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뿔각고양이 테이머 (2)
무명이 쏘아낸 유도광 끝엔 붉은 나무가 둘러싸인 작은 호숫가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매우 근엄하게 생긴 거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는데, 복슬복슬한 털 사이로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풀이 곳곳에 돋아나 있었다.
-끄르르르릉.
뿔각고양이는 다가오는 천마를 보자 낮게 그르렁거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성가시거나 귀찮게 생각하는 것 같다.
[표정을 보니 호의적인 것 같진 않군요.]
뿔각고양이를 응시하던 무명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 번째 계획을 실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인 천마가 등에 짊어진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안에서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는 커다란 육포를 천천히 꺼내 들었다.
“점주가 준비한 최고급 육포다.”
-…….
“자, 이리 와서 처먹어라.”
천마가 육포를 내밀었지만, 뿔각고양이는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배가 고프지 않은 건가.”
[처먹으라고 해서 기분이 나쁜 건 아닐까요?]
“그럼 본좌가 저 고양이에게 ‘드십시오’라고 해야 했단 말이냐.”
할 말이 없는지 무명이 화제를 돌렸다.
[천마 님.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하세요.]
침음을 낸 천마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방에서 낚싯대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낚싯대 끝에 사람 몸통만 한 커다란 깃털이 달려 있는, 고양이 전용 놀이기구였다.
휘리릭. 휘리릭.
멀리서 고양이를 바라보던 천마가 손목을 움직여 깃털 낚싯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묘한 검법을 펼치는 것처럼 신중하고도 사이한 움직임이었다.
-…….
나른한 표정으로 깃털을 빤히 바라보던 뿔각고양이는 갑자기 발을 굴렀다.
콰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천마가 다가오던 쪽의 땅이 푹 꺼져 버렸다. 엄연한 위협의 행동이었다.
“좋은 말로는 안 되겠군.”
적의를 느낀 천마가 깃털 낚싯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오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깔아보고 있는 뿔각고양이를 향해 주먹을 주물럭거렸다.
“한낱 미물 주제에 본좌를 위협하려 하다니…. 죽고 싶나.”
[천마 님. 저 뿔각고양이를 화나게 하면 재료 채취는 포기하셔야 합니다.]
“저 고양이는 말로 해선 알아먹지 않을 것 같군.”
[당연한 겁니다. 뿔각고양이는 영물이지 않습니까.]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영물들은 평범한 인간의 말이나 명령은 듣지 않습니다. 설령 테이밍 스킬이 있는 1급 각성자라고 해도 뿔각고양이와 같은 영물은 쉽게 길들이지 못합니다]
행여 천마가 벼락같은 일격을 날릴까, 무명이 다급히 말했다.
[그리고 저희에겐 세 번째 수단이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까.]
무명은 천마가 내려놓은 포대를 가리키며 굽신거렸다.
[우선 세 번째 방법을 써보세요.]
간곡히 설득하는 무명의 태도에 천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주먹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포대를 주섬주섬 뒤져서 마른 풀이 가득 들어 있는 커다란 통 하나를 꺼내었다.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 일명 캣닢이었다.
[캣닢이라면 고양이들이 환장을 하죠. 분명히 이 방법은 통할…….]
말을 이어가던 무명이 눈 센서를 번뜩였다.
[천마 님. 뒤에서 생체 반응이 느껴집니다. 다른 각성자가 이곳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본좌도 느꼈다.”
등 뒤를 바라보던 천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상하군. 점주의 말로는 이 던전을 알고 있는 자는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설마, 우연한 계기로 이곳에 들어온 걸까요?]
그때 푸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동네 마실을 나온 듯 편안한 복장을 입은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벅저벅.
나른한 걸음걸이로 걸어오던 남성은 천마를 발견하곤 멈칫했다.
“어, 어라?”
엄청난 근육질에 험악한 인상을 가진 천마와 둥그런 나노봇을 보자, 남성은 눈을 파르르 떨었다.
“여, 여길 어떻게 들어오셨나요?”
천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본좌가 묻고 싶은 말이로군.”
-캬릉!
그때 낮게 웅크리고 있던 뿔각고양이가 풀쩍 뛰어오르더니 걸어오던 남성을 덮쳤다.
“위험…….”
천마가 다급히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리려던 찰나.
“꺄하하하! 간지러워. 하지 마.”
풀쩍 뛰어오른 뿔각고양이는 거대한 얼굴을 남성의 뺨에 부비고 있었다.
“요, 요 녀석!”
남성이 양손을 뻗어 복슬복슬한 털을 매만지자,
벌러덩.
황소만 한 뿔각고양이는 아예 벌러덩 배를 까고 누운 채 애교를 부렸다.
