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천마의 불구경
일 갑자의 내공을 채웠지만, 아직도 천마는 음양이기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독문무학을 선택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필요성(必要性).
지금까지 천마는 천마대능력이라는 천고의 비법으로 인해 몬스터를 단박에 처리했다. 딱히 강력한 무공을 펼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일 갑자라는 내공을 달성한 지 어느덧 엿새가 흘렀다.
일요일 오후. 어느 시내 번화가의 상가건물 앞.
하얀 벽돌로 꾸며진 건물을 올려다보던 천마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가.”
1층 매장은 내부가 환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로 되어 있었고, 입구 위엔 금빛으로 반짝이는 간판이 올려져 있었다.
-토실카롱.
아기자기한 마카롱 형상으로 만들어진 글자들이 뒹굴고 있다.
천마는 무명의 안내로 디저트 카페 맛집 중에서도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 ‘토실카롱’에 도착했다.
무심한 표정으로 간판을 올려다본 천마는 토실카롱 입구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천마 님.]
그때 천마의 어깨에 올라탄 무명이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다른 곳을 먼저 방문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무슨 말이냐.”
무명은 통유리 너머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곤 다시 말했다.
[저쪽 맞은편 건물에 있는 씨앗호떡과 잡채호떡도 평이 상당히 좋거든요.]
휴무일인 일요일엔 천마는 종종 무명과 맛집을 방문한다. 게다가 이번 주엔 일 갑자의 내공도 채웠고, 때마침 월급도 받았다.
이런저런 좋은 일이 있으니 천마는 오전부터 무명과 함께 시내로 와 맛집 탐방을 시작한 것이다.
무명이 선택한 이번 맛집 탐방 기준은 단 음식. 과거의 기억 때문에 달콤한 빙당호로를 먹지 못했던 천마를 위해서였다.
“자신이 없어졌나 보군.”
갑작스러운 무명의 회유에 천마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뭐, 괜찮다.”
[네?]
“본좌는 단 음식 따윈 별로 기대하지 않으니까.”
이곳에 오기 전 무명은 천상의 단맛이라는 둥, 혀를 녹이는 환상적인 당과라는 둥, 인터넷상에 올라온 평가를 천마에게 읽어주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다른 곳을 종용한다? 천마는 무명이 뒤늦게 자신감이 떨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게 아닙니다, 천마 님. 사실 제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말하라.”
[바로 분위기입니다.]
“분위기?”
천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본좌는 분위기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맛으로 평가하지.”
흔들림 없는 천마의 눈빛을 바라보던 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어서 들어가시지요.]
“으허험.”
헛기침을 한 천마는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열었다. 통유리 문이 열리자, 화려한 조명 아래 아기자기한 매장의 풍경이 펼쳐졌다.
내부는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곳곳엔 토실카롱 캐릭터들이 깜찍한 모습으로 웃고 있다.
뿐만 아니라 테이블엔 모두 젊은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음료와 디저트를 즐기고 있다.
“그런 거였나.”
천마는 잠시 몸을 움찔거렸다. 비로소 무명이 걱정했던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핑크빛 타일, 아기자기한 장식품들, 직선이라곤 눈 뜨고 찾아볼 수 없는 둥글둥글한 집기들과 소품들.
사랑스러움 가득 찬 이곳은 천마라는 거칠고 사나운 존재의 출입을 한 치도 용납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후퇴하시겠습니까?]
무명의 말에 천마가 눈썹을 찌푸렸다. 천마는 그딴 치욕적인 단어를 사전에 등재해 본 적이 없다.
“천만에. 이대로 간다.”
[알겠습니다.]
“어서 오세…….”
천마가 성큼 매장으로 들어오자, 카운터에 서 있던 점원이 고개를 숙이다 입을 벌렸다.
멋스러운 쾌자를 입긴 했지만, 옷감 위론 찢어질 듯한 근육이 울룩불룩 솟아 있다.
사자 갈기와도 같은 헝클어진 머리칼.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번뜩이는 시뻘건 광채.
만약 매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마주쳤다면 점원은 비명부터 질렀을 것이다.
“추천하라.”
“네?”
“무명에게 한 말이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무명이 다시 한번 내부를 쓱 둘러보았다.
