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달고나 신사 (1)
다음날.
어느 다가구 주택 인테리어 현장.
천마는 쌓여 있는 공사 폐기물들과 자재들을 폐기물 포대에 담고 있었다. 오전 내내 현장 내부를 깨끗이 치운 천마는 라마스를 타고 매장으로 복귀했다.
“시간 맞춰 왔네.”
견적서를 정리하던 장채원이 노트를 탁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점심은 해장국 먹으러 가자.”
“해장국?”
“으응. 오다가 보니 저기 앞 사거리에 김천 국밥 체인점이 생겼더라고.”
“그게 뭐냐.”
“아, 꽤 유명한 국밥 체인점이야. 여러 가지 해장국밥을 팔아.”
천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술도 안 먹었는데 무슨 해장국인가.”
일전 집들이 때 김찬원이 사 온 들깨 해장국을 떠올린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어해? 국밥?”
장채원의 물음에 천마가 흠 소리를 내었다.
무림엔 유수의 객잔이 있지만, 국밥 같은 건 팔지 않는다. 때때로 노점에서 커다란 솥에 끓여 파는 국밥을 팔긴 하지만 먹어본 적은 없었다.
“일전에 먹은 들깨 해장국이라는 건 본좌의 입에 썩 맞지 않더군. 그냥 짜장면이나 먹겠다.”
“해장국이라는 게 꼭 술 먹고 먹는 국을 뜻하는 게 아냐. 그냥 뼈해장국이나 선지해장국 같은 걸 다 해장국이라고도 해.”
“점심은 간단한 것이 좋다.”
자리에서 일어난 장채원이 겉옷을 집어 들며 말했다.
“그럼 딱이네. 국밥보다 더 간단한 음식은 없잖아? 빨리 후루룩 먹을 수도 있고. 한번 가보자. 새로운 음식을 한번 맛봐야지.”
[새로운 음식 말입니까?]
그러자 창고 방에 누워 있던 무명이 재빨리 굴러 나오며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빠질 수 없군요. 맛집 정보의 신뢰성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평가하겠습니다.]
“넌 국밥 못 먹잖아.”
장채원의 핀잔에 무명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식사 중에 표현되는 사람들의 얼굴 근육 변화만 보고도 음식의 맛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천마의 얼굴을 바라본 무명이 고개를 떨구었다.
[물론 얼굴 변화가 전혀 없으신 천마 님에게는 소용없지만요.]
“흠.”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번만 가보도록 하지.”
* * *
“끄윽.”
김천 국밥집 문을 열고 나온 천마는 배를 두들겼다.
일전에 먹었던 들깨 해장국이 담백하고 진했다면, 이번에 먹은 뼈해장국은 자극적이면서도 입맛을 돋우는 맛이었다.
포만감 가득한 천마의 표정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웃으며 물었다.
“어때? 먹을 만하지?”
“괜찮더군.”
칭찬이 소금보다도 짠 천마의 입에서 괜찮다고 하면 10점 만점에 8점 이상이다.
흐뭇한 표정으로 앞장서서 걸어가던 장채원은 문득 주택가 공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발견했다.
“뭐야? 무슨 공연이라도 하나.”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리어카가 세워져 있었고, 몰려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꼬마 아이들이었다.
“저건…….”
리어카에 올려진 국자와 버너를 바라보던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들은 어제 유은호와 한호조가 들고 왔던 물건과 완전히 똑같았다.
[어라? 달고나 노점상이 생겼군요?]
그때, 천마의 어깨에 올라타 있는 무명이 신기한 듯 말했다.
[이건 추억의 음식이라 파는 데가 없는데. 아이들이 신기해하나 봅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깡마른 중년 남성이 아이들에게 달고나를 나눠주고 있었다.
나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지만 머리가 하얗고 주름이 많아 꽤나 초췌해 보였다.
“어라, 공짜?”
리어카 가까이 다가온 장채원이 눈을 깜빡였다. 리어카 옆에 세워진 입간판에는 ‘아이들에겐 공짜로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나 보군요. 손이 꽤나 많이 가는 달고나를 공짜로 주다니요. 게다가 원하는 아이들에겐 직접 만들게 체험도 시켜주는군요.]
그런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는 코웃음을 쳤다.
“꽤나 시시한 수법이로군. 무림에선 이미 한물간 방식이지.”
“뭐가?”