“하하하. 알았어. 알았어.”
배낭을 푼 남성은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천마가 들고 왔던 것과 똑같은 육포였다.
-챱챱챱.
뿔각고양이는 신이 난 얼굴로 육포를 씹었다.
그 모습을 본 천마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튀어나왔다.
“저 돼지 고양이 녀석. 처먹으랄 땐 먹지도 않더니…….”
남성과 뿔각고양이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던 무명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 센서를 비볐다.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평범한 인간이 영물을…….]
분명 남성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영물인 뿔각고양이를 애완동물 다루듯 길들이다니.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장채원 님만 한 힘을 가질 리는 없을 테니… 분명 테이밍 마스터군요.]
“그게 뭐냐.”
천마의 물음에 무명이 찬탄 섞인 음성으로 대답했다.
[테이밍은 몬스터를 길들일 수 있는 스킬입니다. 마스터라는 건 등급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실력과 스킬이 정점에 도달한 초(超) 각성자를 뜻합니다. 속칭 SSS 등급이라고도 표현하죠.]
무명은 전신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듯한 남성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남성은 몬스터를 길들일 수 있다는 스킬, 테이밍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마스터 같습니다.]
“네? 저요?”
무명의 말에 뿔각고양이를 쓰다듬던 남성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저, 저는 그냥 평범한 9급 각성자인데요.”
천마와 무명을 번갈아 바라보던 남성이 싱긋 웃었다.
“테이밍 스킬 같은 것도 없고요.”
[괜찮습니다. 마스터 님.]
무명은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스터 님 허락 없이 신상을 노출한다든가, 뿔각고양이와 노는 모습을 녹화해 온라인에 뿌린다든가 하는…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으니까요.]
“아뇨. 저는 진짜 평범한 9급 각성자인데요.”
[네. 이해합니다.]
“흠.”
무명과 남성의 대화를 바라보던 천마가 무표정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입장에선 남성이 겸손을 떠는 것이던 거짓말을 하는 것이던 별로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저 뿔각고양이 머리 위에 있는 풀을 어떻게 뜯을지가 고민이었다.
“저, 그런데…….”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남성이 천마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엔 어떻게 오셨나요?”
“걸어서 왔다.”
“아니, 그게 아니라…….”
뿔각고양이를 쓰다듬던 남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혹시 제가 테오브로마에 올린 동영상을 보고 찾아오신 건가요?”
“그게 뭐냐.”
[각성자들이 이용하는 동영상 플랫폼의 명칭입니다. 여러 가지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고, 인기 동영상을 올려 돈을 벌 수도 있죠.]
무명의 설명에 천마가 손을 내저었다.
“그런 건 모른다. 본좌는 그저 황금풀이라는 걸 얻으러 왔을 뿐이다.”
“황금풀… 이요?”
“저 고양이 머리통 위에 피어 있는 풀 말이다.”
순간 남성의 표정이 울적해졌다.
“알고 계셨군요. 저 고 형(兄)의 몸에 돋아난 풀이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진 유물이라는 걸.”
“고 형?”
“아, 제가 붙여준 이름이에요. 고양이 형(兄)이라고 해서, 고 형이라고 부르거든요.”
남성은 천마의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꼭 가져가셔야 할까요?”
“그렇다.”
“근데 고 형은 머리 위에 있는 풀을 뽑으면 아파해서…….”
“본좌가 알 바 아니다.”
“그렇군요.”
남성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게 다 제 잘못입니다.”
뿔각고양이를 올려다보던 남성이 탄식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절대 동영상을 올리지 않았을 텐데.”
[어라? 그럼 마스터 님이 예전 테오브로마에 이곳 던전 영상을 올리셨던……?]
눈 센서를 깜빡이던 무명이 소리치자, 남성이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렇다. 눈앞의 남성이 과거, 염파 도롱뇽에게 쫓기다 이 비밀스러운 던전에 떨어졌던 각성자, 김우진이었던 것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저자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냐.”
[아, 그게 말입니다…….]
천마가 미간을 찌푸리자 무명이 다가와 귀에 속삭일 무렵, 김우진이 아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배달꾼 일을 하고 있는 9급 각성자, 김우진이라고 합니다.”
김우진의 정중한 인사에 천마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본좌는 천마다.”
자신은 등급과 직업까지 밝히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건만.
나이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 데다 인상만 험악한 이 각성자는 달랑 이름만 내뱉는다.
김우진의 입장에선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으나, 너그럽고 둥글둥글한 성격인 탓에 개의치 않고 미소 지었다.
“네에. 천마 님이시군요.”
엷게 미소 지은 김우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천마 님께선… 예전부터 이 던전으로 들어오는 법을 알고 계셨던 건가요?”