들어오자마자 여성 고객들의 따가운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천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미건조한 표정을 유지할 뿐이다.
“본좌는 객잔의 분위기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그럼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천마의 어깨 위에 있던 무명은 진열대에 있는 다양한 마카롱을 가리켰다.
[이 매장의 주력 상품은 이 마카롱입니다. 가격은 2~3,000원대. 31개의 다양한 맛이 있고, 매대에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고르시면 됩니다.]
진열대의 화사한 파스텔 색감의 마카롱을 바라보던 천마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둥그런 빵의 겉면과 색감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인위적이다. 게다가 크기나 모양조차도 썩 탐탁지 않은 것이다.
[이곳은 민트초코가 유명하니 반드시 고르시길 추천드립니다.]
“됐으니 알아서 주문하라.”
[알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무명은 카운터로 폴짝 뛰어내린 후, 얼어붙은 여성 직원에게 말했다.
[실례합니다. 주문해도 될까요?]
둥글둥글한 나노봇이 유창하게 말을 하자 직원은 토끼 눈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복숭아 요거트, 바닐라, 녹차, 황치즈, 그리고 민트초코, 이렇게 주문 부탁합니다.]
“포, 포장하시겠어요? 박스 포장은 6구부터 가능해요.”
[매장에서 먹고 갈 겁니다.]
능수능란한 무명의 응대에 굳어 있던 직원의 표정이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음료도 주문하시겠어요?”
팔짱을 낀 채 점원을 무섭게 내려다보고 있는 천마를 힐끔 바라본 무명이 고개를 저었다.
[음료는 괜찮습니다. 시원한 물 한 잔 부탁드립니다.]
테이블 위에 다섯 개의 마카롱과 물이 든 컵이 올라간 쟁반이 놓였다. 매장 구석 자리에 몸을 구겨 넣은 천마는 눈앞에 놓인 마카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단맛이라.”
무림에 있을 당시 온갖 산해진미를 즐긴 천마는, 단 음식은 그저 후식으로 가끔 나오는 것들만 조금 맛보았을 뿐이다.
단 걸 싫어해서가 아니다. 애당초 늘 적은 양으로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음식은 왜 이리 쥐꼬리만큼 만드는 거냐!’
그때마다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마도의 종주가 아이들처럼 단 음식을 즐긴다는 소문이 나는 걸 천마는 원치 않았다.
종종 단 음식이 생각나면 이따금 달게 만든 죽이나 꿀에 살짝 절인 복숭아 등을 남몰래 슬쩍 시켜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후후후.”
마카롱을 바라보는 천마의 입가에선 낮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곳은 다른 세계. 마도종주란 지위도 명성도 없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단 음식을 느긋이 즐길 수 있다는 뜻. 설령 100개를 먹는다고 해도 체통을 잃을 염려가 없다.
기대감에 찬 시선으로 쟁반을 내려다보던 천마는 바닐라 마카롱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어떠십니까.]
천마는 대답 대신 내공을 끌어올린 손가락을 복숭아 요거트 마카롱에 갖다 대었다.
싸아악.
그러자 마카롱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며 쫀득한 분홍색 꼬끄 사이, 크림색 필링 속에 박힌 복숭아 조각이 보였다.
“괜찮군.”
[다행입니다.]
무명은 천마의 괴상한 화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
‘상당하군.’ 내지는 ‘상당한 맛이다.’는 100점 만점에 95점 이상. ‘괜찮다.’라는 건 80에서 90점 정도. ‘나쁘지 않다.’라는 건 80점 언저리.
한마디로 이곳 마카롱은 천마의 입맛에 꽤나 잘 맞아떨어진다는 뜻이었다.
[그럼 다른 맛도 더 주문해 볼까요?]
“아니, 나머지는 다음에 먹도록 하지. 어차피 즐길 시간은 많으니.”
입에 넣은 마카롱의 단맛을 음미하던 천마가 대뜸 말했다.
“아까 맞은편에도 괜찮은 음식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 씨앗호떡 말씀이시군요. 그건 지금 길 건너 보이는 맞은편 상가에…….]
창밖을 가리키던 무명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저게 대체…….]
반대편 빌딩 꼭대기에선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고, 비명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애앵.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곧 두 대의 소방차가 나타났다. 하지만 도롯가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이 잔뜩 세워진 탓에 소방차는 건물 앞까지 접근하지도 못했다.
