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12화 (112/285)

제112화. 친해지길 바라 (1)

던전 관리팀의 재료 채취 의뢰는 모두 서류로 진행된다.

먼저 던전 재료의 특성이나 위치, 보수 비용 등 상세 내용이 담긴 서류가 장채원의 컴퓨터로 전달된다.

이후 던전 재료를 채취하면, 채취한 사진과 함께 사업자 등록증, 세금계산서, 통장 사본 등등… 던전 관리팀에서 요구하는 구비서류를 등기로 보내야 한다.

이게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장채원은 그동안 시간을 많이 뺏겼다.

뿐만 아니라 천마가 인테리어 시공이 잡혀 있거나, 던전에서 의외의 일이 발생해 납기일을 못 맞출 때도 있었다.

하지만 고은진이 입사한 후, 서류 업무와 사소한 재료 채취는 모두 그녀가 담당하게 되었기에 매우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타탁.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던 고은진이 장채원에게 말했다.

“사장님. 연두빵 열매 재료 재취는 언제 끝낸 겁니까? 사진이랑 채취 날짜가 다르지 말입니다.”

“네? 연두빵 열매요?”

잠시 고민하던 장채원이 천마에게 물었다.

“천마야. 너, 연두빵 열매 언제 재취했어?”

“저번 주 금요일이었다.”

“근데 왜 무명이 찍은 사진 파일은 월요일로 되어 있는데?”

“히든몬스터가 나온 탓에 연두빵이 모두 부서져 버렸다. 그래서 월요일에 다른 재료를 채취하면서 같이 입고했다.”

천마의 설명에 장채원이 고은진을 바라보았다.

“그랬다네요.”

“알겠슴돠.”

고은진은 다시 열심히 서류를 정리하며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님. 금은방 던전에선 별맞이꽃은 채취가 불가능하지 말입니다.”

“사장님. 가변던전 지역에 들어간 시간이랑 나온 시간이 너무 빠르지 말입니다.”

천마가 재료 채취한 것에 대해서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장채원이 견적서 작성 작업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잠, 잠깐만요.”

급당황한 장채원은 응접 테이블에 앉아 있는 천마를 가리켰다.

“천마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요.”

“근육몬은 책 읽을 때 방해하지 말라고 해서 말임돠.”

“일 이야기는 괜찮아요.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이고요.”

“무명을 매장에 놔두는 건 안 됩니까?”

“음… 저희는 일반 인테리어 매장으로 되어 있어서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음 창고 방 안에 가서 물어봐요.”

고은진은 물끄러미 천마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고은진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장채원이 슬쩍 살펴보니, 그녀는 연신 서류를 들여다보며 달력과 시계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천마에게 말을 건네기 싫어 서류를 비교해 가며 대충 끼워 맞추는 것이 분명했다.

‘으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채원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하긴, 입만 열면 싸우니까.’

천마와 고은진은 평범한 이야기도 두세 마디가 오가면 말싸움으로 번졌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천마는 평범한 이야기도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꼭 면박을 준다.

반대로 고은진은 평범한 이야기도 속을 뒤집으며 물어보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엄청나게 답답해했다.

‘아아.’

노트북을 바라보는 장채원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 다 일을 썩 잘하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업무 협조가 되지 않는 탓에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그럼, 퇴근하겠습니다.”

해가 질 무렵, 서류 정리를 모두 마친 고은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포차 여는 거예요?”

장채원의 물음에 고은진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은 정기 휴무지 말입니다.”

“그래요?”

시계를 힐긋 바라본 장채원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 회식이나 할까요? 그러고 보니 은진 씨 오고선 환영회 한번 못 했잖아요.”

“회식… 말입니까?”

“네. 김 기사님도 불러서 다 같이요.”

“음.”

응접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천마를 힐긋 바라본 고은진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지 말입니다.”

“왜요? 약속 있어요?”

“그… 며칠 전에 던전에서 얻은 검은종 열매로 소스를 만드는 걸 연구 중이라서 말임돠.”

장채원이 어색한 미소를 머금었다.

소스를 만드는 일이 그리 급할 리는 없을 터. 아마도 천마가 불편해서 가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 수고하십쇼.”

딸랑.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황급히 나가는 고은진을 보자, 장채원의 입에선 절로 침음이 터져 나왔다.

“으음.”

던전 관리팀의 서류 작업을 전담하는 고은진, 던전 재료 채취 실무자인 천마.

두 사람은 의외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거나 대화를 해야 할 일이 잦았다.

심지어 천마는 인테리어 시공이나 신뢰가 없으면 사무실에 앉아 책을 보기 때문에, 고은진이 출근하면 거의 같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곤란하네.”

작은 매장이긴 해도, 이곳도 엄연한 직장이다.

