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뿔각고양이 테이머 (1)
“여, 여기는.”
천천히 눈을 떠보니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따스한 빛이 스며 내리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 색색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꽃과 푸른 나무들.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아름다운 숲속의 풍경이다.
“끄응.”
바람에 흩날리는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으윽.”
척추를 곧추세우자 갑자기 발목이 찢어질 듯 아프다.
발목을 더듬더듬 만져보니 아이 주먹만큼 부어올라 있었다. 아마도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간 것 같다.
“대체 여기는 어디지.”
주위를 둘러보니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다.
내 이름은 김우진. 30세.
6개월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회사원이었으나, 뒤늦게 각성을 시작한 늦깎이 각성자다.
발현 스킬은 D급 은신 스킬 ‘인비저블’
투명화시킬 수 있는 건 달랑 내 몸 하나뿐이었으며, 지속시간도 매우 짧다.
딱히 팀에 들어갈 만한 실력도 스킬도 없는 데다, 몬스터랑 싸우는 건 더욱 싫었다.
고심 끝에 내가 선택한 일은, 던전 내의 자원을 수집해 납품하는 배달꾼이었다.
물론 자원이 대량으로 필요한 회사는 따로 각성자 팀을 운영하지만… 소량의 자원을 필요로 하는 곳도 많아 일감을 소소하게 따낼 수 있었다.
“갑자기 왜 히든몬스터가 나타난 거지…….”
본래 나는 세이프던전 지역 끝자락에 있는 C급 던전 내부에 있는 ‘달콤 돌멩이’을 캐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히든몬스터인 염파 도롱뇽이 나타났다.
휴게소 하나를 통째로 파괴하고도 뭐가 그리 약이 올랐는지,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던 염파 도롱뇽이 갑자기 투명화 상태로 숨어 있는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으어!”
염파 도롱뇽의 시선이 날 포착하자, 투명화 스킬이 풀려 버렸다.
전력을 다해 도망치던 나는 안개 너머 보이는 커다란 구덩이를 발견하곤 재빨리 몸을 날린 것이었다.
“구덩이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던전이었나.”
겉보기엔 아름다운 숲이지만, 하늘 위에 떠 있는 건 태양이 아니라 하얗게 빛나는 인공 조명이었다.
“철철아. 여기가 정확히 어디야?”
어깨에 매달려 있는 나노봇, 철철이에게 물었지만 위윙위윙 하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어디에 부딪쳐 고장 난 건가.”
단단한 합금으로 되어 있는 철철이의 외관 곳곳이 껌처럼 녹아 있다.
내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염파 도롱뇽에게 스턴건을 쏘다가 역공을 당한 흔적이었다.
[통, 통신 장애입니다. 지도 정보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회로가 손상된 듯 어눌한 철철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GPS가 손상되었습니다. 도주 경로와 방향을 미루어보아 가변던전 경계점 부근의 던전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역시 던전 내부였나.”
망했다.
다리는 크게 다쳤고, 어딘지 모를 던전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기어서라도 밖으로 나가는 것뿐이다.
후드드득. 두두두둑.
그때 저 멀리 보이는 수풀이 흔들리며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소리와 진동을 보건대 한 마리가 아닌, 대량의 몬스터가 이쪽으로 오는 것 같았다.
“젠장.”
품속을 뒤적인 나는 허리춤에 있는 작은 구슬, ‘콰앙군’을 꺼내었다.
각성자 상점에서 파는 투척용 수류탄으로 크기는 작지만, D급 폭발 스킬과 비슷한 파괴력을 낸다.
“철철아. 녹화 기능은 작동해?”
[가능합니다.]
“그럼, 이게 내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까, 영상 녹화해.”
[영상 녹화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영상 녹화 종료 후, 던전 밖으로 빠져 나가. 그리고 협회에 모든 정보를 업로드해.”
[명령을 확인하였습니다.]
내 죽음 따윈 안중에도 없는 철철이의 대답에 나는 쓸쓸함과 두려움을 꾹 삼켰다.
그리고 억지로 미소 지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래야 내 시신이라도 수습해 줄 테니까.”
시신이라는 말을 하고 나니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이렇게 인생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하지만 괜히 어쭙잖게 덤비다가 산 채로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하고 싶진 않았다.
푸스스스.
그때 수풀이 점차 움직이더니 수십 개의 그림자가 내 주위를 에워쌌다.
“어?”
그것들은 몬스터가 아닌, 어린아이처럼 작고 귀여운 여우, 고양이, 코알라 같은 동물들이었다.
-뽀옹?
