 쩌렁쩌렁한 명성을 떨치고 있던 것이다.
“허어, 참말로 몸이 다부지구먼.”
교부는 쩍 벌어진 천마의 어깨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친구라면 충분히 시공이 가능할 것 같은데.”
“네? 시공요?”
장채원의 물음에 교부신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흔들었다.
“어제 장 사장이 소개시켜 준 조명 매장에 가봤는데 말야. 아쉽게도 시공이 불가능하다고 하더구만.”
“샛별 조명에서요? 거기 시공자들, 다들 베테랑인데…….”
“커험, 이번에 새로 들여온 조명이 좀 무거운 데다가…….”
머쓱하게 웃은 교부신이 천마의 근육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 집을 새로 공사하면서, 너무 내 몸에 딱 맞춰 설계한 탓에… 그쪽 매장에서는 설치가 불가능하다고 하더구만.”
“그, 그러세요?”
“으응, 특히나 입구를 너무 좁게 만들어서 말야. 들어갈 수 없으니 도저히 시공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
“그럼 입구만 다시 지으시면 안 될까요?”
장채원의 물음에 교부신이 털 한 가닥이 솟아 나온 머리 부분을 긁적였다.
“그게, 솔직히 말해서 거처를 좀 무리하게 옮긴 탓에 신력이 바닥났구먼. 새로 옮긴 거처는 머무른 시간이 짧아서 아직 신지가 되지 않았고 말야.”
그리고 천마를 힐끔 바라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 친구라면 어떻게든 설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장채원은 두 손을 내밀며 난색을 표했다.
“아직 천마는 자연 조명 설치를 해본 적이 없어서요.”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구만. 신주갑(神珠匣)은 미리 설치했으니까 말야.”
“아, 그래요? 그럼 그냥 넣기만 하면 되는 수준인데.”
“내 말이 그 말일세. 영지의 직원이라면 아무나 설치 가능하단 말이지.”
“그러시군요. 그럼 교부신 님 거처의 문을 변경할 수 있는, 3등급 영지 건축사무소를 소개해 드리면 어떨까요?”
잠시 움찔한 교부신이 이내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러고 싶지만 이번에 무리하게 거처를 마련한 탓에… 3등급 영지에 의뢰를 맡길 만한 여력이 없어서 말야.”
“굳이 지금 어려우시면 할부를…….”
“문짝만 뜯으면 누구나 설치할 수 있는 조명 의뢰 때문에 무리를 하는 것도 곤란하고.”
냉큼 말을 자른 교부신이 천마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친구, 토룡신네 짐도 맨손으로 옮겨줬다면서?”
예전 천마는 신지도 아닌 맨땅에서 토룡신의 집기들을 옮겼다.
때문에 대지유신들 사이에선, 요신 급에 버금가는 완력을 지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그, 그건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게 어떻게 하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인가. 으허허허.”
장채원은 껄껄 웃는 교부신의 시선을 피했다. 앞으로 이어질 불길한 신뢰를 예감하면서.
“이 친구의 완력이라면 어떻게든 문을 뜯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국 예감은 적중했다.
교부신은 이번 조명 의뢰를 천마에게 맡기러 온 것이다.
“교부신 님이 만든 문을 어떻게 천마가 넓히겠어요. 잘해야 망가뜨리겠죠.”
장채원이 완곡히 거절하자 교부신이 한 손을 내저었다.
“아아, 걱정 말게나. 부서져도 상관없으니까. 문짝 하나 고치는 비용이야 별거 아니고.”
‘이 구두쇠 같으니라고.’
장채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교부신 역시 노가다에 이력이 난 대지유신. 주판알을 튕기는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3급 영지에서 입구를 개보수하는 비용보다, 차라리 9등급 영지의 직원이 문짝을 망가뜨리고 나중에 보수하는 비용이 훨씬 싸다.