업무를 위해선 직원들끼리의 교류가 절대적이다. 언제까지 저렇게 데면데면한 사이를 유지할 순 없다.

“혹시 아직도 어색해?”

장채원은 묵묵히 책을 읽고 있는 천마에게 물었다.

“은진 씨 말야.”

“어색하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나.”

“그럼 하다못해 서로 인사는 할 수 있잖아. 조심히 들어가라든가, 뭐 그렇게라도.”

읽고 있는 책에 시선을 고정한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귀찮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채원와 매장을 찾아오는 고객들에겐 퉁명스럽게나마 인사를 하는 천마다.

그 역시 고은진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사람 관계라는 건 업무 명령으로 처리할 순 없고, 단시일 내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다시 노트북을 켠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견적서 프로그램이 아닌,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를 켰다.

근데 화면 하단에 묘한 광고가 보였다.

-친해지길 바래? 담원으로 연락하길 바래!

“뭐지 이건.”

광고를 클릭해 보니 난생처음 보는 회사의 업무 내용이 보였다.

-담원 심리상담 연구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상담을 통해 대인관계를 개선해 드립니다! 지금 연락 주세요!

“뭐야, 이런 곳도 있었어?”

턱을 괸 채 광고를 바라보던 장채원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천마와 고은진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이런 곳에서 해결해 줄 것 같진 않았다.

-창립 10주년 기념, 무려 출장 상담이 무료! 먼저 전문가를 직접 만나보고 결정하세요!

그런데 화면 하단에 또다시 현란한 팝업광고와 함께 전화번호가 적힌 하트가 그려졌다.

“10주년이나 된 회사였어? 게다가 오프라인 상담이 무료라고?”

잠시 고민하던 장채원은 전화기를 들었다.

며칠 후.

딸랑.

맑은 풍경소리와 함께 정장을 입고 푸근한 미소를 머금은 여성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담원 클리닉에서 온 고은영이라고 합니다.”

장채원에게 다가온 여성, 고은영이 명함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며칠 전에 상담을 신청하셨죠?”

“아, 네에.”

고개를 숙여 인사하던 장채원이 눈을 크게 떴다.

고은영이 내민 명함에는 ‘아동심리 상담사’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동……?’

가슴이 써늘해진다.

“저기… 상담 내용은 듣고 오신 거 맞죠?”

장채원의 물음에 고은영이 방긋 미소 지었다.

“아, 물론이에요. 성향이 다른 직원들 문제로 연락 주셨잖아요.”

“네. 근데 저희 직원들이 애들이라고 하기엔 너무 커서…….”

고은영이 푸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걱정 마세요. 저희 담원에선 상담하신 내용에 따라 전문가를 파견하니까요.”

장채원은 입술을 한일자로 늘렸다.

생각해 보니 천마와 고은진은 말 안 듣는 어린아이 같기도 하다. 특히 밥 먹을 때 말싸움을 하는 걸 보면 일곱 살 먹은 아이들을 보는 것 같다.

“제가 온 이유는 치료를 진행하는 게 아니라, 어떤 전문가를 불러야 할지, 상담 후 결정하러 온 것이니까요.”

“아, 그런 건가요?”

장채원의 속을 헤아린 듯 고은영이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바로 상담을 진행하는 줄 아셨군요.”

“아, 아뇨.”

“우선 심리 상태를 검사해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검사 비용은요?”

“무료입니다. 대신 해결이 되면 저희가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장채원이 밝아졌다.

비용을 후불로 받는다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럼 진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고은영은 들고 있던 전자수첩을 슬쩍 바라보았다.

“천마… 씨는 9시에, 고은진 씨는 1시쯤으로 출근하신다고요?”

“네. 두 사람이 부딪치지 않게 그렇게 맞춰놨어요. 평소에도 은진 씨는 자율 근무제를 하고 있고요.”

“아, 그러시군요.”

딸랑.

그때 풍경 소리와 함께 멋들어진 괘자를 입은 거구의 사내가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천마였다.

“아, 왔어?”

장채원이 손을 흔들자 천마가 옷 사이로 무명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고객이 있었군.”

“안녕하세요? 천마 씨?”

천마를 올려다보던 고은영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담원 클리닉에서 온 상담원 고은영이에요. 반갑습니다.”

“상담원?”

“복복 인테리어 업주이신 장채원 님께서 업무 효율을 위해 직원들의 심리상담을 요청하셨거든요.”

“필요 없다.”

천마가 단칼에 자르자 장채원이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야. 무조건 해야 하는 거야.”

“어째서냐.”

“그, 그러니까… 이거 유료야, 유료. 비싼 돈 들여서 하는 거라고.”