“어떡해! 불났나 봐.”
“이번에 던전에서 나오는 재료로 만든 신형 방화 슈트 보급됐다잖아. 괜찮겠지.”
“그거 말만 나오고 아직 안 바꿔줬다는데?”
“아, 진짜? 어떡해!”
매장 내의 손님들은 창밖을 보며 웅성거렸다. 묵묵히 불난 빌딩을 올려다보던 천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방 호스를 들고 뛰거나, 건물 내부로 진입하는 소방대원들의 동작이 너무나 굼뜨고 느릿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뭘 하는 거냐.”
[화재를 전문적으로 진압하는 소방대원들입니다. 시민들을 위해 목숨 걸고 일하는 공무원이죠.]
“화재를 전문적으로 진압한다고? 저런 자들이 말이냐.”
천마의 눈엔 전력을 다한 소방관들의 움직임이 강호에 막 출두한 햇병아리 무사들보다도 엉성하게 보일 뿐이었다.
천마의 말속에 비웃음이 녹아 있다는 걸 깨달은 무명이 한숨을 쉬었다.
[저들은 각성자가 아니라 일반인입니다.]
“일반인?”
[그렇습니다. 인구 대비 각성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니까요. 심지어 수도권을 제외하곤 지방엔 각성자들이 잘 살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방에 의무적으로 각성자들을 살게 하면 되지 않나.”
잠시 말을 멈춘 무명이 묘한 탄식과도 같은 말을 했다.
[소용없습니다.]
“소용없다니.”
[사실 각성자들은 군경 혹은 소방과 같은 현장직 공무원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스포츠 선수도 될 수 없죠.]
“그게 무슨 말이냐.”
[공정하지 않으니까요.]
“공정?”
[그렇습니다. 9급 각성자라고 해도 스포츠 선수보다 수배는 힘이 셉니다. 그런 각성자들이 전 분야에 나서면 일반인들은 설 곳이 없을 겁니다. 스포츠 쪽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요직은 각성자들이 차지’하게 될 테니까요.]
“이해가 안 가는군.”
천마의 중얼거림에 담긴 뜻을 짐작한 무명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각성자들은 소수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특별한 힘과 스킬을 가진 각성자들이 자신들을 지배하길 원치 않을 겁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각성자를 쓰지 않는단 말이냐.”
냉소를 머금은 천마가 덤덤히 말을 이었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건 자연의 이치다. 하지만 이 세계의 인간들은 항상, 강자의 힘을 억눌러 자신들의 생존을 도모하고 있구나.”
[순수한 생존경쟁이란 의미에서 봤을 땐 반론의 여지가 없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사회 시스템은 그리 단순하진 않습니다.]
무명은 화재 현장으로 다급히 뛰어가는 소방관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베테랑 1급 각성자 열 명으로 이루어진 팀의 전투력은, 중무장을 한 1개 보병사단의 전력을 능가합니다. 한마디로 각성자 열 명이 1만 5천 명의 일자리를 소멸시켜 버릴 수 있는 거죠.]
“흠.”
[일반인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각성자들은 강력한 육체 능력이나 스킬을 노력도 없이 얻어낸 ‘금수저’일 뿐입니다. 그 점만 보더라도 각성자란 존재가 마냥 좋게 보일 리 없겠죠.]
“어리석군. 같은 생물이라도 타고난 능력은 제각각 모두 다르거늘.”
천마는 경멸 섞인 목소리로 무명을 내려다보았다.
“인간들은 언제나 욕심과 시기 질투로 발전을 스스로 저해하는구나.”
무명은 테이블 아래에 시선을 고정할 뿐 그 말에 반론하지 못했다. 이윽고 고개를 들어 천마를 올려다보았지만, 무명의 입에선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천마 님. 어째서, 같은 인간들을 하찮게 보십니까?’라는 질문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다시 화재 현장으로 고개를 돌린 무명이 화제를 전환했다.
[물론 각성자들을 아예 직업군에서 배제한 건 아닙니다. 사실 협회와의 공조를 통해 군경과 소방 쪽에서도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특별팀이 있습니다. 다만 중대한 사안이나 크게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투입되지 않을 뿐이죠.]
“흠.”