분명 이 좀스러운 대지유신은 비용을 줄이고자, 천마의 소문을 듣고 매장에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장채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교부신의 거처는 굴지의 신력으로 지어놓는다.
천마가 힘이 세다고 해도 완력으로 부술 수 있을까? 설령 부순다고 해도 그 중노동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아무래도 좀 힘들 것 같아요.”
“으응? 왜?”
“천마가 힘이 세다고 하지만, 신님들의 거처에 손을 댄 적은 없거든요. 확실히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네요.”
“어떻게 안 될까?”
“죄송해요. 아무래도 저희 매장에서는 할 수 없는 일 같습니다.”
장채원은 단호히 거절했다.
만약 수락한 신뢰를 실패한다면, 매장 평판이 수직으로 하락한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신뢰를 받는 데 있어서도 불이익이 생긴다.
“으하하하!”
하지만 장채원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천마의 자존자대한 성격이었다.
“그깟 문을 넓히고 조명을 달아주는 게 뭐가 힘들겠소이까?”
‘아차!’
아니나 다를까.
통나무처럼 두꺼운 팔뚝에 불끈 힘을 준 천마가 초를 치며 나섰다.
“힘쓰는 일엔 본인만 한 적임자도 없지요.”
교부신이 반색하며 활짝 미소 지었다.
“응? 정말 해줄 수 있겠나.”
“물론이오. 안 그래도 요새 신뢰가 잘 안 들어와서 곤란해하던 참이었소이다.”
천마가 복복 인테리어에서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오직 신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뢰가 도통 오지 않아 약간 조바심이 난 터였다. 그런데 이런 기회를 어찌 놓칠쏜가?
“그게… 좀 많이 딱딱하고 무거울 수도 있는데 말야.”
시원하게 대답이 돌아오니, 오히려 교부신이 켕기는 듯하다
하지만 팔짱을 낀 천마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딱딱하고 무겁다. 그런 일이야말로 본인의 특기외다.”
“잠, 잠깐만!”
장채원은 황급히 천마에게 다가가 귀를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너 교부신 님의 집이 얼마나 튼튼한지 알아?”
“모른다.”
“그거 네 완력으로도 해볼 수준이 아니라고.”
“수준?”
“안 된다고. 완전 불가능…….”
다급한 목소리로 속삭이던 장채원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실패, 불가능, 후퇴, 좌절 등등등…….
이런 부정적인 말은, 천마의 호승심을 미친 듯이 타오르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이기도 했다.
“불가능이라.”
아니나 다를까. 시뻘건 천마의 눈동자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본좌의 사전에 그런 단어는 없다.”
“이제 좀 만들어.”
“거절한다.”
“야, 나는 너를 생각해서……!”
버럭 화를 내려던 장채원은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좌절이나 실패를 겪어보지 않았다는 천마.
혹시 이곳에서 실패를 한다면, 그 오만하고 안하무인인 성격도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그래. 한 번쯤은 좌절해 보는 것도 좋겠지.’
생각을 마친 장채원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래. 그럼 너 마음대로 해.”
“알겠다.”
“하하하! 듣던 대로 성격이 시원시원하구만!”
껄껄 웃은 교부신이 양복 주머니에서 붉게 물든 봉투를 꺼내 들었다.
“자, 보수는 선불로 주지. 몽땅 남은 내 신력일세.”
샤라라랑.
빛과 함께 교부신의 손에 들린 봉투가 사라지자, 장채원의 서랍 속에서 빛이 났다.
그녀가 서랍을 열어보니, 붉은색 봉투엔 고작 다섯 개의 은색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구두쇠 노인네!’
못해도 열 개는 들어 있어야 할 은총이 고작 다섯 개뿐이다.
“…….”
실망스러운 장채원의 눈빛을 외면한 교부신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조명은 집 안에 넣어두었으니 들어가서 설치만 해주면 되네. 이 몸은 보름 정도, 산천을 두루 구경하면서 신력을 회복할 생각이니까.”
“걱정 말고 천천히 다녀오시오, 노야.”