몰려든 아이들과 중년 남성을 바라보던 천마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간식으로 호의를 산 다음, 유괴할 아이를 물색하는 수법 말이다. 하오문의 말종들이 어수룩한 아이들을 유괴할 때 자주 쓰는 방법이지.”
그 순간, 리어카 주변은 시간이 정지된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
“그게 무슨…….”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던 중년 남성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얘들아.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으아아아!”
모여 있던 비둘기들이 날아가듯, 리어카에 모여 있던 수십 명의 아이들의 순식간에 흩어졌다.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중년 남성이 마네킹처럼 굳어 있었다.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중얼거리던 중년 남성은 차마 ‘아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었다.
“죄, 죄송해요.”
중년 남성에게 고개를 숙인 장채원이 천마를 찌릿 노려보았다.
“어서 사과해. 이분은 그저 아이들에게 달고나를 나눠준 것뿐이라고.”
“생판 모르는 아이들에게 말인가?”
“아이들을 좋아해서 베푸시는 거겠지. 어떤 유괴범이 귀찮게 리어카를 끌고 ‘달고나 공짜’라고 써 붙이고 다녀?”
“점주, 이자의 표정을 봐라. 스스로를 반성하고 있잖나.”
천마가 가리킨 중년 남성은 아직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고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아이들을 좋아해서라고? 웃기지 마라. 이 자는 분명 목적이 있는 거다.”
“너 진짜…….”
진짜로 화가 난 장채원이 함부로 지껄이는 천마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맞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네에?”
장채원이 눈알이 튀어나올 듯한 표정을 짓자, 중년 남성이 머리를 숙였다.
“저분 말이 맞습니다. 저는 나쁜 놈입니다. 달고나를 주는 것도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 제 욕심이었습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황한 장채원이 얼어붙은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중년 남성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리어카를 끌고 힘없이 떠나갔다.
* * *
며칠 후, 어느 상가 부근.
맛집으로 소문난 순대 국밥집에서 점심을 먹은 천마는 장채원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주택가 골목을 걷고 있었다.
“어때? 순대국밥도 맛있지?”
“나쁘지 않더군.”
“음. 그 정도 대답이면 7.5점 정도려나.”
장채원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천마의 만족도 평점을 계산하던 찰나.
“당신! 당신이 이 달고나 팔았어?”
저 멀리 보이는 공원이 소란스러웠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뭐야, 싸움 난 건가.”
장채원이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한 뚱뚱한 남성이 리어카 앞에 있는 중년 남성의 멱살을 잡은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얼마 전 천마에게 유괴범 취급을 받았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대체 뭐 하는 짓거리야?”
“네?”
“이것 때문에 우리 아이가 배탈이 났잖아?”
손에 쥐고 있던 노란 달고나 조각을 바닥에 패대기친 뚱뚱한 남성이 중년 남성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어쩔 거야? 이거 먹고 우리 딸이 배가 아프다며 난리인데?”
“그, 그게, 저는 항상 그날그날 구입한 깨끗한 설탕을…….”
“웃기고 있네. 당신 이거 노점상 등록은 하고 장사하는 거야? 응? 관리는 하는 거냐고?”
노점, 거기다 공짜로 나눠주는 달고나 가게를 등록하고 하는 사람은 없다.
보다 못한 장채원이 인상을 쓰며 앞으로 나섰다.
“아저씨. 이게 장사로 보여요? 공짜로 나눠줬다잖아요?”
“넌 뭐야?”
“지나가던 사람인데요?”
할 말이 없던 사내는 억지를 피우기 시작했다.
“공짜? 공짜면 이런 불량식품 막 나눠줘도 돼? 이거 식품위생법에 걸리는 거 알아? 이 무더위 속 식재료 관리가 돼? 위생 관리는 하는 거냐고?”
다시 중년 남성의 멱살을 쥔 사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러다 식중독이나 전염병 걸리면 어떻게 할 건데? 콩밥 좀 먹어볼까?”
“죄, 죄송합니다.”
중년 남성은 입이 열 개라고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제, 제가 보상을 드리면 될까요?”
떨리는 손으로 안주머니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지갑에는 만 원짜리 두어 장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지금 장난하는 거야?”
지갑을 바라던 사내가 리어카를 발로 여러 번 후려쳤다.
퍼억. 땡그랑.
사방으로 흩어지는 설탕과 물건들을 바라보던 뚱뚱한 사내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시 이딴 걸 팔면 고소할 줄 알아!”