“아니다. 본좌를 고용하는 점주가 알려주었지”
“그렇군요.”
[그럼 마스터, 아니 김우진 님은 예전부터 이곳을 발견하신 겁니까?]
무명의 물음에 김우진은 뿔각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뇨. 예전에 세이프던전 지역에 출몰한 히든몬스터, 염파 도롱뇽이 나타나는 바람에 이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염파 도롱뇽이라면…….]
“아, 예전에 뉴스에도 크게 나왔는데. 불을 뿜는 히든몬스터 못 보셨나요. 휴게소와 상점 몇 군데를 초토화시키고 막대한 피해를 냈던.”
그때를 회상하는 듯 김우진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때마침 근처에 저도 있어서 투명화 스킬을 사용해 숨어 있었는데, 이상하게 저만 따라오더라고요. 그렇게 도망 다니다가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어요.”
“…….”
[…….]
순간 천마와 무명은 무거운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휴게소를 초토화시킨 히든몬스터를 불러낸 장본인이었으니.
“그때 다리에 상처를 입은 터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영상을 찍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곳의 몬스터들은 전혀 적의가 없을 뿐 아니라, 영초와 황금풀로 저를 치료해 주었죠.”
천마가 불러낸 염파 도롱뇽으로 인해 죽을 위기에 처했던 김우진.
하지만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던전 내의 영물들의 도움을 받아 다리를 치료하고, 값비싼 영초들까지 얻은 후 무사히 귀환했던 것이다.
“너무 기쁘고 신기해서 당시 찍어둔 영상을 테오브로마에 업로드 시켰어요.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 되었죠.”
당시 동영상에 달린, 광기 어린 댓글을 떠올린 김우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는 다른 각성자들도 이곳을 순수하게 방문해, 힐링하는 장소가 될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댓글을 보고서야 그게 착각이라는 걸 알았어요.”
자신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나노봇, 철철이를 바라보던 김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많은 각성자들이 귀여운 몬스터, 아니 이 친구들을 테이밍해서 유통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늦깎이 각성자라 이 세계를 너무도 몰랐던 거죠. 하마터면 이 던전의 평화를 송두리째 앗아갈 뻔했어요.”
“흠.”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천마가 한 손을 휘저었다.
“본좌는 그런 사정은 모른다. 단지 저 황금풀이 조금 필요할 뿐이다.”
“조금요?”
“그렇다. 점주의 말로는 세 잎만 있으면 된다고 하더군.”
김우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깜빡였다.
“세 잎만요?”
“그렇다. 본좌는 의뢰받은 개수대로만 주면 되니까.”
팔짱을 끼고 있던 천마가 뿔각고양이를 보며 인상을 썼다.
“하지만 저 고양이는 절대 넘겨줄 생각이 없는 것 같군.”
“그러셨군요.”
“본좌가 이토록 노력했는데 말이다.”
천마가 가리킨 포대에는 육포와 캣닢, 그리고 놀이기구가 수북이 담겨 있었다.
가방을 본 김우진은 순간 실소를 했다.
이렇게까지 준비한 것을 보아, 무작정 동물들을 해치거나 유통하려는 나쁜 각성자는 아닌 듯하다.
“고 형.”
김우진은 뿔각고양이의 볼을 매만지며 말했다.
“저분은 그냥 황금풀 세 가닥만 있으면 된대. 그냥 주면 안 될까?”
-갸아아앙.
뿔각고양이는 턱을 내민 채 낮게 으르렁거렸다.
척 봐도 괜찮다는 의미 같았다.
“그럼 세 가닥만 뽑을게.”
조심스럽게 황금풀을 뽑은 김우진이 천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말 이거면 될까요?”
“물론이다.”
“혹시 다른 각성자들은 안 오나요?”
“안 온다.”
황금풀을 받아든 천마는 포대에 담긴 육포와 캣닢 등을 몽땅 내밀었다.
“자, 이건 필요 없으니 고양이에게 줘라.”
“아, 네. 감사합니다.”
“덕택에 쉽게 얻었군. 고생하라.”
천마가 시원스레 몸을 돌리자 무명이 외쳤다.
[천마 님. 잠시만요. 잠깐 저분과 이야기 좀 나누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이야기?”
[자그마치 국내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한 테이밍 마스터입니다. 혹시 앞으로도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잠시 고민하던 천마가 흠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을 받은 무명은 김우진에게 달려가 조심스레 말했다.
[김우진 님. 연락처 좀 얻을 수 있을까요?]
“네? 제 연락처를요?”