천마의 말에 교부신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자네만 믿고 돌아가겠네!”
짧은 바람이 불어오는가 싶더니 교부신의 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잘할 수 있겠어?”
장채원의 물음에 천마가 가슴을 두들기며 말했다.
“걱정 마라. 본좌가 완벽히 처리할 테니까.”
“좋아. 그 말에 책임 확실히 지라고.”
넌 분명 실패할 테니까.
그 말을 삼킨 장채원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 * *
교부신의 집은 도심을 벗어난 두메산골에 있었다.
천마는 토룡신의 거처처럼, 교부신의 집도 작은 토굴처럼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교부신의 집은 고풍스러운 돌담이 둘러 있고, 아름다운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끼익.
라마스가 멈춰 서고, 이내 천마가 시동을 껐다.
“도움은 필요 없다.”
천마는 조수석에 타고 있는 장채원을 보며 말했다.
“걱정 마. 나는 구경만 할 거니까.”
장채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정말로 구경을 하러 온 것이다.
천마가 좌절과 실패에 몸부림치는, 희귀하면서도 짜릿한 장면을 보기 위해.
“흐음.”
기대감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장채원의 시선을 피한 천마는 교부신의 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그렇군.”
멀쩡하게 지어진 단독주택의 문은 천마의 무릎 아래쯤에 세워져 있었다.
서너 살 먹은 아이 정도나 되어야 기어 들어갈 수 있을 크기다.
집은 멀쩡히 제대로 지어놓고, 입구를 교부신의 몸 크기로 지어버린 것이다.
“흠.”
입구를 바라보던 천마는 내공과 천마대능력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파앙!
온몸이 붉게 타오르는 형태로 변한 천마가 식지를 뻗자, 짙푸른 녹광이 레이저빔처럼 쏟아져 나왔다.
절정의 마화열극지였다.
치익!
엄청난 초고열의 광선이 현관문을 파고들었지만,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권마칠식, 천수공파!”
슈우우욱.
강력한 일권을 날리자, 현관문은 마치 천마의 힘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이런.”
멀쩡한 현관문을 자세히 관찰하던 천마는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천마의 내공과 천마대능력은 대자연의 힘, 그러니까 신력과 비슷한 성질이 있다.
때문에 신력으로 지은 교부신의 집에 손상을 가하기는커녕, 더욱 튼튼하게 힘을 주입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흐흐흐.”
굳은 천마의 표정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헤벌쭉 웃었다.
“실패했네?”
“…….”
활짝 웃는 장채원의 얼굴은 하회탈처럼 변해 있었다.
“드디어 실패라는 단어를 추가할 때가 왔네. 크하핫.”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의 혀가 길쭉길쭉 늘어나 있는 듯하다.
순간 천마의 몸에선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우웅.
까만 안개가 피어오르던 천마의 양손엔 어느새 까만 구체가 만들어져 있었다.
일 갑자의 내공을 얻어 펼칠 수 있게 된, 유일한 독문무학. 신마멸천장을 펼치려는 것이다.
“신마…….”
양손을 서서히 펼치는 천마의 눈은 어둠보다 짙은 암흑으로 물들어 있었다.
동시에 땅이 흔들리고 하늘에선 먹구름이 밀려오는 듯하다.
쩍. 쩌쩌쩌쩍.
그런데 천마가 신마멸천장을 펼치려 하자, 멀쩡하던 교부신의 담벼락에 실금이 갔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장채원의 말에 천마는 앞으로 뻗어내려던 팔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마멸천장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교부신의 집을 서서히 무너뜨리려 하지 않는가?
‘그런가.’
모든 걸 파괴하는 신마멸천장은 역천(逆天)의 힘.
그 힘은, 자연의 힘으로 지어진 교부신의 집과 상극이었던 것이다.
우저저적. 으지지지직.
마침내 땅까지 흔들리자 장채원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야, 교부신 님 집이 무너지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