“이봐요!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에요?”
무례한 남성의 행동에 화가 난 장채원이 팔을 둥둥 걷어붙이려는 순간.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긴요. 괜한 트집을 잡고 있잖아요. 설탕 녹여서 만드는 달고나 먹고 무슨 배탈이 난다고…….”
“아닙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박살 난 국자와 버너 등을 망연히 바라보던 남성은 고개를 떨구었다.
장채원은 중년 남성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아저씨가 뭘 잘못했다는 거예요. 아무 잘못도 없잖아요.”
“흥, 나약한 자의 현실 도피겠지.”
어느새 장채원의 곁에 다가온 천마는 덤덤히 중얼거렸다.
“이런 자는 신경 쓰지 마라, 점주. 갱생의 여지가 없으니까.”
“너 진짜 함부로 말할래? 그게 무슨 무례한 말이야!”
“그분 말이… 맞습니다.”
“네에?”
장채원이 당황하자 중년 남성이 잠시 머뭇거리다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방탕한 놈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결혼도 했지만 매일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술만 마시면서 지냈죠.”
아이들이 두고 간 달고나 국자를 바라보던 중년 남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토바이를 타다 다리를 다친 이후로는 일도 나가지 않았죠. 아내가 일을 하고, 저는 집에서 술만 마셨습니다. 망나니 남편이었지만, 아내는 한 번도 절 비난하지 않았지요.”
지난날을 떠올리는 중년 남성의 눈동자엔 깊고도 긴 어둠이 드리워졌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앉아 있는데 아이가 놀이터 앞에서 파는 달고나를 가리키더군요. 그걸 사달라고, 먹고 싶다고…….”
고개를 떨군 중년 남성의 손끝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제가 사주지 않자, 아이는 달고나를 파는 곳에 하염없이 쭈그린 채 앉아 있더군요. 저는 그러려니 하고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가 없어졌더군요.”
장채원이 입을 틀어막았다.
아이를 유괴한다 의심했던 중년 남성 본인이, 오히려 유괴의 피해자일 줄이야.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가 처음으로 저에게 대들더군요. 저는 그저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새 중년 남성의 눈동자에는 회한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결국 전 아내와 이혼을 하고 혼자 살아갔습니다. 배달 일을 하면서, 막일을 하면서… 모아둔 돈으론 이렇게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달고나를… 아이가 좋아했던 달고나를…….”
장채원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무명은 침묵했다.
차마 들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였으나, 천마의 표정은 무심했다. 아니, 오히려 중년 남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시시한 이야기로군.”
“천마, 너…….”
“어리석은 인간은 항상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지.”
천마의 얼굴에는 인간을 초월한 위엄이 가득했다.
“다만, 실수의 그 대가가 생각보다 컸을 뿐이다.”
중년 남성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마의 말은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중년 남성은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고, 그 대가로 평생 씻을 수 없는 괴로움을 얻게 되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네가 타인의 삶을 함부로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어.
장채원이 발끈하자 천마는 덤덤히 말했다.
“후회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은 없지. 본좌는 옳고 그름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떨고 있는 중년 남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업자득이군.”
너무나도 매정한 말이었으나, 장채원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업자득.
천마의 말대로 중년 남성은 자신이 저지른, 지난날의 과오에 삼켜진 지옥 속에서 살고 있었다.
* * *
매발톱 던전.
던전 중심부에 사는 나방 원숭이라는 보스 몬스터 외에는 어디에서도 몬스터가 없는, 독특한 곳이다.
그럼에도 C급 던전 중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강력한 원거리 공격 스킬이 없으면, 던전 내부에 갇힐 수도 있는 독특한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매발톱 던전은 어떤 의미로는 규칙을 지켜야 하는 규칙 던전과 같습니다. 대신 규칙만 파악하면 쉽게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죠.]
천마의 어깨에 올라간 무명은 독수리의 발톱처럼 휘어진 거대한 던전을 올려다보았다.
[입구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출구로 나갈 때까지, 통로 곳곳에 설치된 금속 벽에 일정 시간마다 독특한 문양이 생겨납니다. 원거리 스킬을 사용해 그 문양 그대로 벽을 부수면 손쉽게 지나갈 수 있습니다.]
“간단하군.”