[안타깝게도 저런 단순한 화재 사고로는 협회에 연락하진 않을 겁니다.]
화재 현장과 천마를 번갈아 바라보던 무명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지나가는 각성자가 도와주길 바랄 뿐이죠.]
노골적인 부탁의 의미가 담긴 말이다. 하지만 천마는 관심 없다는 듯 마지막 남은 황치즈 마카롱을 집어 들었다.
“그럼 이제 호떡이라는 걸 먹으러 가지.”
[저 화재 현장을 뚫고 말입니까?]
“무슨 상관이냐. 불난 곳은 호떡집이 아니잖나.”
무명은 황당함을 꾹 삼키며 말했다.
[저 정도 불길이라면 곧 건물 전체로 화재가 확산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씨앗호떡은 다음에 드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매캐한 연기가 흩날리는 꼭대기 부근을 바라보던 천마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근처에 다른 점포는 없는 거냐.”
무명은 천마를 빤히 바라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 * *
매캐한 연기와 시뻘건 화염이 치솟고 있는 화재 현장.
방화복을 입었다고 해도 뜨거움마저 차단되는 것이 아니다. 방화복이 제공하는 건 화재 현장에서의 탈출 시간 동안 버티는 정도의 방열 효과이지, 완벽한 열 차단은 아니었으니까.
-아아악!
화재 현장을 헤맬 때마다 짧은 비명 소리가 시커먼 연기 사이로 들리는 것 같다.
환청인가? 아니다. 분명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였다.
“어디 계십니까!”
소방관 이석기가 정신없이 불길 사이를 뚫고 나가며 소리칠 무렵.
“기다려!”
천둥 같은 반장의 외침에 걸음을 멈추었다.
“석기야! 앞서 나가지 말고 지시에 따라 움직여!”
“알겠습니다!”
하지만 대답과는 다르게 이석기의 몸은 비명 소리가 났던 안쪽 부근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미친놈아! 그쪽은 안 돼! 곧 무너진다고!”
“구조 대상자가 안에 있습니다!”
“뭐?”
“시간 없습니다!”
“야, 너…….”
뒤에서 들려오는 반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이석기는 황급히 건물 안쪽으로 진입했다.
‘각성자 전용 상점?’
비명이 들린 곳은 전당포처럼 육중한 철문으로 되어 있는 각성자 상점 안이었다.
열린 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동물의 깃털이나 뿔 같은 것이 잔뜩 쌓여 있고, 한쪽의 매대에는 아름다운 보석 같은 것이 진열되어 있었다.
‘각성자는 없나?’
각성자가 도와준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손님으로 온 각성자들도 딱히 없는 것 같다.
“콜록콜록!”
그때 짧은 기침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반쯤 타버린 문 안으로 들어가니, 각성자들이 사용하는 병기들과 무구 등이 전시된 창고가 나왔다.
“살려주세요!”
창고 한편에는 대형 방패 같은 것에 발이 깔린 중년의 여성이 있었다. 이석기는 다급히 달려가 금속 방패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치익.
잔뜩 달아오른 방패를 두 손으로 잡자 내열 장갑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평범한 불길이 아냐!’
초고열에도 견디는 내열 장갑을 단숨에 태우다니?
하지만 생각할 겨를이 없다. 손이 녹든 말든 이석기는 온 힘을 다해 방패를 밀어냈다.
“으으윽.”
하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방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장님. 15층 끝 쪽 상점에 구조 대상자가 있습니다. 방패에 깔렸는데, 제힘으론 움직일 수…….”
이석기가 어깨에 달린 무전기에 대고 외치던 찰나.
퍼엉!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상점의 입구 쪽에서 화염이 솟구쳤다.
후우우욱.
동시에 뜨거운 열기와 시멘트 파편들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다행이라면 폭발로 인해 대형 방패가 반대편으로 쓰러진 것이었다. 이석기는 재빨리 중년 여성의 몸을 꺼내주었다.
“우선 이걸 쓰세요!”
휴대용 산소마스크를 중년 여성의 얼굴에 걸어준 이석기가 말했다.
“혹시 여기에 폭발물도 파는 겁니까?”
“진열대 쪽에 부비스톤이 있어요.”
“부, 부비스톤?”
이석기의 눈에선 절망이 피어올랐다.