이 세계에 온 뒤로, 천마의 가치관이 크게 바뀐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세상에 금전만 한 것은 없다’라는 것이다.

밥을 먹든, 차를 고치든, 집을 얻든… 무림에선 ‘천마’라는 이름 하나로 해결되었던 일이, 지금은 ‘돈’이 있어야 해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무조건 해야 해. 알겠지?”

장채원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자, 천마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응접 테이블에 앉아 천마를 바라보는 고은영.

그녀는 까탈스럽고 무뚝뚝한 천마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은 채 상담을 진행했다.

“…그렇군요. 천마 씨는 고은진 씨의 업무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군요.”

능수능란한 고은영의 화술에 천마는 거부감 없이 술술 대답했다.

“그렇다. 무인이라면 피와 살육에 익숙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살을 베고 뼈를 자르고 내장을 훑는 것에 능숙…….”

말도 안 되는 험한 말을 늘어놓는 천마를 보며 장채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미친놈이라고 판정이 나는 건 아니겠지?’

그녀의 걱정과 달리 고은영의 표정은 전혀 바뀌지 않았고, 다행히 상담도 무사히 끝났다.

오전 1시 무렵, 고은진의 상담 시간.

“…그렇군요. 우리 은진 씨는 왜 천마 씨가 싫었을까요?”

고은영의 포근하고 다정한 말솜씨에 무뚝뚝한 고은진도 막힘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근육몬이 싫고 좋고가 어딨습니까? 그냥 근육몬이죠.”

“근육몬… 이요?”

“그렇슴다. 새로 발견된 타입이죠.”

듣고 있던 장채원은 입을 터억 벌렸다.

고은진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천마를 인간도 몬스터도 아닌, 근육몬이라는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존재라고 믿고 있었다.

“정말 힘드셨겠군요, 장채원 님.”

마침내 상담을 마친 고은영은 장채원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런 분들을 데리고 일을 하면서 업장을 유지하다니.”

“아, 네에.”

“직원분들은 모르실 거예요. 장채원 님이 이토록 고결한 희생정신과 더불어 직원들의 복지에 신경 쓰고 있는 다정한 분이시라는 걸요.”

울먹.

순간 장채원은 코끝이 찡했다.

평범하게 잘 살아가던 그녀에게 갑자기 하늘에서 똥떵어리, 아니, 천마가 떨어져 정령수를 파괴했다.

다행히 힘은 센 탓에 어찌어찌 일꾼으로 부리고 있지만, 때때로 터져 나오는 음험한 세계관으로 인해 그녀의 정신마저 피폐해질 때가 있었다.

고은진은 또 어떠한가?

책임감 있고 유능한 인재인 줄 알고 뽑아놨더니… 천마와 같이 있으면, 철천지원수마냥 매일 투닥거린다.

“정말… 미친개 두 마리를 기르는 기분이었어요.”

장채원이 무너지듯 흐느끼자, 고은영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요. 앞으로는 다 잘될 거예요.”

“정말요?”

“그럼요?”

고은영은 전자수첩에 있는 한 남성의 프로필을 보여주며 말했다.

“아마 이분이라면 충분히 두 분의 사이를 조금 더 좋게 해서, 업무 효율을 높이실 수 있을 거예요.”

눈물을 쓱 닦은 장채원은 전자수첩에 띄워진 프로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며칠 후.

오전 10시 무렵, 복복 인테리어 내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천마 님, 장채원 님.”

매장 문을 열고 들어온 다부진 체구의 남성이 장채원과 천마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저는 장형욱이라고 합니다.”

생김새는 조금 날카로워 보였으나, 목소리는 더없이 나긋나긋하다.

바로 담원 클리닉에서 온 심리치료 전문가, 장형욱이었다.

“안, 안녕하세요?”

“이게, 제 명함입니…….”

명함을 꺼낸 장형욱이 천마에게 내밀자, 장채원이 잽싸게 낚아채었다.

“하하하. 네에. 말씀 많이 들었어요.”

어색한 웃음을 터뜨린 그녀는 점소이마냥 손을 내밀며 응접 테이블을 가리켰다.

“앉으세요. 앉으세요.”

그리고 천마를 응접 테이블에 앉혀놓고는 어색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자자, 여기 앉아. 그럼 난 조금 있다 올게.”

“아뇨. 장채원 님도 이곳에 같이 계셔야 합니다.”

“네?”

장채원이 불안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자 장형욱이 빙그레 웃었다.

“보호자의 의식 개선도 매우 중요합니다. 대부분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건 보호자의 책임이거든요.”

“하다못해… 고용주라고 해주시겠어요.”

“네. 고용주님. 여기에 같이 앉으세요.”

장채원은 어쩔 수 없이 같이 응접 테이블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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