수십 마리의 동물들도 놀란 듯, 동글동글한 눈망울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 * *
며칠 후.
각성자들의 동영상 공유 플랫폼, ‘테오브로마’에 독특한 영상 하나가 업로드되었다.
나노봇의 시점에서 녹화된 익명의 영상 속에는 아름다운 숲과 같은 던전이 보였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귀여운 몬스터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놀라운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몬스터들은 부상자로 보이는 각성자를 둘러싸더니 앞다투어 반짝이는 풀을 내밀었다.
그것들은 강력한 치유 효과를 가진 영초뿐만 아니라, 초고가로 거래되는 유물, 황금풀까지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노다지 던전이 발견됐다!
동영상의 제목은 ‘이렇게 아름다운 던전도 있었네요. 힐링됩니다.’였다.
하지만 각성자들의 눈에는 비싼 값에 팔릴 법한 몬스터들과 비싼 영초들만이 눈에 보일 뿐이었다.
이 영상이 업로드된 뒤로, 수많은 테이밍 스킬 각성자들과 탐색 스킬이 있는 각성자들이 던전을 찾기 위해 몰려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영상 속 던전의 위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 던전 찾기에 혈안이 된 것을 알게 되었는지, 익명의 작성자는 금세 동영상을 삭제했다.
-젠장! 위치나 알려주고 지우란 말이다!
귀여운 몬스터들과 영초들이 가득한 신비의 던전.
하지만 인기 영상이라도 반짝 유행이 될 뿐이다.
금세 다양한 영상으로 채워지는 동영상 플랫폼 특성상, 끝끝내 발견되지 않았던 그 던전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 * *
“뿔각고양이?”
응접 테이블에서 책을 읽던 천마가 장채원을 바라보며 눈을 껌뻑였다.
“동물인가.”
“아니, 뭐… 영물 같은 거야. 너희 세계에도 많잖아. 오래 사는 거북이나 학 같은 거. 그런 거야”
장채원은 던전 관리팀에서 보낸 서류를 천마에게 내밀었다.
홀로그램으로 띄워진 서류철에는 커다란 고양이 머리, 그리고 그 위에 붙어 있는 눈 결정과 비슷한 육각형 형태의 아름다운 풀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풀을 얻기 위해 동물을 설득하란 말인가.”
천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자 장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뿔각고양이의 허락이 있어야 이 황금풀을 얻을 수 있어.”
“이해할 수가 없군. 그냥 제압하고 뽑아오면 되잖나.”
“황금풀은 뿔각고양이의 머리 위에 그냥 붙어 있는 게 아냐.”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쉽게 말해 의식과 연결되어 있다고나 할까. 강제로 뽑아내거나 훔치면, 효력이 사라진대.”
그러면서 장채원은 천마의 발아래 커다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그곳엔 어른 팔뚝만 한 크기의 육포와 커다란 털이 달린 낚싯대, 캣닢이 잔뜩 들은 플라스틱 상자 등이 올려져 있었다.
“그래서… 이런 게 필요하다는 건가.”
“그래. 아무리 영물이라고 해도 고양이는 고양이니까.”
“으음.”
“그리고 무명에게도 말해두었으니까, 고양이가 좋아하는 행동과 싫어하는 행동에 대해서 숙지해 놔. 괜히 싸우지 말고.”
천마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신계의 의뢰라지만 이건 좀 그렇군.”
“어쩔 수 없지. 황금풀이라는 게 하필 뿔각고양이의 털에서만 자라니까.”
이번에 들어온 던전 재료 의뢰는 황금풀이라는 신비한 재료였다.
그런데 하필 황금풀은 뿔각고양이의 머리 위에서 자랄 뿐만 아니라, 의식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거기다 던전에서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뿔각고양이는 몬스터가 아니라 영물이라고 한다.
마치 던전에 설녀가 살고 있었지만, 몬스터가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필 이 고양이가 왜 던전 안에서 살고 있는 건가.”
“뭐, 거기가 마음에 들었나 보지. 던전이라고 해도 다 척박한 곳만 있는 건 아니잖아?”
“으음.”
팔짱을 낀 채 테이블을 내려다보던 천마가 침음을 내었다.
불만스럽긴 하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하루빨리 타이어를 교체해야 하니 말이다.
“알겠다. 본좌가 잘 처리하도록 하지.”
세이프 지역, 가변던전 지역의 경계 부근.
땅 위로 피어오르는 짙은 안개 속을 지나치자 숲과 함께 폐허와 같은 풍경이 드러났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쿰쿰한 냄새가 희미하게 들리는 몬스터의 울음소리와 뒤섞여 있다.