[저희 매장에선 다양한 의뢰를 처리하거든요. 김우진 님에게도 좋은 일거리가 있으면 혹시 소개시켜 드릴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아, 저야 일거리를 주시면 감사하죠.”
김우진은 어깨에 있는 철철이에게 말했다.
“내 연락처 전송해 줘.”
[전송 완료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우진 님!]
연락처를 얻은 무명이 희희낙락하며 몸을 돌리는데 김우진이 말했다.
“저어.”
[네, 말씀하세요.]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위치 공유는 하지 말아줄래요? 사용자분에게도 그렇게 꼭 부탁드린다고…….”
김우진은 다시 한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만약 이곳이 알려진다면 여기에 있는 동물들이 모두 위험해질 거예요.”
[걱정 마세요, 김우진 님.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무명은 안심하라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동물들은 모두 영험한 동물, 즉 영물들입니다. 일반 각성자들이 온다고 해도 결코 쉽게 당하지 않을 거예요.]
“영물?”
무명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 * *
“뭐? 테이밍 마스터?”
노트북으로 견적서를 뽑고 있던 장채원이 눈을 깜빡였다.
“그럴 리가 있어? 우리나라에 테이밍 마스터는 둘뿐이잖아. 그리고 무슨 테이밍 마스터가 솔로로 던전을 돌아다녀.”
[아닙니다. 분명 테이밍 마스터였습니다.]
“뭐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게다가 젊은 사람이었다며.”
그녀의 시큰둥한 대답에 무명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입니다. 그 뿔각고양이를 단숨에 길들였으니까요.]
“뿔각고양이를 길들였다고? 말도 안 돼?”
[정말입니다.]
장채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뿔각고양이는 설령 테이밍 마스터라고 해도 길들일 수 없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실 그거 영물이 아니라, 신수야. 애당초 길들일 수가 없다고.”
[네? 신수요? 신수가 왜 던전에 있단 말입니까?]
장채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사실 그 비밀의 숲 던전은 과거에 비어 있는 던전이었어. 그런데 오갈 데 없는 신수들이 거기에서 터를 잡기 시작한 거지. 살기 좋은 환경이니까.”
[말도 안 됩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무명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눈빛을 번뜩였다.
[당시의 상황을 홀로그램 영상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지지지징 소리와 함께 무명은 장채원의 눈앞으로 홀로그램 스크린 하나를 만들었다.
그 화면 속엔 벌러덩 배를 까고 있는 뿔각고양이와 그 배를 쓰다듬는 김우진의 모습이 보였다.
무명은 김우진 앞에선 녹화를 하지 않았다고 뻑뻑 우겼다. 하지만 결국 몰래 녹화를 했던 것이다.
[보세요. 김우진 님은 뿔각고양이를 완전히 길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상 당시 이곳의 수많은 동물들이 상처를 치료하는 영초를 앞다투어 바쳤다고 합니다.]
화면에는 김우진의 얼굴과 함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들은 전혀 적의가 없을 뿐 아니라, 저를 치료해 주었죠.”
“와.”
화면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낮은 탄성을 터뜨렸다.
“와아아아아.”
그녀의 눈동자는 점차 하트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화면 속에 비친 김우진의 얼굴.
바람결을 새긴 듯한 곱슬머리 사이로 보이는 까만 눈동자. 베일 듯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콧날과 눈망울.
그 모습은 마치 아시아인의 형태로 현신한 태양신, 아폴론과 같은 모습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명, 넌 저 얼굴이 안 보여? 저 사람, 엄청 잘생겼잖아?”
장채원의 말에 무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오관이 제법 반듯한 건 인정하지만… 그래봤자 천마 님의 용모에 비하면 별거 아닌 것 같은데요.]
“으음. 거기까지 가면 취향 차이긴 한데.”
장채원은 금강지체가 깨졌던 천마의 용모를 떠올렸다.
김우진의 얼굴이 태양처럼 밝고 화사하다면, 천마는 달빛처럼 어딘가 슬프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테이밍 마스터라.”
천마를 향해 오만상을 찌푸리던 뿔각고양이.
하지만 눈부신 용모의 김우진이 나타나자, 세상 사랑스런 표정으로 바뀌어갔다.
때때로 천마에게 시선이 갈 때면 다시 험악해지는 모습도 보였다.
“길들일 수 있다는 점에선 테이밍 마스터라고 할 수 있겠네.”
[역시 테이밍 마스터가 맞는 거죠?]
무명의 말에 장채원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정말 로봇은 로봇이구나.”
[네?]
“아, 아니. 외모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는 것 같아서.”
무명의 둥근 머리통을 쓰다듬은 그녀가 다시 말했다.
“아니, 뭐. 하긴 천마도 억울하긴 하겠다.”
천마와 무명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