천마는 만월도처럼 휘어진 매발톱 던전의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통로가 보였다. 천장에선 은은한 빛이 내려오고, 벽과 천장은 암갈색의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얼핏 보면 금속으로 만들어진 터널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렇습니다. 원거리 스킬만 있다면 간단히 통과할 수 있으니까요. 때때로 꽤 복잡한 문양들이 나옵니다만, 실패한다고 해도 계속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군.”
천마가 들어가며 말했다.
“계속 도전할 수 있는데, 왜 위험하다는 거냐.”
[그건 원거리 스킬이 없을 때의 경우입니다.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으면 던전에 갇힐 수 있거든요.]
“갇힌다니.”
[저 문양이 만들어지는 금속 벽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강도와 경도가 상승합니다. 나중에는 단분자 커터로도 베어내기 힘든 수준으로 상승하죠.]
“흠.”
[물론 원거리 스킬이 없는 각성자도 올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트레저 헌터들이 애용하는 플라즈마 커터를 장비하면 해결되죠. 하지만 가격이 어마어마한 데다 유물도 안 나오는 던전에 가져올 리 없죠.]
천마는 무명이 말해주는 장비나 부품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는 편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편이었으나, 이름도 생소한 ‘플라즈마 커터’라는 것에는 문득 흥미를 느꼈다.
“그 커터라는 건 뭐냐.”
[초고온의 플라즈마 빔을 방출해 물건을 절단하는 장비입니다. 쉽게 말게 엄청난 고열을 일으켜서 대상을 녹이거나 관통하고, 절단하는 것이죠.]
“흠.”
그때 저 멀리 맞은편으로 보이는 벽에서 반짝이는 형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둥그런 해바라기와 비슷한 무늬가 손바닥 크기 정도로 작게 새겨져 있었다.
첫 문양이 등장한 것이다.
“고열을 일으켜 대상을 녹이거나 관통, 절단하는 기술이라.”
그제야 천마는 무명이 왜 간단하게 통과할 수 있는 던전이라고 말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화열극지!”
공력을 끌어올리자 천마의 손가락에선 짙은 녹광이 벽으로 쏟아졌다.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광선검이 쏘아져 나가는 듯한 모습이다.
치이이이익! 콰우우우우우!
천마가 쏘아낸 마화열극지는 순식간에 해바라기 문양을 고대로 도려내었다.
[천마 님은 평생 플라즈마 커터는 살 필요 없겠군요.]
연기를 뿜어내며 녹아버린 벽을 바라보던 무명이 탄성을 내었다.
마화열극지라는 극렬한 양강지력을 자유자재로 쏟아낼 수 있는 천마. 그는 플라즈마 커터가 달린 손가락을 갖고 있는 셈이었다.
“흥, 본좌가 평생 이곳에 있을 것 같나.”
천마의 덤덤한 대답에 무명이 입을 꾹 다물었다.
언젠가 이곳을 떠나갈 사용자.
아무리 연산을 해봐도 그럴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말을 당연하다는 듯,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대신 무명은 화제를 돌렸다.
[마화열극지 기술 말입니다. 쓰실 때마다 조금씩 다른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데요. 이유가 있을까요?]
“공력을 얼마나 쏟아내는가에 따라 다를 뿐이다.”
툭.
말을 이어가는 사이 금속 벽에서 잘린 문양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천마 님.]
은빛으로 반짝이는 해바라기 모양의 금속을 응시하던 무명이 천마에게 말했다.
[이걸 포대에 넣어주시면 안 될까요?]
“쓸 데가 있나.”
[그냥 제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어서요.]
무명은 몹시 귀찮은 표정을 하고 있는 천마를 보며 간절하게 말했다.
[안 될까요?]
흠 소리를 낸 천마는 바닥에 떨어진 해바라기 모양의 문양을 포대에 넣었다.
사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도가 빤했기에 망설인 것이다.
[감사합니다. 천마 님.]
이후로도 던전 중심부에 이르는 동안 막힌 벽에서 문양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별, 꽃, 나무와 같은 식물부터, 자동차, 비행기 등등… 현대의 운송 수단의 형태까지 나타났다.
그때마다 천마는 마화열극지로 문양을 수월히 도려내었고, 무명은 천마에게 부탁해 문양 조각들을 포대에 담았다.
“지루하군.”
터널은 끝없이 이어졌고 문양은 계속 나타났다. 천마가 하품을 하며 입을 벌릴 무렵, 무명의 눈이 반짝였다.
[앞으로 나오는 문양이, 중심부에 도달하기 전 마지막 문양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