풍경은 세이프던전 쪽이 더 흉물스럽지만, 분위기는 가변던전 지역이 더 좋지 않았다.
[북동쪽으로 300미터만 더 가면 됩니다.]
무명의 안내에 따라 천마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어느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로 보이는 커다란 구덩이였다.
꽤나 깊은 곳인지 안쪽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이곳이 통칭, ‘비밀의 숲’ 던전의 입구입니다.]
“흠.”
깊은 구덩이를 바라보던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물론 이 좁은 구덩이가 던전의 입구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더러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고, 모험심이 강한 사람도 있다.
그런 자들은 한 번쯤 이 구덩이 안쪽을 조사하려 하지 않았을까?
타악.
구덩이 안으로 몸을 날린 천마는 그제야 이 던전이 왜 발견되지 않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바닥에 내려왔지만 묘한 어둠만이 가득할 뿐, 어디에도 던전의 입구 따윈 보이지 않았다.
“진법(陣法)과 비슷하군.”
무림의 모든 기관진식을 익힌 천마. 그는 눈앞에 보이는 어둠이, 실제 모습이 아니라 진식(陣式)에 의한 환영이라는 걸 대번에 파악했다.
“놀랍군. 이곳에도 기관진식을 사용하다니.”
[이곳에서는 결계라고 부릅니다. 신계에서 주로 사용하죠. 입구를 통과하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미리수극진처럼 대지의 힘을 이용해 환각을 보여주는 것이군.”
[네?]
“됐다. 본좌도 방법을 알 것 같으니.”
어둠을 응시하던 천마는 이내 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건방으로 삼 보, 감방으로 이 보…….”
단숨에 진법을 통과한 천마의 눈앞엔 환한 빛과 함께 아름다운 숲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이…….”
숲을 바라보던 천마는 탄성을 삼켰다.
태초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이 숲은 사당신이나 화령신이 머물렀던 곳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두두두둑.
그런데 수풀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숲 주변으로 수십 마리의 동물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뀨웅?
천마의 눈앞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형형색색의 귀여운 동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고양이와 다람쥐를 섞은 듯한 노란색 동물도 있었고, 뾰족한 이빨에 하얗고 둥근 배를 가진 곰 모양의 동물도 있었다.
“저것들은 뭐냐.”
TV에서 온갖 동물들을 다 구경해 본 천마조차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숲에 모여 있는 동물들을 바라보던 무명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도감에는 전혀 없는 몬스터들입니다. 생긴 것도 귀엽고 종류도 많은 것이, 마치… 포켓괴물 같군요.]
“뿔각고양이라는 것도 있는 건가.”
[아닙니다. 장채원 님이 저에게 주신 데이터에 의하면 뿔각고양이는 금색 뿔에 몸 너비만 해도 4미터가 넘는 거대 고양이 형태라고 했으니까요. 우선 안쪽으로 들어가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르르릉.
그런데 천마를 빤히 바라보던 온순한 동물들의 안면이 점차 일그러졌다.
낮게 으르렁거리며 송곳니를 드러낸 모습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왜 저러나.”
[아무래도 천마 님에게 적의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흥.”
낮게 코웃음을 친 천마는 양손을 주물럭거렸다.
“덤빈다면 조금 어루만져 줘야겠지.”
[임무는 뿔각고양이의 몸에 난 영초를 얻는 것입니다. 상관하지 말고 안쪽으로 진입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덤벼드는 건 결코 용서하지 않는 천마의 성격을 잘 아는 무명이 다시 말했다.
[던전으로 오기 전 고양이에게 호감을 사는 영상까지 보지 않았습니까. 저 몬스터들을 처리하면 뿔각고양이의 노여움을 살 확률이 높습니다.]
“으음.”
불만스러운 얼굴로 침음하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경로를 표시하겠습니다.]
무명이 동물들에 둘러싸여 있는 좌측 방으로 초록빛 유도선을 쏘아낼 무렵.
-뿌우우우!
그때 맨 앞에 서 있던 노란 다람쥐처럼 생기고 볼이 도톰한 동물이 튀어나와 번개를 쏘아냈다.
지지지직.
새하얀 번개가 화살처럼 뻗어 나오자 천마는 야월극속을 펼쳐, 재빨리 유도광이 쏘아진 숲속 안으로 몸을 날렸다.
숲속을 벗어나자 뒤따라오던 동물들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경공을 중단한 천마가 천천히 유도광을 따라 걷고 있을 무렵, 무명이 말했다.
[뿔각고양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